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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8 15:11 (일)
그는 급한 성질의 그를 끌어들이는 작전을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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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급한 성질의 그를 끌어들이는 작전을 구사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9.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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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휴의는 완용이 일제 영사관과 접촉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더구나 여순을 만난 것은 까마득히 몰랐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사전에 알았다고 해서 놀랍기는 하겠지만 지금 하는 작전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가. 나 모르게 그런 일이 있었군. 만나서 뭘 어쩌겠어. 난 이미그곳을 떠났는데. 날 잡으로려고 했다면 한 발 늦었어. 그리고 이제는 네가 날 알아보지는 못할거야. 난 좀 얽었어. 질병에 걸린 곰발바닥 같은 흉터를 얼굴에 남겼거든. 그러니 나중에 만나더라도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거든. 널 놀래주고 싶지 않아. 그러니 설혹 날 알아보더라도 아는 체 말자. 눈 마주치기도, 말 섞는 것도 싫어. 네깟놈 주제에 날 어쩌겠다고. 이 정도의 소회는 남겼겠지만. 사실 이보다는 더했을 것이다. 어쩌면 선생이 준 총을 사용했을지 모른다. 이 정도로 끝내는 것이 쿨한 것이겠지. 깔끔하게 뒷말 없게. 그러나 휴의는 곧 이런 주제에서 버서났다. 싸움의 결과가 눈 앞에 닥쳐 있으니 그것부터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나서 회상하자. 자, 여기로 다들 모이시오. 다시 한 번 작전을 점검해 보자고요. 어떻소. 치고 빠지는 것. 우리가 늘 써먹는 것이오. 그래서 새삼스러울 것이 없어요. 제일 잘하는 것을 써먹자고요. 이견은 없었다.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하려면 정면 승부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사단병력이라고는 했지만 편제상 그렇다는 것이지 미 육군이 정해놓은 그런 규모에는 한 참 미치지 못했다. 오백명을 조금 넘었다. 대대나 연대병력급이었으나 사기는 군단급이다, 전술은 여단급이고. 그급조된 완용의 부대가 숫자로 밀어 붙이면 우리는 머리로 싸우는 거야. 어때요, 여러분 생각은. 휴의는 다 정해놓고 이렇게 간부급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찬성을 말하는데 반대하는 부하들은 없었다. 이 전술 말고는 달리 생각할 수 없어. 일부러 정면 승부를 걸고 질 필요는 없지. 좋습니다. 자 우리의 작전은 정해졌다. 그렇다면 완용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대할지 말해봅시다. 이렇게 질문을 던져 놓고 휴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완용이라면. 그 자는 숫자로 민다. 힘으로 제압하려 들 것이다. 달리 어떤 전술이 있겠어. 그 자는 그것을 인해전술이라고 떠들고 다녀. 좋아 그것도 전술의 일종이라면 그런 거지. 그렇다면 우리는 약을 올리고 화가 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뒤를 사정없이 치는 거지. 완용이 아차 싶을 때는 이미 늦은 거고. 그는 내 사정을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하겠지. 네가 아는 것 이상으로 내가 널 알아. 그러니 네가 어떤 수비형태로 나오든 널 뚫고 나갈거야. 넌 이미 한차례 나에게 당했다. 복수하고 싶겠지. 그럴러면 더 준비했어야지. 마음만 그런 쪽이고 실제로는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설사 했다고 쳐도 네 머리로 무얼 할 수 있겠니. 머리를 빌리기라도 하지. 그것도 안하고 나를 막아내겠다고. 휴의는 완용은 아주 깔봤다. 난 약산처럼 용기가 없어. 한꺼번에 밀고 내려갈 수 없단 말이다. 완용은 약산처럼 나도 그렇게 나올 걸 믿고 있어. 한꺼번에 내려오는 적은 커다란 그물로 잡는다. 그래서 넌 전선을 넓게 펼쳤고 그물을 쳤어. 그 그물은 너무 커서 고래나 빠져 나갈 수 없을 거야. 우리같은 가물치 급은 요리조리 잘도 헤엄치지. 네가 눈치 챘을 때는 우린 저 멀리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 있을 거야. 같은 작전으로 나오기를 기대한 네 오산을 탓해야지 몸집이 날렵한 우리를 탓하면 안돼. 자, 우리가 간다. 길을 비키던지 목숨을 내놓던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라.  뚫고 나간 약산이 후방을 휘젓고 있다. 당황한 일제가 손 쓸 시간을 주지 말자. 약산을 막기에 급급할 때 우리가 나서는 거다. 로봇 태권 브이처럼 찬 하고 나타나서는. 너희들이 했던 그 잔학무도한 일을 열배로 값아주마. 그 일은 아주 수월해. 단타전. 이번 우리 작전명은 단타다. 휴의가 말하자 부관들이 따라했다. 단타. 짧게 치고 빠진다. 

이것은 성질급한 완용을 끌어들이기 위한 나름대로의 전술이었다. 그러나 완용도 만만치 않았다. 휴의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섣붙리 달려들지 않았다. 치고 빠지는 작전은 뒤로 미뤄졌다. 본격적인 전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서로 상대를 의식하는 탐색전이 길어지자 휴의는 작전상 시간을 끌수만은 없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디데이를 정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은 출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자신의 애초 생각이 달라졌지만 그것이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니고 완용의 버티기 작전에 기인한 것이었으므로 휴의는 자신을 크게 자책하지 않았다. 그러나 완용을 너무 무시했고 그들이 처한 사정을 정확이 읽지 못한 판단 미스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흘을 대기했다. 두만강물이 물가에 살얼음을 띄웠다가 오후에 녹아내렸다. 며칠내로 얼음은 점차 강 가운데로 세력을 넘힐 것이다. 도강은 쉽지만 적들도 마찬가지다. 얼음판 위에서 싸움은 아니다. 추위에 대비할 여력이 없다. 휴의는 얼음이 얼기 전에 그러니까 하루 이틀 후면 돌격을 감행해야 한다. 부하들이 그러기를 바라고 있다. 경마장의 말처럼 금방 이라도 달려 나갈듯이 준비를 끝낸 병사들이 콧김만 쐬다 제풀에 지칠까 봐 걱정이 되기도했다. 그러나.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휴의를 돌보던 박군은 최소 일주일 정도는 더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삼일 남았어. 의사의 말을 곧이 곧대로 따른다고 해도 그 날이 온 거야. 아직 몸 안의 염증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서둘러 나서지 마세요. 재발하면 다리를 잘라야 할지 모른다고 박군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경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렸다. 난 그 약속을 지켰다. 다리는 예전의 모습 거의 그대로를 되찾았다. 언제 내 몸통 만했지. 혼자 들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현대 의술이 이리 대단한가. 그래도 부기가 완전히 내리려면 기다리는 것이 약보다 더 좋은 약은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합의한 것이 한 달이 아닌 일주일 후였다. 휴의가 돌격을 며칠씩 뒤로 미룬 것은 완용의 대비도 대비였지만 이런 속사정도 있었다. 기다리면서 휴의는 착잡했으나 그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일주일을 버는 동안 작전을 더 세밀하게 구성했고 단타전외에 다른 변수를 끼어 넣기도 했다. 특별히 추려 뽑은 30여 명은 따로 훈련 시켰다. 근거리 조준사격과 수류탄 공격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저격부대였다. 어부로 변장을 끝낸 소수의 병사들은 적들을 혼란속으로 몰아 넣기 위한 특별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 병사들의 사기는 다른 병사들보다 높았다. 우린 뽑힌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더해졌다. 드디어 출병의 날이 왔고 휴의는 미리 섭외한 어선 다섯 척에 여섯 명씩을 태워 도강을 명령했다. 

