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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17 20:40 (금)
153. 무거운 것 대신 가벼운 것으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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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무거운 것 대신 가벼운 것으로 넣었다
  • 의약뉴스
  • 승인 2013.05.1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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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라는 것은 참 묘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막사 주변은 짙은 안개에 쌓인 것처럼 적막이 흘렀다.

간혹 고참들이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천리행군이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신참들은 말로만 듣던 걷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몸의 일부가 작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복원력이 있는 스프링처럼 바로 느긋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충분한 각오를 했고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했기 때문에 오히려 빨리 걷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파로호의 장관을 직접 보고 싶었다.  야간행군이 마지막 날에 포함돼 있지만 일정대로라면 낮 동안 우리는 파로호를 한 바퀴 돌아야 한다.

내가 파로호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곳이 한국전쟁 중에 중공군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소리를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뒤였다.  거기에 경치까지 볼만하다니 나의 상상력은 죽어가는 병사들의 두 눈 사이로 비친 호수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졌다.

이런 곳에서 죽은 병사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죽음의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나쁜 장면이 아니었다.  참호에서 나비에게 손짓을 하다 저격병의 손에 죽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영화 속 주인공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나비가 아니라도 그 병사는 죽을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살다 진창에서 폭탄에 맞아 사지가 찢겨지고 팔 다리가 잘리면서 죽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나는 빨리 물에 비친 산과 산그림자가 보여주는 파로호의 압도적 풍광을 보고 싶었다. 행군중에 잠을 자다 쓰러져 고참의 대검에 찔리는 한이 있어도 이런 경험은 돈주고도 하기 어렵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집행에 대한 사형수의 초조한 마음과 근사한 반찬을 앞에 두고 수저를 막 드는 찰라의 기쁨을 동시에 나는 맛보고 있었다. 군장을 꾸리면서 나는 좋아서 죽을 것 같은 표정관리를 하느라 행동이 굼떴다.

인사계는 소대 내무반을 돌면서 준비상황을 체크 했다. 그러다 허둥대는 이등병이 보이면 파로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직접 전투에 참가라도 한 듯이 그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인사계는 파로호의 물이 다 말랐다고 했다. 중공군 시체가 쌓이고 쌓여 고인 물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시체의 산이 더해 졌다고 했다.

나는 병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파로호에 관한 내용을 조금 확보했다. 파로호는 강원도 화천군과 양구군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로 10억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다.

일제 강점기의 막바지인 1943년 축조됐고 해방 후 38선으로 갈려 북쪽에 있었으나 전쟁 통에 수복된 곳이라고 한다.

중공군 3만명이 죽었다고 하고 북한군과 아군의 숫자까지 더하면 죽은 숫자는 일일이 셀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살아서 수장됐거나 죽어서 버려졌거나 호수는 시체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처음에 죽은자들은 물결 따라  떠다녔고 나중에 죽은 자들은 시체 위에 쌓였다.

파로호는 단지 물만 가두는 호수가 아니었다. 사람까지 가뒀다. 사진으로 보는 호수는 멋졌다. 1000미터가 넘는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는 해질녁 석양을 받아 세월에 깎인 유리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호수의 원래이름은 지명을 따 화천호였으나 당시 남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오랑캐를 무찔렀다고 해서 파로호라고 지었다고 한다. 파로호는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남과 북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지도를 따라 파란색으로 표시된 지점을 보다 그 지점이 피 빛 붉은색으로 출렁이는 물결을 보았다.

전쟁 중에 죽어간 수많은 적들과 적을 죽이기 위해 죽어간 수많은 아군의 피가 섞여 있었다. 그 피는 어느 순간 파란색으로 보였다가 보라색으로 다시 노란색으로 자꾸 색깔을 바꾸었다.

내가 병실에서 가지 않는 시간을 때우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때때로 바뀌는 파로호의 색깔 때문이었다.

“거기가면 귀신이 나와, 그것도 아주 많이. 정신 못 차리면 죽는다.”

인사계는 그런 말도 했다. 실제로 천리행군을 하다 파로호 근처에서 죽은 병사가 3년 전에 있었다고 한다.

인사계는 10만 귀신이 잡아갔다고 했다. 나는 군장을 챙겼다. 고참들은 야삽이나 방독면 등 무거운 것은 드러내고 그 자리에 부풀어 오르는 옷이나 침낭 등 가벼운 것으로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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