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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채털리 부인의 연인>(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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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채털리 부인의 연인>(1928)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7.05.2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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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본질적으로 슬픈 것이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콘스턴트 채털리가 하반신 마비만 되지 않았다면 그는 아내 코니를 하인 멜러스에게 빼앗기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 모른다.

로런스가 쓴 총 19장으로 이뤄진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제 1장의 첫 머리에 언급한 “ 우리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라는 말 역시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뒤이어 나오는 “폐허 속에서 상당히 어려운 작은 희망을 찾아 지금은 전혀 없는 미래로 가는 평탄한 길을 찾는 일”은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전쟁이 본질적으로 슬프다는 말은 맞다.

젊고 유능한 귀족 청년 채털리는 전쟁 중에 한 달간의 휴가를 받아 코니와 결혼했고 6개월 후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는 부상으로 온 몸이 바스러진 상태였다.

허리 아래를 전혀 쓸 수 없는 하반신 마비가 왔을 때 콘스턴스는 29살이었고 코니는 23살이었다. 굳이 나이를 언급한 것은 그들이 젊었고 특히 채털리 부인은 그 보다 더 젊었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젊은 그들이 탄광 연기 자욱한 영국 중부, 영지가 있는 랙비로 돌아왔을 때 콘스턴스는 생각보다 우울증을 잘 극복해 나갔는데 작은 모터가 달린 바퀴달린 휠체어로 정원의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옷을 입고 멋진 넥타이를 맸어도 장애인 특유의 경계하는 시선과 자의식 그리고 마음 속 어디선가 기가 죽었고 감정의 일부가 사라져 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부드러운 갈색 머리를 가진 크고 푸른 눈의 부인 채털리는 미쳐 쓰지 못한 기운이 넘치는 혈색 좋고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다른 여러 수식어가 있지만 ‘몸이 튼튼했다’는 표현은 남편의 육체와 대비되면서 앞으로 그녀가 어떤 행동과 결단을 내릴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건강한 육체는 남편 말고 다른 남자와 함께 무언가 일을 벌이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미 열여덟 살 때 코니는 독일 드레스덴의 젊은 애인을 사귀고 있었고 아버지 맬컴 경은 집에 온 그녀를 보고 ‘사랑이 그곳을 통과’했음을 눈치 챘다.

코니는 더 활짝 피어나고 더 미묘하게 둥그스름해졌고 미숙한 모난 구석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버지는 그 자신도 경험이 많이 있었다는 이유로 딸의 인생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고 이는 나중에 코니가 멜러스와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도 크게 노여워하지 않는 대범함으로 이어지고 있다.

랙비로 돌아온 그들은 그럭저럭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코니와 콘스턴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까웠지만 서로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육체적으로는 서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모여 사는 검은 슬레이트 지붕이 잇따라 있는 지저분한 벽돌집과는 달리 코니의 신혼집은 적갈색 사암으로 지어진 길고 나지막한 오래된 저택으로 참나무가 우거진 공원 내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리는 유황과 철 그리고 석탄이나 산 같은 지하광물 냄새가 풍겼고 숲 속의 오두막집은 탄광보다 더 깊은 숲속에 있어 광부의 아들로 한 때 대장장이였던 사냥터 지기 멜러스가 살기에는 더 없이 적합한 곳이었다.

그곳으로 코니가 놀러가는 일이 잦아 졌다. 그 무렵 코니는 랙비를 방문하는 극작가와 남몰래 육체적 정을 통하고 있었지만 그것으로 인한 기쁨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마이클리스라는 남자는 너무 일찍 일을 끝내 코니가 미쳐 즐거움을 느낄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니가 놀러가는 오두막에는 앵초, 파랭이, 수선화, 애기똥풀, 아네모네, 제비꽃, 재스민, 히아신스, 카네이션, 민들레, 데이지 등 온갖 꽃 들이 지천으로 피어났고 그런 꽃들과 호랑가시나무, 참나무, 너도 밤나무, 불두화 나무, 딱총 나무, 개암나무, 쥐똥나무, 낙엽송, 전나무와 멜러스가 기르는 병아리와 꿩 새끼 등이 살았다.

대기의 모르핀에 취한 그녀의 몸은 반란을 시작했고 새로운 삶이 그녀를 찾아왔다. 공허, 불안, 허전, 희생, 우울, 짜증, 고독, 자기 소멸에 빠졌던 그래서 잠자던, 잃어버린 그녀의 거대한 관능이 마구 꿈틀댔다.