그들은 배 위에서 어구를 손질하는 척하다 강을 넘고 그런 후에는 강바닥에 그물을 펴 놓는다. 찢어진 그물을 손질하고 또 일부는 다른 용무가 있는 것처럼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 매복 진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 모습은 고스란히 완용의 망원경에 들어왔다. 저 놈들 뭘하고 있지. 숭어를 말리려나 봅니다. 해가 잘 들고 평지에 잔돌이 많이 깔려 있는 곳을 고르는 것을 보니 그런게 분명합니다. 저기 보이시죠. 늦가을 숭어가 펄쩍펄쩍 뛰고 있어요. 구워 먹으면 맛있을 거 같아요. 누가 그걸 모르니 임마. 완용이 침을 꼴깍 삼치면서 배를 앞으로 내밀고 있는 경성출신 뺀질이 명령을 갖고 있는 부하를 타박했다. 어라, 저기 보세요. 저 놈들이 짚에 묶은 숭어 여러마리를 가지고 이리로 오고 있어요. 우리의 마음을 알아챘나봐요. 요즘 어부들은 눈치가 백단이거든요. 뺀질이가 신이 나서 말했다. 완용은 대꾸없이 망원경 안의 그들이 생김새나 움직임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틀림 없는 어부였다. 옆구리에 낀 총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첩자는 아냐. 휴의가 보낸 선발대도 아니고. 그래도 준비는 해야지. 야 뺀질이 너 소총 장전하고 대기해. 장전하라니요. 어부에게 쏠려고 그러는 건 아니죠. 맞다 이놈아. 쏘라면 쏴라. 숭어좀 사시오. 저쪽에서 큰 목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가을 숭어 입니다. 싸게 싸게 드릴게요. 병정님들 가을 숭어 솔가지에 구워 먹으면 맛있는 거 아시죠. 처음에는 세 놈이던 것이 뒤에 세 놈이 더 붙어 총 여섯명이 꾸러미 하나씩을 들고 걸어 오고 있다. 완용은 여섯 놈이 한 꾸러미면 꾸러미당 열 마리라고 치고 육십 마리네. 저거면 한 일주일은 입맛이 돋겠는 걸.  어른 팔둑 만 것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어떤 놈은 다 털어냈음에도 여전히 몸을 팔딱 거렸다. 싱싱해. 저런 놈이라면. 죽은 놈도 눈이 상하기는 커녕 살아서 뜨고 있는 것처럼 탱글거렸다. 군인 아자씨들, 이것 좀 하나 사주시오. 두 패로 나눈 위장 독립군들이 양손에 하나씩 고기를 들고 장사에 나섰다. 아주 싸게 드려요. 가을 숭어요, 가을 숭어. 가을 숭어라고. 겨울밤 에 울리믄 메밀묵 사려. 그런 음정과 박자였다. 틀림없는 조센징이네. 교통호 안에서 나른한 오후를 즐기던 조선 출신 일본군들은 가을 숭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나는 쪽을 향해 몸통을 드러냈다. 그러고들 있지 마시고 이리들 나와 보시오. 어부들은 교통호 앞까지 다가왔다. 이제 망원경이 필요없다. 완용은 이들이 어쩌나 보려고 눈길을 거두지 않고 주시했다. 병사 서너 명이 호기심에 이끌려 구멍속의 게처럼 어슬렁 거리며 나왔다. 그들은 진짜 숭어가 자기들 앞에 있는 것을 보고는 입을 벌렸다. 진짜 숭어네. 살아 있어. 눈 좀 봐. 아주 신선해. 병사들은 얼덜결에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러나 사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감히 군인에게 물건을 팔아. 확 빼앗을까 보다. 그러나 선뜻 나서지는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누가 먼저 하면 옆에서 총을 겨누며 거들 자세를 하고. 어떤 이는 헐값을 불렀다. 야 이놈들아, 일원 받고 다 내려 놓고 가. 터무니없었던지 옆에 있는 자가 거들면서 그건 너무 치나지오. 10원을 내야지. 하고는 웃겨 죽겠다는 듯이 끼들거렸다. 여보시오. 이 크기를 보시오. 이 정도면 장정 두 어며이 먹어도 배가 찰 것이오. 마리당 100원을 내시오. 전부가 아니고. 이런 날도둑 놈 같으니라고. 확 쏴버릴까 보다. 성질 급한 병사 하나가 총을 세워 들었다. 그러지들 마시오. 어려운 시기에 같이 먹고 살아야지. 우리 아들도 저기 펴양에서 순사질 하고 있소. 어부는 저기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평양이 언덕만 넘으면 있는 가까운 거리처럼 말했다. 빈총을 겨눠던 자는 순사라는 말에 동료 의식을 느끼고 슬그머니 총을 내려 놓았다. 이거 다 사면 두 마리는 거저드릴게요. 공짜나 마찬가지 입니다. 보다 못한 완요이 나왔다. 어서들 꺼지시오. 좋은 말 할때. 그가 권총의 노리쇠를 뒤로 잡아 당겼다가 놓았다. 깜짝 놀란 휴의의 위장군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안 사면 될 것을 왜 이리 헛총질까지 하시오. 하고 나무랐으나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헛방을 쏜 완용은 미안했던지 어서 가시오 하고 점잖게 타일렀다. 아버지뻘 되는 노인에게 함부로 하대하기가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부하들 보기에도 욕지거리를 하는 것은 민망한 장면이었다. 어서들 들어가 있어. 병사들이 다시 참호속으로 들어갔다. 저쪽으로 어서 가시오. 완용은 이번에는 권총대신  손가락질했다. 그래도 어부들이 미적거리자 옆에 있던 부사령관이 나섰다. 꺼져, 어서 꺼지라고, 불 맛을 보기전에. 너무 그러지 마시오. 가난한 어부를 생각한다면. 그나저나 장교님은 고향이 어디신가요. 경기도 광명이 제 고향인데요. 