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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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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5)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08.15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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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속의 주인공은 작가 분신인 경우가 많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 차라투스트라 (고대 페르시아에서 생겨난 태양숭배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독일식 이름.) 역시 니체와 한 몸이다.

니체가 말하고자 하는 사상이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너무 두껍지도 않고 그렇다고 손쉽게 잡히지도 않는 적당한 크기의 이 책은 니체 철학의 핵심이 모두 들어 있다.

니체를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말이다. 제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부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어 지칠만하면 다른 단락으로 넘어가 지겹지 않게 끝까지 읽어 나갈 수 있다.

비록 마지막 장까지 읽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다고 해도 책을 집어 든 순간 모든 독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깊은 사고의 결과물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다.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문장 자체는 잘 정돈된 시이고 시들이 모여 단편이 되고 중편이 되고 장편이 된다.

따로 노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 연결된 것 같고 모를듯하면서도 알 것 같고 이해한 것 같은데 다시 페이지를 원점으로 돌아가게 하는 묘한 재미가 가득하다.

그래서 니체는 1부 첫 머리에서 ‘모든 이를 위한 그러나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책’이라고 못 박아 놓고 있는 것이다.

심호흡을 약간 하고 다음 장을 넘기면 작가의 머리말이 나온다. 건너 띄고 넘어가서는 결코 안 되는 서두라고 하겠다.

차라투스트라가 나이 서른 살이 되어서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간 이유와 다시 하산한 이유 등이 자세히 나와 있기 때문이다.

29살도 아니고 31살도 아닌 꼭 30살에 산으로 들어간 차라투스트라는 9년도 아니고 11년도 아닌 꼭 10년 만에 산에서 내려온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을 때 동이 트고 있었고 고독을 즐기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태양을 향해 걸어 나간 그는 해를 보고 이렇게 외쳐댄다.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 준다 하더라고 그것을 받아들일 존재가 없다면 , 그대의 행복은 무엇이겠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차라투스트라는 마침내 세상을 향한 축복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너무도 많은 꿀을 모은 벌처럼 지혜에 지쳤으므로 나를 향해 손을 내미는 손들에게 베풀어 주고 나누어 주려는 것이다.

인간들 가운데서 현명한 자들이 다시 그들의 어리석음을 기뻐하고 가난한 자들이 다시 그들의 넉넉함을 기뻐할 때까지.

제자도 없이 홀로 산에서 내려온 차라투스트라는 신을 찬양하는 늙은 성자를 만나지만 늙은 성자는 숲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

실망한 그는 숲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의 시장으로 가서 줄타기 광대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 있던 군중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고 한다. (여기서 초인은 영원회귀와 힘의 의지를 완성시킬 다가올 미래의 인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더 신의 죽음을 알린다.

지난날에는 신에 대한 불경이 최대의 불경이었으나 이제 신이 죽었으므로 신에 대해 불경을 저지른 자들도 죽었으니 이제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대지에 불경을 저지르고 탐구할 수도 없는 것의 뱃속을 대지의 뜻보다 더 높이 존중하는 것이라고.

 

이런 말을 시장에 모인 군중들이 이해하고 따랐을까. 답은 당연히 노다. 시장이란 어떤 곳인가. 자본주의의 최전선이 아닌가. 돈 놓고 돈 먹기를 벌이는 난장에서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씨도 먹히지 않는다.

받아들이는 겸손의 마음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차라투스트라를 비웃자 그는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고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심장을 가진 자를 사랑한다며 저들은 그저 서 있으며 웃기만 하는 존재로 나의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니 나의 입은 그들의 귀에 맞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가장 경멸스러운 말종 인간에 대해 설파한다. 차라투스트라의 첫 번째 연설이 끝나자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면서 우리에게 말종 인간을 달라고, 그러면 초인을 선사하겠다고 대든다.

마음이 슬퍼진 차라투스트라는 저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들의 귀에 맞는 입이 아니다 라고 한 번 더 강조한다.

자, 이제 차라투스트라가 다음으로 할 일은 무엇일까. 그는 모여 있는 군중이 아닌 살아 있는 동반자나 창조할 사람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그는 자신만의 안식처인 동굴 속에 들어가 칩거하기도 하고 다시 나와 마을을 드나들기도 하고 또 홀로 떠나기를 되풀이 한다.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산을 내려와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초인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 모든 여정은 영원회귀와 권력에의 의지, 니힐리즘, 실존, 기독교적 질서의 파괴 등으로 모아지는데 몇 번의 세월이 지나면서 드디어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도 세어지자 이 책도 막을 내리게 된다.

1883년 3부가 완성됐고 이듬해 4부로 책이 마무리 되어 1885년 출판업자를 찾지 못해 자비로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 책의 진가를 눈치 채지 못했다. 무시했고 외면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특히 1890년 광기에 쓸려 니체가 죽고 나서 인류의 정신사상에 엄청난 충격을 준 작품으로 재평가 됐다.

문장들은 살아 있는 언어로 꿈틀거리고 어떤 장면을 펼쳐 읽어도 웅장하고 거대한 니체 철학의 정수를 살펴볼 수 있다.

가히 사상의 혁명가다운 문체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에게 커다란 선물이며 이 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이 책은 이후 세상의 모든 철학자, 소설가, 시인, 예술가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읽어 내려갈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 이 책을 읽고 감명 받은 사람은 셀 수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다. 그는 책에 감명을 받아 같은 제목으로 교향곡을 완성한다.

책을 읽고 나서 가만히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과연 책의 내용과 음악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클래식과 고전이 참으로 잘도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좀 더 사족을 붙이면 S.F영화의 걸작인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8년에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이 곡이 흐른다.

광활한 우주의 보잘 것 없는 지구가 아니라 중심인 지구가 압도적 아름다움을 뽐내는 초반부에 교향곡이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쿵쾅 거리며 심장을 때리는 북소리와 함께 트럼펫 무리가 뿜어대는 연주는 차라투스트라가 10년간의 숲 속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초인을 설파하는 바로 그 장면을 연상시킨다.

원숭이 무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가 뼈를 이용해 지배권을 획득하는 장면에서도 교향곡이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데 이는 차라투스트라가 신은 죽었다고 외치는 장면과 겹쳐진다.

그 책에 그 음악과 그 영화가 이토록 절묘하게 어울리다니 그저 찬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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