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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7 00:08 (토)
그녀는 그것이 가리키는 시간의 의미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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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것이 가리키는 시간의 의미를 새겼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4.17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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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었으나 조명은 더 휘황했고 사람들은 줄기보다는 늘었다. 그래서 로비는 북적였고 여기저기서 작은 환호와 탄식이 흘러나왔다.

대체적으로 표정은 밝았다. 잃은 사람도 웃고 딴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전문도박꾼이 아닌 오락의 일종으로 혹은 여행의 일정으로 카지노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리처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녀처럼 생전처음으로 라스베이거스에 왔고 처음으로 기계 앞에 앉았으며 처음으로 확률에 기대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는 조금 흥분해 있었다. 낯선 여행지가 주는 기대감에 어쩌면 딸 수 있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 바로 객실로 올라기지 않고 로비에서 멈춰섰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올 때 까지만 오락을 하기로 하고 그렇게 했던 것이다. 혹시 너무 집중해서 그녀가 올 때를 눈치채지 못할 까봐 아예 객실로 가는 통로에 자리 잡고 이동을 하지 않았다.

마침 그녀가 그런 리처드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등뒤에서 그녀는 그가 하는 행동을 그가 모르게 지켜봤다. 리처드는 있는 코인을 다 탕진하기 전에 시간을 끌었다.

아마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가 마지막 코인을 넣고 레버를 아래로 당겨 꽝이 나오자 어깨를 가볍게 쳤다.

리처드가 돌아봤고 둘은 시선을 마주쳤다. 땄어요? 그녀는 남편이 그녀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리처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늦지 않고 제때 와준 것에 안도했다. 그녀는 이곳의 밤거리는 남자들이 실없이 던지는 농담까지 용인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지 의문이 들어 산책을 포기했노라고 말했다.

그녀는 세라의 처지를 이해했지만 세라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리처드는 아직 잠을 자고 싶은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른 아침 기상을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했다. 그녀는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내일 아침 5시에 로비에서 만나 일찍 그랜드캐니언으로 가자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그 시간이면 아침 식사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놀라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오전에 여행을 마치고 오후에는 엘에이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녀는 이유를 설명했다.

갑자기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남편에게 이미 그 사실을 알렸다는 것도 말했다. 예정에 없던 것이어서 리처드는 당황했다.

아직 여행의 절반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는 양해를 구하면서 혼자라도 여행을 계속하라고 리처드에게 주문했다.

그는 곧 수긍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는 어렵지 않게 동의했다. 리처드가 벌떡 일어났다. 다섯시에 만나기 위해서는 자지 않고는 안됐기 때문이다.

그는 일부러 허둥대면서 급하게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녀도 따라갔다. 객실로 돌아온 그녀는 창밖의 풍경을 보았다.

화려한 레온 사인은 여전했다. 이곳은 밤낮이 따로 없었다. 밤이라고 해서 주눅 들지 않았다. 밤이라고 해서 자야할 이유가 없었다.

시간은 없었고 낮 밤은 구분되지 않았다. 엄청나게 비싼 호텔도 있었지만 겨우 여관 값 정도밖에 안 하는 싼 호텔도 아주 많았다.

자지 않는데 호텔이 비쌀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더구나 지금은 큰 행사가 없는 비수기였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유명지에서보다 더 싼 값에 더 좋은 호텔 방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었다.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한 시였다. 이곳 그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시계를 보고 있으니 그녀는 새삼 시계라는 것과 그것이 가리키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겼다.

커튼을 닫자 야광판의 초침이 스르르륵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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