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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적과 흑>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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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7.03.18  15: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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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이 <적과 흑>을 썼을 때 그의 나이는 47세 였다. <적과 흑>과 함께 또 다른 걸작인 <파르마의 수도원>은 1838년인 55세에 완성했다. 반짝이는 재기는 30살 이전에 결판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나이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무엇을 하기에 생물학적 연령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거나 대기만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호재다. 이 책의 주인공 쥘리앵 소렐은 19살에 나폴레옹처럼 천하를 재패할 꿈을 꾸지는 않았지만 이루고자하는 목표만큼은 그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는 야심을 완성할 문턱에서 죽었다. 불과 23살에 말이다. 스탈당은 자신은 그렇게 늦은 나이에 작품을 썼음에도 그의 주인공은 왜 그렇게 일찍 세상과 등지게 했는지 물어 볼 수 없고 대답할 수 없으니 알 길이 없지만 그 반대라면 오늘날 까지 <적과 흑>의 명성이 이어지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죽어서야 영원히 살았던 주인공 쥘리앵의 일생을 따라가는 것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작가의 묘비명에 있는 ‘살며 사랑했고 썼다’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은 줄 수 있다.

19살 이전까지 쥘리엥은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목수였고 위로 두 형이 있다. 톱질을 하는 아버지와 도끼질을 하는 형들은 거칠었고 쥘리앵은 책을 좋아했다.

천한 몸으로 태어난 자가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신경을 쓰자 아버지는 그를 팼고 형들도 가세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얻어터지는 기분은 맞아 보지 않고도 알 만하다. 부성애니 형제애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으니 그는 홀로 세상을 헤쳐 나갔다.

그런데 쥘리앵에게는 아버지나 형들에게 없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은 무엇을 암기하는 비상한 머리였다. 성경을 통째로 외웠고 라틴어에 해박했다.

그 지역 시장은 어린 자식들의 가정교사로 그를 데려왔다. 그는 생각보다 더 뛰어났고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여기까지였다면 주인공의 일생은 시골 신부자리 하나 꿰차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큰 야망이 있었다.

그 야망을 충족 시켜 줄 수 있는 징검다리는 시장의 부인이며 아이들의 엄마인 레날 부인과 정을 통하는 것이었다. 부인은 세 아이의 엄마였지만 겨우 30살 정도였고 여전히 젊었으며 밀가루보다 흰 살결과 흠잡을 데 없는 미소를 소유했다.

청년 쥘리앵은 어느 날 부인의 손을 잡았고 급기야 시장과 애들을 따돌리고 밀회를 즐기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만족만 했어도 쥘리앵의 일생은 평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수도원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곳은 그가 생각했던 곳과는 멀어도 한 참 멀었다. 수도원은 사랑과 평화와 위로와 구원보다는 거짓과 위선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1년 후 다행히 그는 후작의 집에 집사로 들어간다. 후작은 엄청난 돈과 명예와 지위를 누리는 파리 사교계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에게는 당연히 예쁜 부인이 있고 자식들도 있다.

쥘리앵의 상대는 이번에는 부인은 아니다. 그와 비슷한 나이의 딸 마틸드다. 마틸드는 신분은 천하지만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는 쥘리앵에게 호감을 가진다. 백작이니 후작이니 공작 등 귀족들은 판에 박힌 생활을 하는데 쥘리앵은 그녀가 보기에 아주 달랐다.

거만하고 당당하고 권위에 차 있던 마틸드를 상대할 남자는 그런 속물에 빠진 귀족이 아니라 미천한 쥘리앵이었다. 두 사람은 수많은 밀고 당기는 애증 끝에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 사이 마틸드는 임신했고 아버지에게 결혼을 알린다. 자식처럼 돌봐주던 후작은 쥘리엥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만 그와 결혼하지 못하면 죽겠다는 딸을 앞에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그 때 잊혀지던 레날 부인에게 한 통의 편지가 후작에게 배달된다. 편지는 고약하다. 쥘리앵은 궁지에 몰렸고 순식간에 그는 피스톨에 탄환을 장전하고 고향으로 달려간다.

마침 성당은 미사가 열리고 있었고 기도에 열중인 그녀는 미쳐 피할 겨를도 없이 쥘리앵이 쏜 총을 맞는다.

체포된 쥘리앵은 비로서 자신이 자유의 몸이 됐다는 것을 깨닫는다. 속세의 욕망은 아무것도 아니고 죽음만이 자신을 진정한 구원으로 이끌어 줄 것을 확신한다.

옥지기는 물론 판사나 배심원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마틸드의 도움으로 무죄 석방될 수 있는 길을 포기한다.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은 자신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죽음으로 완성된다고 믿는다.

그는 당당하게 살인은 우연이 아니라 계획적이었으며 자신은 항소하지 않고 단두대의 길을 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목이 잘린다. 잘린 목을 들고 마틸드는 그를 장사 지내고 사흘 후 그녀 역시 죽는다. 이것이 <적과흑>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주인공이 죽었으니 책도 끝나고 읽던 독자들도 책장을 덮고 참았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일어선다.

: 두 명의 여자를 사랑한 쥘리앵은 과연 어떤 여자에게서 진실 된 사랑을 주고받았을까. 스탈당은 마틸드가 아닌 레날 부인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두 달 동안 쥘리앵은 레날 부인과 마틸드의 끝없는 사랑과 관심을 받았지만 그의 마음은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생각해 볼 것은 왜 레날 부인이 후작에게 그런 악담을 담은 편지를 보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쥘리앵이 떠난 후에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고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총을 쏜 후에도 옥바라지를 하면서 한 순간도 쥘리앵을 사랑하지 않는 적이 없었던 부인의 편지는 왜 그렇게도 쥘리엥에게 적대적이었을까.

결혼을 앞두고 마침내 그가 품었던 신분상승과 함께 엄청난 부가 눈앞에 있는데 사랑하는 쥘리앵에게 부인은 왜 험담하는 편지를 써서 후작의 대노를 사고 결국 그의 총에 맞고 그가 사형당하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을까.

여기에 대해 스탈당은 긴 설명을 하지 않는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다. 궁금해 하는 독자들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의 궁금증보다는 쥘리앵과 마틸드의 비극적인 죽음이 마치 눈앞에서 생생하게 어른 거려 이를 하루 빨리 떨쳐 버리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아름다운 문체로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몰락 그리고 왕정복귀로 인한 구체제의 특권과 반칙을 거부하고 공화주의자의 삶을 작품에서 완벽하게 구현한 스탕달 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주의자였으며 시대를 뛰어넘는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책에서 볼테르를 수도 없이 언급하는데 이것은 그가 존경하는 대상에게 바치는 헌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적과 흑>은 죽기 전에 반드시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거짓과 위선과 탐욕에 찌든 성직자들에게 예리한 칼날을 수도 없이 날리고 왕과 그를 뒷받침하는 귀족들을 끝임 없이 조롱하는 두려움 없는 필체에 멈출 수 없는 경외감을 감출 수 없다.

기득권층을 향한 잽과 스트레이트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묵직하고 마침내 어퍼컷에 이은 카운터블로가 수도 없이 날아든다. 누구도 그의 펀치를 피해갈 수 없다. 그 자신조차도 말이다.

구차한 삶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당당하게 살다간 쥘리앵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을 한 움켜 남겨 주고 있다.

그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는데 읽는 독자들이 그 아픔을 직접 느끼는 것은 오늘날 역시 극소수의 절대계급에 의해 다수의 삶이 옥죄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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