휴의의 부대원은 나와 같은 출신이 있으면 한 마리를 공짜로 주겠다고 떠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더 있다가는 경을 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서 너 마리를 완용 앞에 놓고 이거는 그냥 드리는 겁니다. 고생하시니 장교님 드시고 몸 보신 하세요. 하고 물러났다. 완용은 저런 순박한 어부를 상대로 굳이 사납게 군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휴의의 위장군들이 돌아와서 보고했다. 참호안에 병사들이 널려 있는데 군기는 약하고 무기는 좋다. 저기 가운데 지점이 사령부 역할을 하는 곳이고 거기에 완용 부대장이 있다. 입은 옷이 부럽대요. 깨끗하고 해진 곳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병사들의 차림이 제법 옷맵시까지 있었고요. 그 차림으로 거치된 기관총을 잡고 있는 모습은 부럽디다. 그 말을 하면서 위장군은 자신이 입은 헤진 흰옷을 내려다 보면서 나도 여기서 일본군이나 할까 이렇게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휴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잠깐동안 그 어부는 자신이 위장군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었다. 독립군 역시 사상적으로 완전히 무장된 것은 아니었다. 종합해 보면 완용 부대의 무기는 단연 눈에 띄었다. 잘 닦아 반질거리는 기관총에는 총알이 탄띠에 매달려 길게 늘어서 있었다. 독립군은 그런 무기가 탐났다. 저것들을 작살내서 손에 넣으면 좋을 것이다. 어부 가운데 한 명은 적진을 돌파하면 제일 먼저 기관총을 잡아야겠다고 다짐하기 까지했다. 알았어. 적 지휘부가 저기란 말이지. 완용을 분명히 확인했지. 완용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 자가 제일 높아 보였어요. 망원경에 선글라스를 끼고 주변에는 부하들이 도열해 있었고요. 참호 옆에는 작전 지휘실인지 하는 또다른 공간이 있었고요. 틀림없다고 휴의는 판단했다. 완용을 잡자. 그러면 저들은 금새 무너진다. 한 번 더 수고해 주어야 겠어요. 이른 저녁을 드시지요. 휴의는 어부 위장군들에게 먼저 식사를 권했다. 아까는 살아 왔지만 지금은 어떨지 몰랐다. 이게 지상에서 마지막 밥이 될 지 모른다. 어서들 드시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가 한 번 더 가야 합니까. 이번에는 그냥 돌아오지 않고 선제공격합니까. 그러면 후발대가 들어오고요. 중대장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래요. 그게 내 작전이오. 먹읍시다. 어부들은 다시 숭어를 기관총의 딴티처럼 어깨에 맸다. 이번에는 그냥 다 주시오. 이걸 다 오십원에 가져가라고 하시오. 넓게 산개 하시오. 육 명이 서너 걸음씩 떨어지시오. 그리고 판을 벌리면 참호속의 병사들이 기어 나올 겁니다. 그때 하나씩 처지하고 수류탄은 최대한 많이 가져 가시오. 한 사람당 4발이오. 수류탄 투척이 끝나면 바로 철수하시오. 늦으면 아군의 총에 맞을지 모르니까요. 복창합시다. 던지고 쏴라. 던지고 쏴라. 숭어 수작질을 한 번 더 합시다. 저기 달구지가 마침 오는 군요. 휴의가 달구지를 타고 오는 농부에게 다가갔다. 고맙소. 그리고 소값이며 달구지 값을 넉넉하게 지불했다. 이걸 타고 가시오. 식사를 마친 위장군들이 일어섰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한 번 가봤던 길이라 어렵지 않게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쇠방울 소리를 들으며 휴의는 나머지 부대원들을 정돈했다. 낮은 포복으로 기어라. 300미터 전방이니 먼거리 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그렇지. 석양이 빨리 지는구나. 어두워 지기 전에 소달구지가 도착하고 일이 벌어지고 나면 석양은 져야 한다. 시간을 잘 조절해라. 나도 직접 간다. 내 손으로 완용의 죽음을 확인해야 겠다. 사령관님, 위험합니다. 아니다. 위험은 언제나 있어왔고 여기라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뒤로 빠지고 싶지 않다. 어차피 사람은 한 번 죽는다. 대신 부사령관은 여기 대기하고 있어라. 후방을 지휘하고 내가 잘못되면 바로 사령관으로 부하들을 지휘하라. 부사령과는 경례를 올려 붙였다. 어부들은 다시 출발했다. 완용은 어부들이 떠난 후 그들이 준 숭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부하 하나가 어차피 우리 병사들이 먹기에는 부족하니 사령관님이나 어서 드시라고 재촉했다. 영리한 자였다. 상하기 전에 어서 드세요. 큰 소리로 떠들었다. 부하에게 사양하는 것을 만류하는 행동이었다. 마지 못해 완용이 그럼 그렇게 하마. 그리고 너 이리와서 구워라. 살점을 좀 주마. 영리한 자는 완용 옆에 짤싹 달라 붙어 삭정이를 모으고 불을 붙이고 어디서 구했는지 소금까지 뿌리면서 노릇하게 익을 수 있도록 숭어를 이러 뒤집고 저리 뒤집었다. 너 숭어좀 구워봤구나. 네 제 고향이 서산 입니다. 할아버지가 뱃을 했어요. 그랬구나. 그래서 어부들을 보고 반가웠어요. 저는 척 보면 그들이 나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어부는 다 선한 사람들인걸요.

