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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어둠의 핵심> (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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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어둠의 핵심> (1898)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8.2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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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콘레드의 <어둠의 핵심>(Heart of Darkness)이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 감독이 1979년에 만든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배경이 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내용이 많이 틀리지만 커츠라는 기묘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축인 것은 비슷하다. 책에서는 커츠를 데려 오는 것으로 설정이 됐지만 영화에서는 죽이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책과 영화의 연결고리를 여기서 더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만 둘 다 읽거나, 보아서 손해 볼 일이 전혀 없다는 것만 밝혀 두고 싶다.

이 책은 모험담이라고 불러도 좋다.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을 강을 따라 수개월 동안 항해할 때 갖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행기라고 할 수 도 있으며 그 기간 동안 벌어지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것이든 그 것은 독자들이 읽고 느끼는 정도에 따라 규범 하는 바가 서로 다를 것이다. 다만 이해의 정도를 높이기 위해 줄거리를 대충이라고 살펴봐야 한다. 간추리면 이렇다.

 

힘이 있는 숙모의 특별한 추천서 덕분에 화자인 말로는 밀림 깊숙한 곳에 있는 커츠를 데려 오는 기회를 잡는다. 그 곳 선장은 원주민과 암탉 몇 마리를 놓고 싸움을 벌이다 살해돼 공석이었기 때문에 일행은 서둘러 고용주를 찾아 계약을 마치는 기회를 잡았다.

그곳은 벨기에 령의 식민지로 그 곳 주재원인 커츠는 값나가는 상아를 가장 많이 보내오는 1급 주재원이다.

‘회사의 입장에서 그는 유능할 뿐 만 아니라 아주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선원들에게 이런 이야기 형식으로 말하는 말로는 조셉 콘레드 작가 자신이 되겠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말로가 하고 내가 옮겨 적는 식이다.

따라서 말로의 말은 곧이곧대로 작가의 사상이며 이념이며 철학이라고 간주해도 좋을 듯싶다.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콘래드는 말로를 등장시켜 자신의 의지를 독자들에게 한 발 한 발 깊숙이 각인 시켜 나가고 있는데 읽을수록 흥미가 배가된다.

수천 년 전 로마군의 야영지였다가 이제는 제국주의가 싹을 만들어 놓은 신비의 땅을 기선의 선장이 되어 밀림 깊숙이 들어가는 말로에게 어떤 다짐 같은 것이 없을 수가 없다.

정복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참혹한 살인행위거나 피부색이 다르고 코가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벌이는 약탈 행위의 일종이었던, 그래서 암흑세계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합한 행동을 기억하는 그에게 제대로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대단하다.

어린 시절 그는 열정적으로 지도를 보는 취미를 가졌고 지구상의 많은 빈 공간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내가 크면 이곳에 가봐야지 했던 꿈을 막 이루려는데 그 만한 각오는 당연한 것이다. 그 곳이 비록 암흑의 땅이라고 해도 말이다.

심어 놓은 식민지를 통해 한 없이 돈을 벌어들이고 싶었던 회사의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말로는 지도를 펴 놓고 어떤 실질적인 사업이 벌어지고 있는 지점을 가리키며 흐뭇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말로는 프랑스 기선에 몸을 실고 얼마 지나지 않을 때 까지는 아프리카의 시시콜콜한 항구마다 들르는 바람에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떠난다는 느낌보다는 야비하고 무미하며 야만적이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게다가 해안선은 단조롭고 음침한 빛을 띠고 있었으며 태양은 강렬했고 대지는 뜨거움의 연속이었다. 간혹 하늘의 버림을 받은 황야 속에 함석집을 짓고 깃대를 세우고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들이기 위해 군인들을 내려놓기도 했는데 이런 장면들은 신기하다기 보다는 무료했다.

어떤 때는 밀림 속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검은 녀석들의 눈알에서 흰자가 번득이는 것을 보기도 했고 프랑스 군함이 밀림에다 대고 함포사격을 하는 모습에서 또다른 제국주의 느꼈으며 항해 30일 후에는 철로 건설을 위해 발파하는 모습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가기로 한 주재소에 들렀을 때는 한 줄로 꿰어서 갈비뼈가 다 드러난 여섯 명의 흑인이, 목에는 쇠테를 두르고 쇠사슬로 엮인 채 머리에는 흙 바구니를 이고 힘겹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이들이 그들이 말하는 적인지 말로는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생각하기에 적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도저히 해명하기 어려운 범법자의 낙인이 찍혀 죄수로 불리고 있었다. 죄수는 한 두 명이 아니었고 연옥이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여기저기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처참한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질병이나 기아로 죽어가는 이들 검은 형상이 어떻게 우리의 적이며 죄수인지, 이들은 일정기간 고용계약이라는 합법적인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끌려온 온 후 병이 들자 비능률적이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말로는 눈으로 확인했다.

