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11-07 21:08 (목)
269. 화녀(1971)
상태바
269. 화녀(1971)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12.09 15: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처녀들은 대개 식모살이나 술집에서 일했다. 고향인 촌에서는 이들이 다달이 돈을 부쳐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 돈으로 새로 지붕도 올려야 하고 땅도 사야하기 때문이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는 그런 기대를 품고 서울로 올라온 촌 여자 두 명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가 나온 1971년이 배경이다. 산업화와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던 이해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삼일빌딩이 완공한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 처녀는 빌딩을 올려다보면서 ‘우리의 암호는 31층이다’ 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런 시골뜨기 처녀들은 대개 주인의 말을 고분고분 듣거나 지배인에게 험한 꼴을 당하고 그 바닥에서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잔뜩 지는 낙오자 인생을 살기 십상이다.

그런데 식모살이로 나섰던 명자(윤여정)는 주눅이 든 그런 여자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 참 멀다.(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다. 서울 표준말이 완벽하다.)

직업소개서에 이끌려 도심에서 양계장을 하는 주인집 여자( 전계현)와 손을 잡는 과정은 비슷하지만 도착해서 하는 행동은 입이 쩍쩍 벌어지게 만든다. ( 이들은 인연이 아니라 악연으로 얽힌다. 명자는 월급대신 좋은 곳으로 시집 보내준다는 조건으로 그 집에 들어간다.)

 

주인남자( 남궁원)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고 주변에는 많은 여자들이 있다. 남자는 작곡가이고 여자들은 그에게서 곡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가수이거나 지망생들이다.

부부에게는 어린 아들, 딸이 있고 먹고 사는 것이 넉넉해 그 시대의 상류층 생활을 하면서 매우 행복한 모습이다. 하지만 부인은 걱정거리가 있다. 오랜만에 친정집에 가야 하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남편이 바람 필 것을 걱정하고 있다.

가기 전에 그녀는 명자에게 남편을 감시하라는 특명을 내린다. (이런 것은 대개 예상이 맞아 떨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에 들지만 50만원이 없어 곡을 살 수 없는 해옥은 몸으로 때우기 위해 작곡가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한다.

숨어서 지켜보던 명자는 명령을 지키기 위해 그런 두 남녀를 결사적으로 떼어놓고 작곡가는 해옥 대신 명자를 차지한다.

이후 명자는 단순한 가정부가 아니다. ( 앞서 언급했다.) 한 번 몸을 주고 나자 자신이 식모가 아닌 안주인과 대등하거나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어림없다. 첩이라면 모를까 본부인 행사는 언감생신이다. 그래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친정 갔던 부인이 돌아와서 둘의 관계를 눈치 챈다. 어정쩡한 한 집안 두 집 살림이 시작되고 두 여자는 서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불타는 질투심으로 무장한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번갈아 가면서 일을 벌이던 작곡가는 이제 더 이상 곡을 쓸 수 없는 피폐한 지경에 이르고 명자의 입이 쩍쩍 벌어지는 행동은 거침없이 진행되는데 이럴 때 마다 창밖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여보나 당신이라는 호칭을 거침없이 쓰는가하면( 이 때 작곡가의 표정은 똥 씹은 바로 그 표정이다.) 부인을 무시하고 적극적으로 대드는 행동은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기도 전부터 그랬으니 진짜로 임신했을 때는 본부인을 잡아먹고도 남을 기세다.

그러나 명자의 세가 세면 셀수록 본부인도 무슨 대책을 세우기 위해 궁리를 하고 중간에 낀 남자는 생긴 것과는 달리 우유부단한 행동을 계속해 관객들의 짜증을 부채질한다. ( 이 우유부단함이 살인의 직접적 동기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한다.)

낳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아기를 땐 명자는 ( 그는 운다. 이 집 남자는 애를 배게 하고 이 집 여자는 애를 떼게 한다고.) 정신분열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자신을 소개 해준 남자가 어느 날 찾아와 협박조로 돈이나 몸을 요구하면서 접근해오자 망설임 없이 죽여 버린다. ( 서울로 올라오기 전 명자는 바걸로 취업한 친구와 꽃밭 속을 노닐다가 웃통을 벗고 대장간에서 땀이 번들거리도록 일하는 남자들에게 겁탈당할 위기에서 돌을 번쩍 들고 내리친바 있다. 이 때 아래서 위로 내리친 돌을 맞은 남자가 죽었는지, 죽지는 않고 겨우 살아났으나 큰 부상을 당했는지는 모른지만 어쨌든 남자를 공격한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도 있고 서울 살이에서 잔뼈를 단련했으니 예전의 명자가 아닌 것을 직업소개서 남자는 당연히 알지 못해 미처 방어하지도 못하고 한 방에 그런 험한 꼴을 당했다.)