참호에 숭어 익는 냄새가 풍길 무렵 부하 하나가 소달구지가 전방에 나타났다고 고함을 질렀다. 완용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완용은 거의 다 익은 숭어에 정신이 빨려 망원경을 손자 어부에게 들렸다. 내가 보아라. 굽는 것은 내가 하마. 나도 소싯적에 고기를 좀 구워봤다. 내 고향은 보령이다. 망원경을 받아든 어부 손자가 말했다. 아까 그 어부들이에요. 구루마에 숭어를 가득 싣고 오네요. 아마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어차피 팔지 못하면 썪으니 고생하는 우리 병사들 주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제가 그 마음을 잘 알지요. 어부의 마음은 보령이나 이곳 북쪽이나 같은 것이지요. 고마운 어부들이구나. 완용이 말했다. 혼자 먹는 것이 미안했는데 잘됐어. 어부들이 대원들의 사기를 올려 주고 있어. 그러는 사이 구루마는 참호 가까이 더 다가왔다. 휴의는 수래바퀴가 일으키는 먼지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기어가는 병사들을 보았다. 자신도 저기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했다. 휴의 몸을 낮춰 포복 자세를 취할 때 총살을 입은 다리쪽이 땡겨왔다. 그 상태로는 무릎을 바닥에 대고 기기 힘들다. 상처가 덧나면 위험합니다. 대자은 혼자가 아니니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휴의에게 가도 좋다고 의사의 허락을 내린 박군의 말이 맴돌았다. 휴의는 자신이 직접 완용을 처단하러 가는 기회를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자신 대신 자원을 한 노련한 부대장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가 해낼 것이다. 그와 함께 그를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강한 느낌을 받으면서 휴의는 그들이 참호앞에 멈춘 것을 보았다. 참호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숭어 수작을 부리던 위장군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부 사령관은 제 역할을 했어.부하들은 참호 사이로 데려가는데 성공한 거야. 여기 이 숭어들 모두 맛있게 드세요. 어차피 오늘 팔지 못하면 다 버려야 하거든요. 돈을 필요없어요. 나랏일을 하는데 아까는 정말 미안했어요. 구루마에서 숭어들이 쏟아져 내렸다. 설마 하던 참호안의 병사들이 괴성을 지르면 달려 나왔다. 정말이구나. 완용은 무언가 낌새가 이상함을 느꼈으나 이 순간에 명려은 먹혀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부하들이 하는 짓을 보다가 잘 구워진 숭어를 들고 참호 옆에 따로 마련된 자신의 벙커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부관과 함께 숨겨둔 밀주을 숭어 안주로 먹을 참이었다. 그래 실컷 먹어둬라. 배불러야 싸움도 잘하지. 두만강 어부들이 애국을 하는구나. 이때 위장군의 지휘자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했다. 수류탄을 정확히 던져 넣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달아날 수 있는 거리를 확인했다. 부사려관은 공격 명령을 내리기 전에 잠깐 숨을 가다듬었다. 숭어을 들고 또는 미끄러워 놓친 숭어를 다시 집어들기 위해 고개를 숙인 완용부대원들의 웃는 낯을 보았다. 저렇게 순진한 녀석들이. 어라, 이녀석은 15살도 되어 보이지 않네. 그 나이에 죽음이 뭔지도 모를테지. 기꺼이 목숨을 내놓려고 작정한 완용과는 달라. 그러나 전쟁터에서 나이를 구분할 순 없어. 생년월일을 따져서 공격할 시간이 없단 말이다. 자, 이제 던지자. 그리고 가슴에 품은 총신이 짧은 기관총으로 마무리하자. 일단 초반 승기는 우리가 잡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작전이 성공한다고 해도 살아 무사히 살아올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삶과 죽음은 멀리 있지 않았다. 더구나 한 번 공격이 벌어지면 후퇴는 쉽지 않다. 길게 늘어선 일제의 병력을 일시에 무력화 시킬 수는 없다. 한쪽을 돌파한다고 해도 다른 쪽에서 협공을 당할 수 있다. 일단 치고 빠지기 작전이다. 참호의 길이만 일 킬로 미터가 넘을 정도로 완용의 부대는 전선을 길게 늘어 뜨리고 있었다. 참호속에 몇 백명 아니 몇 천명이 대기 하고 있는지 알길이 없다. 겨우 삼 십 명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수류탄 공격을 받지 않은 나머지 참호에서 일제 사격이 가해지면 공격자의 상당수는 목숨을 잃을 게 뻔하다. 상황이 이렇게 파악되자 부사령관은 공격신호를 머뭇거렸다. 굳이 몇 놈을 죽이기 위해 무모한 작전을 펴야 하는지 갑작스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공격하고 오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고 하더라도 어린 꼬마의 웃는 얼굴에 주춤거렸다. 참호에 나왔던 완용 부하들은 저마다 한 손에 숭어 한 마리씩을 잡고는 다시 참호 속으로 들어갈 차비를 차렸다. 시간이 없다. 지금 못하면 영원히 못한다. 부사령관은 망설임의 끝에 공격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준비중인 병사들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수류탄 수십 개가 일제히 터졌다. 굉음이 울리고 잠시 후 참호 밖으로 흙과 피와 살점들이 튀어 나왔다. 어느 것이 사람의 살이고 어느 것이 숭어의 비늘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던지고 등을 보이면서 내달리던 위장 독립군들은 신속하게 엄폐물을 찾아 엎드렸다. 아직은 적의 유효 사거리 안에 있어 무작정 몸을 세워 도주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적들은 어중이 떠중이 답게 마구 총질을 해댔다. 독립군들은 이미 사전에 봐둔 엄폐 장소에 엎드려 있었기 때문에 총알은 그들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중 서너 발은 독립군을 타격했다. 바로 죽지 않은 독립군은 비명을 질렀고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두만강 일대는 총소리와 비명소리로 흐르는 물소리는 잦아 들었다. 까마귀들이 놀라서 시끄럽게 짖고 아직 떠나지 못한 철새들은 황급히 날아 올랐다. 적들 가운데 용감한 자는 참호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일부는 손을 집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발버둥쳤다. 