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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선택, 사랑 그리고 다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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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선택, 사랑 그리고 다시 선택
  • 의약뉴스
  • 승인 2007.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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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두번째 사랑
   
▲ 각기 결핍을 소유한 두 사람, 그들의 만남은 어떤 결말을 맞을 것인가.
뉴욕의 한 병원, 정자를 사고자 하는 소피(베라 파미가 분)와 정자를 팔고자 하는 지하(하정우 분)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정자를 살 수도, 팔 수도 없다. 소피는 남편의 동의서를 구해오지 못했고, 지하는 불법체류자로 기증자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각기 결핍을 소유한 두 사람, 하지만 그들의 결핍은 서로를 필요하게 한다.

소피는 언뜻 보기에는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남편 앤드류(데이비드 맥기니스 분)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여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성기능 장애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 못할 고민을 하고 있다. 남편은 삶과 사랑에 지쳐가고,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아이를 갖고 남편의 마음을 붙잡아 두고자 한다.

지하는 뉴욕의 불법체류자이다. 낮에는 세탁소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육류 가공 공장에서 일을 하며 돈벌이에 전념한다. 그에게는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를 초청해야 하는 목표가 있다. 그래서 한 번 기증에 50달러를 받는 정자기증도 시도한다. 하지만 그는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는 낯선 이방인일 뿐,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병원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소피는 지하에게 하나의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이 임신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남편과 닮은 남자(지하)의 정자가 필요한 소피, 돈이 필요한 지하. 그들은 거래를 시작하고, 둘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실 영화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두 주인공의 기본적인 인물 설명)과 제목(두번째 사랑)을 조합해 보면, 이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피가 임신을 해서 앤드류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지하는 소피에게 받은 돈으로 여자친구를 초청해 잘먹고 잘살았다면 애초에 영화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 한 남자의 아내인 소피, 불법체류자인 지하. 그들의 만남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두번째 사랑>에는 예측 가능한 이야기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에 김진아 감독이 ‘뻔한 내용’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진아 감독의 도전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오아시스>, <밀양>의 이창동 감독이 <두번째 사랑>의 시나리오를 읽고 그 자리에서 프로듀서로의 참여의사를 밝혔을만큼 탄탄한 시나리오는 스크린 위에 충실하게 재현된다.

<두번째 사랑>은 소피와 지하의 ‘남녀상열지사’에 소피의 ‘자아찾기’가 덧붙여져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의 한계를 넘어선다. ‘정자 거래’를 넘어 이들이 서로 대화를 시작할 무렵, 지하는 소피에게 “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 소피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요”라고 답한다. 지하는 다시 “아니요, 당신 주변의 사람들 말고, 당신의 소원이요”라고 묻는다. 순간 소피는 대답하기를 멈춘다. 지금껏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한번도 해보지 못한 그녀에게 타인의 행복은 곧 자신의 행복이었다.

이제 소피의 행동은 단순히 지하와의 사랑을 얻기 위한 노력일 뿐 아니라,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신만의 소원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을 속이고 지하를 만나러 가는 한편, 지금껏 잘 견뎌왔던 친구와 친척들의 모임에서 현기증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남편 앤드류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순간,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된다.

지하의 신분이 불법체류자라는 사실도 이야기 전개에 큰 축으로 작용한다. 불법체류자는 한 사회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이를 상징하고, 정당한 직장을 갖거나 돈을 벌 수 없다. 지하가 소피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여자친구의 사진이 놓여있는 그의 방에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지하. 만약 그의 신분이 불법체류자가 아니었다면 지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또한 그가 이방인이라는 것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 소피에게 소원을 묻는 지하. 소피는 자신의 소원을 쉽게 얘기하지 못한다.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함께 <두번째 사랑>을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만든 것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현재 미국 대학에서 시각예술학부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김진아 감독의 섬세한 장면 연출이다. 소품 배치나 카메라 앵글 등 다양한 영화적 장치들은 인물들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둘이 관계를 맺는 지하의 방이다. 돈벌이에 몰두하는 지하가 방을 예쁘게 꾸밀리 만무하다. 오히려 돈을 아끼기 위해 낡은 모포를 덮고 살며, 길거리에 버려진 의자를 주워가기도 한다. 그런 지하가 어느 순간부터 방을 꾸미기 시작한다. 소피가 거칠다고 말한 모포는 어느날 사라지고 부드러운 이불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또 파스텔톤의 커튼은 방의 분위기를 ‘사랑의 공간’으로 만든다.

소피가 지하와 남편 앤드류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때에는 그녀의 두 모습이 화면에 등장한다. 카메라는 피아노를 치는 소피의 모습과 거울에 비친 (또다른) 소피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는다. 또 소피가 남편과 같이 침대에 있다가 잠이 오지 않아 창가로 갔을 때, 창에 비친 소피의 모습은 선명하지 않고 불안하다.

이밖에도 소피와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애지중지 길러오던 수염을 자르는 지하의 모습이나 지하와 헤어지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모습을 흔들리는 카메라에 담은 장면 등 <두번째 사랑>에는 인물들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는 장치들이 영화 전편에 숨어있다.

<두번째 사랑> 홍보팀이 선택한 메인카피는 ‘격정멜로’이다. 또 유사한 영화로 <은밀한 유혹>과 <언페이스풀>의 예를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두번째 사랑>은 격정멜로도 아니고, <은밀한 유혹>과 유사한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전 정보는 영화가 갖는 다양한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격정멜로라는 말과 관련해 소피와 지하의 ‘찐한’ 장면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시간에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그들의 정사 장면을 보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영화 외적인 얘기를 잠시 하겠다. <두번째 사랑>은 <인어공주>의 나우필름과 <세크리터리>를 제작한 VOX3FILMS의 제작자 앤드류 피어버그가 손잡고 만든 국내 최초의 한미합작 상영작이다. 이 영화는 올해 초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감상적인 영상과 세밀한 감정 묘사로 호평을 받았다. 김진아 감독은 이 영화로 헐리우드 에이전시 CAA의 러브콜을 받았다. CAA는 배우 니콜 키드먼, 톰 크루즈 등과 감독 셈 레이미, 마이클 만, 소피아 코폴라, 짐 자무시, 미라 네어 등을 보유한 에이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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