여러 차례 만남이 거듭되면서 코니는 멜러스가 비록 천한 신분이지만 남편 채털리나 마이클리스 혹은 점잔을 빼는 지식인들과는 달리 야생의 그 무엇, 짐승과 같은 날 것의 신비로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젊은 그녀는 햇볕에 그을린 그의 구릿빛 피부와 사투리를 쓰는 거친 언사 그리고 무언가 특별함이 있는 그의 힘에 끌려 그가 오는 것을 꺼려함에도 불구하고 숲 속의 오두막집으로 발길을 자주 향했다.

그에게 다가갈수록 코니의 아랫도리는 알 수 없는 어떤 자극으로 활활 타올랐고 어느 날 마침내 둘은 환한 대낮에 숲속의 정사를 벌이는데 성공한다. 그것이 거듭 될수록 코니는 육체적으로 그와 완전히 합일이 되는 경지를 맛보면서 진짜 여자로 되살아 난다.

정신에 지쳐 있던 그녀의 몸은 비로소 멜러스의 육체와 만나 봄꽃처럼 생기를 얻고 오월의 새싹처럼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온갖 복잡한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는 새로운 삶이, 완전한 평화가 그녀에게 찾아왔다.

거듭된 육체의 향연과 깊은 대화를 통해 코니는 멜러스가 순 상놈은커녕 전쟁에서 중위로 제대한 먹물의 일종이고 많은 책을 읽고 깊은 사색을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운 숨은 실력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미 육체로 허물어진 그녀가 정신까지 압도당하게 되자 성불구자인 남편을 떠나 그와 영원히 함께 살고자 하는 욕심이 생긴다. 이즈음 채털리는 볼턴 부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업 수완을 발휘한다.

그녀는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 와중에 그에게 이혼을 통보한다. 

멜러스 역시 부인과 이혼을 서두른다. 둘이 순조롭게 이혼을 하고 순조롭게 결혼했는지 로런스는 그것까지는 독자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다만 멜러스의 아기를 임신한 코니가 적어도 불행한 여자로 인생을 망치는 것으로는 그리지 않는다.

그 시절 불륜의 여 주인공들은 대개 불행했다. 자살하거나 죽거나 파멸에 이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코니는 불행보다는 행복의 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신분의 차이를 넘어 그것도 불구인 남편을 배반하고 남편의 하인과 정을 통하는 것도 모자라 그와 결혼을 하려는 코니를 로런스는 이해하고 적극 협력하기 까지 한다. 

그러니 당시 영국 귀족들이 느꼈을 수치와 배신감이 어느 정도 였을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노골적인 성애 장면과 함께 ‘신사의 나라’ 영국이 1960년에 이르러서야 무삭제 판이 출간되는 것을 허락한 이유는 이런데 있었다. 작가는 ‘음란저작물 금지법’에 따라 고발됐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는 1928년에 나오고 정식 유통됐다.)

: 나는 이 책을 청량리역 인근의 좌판에서 구입했다. 1970년 후반이거나 80년대 초반, 그 때는 리어카에 책을 수북이 쌓아 놓고 팔기도 했는데 책 제목은 아마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었던 같다.

연인도 아니고 부인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더 끌리기도 했는데 책 표지 또한 서양의 젊은 남녀의 그림이어서 몇 백 원을 내고 주저 없이 샀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책의 심오한 어떤 내용들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다.

대신 부인 코니가 숲속에서 알몸으로 질주 한 후 들러붙어 벌이는 정사와 나체의 몸에 서로 꽃을 꽃아 주는 장면, 그리고 남녀 신체에 대한 은밀한 용어와 그 용어를 대신한 다른 이름들을 서로 불렀던 기억만은 어렴풋이 살아 있다.

탄광이라든가, 계급차별에 대한 항의, 돈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 주체적 삶을 사는 여성의 강단 혹은 여성의 자아, 육체와 정신의 합일 같은 거창한 단어에 대한 연상은 전혀 기억에 없다. 이런 것들은 책 구입이나 독서의 목적과는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 참이 지난 후에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숱한 출판사를 통해 거리에서 혹은 서점에서, 영화에서 자주 목격했고 술자리의 안주로 자주 언급했다.

제대로 된 번역본을 무삭제판으로 읽은 감회는 그래서 조금 남다를 수밖에 없다. 책 뒷날개에 ‘세상을 움직인 100권의 책’이나 ‘20기 최고의 책’이라는 수사가 붙지 않아도 19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면 그 때 그 시절 이런 소설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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