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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줄 앤 짐(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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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줄 앤 짐( 1962)
  • 의약뉴스
  • 승인 2015.08.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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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을 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둘도 없는 친구가 아내와 사랑을 한다고 해서 달리 볼 것도 없다. 그저 남편은 여자가 떠나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남자가 좀생이냐고. 오, 노. 그 반대다. 시를 쓰기도 하고 생긴 것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다만 남자는 여자를 자신보다도 더 사랑한다. 잠시 남의 여자가 된 들 무엇이 대수이랴. 완전히 나를 떠나지 않고 간혹 곁에만 있어주면 된다.

아, 이런 남자의 가슴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하해와 같이 넓고 깊다. 내 생전에 질투는 없고 오직 이해심만이 하느님의 사랑처럼 충만하다.

이런 남자의 여자는 외도를 아침밥 굶듯이 한다. 다른 남자와 만났다 헤어지는 것을 여름날의 태풍처럼 자연스럽게 여긴다. 이쯤 되면 여자는 남자의 상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전적으로 자신의 의사에 의해 남자를 결정하고 잠자리를 하고 아기를 낳고 삶과 죽음을 선택한다.

이 여자는 프랑스아 트뤼포 감독이 <줄 앤 짐>( Jules And Jim)에서 창조한 카트린( 잔느 모로)이다. 카트린은 줄(오스카 베르너) 과 결혼하기 전에 숱한 남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 경험이 줄과 결혼하는데 하자 대신 장점으로 작용한다.

누구의 자식인지 헛갈릴 만도 한데 줄의 딸이라고 확신한다. 결혼했다고 해서 카트린이 한 남자의 여자로 만족하는 삶을 살 것을 기대하는 것은 감독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1차 세계 대전이 터진 후 줄과 짐은 각자 고국인 독일과 프랑스군으로 참전하고 전후 다시 만난다. 짐(앙리 세르) 은 줄을 찾아오고 두 사람은 반갑게 재회하는데 줄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줄은 그런 내용을 장황하게 짐에게 늘어놓고 카트린도 부인하지 않는다. 숲속으로 짐을 유인한 카트린은 가벼운 스킨십 이후 본격적으로 몸이 달아오르고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 챈 줄은 주먹을 날리기 보다는 서로가 좋다면 같이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온갖 쓰레기를 품고도 그저 웃기만 하는 줄은 두 사람의 사랑이 잘 여물기를 그래서 카트린이 자신을 떠나지 않고 세 사람 아니 딸과 함께 네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카트린과 짐은 잠시 행복하다. 그러나 카트린이 어떤 여자인가. 남자의 너그러움 순수함 나약함에 질리는 여자 아닌가.

어느 한 남자에게 얽매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데 줄과의 관계가 길게 이어질까. 여자를 모르는 남자와 뒷목에 키스하기 쉽도록 머리를 젖히고 고개를 숙이는 남자를 잘 아는 여자가 벌이는 관계의 종말은 더 보지 않아도 안다.

자전거를 타는 카트린과 세 남자( 줄과 짐 말고 카트린은 다른 남자와도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진다.)는 지금 당장 죽어도 좋을 듯이 행복하다.

국가: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출연: 잔느 모로 , 오스카 베르너, 앙리 세르
평점:

 

팁: 겉으로 보기에는 여자 하나에 남자 둘의 삼각관계처럼 보이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관계라고 하면 갈등이나 질투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확실히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저 여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남자들은 들러리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삼각이니 관계니 하는 말들은 무의미하다. (줄과 짐도 꼴에 남자라고 창녀를 찾고 파리에 애인도 있다.)

한마디로 두 남자는 카트린의 적수라기보다는 하수로 등장한다.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지만 싸움이 벌어졌다고 해도 결코 이길 수 없다. 아쉬운 것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카트린이 상대하기 벅찬 남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를 확 잡는 남자는 대체 어떤 성격과 취미를 가졌을지 상상하기도 벅차다. 세상에 그런 남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영화는 카트린이 등장하면 새벽별처럼 빛이 나지만 그녀가 잠시 사라지면 잿빛 하늘로 금세 변한다.

세상에는 남자 알기를 담배꽁초처럼 여기는 여자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그런 카트린은 남자를 비웃거나 하대하거나 무시하지 않고도 어린 아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줄 안다.

이런 카트린의 놀라운 능력은 튀르포가 선사한 대단한 선물이다. 줄과 짐은 너무 친해 동성애적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의식을 공유하거나 철학이나 이념이 같은 것도 아니고 공동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형제보다도 때로는 부부보다도 더 친하게 나와 조금 의아하다. 아마도 카트린의 성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감독의 치밀한 장치로 두 사람이 관계가 형성 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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