그들은 엄폐한 독립군의 좋은 표적이 됐다. 조준 훈련의 결과는 바로 나왔다. 독립군의 사거리에 든 완용의 부대원들은 나오려다 말고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 발에 한 명씩, 원샷 원킬이 따로 없었다. 앞서 나가려는 자들이 걸쳤던 팔을 풀고 뒤로 나자빠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뒤따라서 그렇게 하려고 했던 자들은 일단 그러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사격만큼은 그럴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마구 하늘을 향해 헛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때가 탈출의 기회였다. 휴의의 부관은 대원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이때다 싶었던지 엎드린 독립군들은 말보다 발이 빨랐다. 최대한 빨리 도주해 대기하고 있는 배를 타고 도강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인지 본능이 시켜서 인지 독립군들은 평소 자신의 실력보다 더 빠르게 달리기 기록을 경신하면서 배에 올라탔다. 배에 오른 그들은 사거리가 긴 소총으로 표적을 바꾸고는 뒤늦게 함성을 지르며 쫓아오는 일본군에게 조준 사격했다. 일부가 쓰러졌다. 일부는 쓰러졌다 다시 일어났다 다시 쓰러졌다. 뱃사공은 실력을 발휘했다. 마치 물살을 가르는 가을 숭어처럼 힘차고 능숙했다. 노를 젓는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고 물살을 탄 어선은 순식간에 강 건너 중국땅에 도착했다. 그들은 미리 파논 땅속으로 숨어들어가 숨을 돌렸다. 작전은 성공이다. 적들은 따라오기를 멈췄다. 그들이 탈 배는 마련되지 않았다. 그들은 후퇴했다. 멈칫 거리다 저격수에 걸려들지 않게 꽁무니를 빼고 왔던 길로 돌아갔다. 수류탄의 폭발음은 완용이 지하 벙커로 들어간 순간 터졌다. 벙커의 외벽이 심하게 흔들렸다. 완용은 배운대로 신속하게 엎드렸다. 손에 쥐었던 숭어가 완용의 얼굴과 함께 땅에 깔렸다. 이것 참, 그 순간 숭어의 살점 하나가 완용의 입술에 박혔다. 먹어야지. 맛있군. 잘 익었어. 간도 맛고. 술은. 말수의 상황의 심각성을 확인하고도 이런 여유를 부렸다. 그 짤라의 시간이 지났다. 완용은 한바탕 치고 받고 어수선한 기운이 멈춘 것을 알고는 찌그러진 벙커의 문을 열고 참호를 살폈다. 어쩐 일이냐. 어서 가서 확인해 보고 보고해라. 옆에 있는 부관이 명령을 받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허허. 왜 웃으십니까. 네 얼굴이 아주 까맣게 탔다. 서장님 얼굴도요. 둘은 그 사이에 웃었다. 울지 않기 위한 수작이었다. 그러나 참호속의 상황은 처참했다. 사람의 피와 숭어의 비린내가 합쳐진 냄새또한 고약했다. 15살의 어린 소년의 죽음도 냄새 대열에 끼어 있었다. 죽음을 알기도 전이었을까. 소년은 잡은 숭어를 오른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날개를 접었던 파리떼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부상자들은 아우성을 쳤다. 그나마 입을 열수 있는 부상병들은 앞다퉈 방금 벌어진 전투에 대해 입을 열었고 그때마다 완용은 험상궂은 인상을 썼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고. 어부들이 던졌어요. 그 자들이 그랬어요. 어부가요. 어부의 마음을 안다던 보령 출신 어부의 손자가 그럴 수 없다는 듯이 울부짓었다. 어부가 그럴리 없다. 그 자들은 어부들이 아니다. 완용이 입닥치라고 거칠게 말했다. 알고 싶지 않아. 이젠 어부 마음 따위는 관심없다는 투였다. 어부는 불길한 징조였어. 내가 그걸 느꼈었는데. 그때 몸 수색을 할까 했는데. 뭐, 이 놈이 그랬잖아. 내가 어부의 마음을 안다고. 완용은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휴의 이놈. 지금쯤 쾌재를 부르겠지. 마음껏 불러라. 나를 비웃고 조롱하라고. 그러나 최후에 그러는 자는 네가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그때는. 내 성격 알지. 지근지근 밟아주마. 내 손에 걸려 들어야지. 가을 숭어처럼 말이야. 아예 흔적없이 몸뚱아리를 없애주마. 이렇게 내가 생각하고 있으니 겁나지. 그런 상황을 기다리니 흥분이 와. 사라졌던 텐션이 올라와. 지금은 리텐션하는 순간이다. 완용이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지껄이면서 소리 질렀다. 상황 파악이 끝날 무렵 갑자기 터져 나온 완용의 고함소리에 진지는 다시 바짝 움츠러들었다. 적드리 다시 공격하고 있다. 반격하다. 병사들은 정말 그렇게 들었다. 그래서 총을 쏠 수 있는 자들은 머리대신 총구만 참호밖으로 내놓고 마구 질러댔다. 그만해 이 멍청한 조센징들아. 멈추라고. 어라 안 멈추네. 스톱 스톱 스톱. 총소리가 잦아들었다. 영어를 쓰니 알아듣네. 신기하군. 완용은 자신뿐만 아니라 부하들도 미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 넓은 참호에서 휴의는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 정확히 알았을까. 내가 벙커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부하들이 뼈를 들고 이 놈이 완용이다, 하면서 조롱당하고 있을까. 내 동선을 휴의가 알고 있다니. 이런 싸움 계속해야 하나. 일제는 이런 상황을 알고나 있을까. 아마 관심도 없겠지. 조센징은 조센징이 알아서 해. 조선을 떠나 올때 총독이 했던 말이 귀에 자꾸 걸렸다. 그 놈의 조센징. 지겹다, 왜놈 쪽발이야. 그나저나 휴의는 겁쟁이야. 선전포고도 없이 어부를 위장잠입키기다니. 비겁한 놈. 내가 그렇게 무서우냐. 넌 어릴 때도 그랬어. 조금 커서도 그랬고. 군에서도 그렇고 독립군이 되서도 마찬가지야. 천한 놈. 완용은 크게 소리를 내며 침을 뱉었다. 완용의 침이 바닥에 떨어져 말라갈 무렵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귀대한 부사령관 등은 휴의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작전 성공과는 별도로 두 명의 귀중한 생명을 잃었고 같은 수의 부상병을 챙기지 못하고 돌아온 것을 자책했다. 힐끗 돌아보니 우리병사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총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쫓아오는 적을 죽는 순간까지 처지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한 발은 적이 아닌 자신을 위해 썼고요. 고생들 했어요. 시작을 잘 했으니 마무리까지 죽 이어갑시다. 각자 위치로 이동하세요.

