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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애경사(哀慶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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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애경사(哀慶事)
  • 의약뉴스
  • 승인 2007.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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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회장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회원들의 애경사에 참석하는 일이다.

분회장 시절부터 간혹 같은 날 두 군데에 애경사가 생기면 먼 곳은 내가 참석하고 가까운 행사장은 집사람에게 부탁을 했다. 봉투를 대신 보내거나 조화로 대신할 수도 있지만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약사 회원들의 애경사에 참석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동료 약사들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의약분업이 되기 전, 화합이 잘되는 반(班)은 애경사마다 회원들이 참석하기도 했지만 잦은 약국 이전과 가격 분쟁 등 이해관계가 얽혀 흐지부지 되곤 했다.

 모 약사가 오래전에 궂은일을 치렀을 때 임원들이 장례식을 마칠 때까지 도와준 기억이 있어 품앗이를 갚으라고 연락했지만 조문조차 오지 않아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다.

 자신이 남의 애경사에 찾아다니지 않았으니 상대방도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건만 막상 자신이 일을 당하면 찾아주지 않는다며 서운해 하고 야속한 인심을 탓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장본인이 약사회장이기에 상근 지부장이 된 후 제일 먼저 애경사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특히 궂은일에는 더 신경을 썼다. 상주가 외아들이거나 일가친척이 거의 없는 경우, 약사회에 봉사한 임원의 경우는 가능하면 장지(葬地)까지 따라갔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내리는 궂은 날, 승용차를 몰고 조문을 가던 중 중앙선이 안 보여 역주행을 한 적도 있었다. 영전(靈前)에 재배(再拜)를 한 후 상주에게도 두 번 절을 한 적도 있었다. 너무 피곤해 비몽사몽간에 상주와 절을 하다 보니 착각을 한 것이다.

 어떤 이는 조문을 하는 중에 휴대폰에서 ‘닐리리아 맘보’가락이 흘러나와 곡(哭)을 해야 할 상주들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았다는데 나는 그보다 더 큰 실례를 한 것 같다.

 영안실에 조문(弔問)을 가면 자정을 넘기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술과 담배는커녕 고스톱조차 할 줄 모르니 새벽까지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영안실에서 당혹스런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고인(故人)의 명복을 기리며 엄숙해야 할 자리를 망각하고 약사회무를 논하다가 고성이 오가는 일도 있었다.

 약사회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조문을 가 늦게나마 저녁 끼니를 때울 요령이었는데 전혀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부장 체면에 밥그릇을 날라 올 수도 없는 일이다.

 안면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회원이기 때문에 지부장이 조문을 왔으면 한가한 틈을 내어 옆자리에 앉아 ‘먼 길에 와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이건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상주(喪主)도 있었다.

 전직 임원이었던 상주(喪主)가 조화(弔花)를 원해 미리 전해주고 조문을 갔다. 헌데 문상객이 식사한 상을 치울 생각도 않고 수저조차 새것으로 주지 않는다. 달랑 건네준 음료수를 마시며 자정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었더니 옆에 앉아있던 약사님이 보기가 민망했던지 ‘피곤하실 텐 데 그만 일어나시라’고 거든다.

 하지만 서울과 지방에서 조문 온 상주의 동기들이 신문에서 자주 보았다며 내 얼굴을 알아보고 반가와 해 새벽 2시까지 대화를 나누다가 영안실을 나왔다. 물론 그날 저녁을 굶었지만 집에 들어가서는 식사를 했다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런 날은 상주만큼 내 가슴이 아파온다.

 이보다 더 나를 슬프게 하는 경우가 있다. 먼 지역의 영안실을 마다않고 찾아가 조문하고 장지까지 따라가 위로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약사회에 협조하기는커녕  오히려 훼방을 놓는 회원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이웃 친지들의 애경사에 참석하는 일은 품앗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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