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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기 쉽게 옆으로 기울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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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기 쉽게 옆으로 기울어 졌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11.14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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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좋은 카페에서는 기분이 업 되기 마련이다. 그런 것은 산에서도 마찬가지다.

붕 뜬 상태에서 의자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식탁이 있고 그 위에 포도주와 잔이 있다. 이런 상태라면 있는 기분 없는 기분 다 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자칫 오버라는 것을 할 뻔 했다. 다행히 그러지 않고 멈춘 것은 절대자가 풍기는 묘한 분위기 때문이었고 나 자신이 그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병을 들어 빈 잔에 채우기 위해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병은 스스로 움직여 위로 올라와 따르기 쉽게 옆으로 기울어 졌다.

나는 그 모습을 신기했지만 신기하지 않다는 태도로 지켜보았다. 병은 두 개의 잔에 나란히 채워졌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았다.

오래 동안 금주했던 나는 올라오는 시큼한 술 냄새에 코가 벌름거렸다. 어서 잔을 들어 맞대고 쭉 들이 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이런 데서라면 금주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인가. 바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줄 수 있는 절대자가 아닌가. 이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절대자는 손을 아래로 내리지 않고 흠흠하는 낮은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잔은 스스로 떠올라 잡기 좋은 상태가 됐다. 나는 눈앞에 있는 잔을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잡고 싶었다. 그래야 왼쪽에 앉은 절대자와 건배하는데 편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잔이 그냥 그대로 떠 서 입가로 다가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술은 누가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잔이 입가로 오기 전에 손을 뻗어 덜컥 잔을 잡았다. 

술을 제대로 먹기 위한 나의 적극적인 태도였다. 절대자는 흠칫 놀라는 것 같았는데 곧 평상심을 되찾았다. 절대자도 손을 뻗어 잔을 잡았다.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잔을 부딪치기 위해 옆으로 돌렸다. 절대자도 그렇게 했다. 산정에서 유리잔이 부딪히는 작은 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는 심장 깊숙한 곳에서도 퍼져 나왔다.

잔속의 포도주가 출렁였다. 작은 공간에서 움직였던 물줄기는 고였던 냄새를 위로 퍼 올렸다. 먹지 않아도 이것은 묵직한 바디 감을 가져오는 매우 드라이한 술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올라갔던 잔의 물줄기는 내려오면서 선명한 여러 줄의 무늬를 남겼다. 신의 눈물방울은 붉은 색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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