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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달과 6펜스>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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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달과 6펜스> (1919)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6.02.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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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살아 있는 눈동자, 울다가 금방 그치고 해맑게 웃으며 엄마를 부를 것만 같은 앙증스런 입술, 젖을 많이 먹어 살이 단단히 오른 터질 것 같은 불그레한 볼 살.

사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이같은 정교함과 묵직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국립중앙박물관 한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이라는 전시회의 메인 그림인 루벤스의 큰 딸 클라라 세레나 초상화 앞에서면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한다.

과연 천재구나 하고 되 내이면서 가까이서, 조금 떨어져서, 더 멀리 떨어져서, 시시각각 달리 보이는 그림에 빠져들어 간다. 대가의 그림은 문외한이라도 이런 감상에 젖게 만든다. 루벤스와 맞먹는 화가로 폴 고갱이 있다.

그를 모티브로 서머싯 몸은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라는 명작을 썼다. 고갱의 그림만큼이나 글도 명품이다. 누가 봐도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고갱이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므로 허구와 과장, 사실과 거짓이 짬뽕 돼 있다.

 

몸은 어릴 적 스트릭랜드의 모습은 생략하고 아내와 아들, 딸과 함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서 부터 작품을 시작한다.

증권 중개업자인 찰스는 어느 날 갑자기 예쁘고 교양 있는 아내와 조금만 더 크면 훌륭한 군인이 될 아들과 요조숙녀로 성장할 것이 틀림없는 딸을 버리고 런던을 떠나 사람의 피를 달아오르게 하는 파리에 정착한다.

35살 이라면 몰라도 마흔 안팎의 나이에 연애사건은 추태라고 사람들은 쑥덕인다. 여류 작가는 한술 더 떠 시내 찻집의 아가씨 하나가 일을 그만두었을지 모른다고 떠든다. 어떤 여자와 눈이 맞아 17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려졌지만 파리로 간 것은 여자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아내와 더 이상 같이 살 이유가 없고 단지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 가정을 깬 이유의 전부였다. 문학이나 예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아주 따분한 사람이 그림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것에 사람들은 놀랐다.

달랑 몸만 떠난 스트릭랜드는 파리에서 부인의 예상과는 달리 아주 크고 호사스런 호텔대신 때가 낀 아주 비좁은 방에서 고된 생활을 한다. 돈이 생기면 물감과 이젤을 사고 떨어지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다시 그 돈으로 물감과 이젤을 산다.

나레이터 이면서 작가로 나오는 나는 스트릭랜드 부인의 요청으로 파리에 가서 이런 생활을 하는 스트릭랜드를 실상을 파악한다.

당시 파리에는 그림쟁이들이 넘쳐 났는데 더크 스트로브도 거기에 끼어 있었다. 스트로브는 모짜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르처럼 천재는 아니지만 천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화가 였다. 그림 솜씨는 형편없어 동료들로부터 경멸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감각은 섬세했고 안목은 정확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몸은 뚱보이나 마음씨가 비단결같이 곱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트릭랜드를 비웃으며 하찮게 여겨 그림을 한 점도 팔지 못할 때도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그의 그림을 사라고 추천할 정도다.

그의 아내 블란치는 그런 남편에게 불만이다. 스트릭랜드를 그 나쁜 사람, 막 되먹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남의 감정은 도무지 고려하지 않고 상대방이 상처를 받으면 즐거워하는 이런 인간을 스트로브를 빼고는 누가 좋아하겠냐며 남편을 나무란다.

길에서나 아니면 선술집의 한 귀뚱이에서 간혹 스트릭랜드를 만나 이런 저런 대화를 하거나 체스를 두던 나는 수 년 간 스트릭랜드를 보지 못하자 궁금증이 인다. 주변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스트릭랜드가 병에 걸려 다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로브는 천재 화가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며 그를 집에 데려와 간호하자고 아내 블란치에게 말한다. 천재보다 굉장한 건 없고 천재들에겐 너그럽고 참을성 있게 대해 줘야한다는 것.

노골적으로 당신을 멸시하는 그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말자, 그 사람이 오면 내가 나겠다, 도둑 술꾼 길거리 비렁뱅이도 좋으나 그 사람만은 안 된다, 우리에게 해를 끼칠 사람, 끝이 좋지 않고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반대한다. 하지만  스트로브의 거듭된 요청을 받자 블란치는 마음이 흔들려 그를 정성껏 간호한다.

6주간 꼬박 앓던 스트릭랜드는 누군가에게 돋봄을 받는 것을 분해하면서도 살아났다. 그런데 그는 스트로브에게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온갖 모욕과 멸시, 조롱과 냉소로 일관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블란치의 태도다. 그렇게 그를 싫어했으나 간호하면서 스트릭랜드와 정분이 난 것이다.

우람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어린 정력이 그녀를 사로잡은 것이다. 쫓겨나듯이 제 발로 집을 나온 거지 꼴 형상의 스트로브는 거의 미친 사람이 되어 방황하지만 블란치가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가겠다는 일편단심으로 자신의 집 주위를 배회한다.