휴의는 부하들을 이렇게 다독이고 홀로 남았다. 전투는 늘 어렵다. 부상자가 생기고 사망자가 나온다. 휴의의 마음은 착잡하다. 날은 차고 기러기는 긴 울음을 울면서 북쪽으로 날아간다. 낡은 불빛 아래 휴의는 조문을 써내가기 시작했다. 붉었던 눈시울을 닦고 나서 펜을 잡은 손이 가볍게 떨려왔다.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충성했던 나의 전우들이여, 당신들은 영웅입니다. 왜놈을 쳐부수는데 앞장섰고 과감하게 적을 무찔렀습니다. 오늘 당신들은 세상의 영웅이었으며 세계는 당신들의 행동을 영웅적으로 칭송할 겁니다. 일제가 말하는 동양평화론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당신들은 알았습니다. 무력을 숭상하고 오로지 전투적 파괴만이 일제를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전투에서 또한 번 입증했지요. 조선인 일인이 일본인 일인을 죽이면 언젠가는 일본인은 전멸할 겁니다. 조선인 일인이 일본인 두 명을 죽이면 조선이 한 명을 살리는 길이고 내가 열 명을 죽이면 조선인 아홉명을 살리는 겁니다. 적장 완용을 죽이지 못하고. 휴의는 단재의 글을 인용하다가 문득 멈추었다. 조선인이 조선인을 죽이고 있다. 저기 완용의 부대는 전부 조선인으로 구성돼 있다. 완용만 죽이면 저기 병력은 그대로 조선독립군이 된다. 나에게 삐라가 있다. 바람도 다행히 남풍이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 이 삐라를 적진을 뿌리자. 조선인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한다. 날강도 일본의 앞장이 완용을 처단하고 우리편으로 오라. 완용은 일본의 개가 되어 호위호식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어떤가. 죽기전까지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신세다. 가엷지 않은가. 완용 한 놈 죽이고 우리와 같은 편을 먹자. 그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이 정도면 괜찮은가. 이 삐라를 보고 넘어올까. 넘어오지는 않더라도 동요는 하겠지. 완용을 보는 그들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고. 그 달라진 시선에서 완용은 쪼그라들겠지. 그 때 쳐부수자. 그리고 항복하는 자들은 우리편으로 흡수하자. 휴의는 제문을 쓰다말고 작전 구상에 몰두했다. 단재 선생이 옳았어. 빼앗긴 주권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폭력도 용서된다. 적들의 폭력은 용인되고 우리의 폭력은 불법이라면 평등이 아니다. 자국의 운명을 외국에 맡기는 것은 소와 돼지와 다를 바 없다. 준비해서 일본을 뛰어 넘자. 그 때까지는 일본에 협력하자고. 그게 말이야 방구야. 모든 면에서 일본은 저 앞에 있는데 어느 세월에 그들을 뛰어넘는단 말인가. 일본앞잡이들이 자기들만 살려고 내놓는 다 거짓선동일 뿐이다. 헌병정치, 경찰 정치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오로지 무장투쟁만이 답이다.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음모 사건의 가담자로 몰아 잡아 가두고 주리를 틀고 목에 칼을 채우고 당근질과 째칙질, 전기로 지지고 바늘로 손톱밑과 발톱밑을 쑤시고 팔다리를 달아매고 콧구멍에 물을 붓는다. 생식기에 심지를 박아 넣고는 이래도 말을 듣지 않을래, 하는 일제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나. 절대 그렇게는 못하지. 내가 그같은 고문을 당한 장본인이 아니냐. 휴의가 고개를 절레절레흔들었다. 이런 기억을 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치욕을 상기하자. 일제 날강도를 때려 누이고 일체의 시설을 파괴하고 폭력의 길로 가는 이천만 조선동포들이여 힘을 합치자. 죽은 전우여. 그대들의 생명값을 받으시 하겠다. 그대들은 왜적의 군번줄 한 트럭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다. 휴의는 마음속으로 잔을 한 잔, 한잔 부어 올렸다. 그리고는 영정도 없는 빈 벽을 향해 절을 두 번했다. 절을 하고 일어났을 때 휴의는 자신의 다리가 가벼워 진 것을 느꼈다. 평소처럼 묵직하거나 거추장 스럽지 않았다. 남의 다리가 아닌 온전한 자기 다리가 된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눈으로 종아리를 살폈다. 부상당하지 않은 다리와 크기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균이 잡힌 것이다.

나아가고 있어요. 항생제가 듣기 시작했네요. 전선까지 따라왔던 박군이 말했다. 저는 할일을 다했어요. 그러니 떠나겠다고요. 휴의가 반문하기도 전에 박군은 그래서 여기 남겠다는 겁니다. 작별인사가 아니고요. 저를 종군 의사로 써주세요. 박군이 말했다. 휴의는 놀랐다. 어차피 당분간 갈데가 없었요. 부부병원으로 가는 순간 체포될 겁니다. 괜찮겠어요. 그게 허락을 구하는 질문이라면 내 대답은 두말할 것도 없이 괜찮습니다. 박군이 호탕하게 말했다. 총을 쏘지도 못하잖아요. 배우면 되지요. 제가 처음부터 의사였나요. 배워서 된 겁니다. 박군이 남아 주는 것에 대해 휴의는 고맙기보다는 미안했다. 자신의 상처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 아닌가. 그렇다고 갈데가 없다는데 가라고 내보낼 수도 없었다. 휴의는 인정했다. 좋소. 나와 같이 행동 합시다. 박군은 즉시 군의관으로 임명됐다. 이제 회의 합시다.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파악됐소. 적들도 우리의 우리를 알았고요. 그러니 우리에게 유리하다고만은 할 수 없어요. 휴의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적들은 위치를 노출했소. 우리들은 아직 발각되지 않았고요. 부관이 현재 전전에서 우리가 적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완용의 부대가 어디에 어떤 식으로 숨어 있는지 알고 있는 아군. 그러지 못한 적군의 전투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는 무의미하다. 승기를 잡은 것은 우리다. 우리의 희생에 비해 더 많은 적을 파괴했다. 이겼다고 자만하지 말자. 휴의는 침착했다. 적들은 얼마든지 위치를 바꿀 수 있다. 참호는 고정된 것이 었으나 병사들은 참호를 빠져 나갈 수 있다. 그때는 적의 위치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부사령관은 당장 치자고 주장했다. 허둥거릴 때 기선을 잡으면 완용의 부대를 깨고 남으로 남으로 진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리는 어때요. 머뭇거리는 대장에게 부관이 그것 때문이냐는 듯이 물었다. 아니다. 다 나았다. 머뭇 거리는 이유가 다리와는 상관 없어요. 박군이 그런 둘의 대화를 듣다 상처는 아물었어요. 더 쉬면 좋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이틀 쯤 후면 출병이 가능할 걸로 보여 집니다. 달려도 됩니다. 부사령관의 찡그린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럽시다 그러면. 내일이나 모레. 아니 모레로 하지요. 그날이 마침 그믐이니. 슬금슬금 작전을 펴기에도 좋을 겁니다. 부사령관이 휴의 때문에 돌격을 미룬다는 듯이 인심을 썼다. 그만큼 어제의 일에 그는 고무돼 있었다. 더구나 완용의 부대는 훈련과는 멀었다. 조준 사격을 하는 병사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병사가 겨우 이틀의 시간만으로 민첩해질 수는 없다. 작전을 짤 시간을 벌었으니 더 좋은 작전이 있으면 교환하도록 하지요.이번참에 완전히 박멸하도록 하지요. 살아돌아온 부상병을 치료하던 박군이 거들었다. 그거 좋은 표현이군요. 바퀴벌레 잡듯이 완전히 섬멸합시다. 말대로 그렇게 되도록 합시다. 

