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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5. 내 호흡의 주인공 조금 더 늘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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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 호흡의 주인공 조금 더 늘어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3.15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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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처럼 작은 것의 소중함을 느끼는 경우도 드물다. 겨울 장갑 하나 때문에 조금은 행복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손을 덮고 있는 것의 따뜻함이 몸과 마음도 그렇게 하고 있다. 거울이 없어도 흐르는 땀 위로 미소가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안다. 땀과 함께 오는 웃음은 대체 어떤 모습일 까.

당장 한 번 보고 싶다. 나이 50이 넘었다.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하는 시기를  10년 전에 거쳤다. 져야 하는 무거운 것의 무거움은 줄어들기보다는 늘어나고 있다. 아무렴 어떤가. 그러려면 그래보라지! 하는 느긋함이 뒤처지는 발걸음만큼이나 한가롭다.

다시 굴다리를 통과한다. 기적도 울리지 않는 기차의 육중한 소리가 귀를 때린다. 더 세게 달려 나가야 한다는 다짐과 동시에 발이 움직인다.

머리위에 먼지가 수북이 떨어진다. 먼지는 흐린 날처럼 보이지 않지만 해가 날 때처럼 선명하게 느낀다.

부풀어 올랐던 폐가 다시 수축된다. 잠시 호흡을 멈춘다. 가빠오는 숨소리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닫았던 입을 열고 다급하게 공기를 빨아들인다.

기차 소리는 들리지 않고 심장의 박동만이 쿵쾅 거린다. 달리기로 인한 효과는 다 까먹었다. 다시 폐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거리는 천 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이다. 스퍼트를 해야 할 시간이다. 결승선이 가까워 올수록 코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더 빨리, 더 세게.

시멘트 구조물이 이상하게 뛰어나온 지점까지 왔다. 자전거가 휙 지나간다. 살 짝 몸에 스친 것 같아 깜짝 놀란다. 이마에 또다른 땀이 겹친다. 꽁무니에 단 붉은 불빛이 초에 두 서번 깜박일 정도로 요란스럽다.

요란 스러운 것은 또 있다. 귀청을 때리는 팝 음악이다. 안장 아래 어딘가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가 엄청나다.

그는 타인의 기분은 안중에 두지 않고 자신의 흥만을 위해 달리듯이 음악을 듣고 있다. 뭐라고 말 할 순간도 없이 저 멀리 사라진다.

따라잡고 싶다. 허벅지 근육에 힘을 준다. 엉덩이를 위로 치켜들고 두 팔을 힘차게 휘두른다. 오버 페이스. 회가 뿌려진 마사토 바닥의 운동장이다. 이번에도 앞에 아무도 없다. 상자가 붙은 공책 다섯 권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호흡이 턱에 찬다. 사라졌던 자전거 불빛이 보인다. 이 속도로 3분만 더 달리면 저 소음을 따라 잡을 수 있다. 쫄바지를 입고 두건을 둘러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자전거의 주인공이 페달에서 발을 뗄 때 그 옆에서 보란 듯이 제치고 나간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목표점에 도달했다. 이길 수 없는 게임에 도전 하려는 무모한 시기는 지났다. 대세를 거역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다시 폐가 부풀어 올랐다. 좋은 산소를 마음껏 들이 마시고 나쁜 이산화탄소를 길게 내품는다. 갈비뼈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흉강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폐도 덩달아 흔들린다. 수축과 이완이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유, 그것은 내 몸을 관통하는 힘이다.

좌 폐를 늘리고 싶다. 길게 하고 싶다. 그래서 우 폐와 똑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십 프로만 높이면 된다. 오른쪽에 신세를 지고 싶지 않는 것은 왼손이 오른손에 미안함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 호흡의 주인공, 오늘도 폐는 조금 늘고 조금 더 커지고 약간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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