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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牛)의 해를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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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牛)의 해를 맞아
  • 의약뉴스
  • 승인 2009.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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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十二支) 중 두 번째인 소는 신석기 시대 초기부터 길들여져 농사를 짓거나 짐을 나르는 등 인류에게 큰 도움을 준 동물이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에는 소의 뼈로 점을 치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의 토종 소인 한우는 조선시대 이전에 '쇼'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는 힘과 고집이 세지만 성품이 순하고 외양이 듬직한 존재로 존경받아왔다.

박목월 작사•손대업 작곡 ‘얼룩송아지’동요는 우리 국민들에게 소에 대한 친근감을 안겨준 일등 공신이다.

경상남도를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는 백중과 한가위에 소싸움을 벌여 우량종을 선발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정월 첫 축일(丑日)을 ‘소의 날’로 정해 소를 쉬게 하고 여물(牛粥)로 영양가 높은 쇠죽을 먹였다.

고려 성종 때부터 경칩 후 첫 돼지날(亥日)이면 흥인문 밖 선농단에 국왕이 친히 행차하여 한해 농사가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는 제사(선농제)를 드렸다.

선농제가 끝나면 임금은 친히 소를 몰고 쟁기를 갖춰 논을 가는 시범을 보였으며 소고기로 만든 음식을 백성들에 나누어 주었다.

소의 운명은 나라마다 달라 스페인에서는 생명을 내건 투우에 이용되지만 인도에서는 신성한 동물로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소는 일생동안 짐마차를 끌거나 논밭에서 쟁기질을 하는 등 중노동을 한 후 죽어서도 가죽부터 내장까지 신체 모든 부위를 인간들에게 제공하는 살신성인의 동물이다.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시절, 소는 부(富)의 상징이었다. 현대에서도 소(Cattle)는 동산(動産)을 의미하는 chattel, 경제학 용어로서의 capital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옆 공터에 우시장이 개장되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씨름대회가 열렸다. 당시 우승자에겐 송아지가 수여되었고 그는 지역에서 부러움과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스타 킹’이 되었다.

소는 근면과 성실, 인내심이 강한 동물의 표상으로 회자되어 왔다. 한때는 새마을 운동의 기수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며 ‘새 일꾼에 한 표 주어 황소같이 부려보자’는 황소 정당(민주공화당)에 걸 맞는 구호를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굼뜨고 둔한 행동과 부정적인 면에 비유되어 비하되기도 했다.

기운 세다고 소가 왕 노릇할까/늙은 소 흥정하듯/닭, 소 보듯. 소, 닭 보듯/소귀에 경 읽기/더위 먹은 소, 달만 보아도 헐떡인다/들녘 소 머루 먹듯 경거망동한다/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미련한 송아지 백정을 모른다/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다/소 뒷걸음치다 쥐잡기/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소꼬리보다 닭대가리/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

내게도 소에 대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의 추억이 있다.

오래전, 우리 집 황소는 농사 욕심이 많은 할아버지께서 늘 영양가 높은 쇠죽을 먹여 힘이 넘쳤다. 게다가 성질까지 난폭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홀어머니는 만신창이가 된 채 방에 누워계셨다. 쇠뿔에 받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어머니를 황소가 공 굴리듯 넓은 마당을 헤집고 다녔다고 이웃집 아저씨가 일러주었다.

결국 우리집 황소는 ‘난폭한 황소이니 경계를 요한다’는 표식인 굵은 밧줄을 목에 걸고 우시장으로 팔려갔다.

지난해에는 유난히도 소가 세인의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렸다. 광우병 파동은 이 땅에 촛불 시위 문화를 태동시켰다. 혹자는 왜 중국산은 제쳐놓고 미국산만 촛불 시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정육점과 음식점에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는 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값싼 수입 소를 비싼 한우로 둔갑시켜 폭리를 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입소를 국내에 들여와 6개월만 방목하면 국내산이 된다는 방송보도를 본 후 국산소와 토종 한우의 정의가 애매했다.

1998년, 서울대 황우석 교수에 의해 복제된 송아지 영롱이가 세계의 이목을 받는 경사도 있었다. 반면에 사료 가격이 폭등해 송아지 가격이 폭락하고 목장 주인이 자살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소가 겪은 시련은 지난 한해의 구설수로 충분했으니 기축(己丑)년 새해에는 희망차고 좋은 일만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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