휴의가 참모들과 이러고 있을 때 완용은 처참하게 깨진 자신의 부대를 긁어 모았다. 그리고는 경계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부상당해 어차피 쓸모없은 초급 장교 하나를 즉결 처형했다. 작전에 실패한 장교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경계에 실패한 장교는 어떤지 너희들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라. 병사들이 모두 모인 장소에서 한 일본인 장교의 처형은 반향이 컸다. 놀이삼아, 혹은 심심풀이로 전투를 여겼던 완용의 부하들은 이제야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 실감이 났다. 숭어의 비린내를 털어 내기도 전에 그들은 부상당한 장교의 죽음을 앞에 놓고 우리들도 이런 꼴로 죽어 자빠져 나갈 것을 염려했다. 공포의 그림자가 참호속을 가득 채웠다. 특히 완장으로 으시댔던 계급장을 단 부하들은 크게 당황했다. 다음 차례는 나냐, 너냐 서로 눈짓을 교환하면서 서로 눈 속에 비친 공포를 확인하고는 완용이 하는 일거수일투족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완용은 그것을 이용했다. 다른 것은 용서할 수 있으나 경계에 실패한 장교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경계병을 배치하지 않은 책임을 물은 것이지 너희들은 잘못이 없다. 그제서야 도열한 부하들은 안심하는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진지를 사수한다. 적들에게 우리의 위치가 노출됐어도 경계초소를 세우고 대비하면 이번처럼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는 부서진 방어벽을 보수하고 총기를 소지하라. 서둘러야 한다. 참호가 부실하면 너희들은 죽은 목숨이다. 수류탄 위력 봤지. 조선독립군도 우리처럼 무기를 가졌다. 죽지 않으려면 참호를 깊이 더 넓게 파라. 이렇게 명령을 내린 완용은 핏자국을 밟으며 지휘관 막사로 돌아왔다. 분을 삭일수 없었다. 휴의의 군대는 생각보다 강했다. 치고 빠지는 작전도 괜찮았다. 그런데 자신이 생각하기에 친 다음에 멈추지 않고 계속 쳤다면 자신의 733 부대가 몰살 당할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치고 빠졌다. 이상한 의문이 들었다. 휴의가 다리를 잘랐나. 균이 침투해 달리기는 커녕 걷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된 것은 아닐까. 완용은 이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그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비장애인인 장애인과 싸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멋있게 붙자. 일대일이라면 더 좋다. 그는 이를 가는 대신 의도적으로 씁씁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참호의 벽에 걸린 일본도를 내렸다. 그는 가능하면 일본도를 가지고 다녔다. 특히 이번 전투를 위해서는 특별히 나를 갈고 나왔다. 그 날을 손으로 만지면서 완용은 총이 아닌 검으로 휴의의 최후를 잘라내고 싶었다. 너는 이건 없지. 총독이 내린 하사품이다. 일등이지. 이 검이 숱한 반역자들을 처단했다. 애도시대 장인이 삼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 시간 공을 생각하면 너는 삼 세번 전에 끝장나는게 옳다. 건방진 자식. 감히 대일본 제국의 종로서장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휴의가 섬멸을 이야기했듯이 완용도 입 속으로 섬멸을 되뇌었다. 가능할 거야. 비록 우리 부대가 훈련 부족에서, 실제 전투에서 경험 부족이지만 숫자가 많으니 밀어 붙이자. 쪽수로 밀면 적들도 당황할 거고. 그는 내친김에 참모들을 소집했다. 조금은 차분한 소리로 완용은 상하이에서 가지고 온 소식을 참모들에게 전했다. 다 자기가 참모들을 불러 모으기 전에 이렇게 말하리라고 짠 시나리오였다. 이 자들에게는 정신 교육이 필요해. 썪어 빠진 정신으로는 어떤 무기로도 적을 상대할 수 없어. 그러러면 우리가 힘이 세다, 적은 약하다. 곧 전쟁은 끝난다. 이번 전투를 마치고 돈을 보따리로 싸들고 고향땅으로 가자. 어떠냐. 그게 싫으냐. 이렇고 물어보자. 모이 모이. 완용은 엉거주춤 서 있는 참모들을 부드러운 소리로 혹은 형 같은 다정함으로 불러 모았다. 좁은 진지안은 10여명이 모여 앉자 서로 어깨가 부딪쳤다. 좀더 가까이 와라. 우리는 한 형제 아니냐. 살을 맞대고 이야기 하자. 입 냄새가 나느냐. 아닙니다. 왜 아니 나겠느냐. 하지만 참아라. 전투에서 이기면 칫솔 하나씩 사주마. 이도 닦고 그래 향기나는 비누도 나눠주마. 몸도 씻고. 자, 일단 내가 상하이에서 파악한 정보를 너희들에게 주마. 잘 새겨 들어라. 만주는 물론 중국 전역이 우리의 손에 곧 들어온다. 어떠냐. 이보다 더 큰 희소식이 있더냐. 하히. 데노 반자이. 자 그만. 그럴 기회는 많다. 양코쟁이는 물러나고 섬놈도 태평양에서 손을 뗀다. 승리가 곧 눈앞이다. 소련과 협상은 잘 진행되고 있다. 상하이 일본 영사관에 따르면 소련은 결코 연합군과 손을 잡지 않는다. 어때. 승리는 우리 것이지. 이만하면. 아니냐. 맞습니다. 아니라는 것이 맞느냐. 아닙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는 어깨를 기댔으나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는 장교들에게 마치 승전보를 알리는 사대장 같은 위엄을 보였다. 몸 풀어. 그리고 이리로 더 다가와라. 우리 손 한 번 잡아보자. 완용이 둥그런 원 가운데로 손을 내밀었다. 잡아라. 그렇지. 열 세명이냐. 누가 세어보라라. 으찌 니 쌈. 맞습니다. 우리 13명의 용사들은 휴의의 조선독립군을 격파하기 위해 이렇게 오늘 손을 모았다. 그들은 곧 다시 온다. 적들이 조급해 한다는 증거다. 치고 빠진다면 우리는 추격을 한다. 치고 계속 친다면 우리는 참호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는다. 손을 푼 완용이 옆에 있는 일본도를 들어 보였다. 등을 보이지 자가 있다면 내 이것으로 두쪽을 내 줄 것이다. 알아들었느냐. 하이. 긴장을 풀어라. 아량을 보여 준다는 것이 이렇게 되었구나. 너희들 책임이 막중해서 그런거다. 니들이 앞장을 서야 부하들이 따라 나온다. 이 점을 명심해라. 간혹 우리가 작은 전투에서 질 때도 있었다. 바로 엊그제처럼. 