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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깊고 푸른밤(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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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깊고 푸른밤(1985)
  • 의약뉴스
  • 승인 2015.11.2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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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믿고 있었다. 그런데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을 보고나서는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이 무언가 잘 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국민배우 안성기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그 사람은 안성기는 아내를 너무 사랑해 베드신을 아예 찍지 않는 것은 물론 멜로 영화에는 출연조차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깊고 푸른 밤>에서 보여주는 안성기의 베드신을 보고는 누군가가 한 그 말은 틀림없는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안성기의 섹스는 놀랍도록 정교하고 세련됐으며 과격하고 끈질겼고 오래갔다.

안성기는 야외에서, 차 본네트 위에서 혹은 스탠딩을 비롯한 다양한 체위를 선보였다. (별로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것은 안성기의 베드신 자체를 거론한다기보다는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 중 하나가 섹스 코드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백호민(안성기)이 미국 서부의 어느 해변에서 제인(장미희)을 만나 돈을 주면서 이들의 관계가 사랑이 아닌 돈으로부터 시작되는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제인은 위장 결혼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살아가는 바 걸이다. 하지만 1년에 여섯 번이나 결혼해 진력이 났고 이민성이 요주의 인물로 점찍고 있어 그 쪽에서 발을 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얼굴도 잘 생기고 멋쟁이 인데다 총각이고 돈도 1만 불이나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딱 한 번만 더 하자고 하는 심사로 호민과 계약 결혼을 하고 만다.

미국에서 결혼에 성공한 호민은 영주권이 나오면 한국에 있는 아내와 아이를 데려올 마음에 들떠있다. (공중전화로 아내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영주권이 나오면 바로 초대하겠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인은 호민을 돈이 아닌 사랑으로, 계약이 아닌 진짜 결혼을 원하게 된다. ( 앞서 말한 대로 사랑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호민의 섹스어필에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굳이 말 안 해도 알겠는데 제인에 앞서 호민이 만난 여자를 통해 그가 특히 잠자리에서 그렇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각인 시킨다. 가게에서 점원이 보는 가운데 호민이 그런 거라면 언제든지 해 줄 수 있다며 제인을 아주 죽여주는 멋진 섹스 신은 덤이다. 오프닝 부분의 작열하는 태양아래에서 하는 거친 섹스는 실제 상황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상하로 움직이는 호민의 엉덩이 근육은 탄력이 넘친다. 활처럼 휘는 가는 허리, 학처럼 길고 하얀 목덜미, 저녁노을처럼 붉은 입술을 공격하는 호민과 그에 화답하는 제인의 애정장면을 카메라는 동서남북 사방팔방으로 현란하게 돌면서 더욱 실감 있게 그려낸다.)

이런 화려한 섹스에도 불구하고 호민은 본국의 아내에게 온 신경이 팔려 있다. 반면 5개월이나 기다려도 초대소식이 없는 호민을 기다리다 지친 아내는 뱃속의 아이를 지우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을 통보한다.

영주권을 손에 쥔 호민은 환호하지만 미국 영주권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호민과 제인의 사이도 호민의 일방적인 이별통보로 깨진다. 두 사람은 이혼 여행을 위해 서부로 가는데 가다가 호민은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방향을 뜬다.

제인은 본국의 아내가 호민에게 보낸 비디오테이프가 아닌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그리고 호민의 전 여자가 말해준 그 놈이 어디론가 떠나자고 할 때 조심하라는 말을 통해 호민의 계획을 알아챈다.

제인을 죽이려던 호민은 되레 제인의 총에 맞아 죽는데 영화는 이 모든 사건을 빠르게, 아주 빠르고 치밀하게 끌고 나가는데 성공했다. 한국 영화 전문가들은 이 영화를 한국영화 베스트 10에 꼽지 않았지만 나라면 선정된 10편 가운데 확실히 빼야 할 한 편을 제외하고 이 영화를 넣고 싶다. 그만큼 잘 만든 영화다.

압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미 서부 사막을 벤츠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나 장미희의 열 번 봐도 질리지 않는 백치미 혹은 지적인 풍모와 차가움, 안성기가 보여주는 능청스럽고 뻔뻔하고 이기적인 모습은 한국영화가 두 남녀 배우에 의해 성장하고 살찌워 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 준다.

국가: 한국
감독: 배창호
주연: 안성기, 장미희
평점:

 

팁: 탐욕이 넘실거리는 라스베이거스의 멋진 야경과 그랜드캐니언의 기묘한 풍광, 사막의 건조함과 적막함과 공포는 영화를 보는 묘미를 더해준다.

성기와 미희가 결혼한 첫날밤. 성기는 말한다. 미국에서는 첫날밤에 신랑이 신부를 안아서 침대에 누인다면서 미희를 번쩍 안아 침대에 던진다. 그리고 머뭇거리지 않고 올라타는데 미희의 오른손에는 검은색 권총이 들려있다. 이번에는 미희가 말한다. 이건 계약에 없다, 미스터 백. 

본국의 아내가 보내오는 소식을 편지가 아닌 카세트테이프 속의 목소리로 확인하는 장면은 오싹한 스릴러 적 요소를 풍긴다.

미국에 와서 놀란 건 여기는 전부 미제라는 것이다 라거나 매일 밤 파티가 열리고 바다가 보이는 큰 저택에서 춤추고 롱드레스를 입고 영화처럼 살고 싶어 철부지 어린 나이에 흑인과 결혼한 제인을 통해 당시 한국에서 불었던 미국동경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난다.

점원은 난 동두천에서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는데 내가 재미교포 사업가라고 하니 대학교까지 나온 인텔리 여자가 짝 달라붙더라는 말이나 영주권을 얻기 위해 호빈이 벌이는 미국에 대한 찬가와 미합중국 국가를 부르는 모습은 웃음이 나오기보다 애잔하다.

미국은 세계에서가장 큰 나라이며 미국은 복지 자유 기회의 나라 그런 이유로 여기에 살고 싶다고 외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당시 한국인의 미국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엔 파격적인 미국 올 로케 작품이며 최인호 소설이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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