명자는 이제 죽음 같은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죽기위해 사는 것처럼 행동한다. 쥐약으로 자신이 먼저 죽기 전에 부인이나 남편을 죽이려는 계략을 앞서 세우는 똑똑한 명자는 독이 든 국을 먹지 않아 부인의 혼을 빼놓는다.

명자는 부인에게 죽느니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는 듯이 독약을 탄 잔 하나를 이제는 여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남자에게 건넨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자신이 들고 각자 단숨에 먹는 것이 아니라 러브샷을 하면서 천천히 서로 먹여 주는데 이 장면에서는 이런 것까지 세심하게 관찰한 김기영 감독이 과연 한국최고의 감독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게 만든다.( 정망 멋진 컷이다.)

명자도 죽고 남자도 죽고 ( 그 전에 부인이 난 세 번째 아이도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는다. 참 많이도 죽는다. 많이 죽는데 그 죽음 하나하나가 허술하지 않다. 개연성과 장면의 연결이 매우 자연스럽다.)

부인은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부인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다음날 오라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오는데 비가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와 같이 억수로 쏟아진다.

엎어지면서 벗겨진 부인의 신발 하나는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을 만큼 센 물줄기에 떠내려가고 걸을 수 없어 명자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화면에서 멀어지는 부인의 뒷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면 그렇게 해도 되지만 최고의 한국영화를 봤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면 그렇게 하지 말고 그 반대로 해야 한다. 과연 김기영 감독은 우리나라가 배출한 천재 영화감독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윤식당>에 나오는 바로 그 배우, 여리고 약한 어린 처자가 아닌 불물 가리지 않는 괴물로 나온 윤여정의 연기(당시 25살이었고 데뷔작이라고 한다.)가 젊은 시절의 미모와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은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려는 감독의 치밀한 계획 때문일 것이다.

귀부인으로 나오지만 무언가 계획한 것을 할 때는 과감하게 돌진하는 전계현이나 머리를 쥐어짜면서 고뇌하는 욕망 덩어리 남궁원의 연기도 볼만 하다.

대사와 화면, 거리낌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달려드는 과감한 촬영은 우리 영화의 과거가 대단했다는 것을 말이 아닌 사실로 보여주고 있다.

김 감독의 더 대단한 영화 <하녀>(1960)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재미와 흥행모두에서 성공했다. (1982년에는 동일한 제목의 리메이크 작품을 선보였다.) 오영아가 부른 주제곡은 따라 부르기에 좋다.

국가: 한국

감독: 김기영

출연: 윤여정, 전계현, 남궁원

평점:

 

: 경찰은 조사에서 남자는 칼이 등에 박혀 죽기 전 쥐약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을 밝혀낸다. 그리고 소개업소 남자를 붉은 요강으로 내리쳐 죽인자도 누구인지 사건을 추적하면서 관객들이 알게 한다.

이 사건은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벌인 치정 때문에 벌어졌다. 남자는 삼각관계가 형성되면 미친다는 말을 명자의 입을 통해 전하고 유혹에 약한 것은 남자이니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작곡가의 입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시체인 것 같은 물체를 닭 모이 가는 기계에 넣고 돌리는 장면은 바싹 소름이 돋는다. ( 독재자를 거부하고 외국으로 떠났던 정보기관장도 그렇게 당했다는 소문이 있다. 빨려 들어가면 사람도 닭의 먹이가 된다. 동물성은 산란계를 더욱 기운차게 해서 다음날 유난히 커다란 알을 낳게한다.) 죽은 쥐 산쥐가 자주 등장해 기겁할 일이 많다.

부인은 얌전한 표정으로 시종 겁내 하는 것 같지만 그 역시 독부의 기질을 타고 났다. 결국 내기였다면 가정부와 무승부라고 평하고 싶다.

가수들이 반드시 유혹 할 텐데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방해하고 수가 틀리면 두 연놈을 죽이라고 지시해 그 때까지만 해도 조금은 순진했던 윤여정이 놀란 입을 겨우 손으로 가리게 한다. (하지만 그녀는 부부관계를 숨어서 보거나 가수와 작곡가가 그런 행동을 하면 지켜보면서 몸을 떠는데 천성은 몸이 뜨거운 '화녀'가 분명하다.)

결국 부인은 남편의 생명은 가정부에게 뺏겼으나 영혼만은 차지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어 본부인의 체면을 세운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과 남자를 음독해 죽이고 한강변 살인사건도 부인의 짓이라고 쓴 편지를 친구의 손을 통해 경찰에 주어서 결국 부인이 우리 뒤를 따라 사형대에 오르고 말 것이라는 명자의 치밀한 계획이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는 자세한 설명도 없고 속편도 나오지 않아 알 길이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