피골이 상접한 검은 몰골들의 행렬이 죽기 위해 강으로 기어가는 모습을 볼 때 말로의 기분은 어땠을까 상상해 보는 것은 부질 없는 짓이다. 그의 기분 따위를 커츠가 신경을 쓸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차림새가 우아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야말로 비현실적이다. 풀을 먹인 하이칼라에, 하얀 커브스, 눈처럼 하얀 바지, 깨끗한 넥타이의 백신이 불쑥 나타나는데 귀에는 펜까지 달려 있다면.

말로의 표현대로 이 ‘기적처럼 보이는 인간’이 아니겠는가.

그를 통해 나는 커츠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다. 여기서 오지로 더 들어가면 틀림없이 커츠를 만나는데 그는 다른 모든 교역소에서 모은 상아보다 더 많은 상아를 보내는 그야말로 주목할 만한 인물이라는 것.

그러니 회사의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직원이다. 그때 하필이 아니고 오랜 끝에 당연히 부서져야 할 배가 부서져 고치는 데만 3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

어렵게 배를 수리하면서 나는 커츠가 과연 어떤 인물인지 궁금증이 더해 갈 수밖에 없다. 드디어 기선을 고치고 다시 깊숙한 오지로 항해는 계속된다.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되면 말로는 식인종들을 선원으로 고용해 밀림의 신비가 코를 찌르는 밀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암흑의 핵심에 바짝 다가가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느 순간 깜깜한 저 쪽 관목 숲에서 북소리가 울린다. 전쟁을 위한 것인지, 평화를 원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기도의 행위인지 누구도 그 북소리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교화된 원주민을 만나도 새벽까지 울리는 그 북소리의 의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각종 장애물을 헤치고 백인 거주 지역을 지나 강 상류로 올라가지만 과연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

동행한 지배인은 ‘조심해서 접근하라’는 경고를 따르는 게 좋다는 말을 반복한다. 말로는 생각한다. 수 개월 지체했는데 하루쯤 더 늦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가까스로 조난의 위험을 무릎 쓰고 물이 깊은 강가로 기선을 접근시키자 괴괴한 숲속에서 갑자기 청동 빛 팔다리가 우글거리면서 무수한 화살이 쏟아졌고 창이 날아왔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원주민의 이같은 공격은 후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커츠가 시킨 것이었다. 그 즈음 젊은 러시아인에 따르면 커츠는 병에 걸렸다. 커츠를 만났을 때 소문은 사실이었다.

말로의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커츠는 말로가 가졌던 궁금증 일부를 털어 놓는다. 기력이 쇠잔했으나 목소리만큼은 화려한 달변가였다. 그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위대한 사업의 성취로 귀국하면 제왕들이 나와서 마중 나오기를 바란다는 유치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선이 고장 나서 잠시 쉴 틈에 그는 말로에게 죽음이 기다리는 암흑 속에 누워있다는 말을 한다. 이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라는 단 두 마디의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 말로가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커츠는 원주민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인간이 아닌 초자연적인 그 무엇이었으며 하느님과 같은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부족의 추장들이 그를 보기 위해 매일 올 때는 기어서 왔고 천둥과 번개처럼 우러러 보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가 죽이고 싶으면 누구나 죽였으며 말뚝위에 매달려서 말라가는 머리들은 그에게 반항한 자들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로는 말했다. 

그는 원주민들에게 잔혹했으며 더 할 수 없는 냉혈한 이었다. 원주민들은 그의 명령이 없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밀림은 그에게 복수를 했고 침략자에게 끔찍한 보복을 자행했다. 커츠에게 어떤 깨달음이 찾아왔을 때 그 것은 너무 늦게 왔다. 

완전한 앎의 순간에 커츠는 죽었다. 무섭다고 중얼 거린 그 말의 의미가 깨닫았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느끼기까지 독자들은 많은 고생을 해야 한다. 말로의 이런 중얼거림은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커츠에 대한 신의를 지켜야 했네. 그 것이 내 운명이다. 인생이란 우스운 것,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것이 인생이라구.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회한이나 거두어들이게 되는 거야.” ( 1998. 민음사. 이상옥 번역)

백인들이 이튿날 커츠를 구덩이에 매장하고 나서 바로 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후 1년 간의 이야기가 또 흥미롭게 펼쳐진다. 약혼녀라는 소녀다운 티가 없는 여자가 커츠에게 갖는 여전한 믿음도 흥미롭다. 끝까지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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