스트릭랜드 같은 사람은 여자를 행복하게 못해주니 머지 않아 집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죽고 못 살 것 같던 블란치는 욕정을 채운, 원래 여자에게 큰 관심이 없던 스트릭랜드의 배신으로 음독 자살한다. 절망에 빠진 스트로브는 그 때서야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블란치의 누드화를 발견한다. 화가 나서 주걱으로 작살을 내고 찢어 버리려던 그림을 보는 순간 스트로브는 자석에 감전 된 듯 그림에 빨려 들어가고 되레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착하고 너그럽지만 실수투성이이고 아름다운 감각은 좋았으나 평범한 그림밖에는 그릴 줄 몰랐던 스트로브의 눈에 비친 것은 그림이 아니라 천상의 날개였던 것이다. 그림에 압도당한 그는 하마터면 큰 범죄를 저지를 뻔 했다고 놀란 가슴을 쓸어 안는다.

블란치의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스트릭랜드는 또 어느 순간 마르세유를 떠나 소식이 끊긴다.  전쟁기에 우연히 타이히 여행에서 스트릭랜드의 소식을 들은 나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겠다고 다짐하고 그를 알고 지냈던 부두 노동자, 호텔 여주인, 선장, 의사 등을 차례로 만나 그가 높이 솟은 푸른 섬 타히티에서 죽기 전 까지 살았던 이야기를 듣는다.

그곳에서 47살 쯤 먹은 스트릭랜드는 영혼의 방황을 끝내고 비로소 안식을 찾는다. 서양인의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17살 먹은 원주민 아타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깊은 숲속에서 미친 듯이 그림에 몰두 한다.

온갖 악행과 비행에도 불구하고 스트릭랜드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는다. 슬픔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현재의 즐거움만이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곳에서 그는 돼먹지 않은 그림만 그린다는 남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자신의 그림을 보고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중에는 기뻐할 날이 올 것을 예견하고 마치 천지창조를 한 하느님처럼 만족해하면서 끝없는 색채의 향연을 늘어놓는다.

머리위에는 푸른 하늘, 사방에는 울창한 나무, 향긋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이 바로 낙원이고 에덴동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되는대로 살아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행복보다는 불행과 친했던 스트릭랜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빨리 진전되면 고마운 문둥병에 걸린 그는 사자얼굴을 한 채로 의사의 방문도 시끈둥 하게 받으면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야자수 타는 듯 한 타이티 섬의 풍광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는 원주민의 적나라한 모습을 마구 그려내면서 죽음과 사투를 벌인다. 죽기 1년 전에는 눈까지 멀었으나 죽기 살기로 집안의 벽에 찬란한 그림을 완성한다.

그를 왕진 갔던 의사는 역겹고도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는 죽어가는 그의 옆에서 인간의 솜씨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림을 목격한다. 갑자기 마법의 세계에 온 듯 거대한 원시림과 나무들 밑으로 벌거벗은 사람들이 오가고 공포와 열정, 아름다움과 음란함이 교차하는 그림이 그를 압도한다.

스트릭랜드가 평생을 준비한 공간의 무한성, 시간의 영원성을 담은 작품을 비로서 완성한 것이다. 외로움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지친 영혼이 마침내 목적을 이뤘으니 그는 기꺼이 죽었다.

야자수 아래에 묻힌 그를 뒤에 두고 아타는 그의 유언대로 작대기 하나 남기지 않고 집을 불태운다. 마네의 그림처럼 200프랑도 아까웠던 그의 그림값은 수 만 프랑에 달할 만큼 죽어서 진가를 나타낸다.

친구보다 적이 많았고 난폭한 성격으로 살아 있을 때는 무명이었느나 죽었을 때 진짜 천재였고 그 천재가 자신들과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와 같이 있었던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사족: 두 번째로 다룬 <그리스인 조르바>나 이 작품이나 모두 여자를 아주 천하게 그리고 있다. 여자란 알 수 없는 동물이며 개처럼 취급하고 팔이 아프도록 두들겨 패도 여전히 사내를 사랑한다고 조롱한다. 아예 여자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조르바 보다는 좀 점잖지만 찰스 스트릭랜드도 오늘날의 윤리적 기준으로 보면 하루도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게 행동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재 예술가의 천 가지 지저분한 행동은 천재와 예술작품이라는 이유로 용서 될 수 있는가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남겨 놓는다.

그가 문명과 단절되고 그래서 도덕적 잣대가 느슨했던 타이티에서만 살았더라면 다른 사람보다 더 고약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런던과 파리 그리고 마르세유에서 살았다. 타이티에 가기전까지 살아 있었던 것이 기적이었던 것이다.

블란치의 죽음에 대해 스트릭랜드는 버림받아 음독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고 전혀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그가 어떤 심성을 가진 인간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나 쾌락의 도구로 이용했으며 단지 모델이 필요했기 때문에 같이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이 출간된 1919년은 1차 대전이 끝난 바로 다음해이다. 작품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전쟁에 대해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는 것은 괴이한 일이다.

아무리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하더라도 엄청난 인명과 물자 그리고 인간 정신을 폐허로 만든 전쟁에 대한 관점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이 이 작품을 더 위대하게 하는지 모른다. 전쟁에 지친 영혼에 초인적인 예술가를 등장시켜 위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 부인의 형부 그러니까 언니의 남편인 맥 앤드류가 군인으로 높은 계급인 대령으로 나오기는 하는데 그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로 하지 않는다.

한편 이 책을 번역(민음사, 2000)한 송무 교수는 달과 6펜스의 제목과 관련해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이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이야기”라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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