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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16:37 (금)
25. 들고 나는 숨소리마저 고요한 어느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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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들고 나는 숨소리마저 고요한 어느날에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4.09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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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는 교통호에 등을 대고 누웠다. 두 다리는 뻗어 소총의 거치대위에 올려놓고 하늘을 향해 연기를 뿜어 댔다.

일렬로 나온 연기는 수평 이동할 때처럼 똑바로 위로 올라가다가 옆으로 옅게 뻗어 나왔다. 그도 나처럼 아랫배에 힘을 주고 깊게 빨아들이고 길게 내뱉었다.

어떤 때는 두 줄로 가늘게 나와 오래 올라가지 않고 교통호 바닥으로 떨어졌다. 입으로 뱉지 않고 코로 내보낼 때는 입을 다물었다. 사방은 고요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때였다.

주춤거리던 불이 밝아오고 흩어졌던 연기가 모여들기를 반복했다. 불빛은 담배가 아닌 나고의 몸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 불을 내는 가스덩어리 그 자체 말이다. 가까이만 가면 잘 마른 가랑잎처럼 순식간에 타오를 것이다. 나고는 바삭바삭 말라갔다.

다가왔던 달은 구름 속으로 몸을 감추었으나 늑대는 울지 않았다. 이렇게 조용할 수 가 있을까. 바람없는 날이 공기의 흐름까지 멈춘 듯 했다. 몸속의 공기도 움직임을 그쳤다. 들고 나는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그런 들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고는 태연했다. 그는 자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의 자유는 눈치 볼 시선이 없는 이런 곳에서 가능했다. 자고 있어도 고참의 냄새가 나는 곳은 자유가 아니었다. 그는 자야 할 때 임에도 자유를 그리워하면서 내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그쳤을 때 담배연기도 더는 나지 않았다. 불 빛 만큼이나 멀리 갔던 냄새는 되돌아 왔다. 이제는 다가올 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날에 냄새를 가지고 추궁할 수는 없다.

하지만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던 적은 그러지 않았다. 뻬치카에서 몸을 녹이던 순찰자는 몸을 일으켰다. 순찰을 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볼 일을 보기 위해서 였다. 몰래 먹었던 술이 일어나기 싫은 몸을 그렇게 했다.

주기 아까워 그들 몇은 모여 앉아 수통에 담아온 소주를 먹고 입을 다셨다. 나고의 옆에 쪼그려 앉아 있던 이인이 습관적으로 일어났을 때 김일수 상병이 걸어 나왔다.

멀리서 봐도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등을 공처럼 구부리고 어기적거리며 걷는데 그런 몸으로 축구할 때는 사람이 달라졌다. 공을 잘 찼으며 공을 차던 그 발로 하급자들을 곧잘 걷어찼다. 그의 별명은 축구화였다.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인은 암구호를 불렀다. 총알이 있다면 방아쇠를 당기고 포상휴가를 가고 싶었다. 저런 자를 죽인다고 한 들 양심이 받을 가책은 없었다. 그는 바지를 까고 아래쪽을 향해 오줌을 갈겼다.

김이 나고 이어서 굴다리 아래서 나던 냄새가 올라왔다. 야, 임마 근무 잘서. 그는 이름이나 계급으로 하급자를 부르지 않았다. 이인의 별명은 '인마'였다.

이마가 튀어나와 마빡이라고도 불렀다. 그가 돌아서면서 교통호에 비켜 있는 나고를 보았다. 아니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흠칫 그 쪽을 보고도 아무말없이 사라졌다. 

이인은 발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얼어붙은 군화속의 발들이 동상을 피하기 어렵다.

그날 오후 내내 눈밭을 행군했다. 얼은 군화를 녹이기 위해 머리맡에 품고 잤으나 풀어지지 않았다. 신는데 들어가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이인은 보초를 서기 위해 밖으로 나왔고 그 사이 군화는 다시 얼어붙었던 것이다.

교통호도 그렇게 됐다. 눈 쌓인 교통호는 병사들의 발자국으로 얼음 덩이리가 됐다. 달이 나와 비스듬히 비추차 반짝반짝 빛났다. 나고는 그 곳에 등을 대고 오랫동안 그런 자세로 있었다. 내버려 두었다. 들어가서 자라고 밀지 않았다. 나고는 언 교통호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교대할 즈음 깨웠을 때 나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싸리 작업 할 때처럼 늑장을 부렸다. 발로 차도 꼼지락 거리지 않았다. 여러 번 그러고 나서야 그는 배었던 철모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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