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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베를린 천사의 시(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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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베를린 천사의 시(1987)
  • 의약뉴스
  • 승인 2013.09.1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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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도 천사가 될 수 있을까.

사내아이도 아니고 그것도 다 늙어 빠진 중년이라면. 천사와는 영 맞지 않는 캐릭터다. 그런데 빔 벤더슨 감독은 베를린 천사의 시(원제: wings of desire)에서 주름진 남자의 천사를 멋지게 연출해 냈다.

그러고 보니 감독의 말마따나 안 될 이유가 없다. 중년의 아줌마처럼 중년의 남자가 모두 악마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 영화를 통해서 명백해 졌다.

다니엘(브루노 간츠)은 어깨에 멋진 날개를 달고 꽁지 머리를 하고 버버리 코트를 입고 엄마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에서, 성당의 꼭대기에서, 전철 안에서, 뒷골목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실의에 빠진 남자와 사랑에 괴로워하는 여자와 아파트의 모습, 영화를 촬영하는 감독, 엄청나게 큰 도서관, 포츠담 광장을 찾기 못하는 노인 등 수 많은 사람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본다.

말은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천사는 그저 부드러움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 (하지만 사람들의 행동에 직접 간섭할 수는 없어 다리위에서 자살하는 청년을 잡지는 못한다.)

이런 생활을 천사는 태초부터 그러니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 시냇물이 하천이 되고 강이 바다가 되고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지쳐봐 왔다. 다니엘에게는 친구 천사(오토 샌더)가 있다.

간혹 서로 만나 20년 전 오늘 소련 전투기가 추락하고 50년 전 올림픽이 열리고 길가를 가는 남자가 인생의 허무를 느꼈고 한 여인이 비가 오는데 우산을 접더니 비를 흠뻑 맞았던 사실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이 꿈이 아닐까.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이 단지 환상이 아닐까. 악마는 존재하나. 정말 나쁜 사람이 있을까.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나. 언젠가는 나란 존재는 더 이상 내가 아닐까. 천사로 순수하게 영원히 사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하지만 가끔 실증도 난다. 내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사의 고뇌가 시작된다. (천사도 고민이 있다니.)

“가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지금’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영원’이라는 말은 싫어, 카페의 빈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인사 받고 힘든 일과 후 집에 돌아와서 고양이에게 먹이도 주고 아파도 보고 손때가 묻게 신문도 읽고 정신적인 것만이 아닌 육체적인 쾌락도 느끼고 싶어.”

어느 날 다니엘은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서커스 여자 단원인 줄 타는 곡예사 마리온 (솔베이그 도마르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천사였다가 지금은 사람이 돼 영화판의 게스트로 출연중인, 천사를 느낄 수는 있지만 볼 수는 없는 전직 천사 콜롬보( 피터 포크)는 그에게 잘 해보라고 용기를 준다.

여기 있는게 얼마나 좋은지 담배와 커피를 같이 하면 환상이라는 말을 듣고 천사는 다짐한다.

“나 자신의 역사를 쟁취하고 세계 역사에 끼어들고 손으로 사과를 쥐어 보겠다, 위에서 보지 않고 눈높이에서 보겠다.”

인간으로 변해서 첫날에 할 일도 미리 정해 놓는다. 천사는 인간이 된다. 머리의 피를 맛보고 거리의 색깔을 외우고 행인의 도움으로 돈을 받아 커피를 마시고 눈 온 추운 거리에서 손을 비벼 따뜻하게 하고 마리온과 함께 인생을 설계한다.

그리고 이렇게 되 뇌인다. 둘이라고 하는 것의 놀라움, 남과 여에 대한 놀라움 그것이 날 인간으로 만들었다. 난 이제 안다. 어떤 천사도 모르던 사실을.

시종일관 메마른 흑백의 화면은 천사가 사람이 되면 화려한 컬러로 바뀌는데 다니엘이 인간이었을 때 칙칙한 베를린 장벽의 현란한 낙서들이 총천연색으로 다가온다.

이제 천사가 아닌 인간이 된 다니엘에게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고 싶다. 그리고 천사가 아닌 인간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처음엔 천사가 부러웠으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천사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 싶다.

평소 고마워하지 않았던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왜 이리 뿌듯한가. 인간이기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시라.

국가: 독일/프랑스
감독: 빔 벤더슨
출연: 브루노 간츠, 솔베이그 도마르틴, 오토 샌더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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