그러나 큰 전쟁에서 우리는 진 적이 없어. 너희들도 알다시피. 그러니 이번 전투는 잊자. 다음의 큰 승리를 위해. 완용은 참모 각자의 손을 한 번씩 잡아 주었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면서 이 놈이 배신할 놈인지 아닌지 감별하듯이 힘을 주었다.  내가 손을 여러 번 잡는구나. 동지들 손이 따뜻하다. 그건 살아 있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완용이 손을 풀면서 조선 독립군 찌끄러기들은 어떻든. 용감하든. 아니면 겁쟁이든. 사격 솜씨는 어떻드냐. 난 그 시각 잘 구워진 숭어를 먹기 위해 바로 여기에 들어와 있었다. 아니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먹으려고 잠시 보관하려고 들어왔을 때 폭음이 들렸다. 그리고 너희들도 알다시피 참호 앞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난 나갈수가 없었다. 어깨에 파편도 맞았고. 완용이 어깨 부근을 손으로 만졌다. 너희들 중 도망가는 어부들을 쫒아간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라. 참모들이 눈치를 살폈다. 아무도 없구나. 나는 그것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 그러나 다음 번에도 이러면. 완요이 다시 일본도를 들었다 놓았다.  부드럽게 지었던 눈빛은 예전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돌아와 있었다. 뱀 눈이 따로 없었다. 차갑고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그 눈을 보고도 용기 있는 참모하나가 나섰다. 아시겠지만 기습공격이었습니다. 기습이라. 네, 그렇습니다. 어부가 공격을 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더구나 두 번째 방문이라 경계가 느슨했던 건 인정합니다. 구루마의 숭어를 다 풀기 직전에 수류탄이 날아 왔으니까요. 네가 날아오는 것을 봤느냐.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사령관님의 막사쪽으로 정확하게 포물선을 그의며 날아갔습니다. 이거 큰일다 싶어 제가 제일 먼저 여기로 달려와서 무너진 흙더미를 파헤쳤습니다. 손 이리 내라. 내가 쓰러져 있을 때 이 손이 나를 흔들고 얼굴에 묻은 흙을 떼어 냈구나. 고맙다. 안다. 기습은 당하는 쪽에서 보면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기습이라? 그럼 우리도 기습으로 맞서야지. 다시 어부들이 숭어를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 가짜 어부 아닌 진짜 어부가 올지도 모르잖느냐. 부대내에서 상행위는 절대 엄금이지요. 사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어부들은 하나도 팔지 못하고 총알 세례를 대신 받겠지요. 노파심으로 한 말이다. 그 자들이 설마 다시 그런 차림으로 오지야 않겠지. 설혹 온다고 해도 바가지 쓰지 말자. 그런데 말이야. 완용이 침을 바닥에 탁하고 소리나게 뱉었다. 안 산 건 좋은데 빼앗을 생각은 안했니. 내가 사지 말라고 했지 뺏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미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숭어를 가지고 그냥 가는데 그냥 가라고 내버려 뒀단 말이지. 참 신사다. 신사야, 조선 사람들은 예의가 발라. 역시 조상을 잘 만났단 말이야. 그럼 조심이라도 했어야지. 안그래. 완용이 말하던 옆자리의 참모 조인트를 갈겼다. 장난삼아 툭 친다고 쳤으나 제법 힘이 실려 있었다. 아야, 아파. 기습은 이렇게 하는 거지. 알아 아픈 거 알아. 이렇게 기습을 하면 막기가 힘들지. 그래도 그렇지. 겨우 여섯 명 죽이고 우리는 열 배가 넘는 130명이 죽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지. 복수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조인트를 맞은 수석 참모가 벌벌 떨었다. 자신이 즉결처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은 달리 나왔다. 엄한 군기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알고는 있네. 그 시점이 지금이지. 죽여 주십시오. 수석 부관이 무릎을 꿇었다. 꿇을 때 좀 전에 맞은 정강이가 눌려 통증이 심해졌다. 그러나 맞을 때와는 달리 아프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른 부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리로 쏠렸다. 완용은 일본도를 만지작거렸다. 꺼내서 벨 것인지 말 것인지를 망설이는 태도였다. 권총도 아깝다 아까워.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일본도를 잡은 완용의 손이 떨렸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권총보다도 일본도에서는 어떤 표현하기 힘든 살의가 느껴졌다. 가볍게 검지를 당기는 것과 온 몸의 체중을 실어 베는 것과의 차이였다. 검지를 당길 때는 소리가 필요없다. 아니 소리를 죽여야 한다. 그러나 검을 내리 칠 때는 아니다. 거기에는 기합소리가 들어갔다. 총과는 다른 어떤 묵직한 것의 울림이었다. 손의 떨림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살의로 피가 역류하고 있었다. 완용은 상대를 거꾸러트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거꾸러질 것을 염려했다. 한꺼번에 몰린 피가 어지럼증을 순간 가져왔다. 고혈압이 터질 지경이다. 이러다가 내가 먼저 가지. 그는 손으로 이마를 집으면서 참자, 참자를 외쳤다. 그러자 조금 상황이 좋아졌다. 내리칠 만한 힘은 있어. 꺼내야 할지 말아야지 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단 빼면 돌이킬 수 없다. 뺀 상태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도로 집어 넣을 수는 없다. 완용은 그답지 않게 또 생각했다. 수석을 처리했을 때 그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도 알 수 없었다. 부상당한 초급 장교와는 다른 것이다. 대대장까지 처단할 경우 수석 중대장의 반감을 살 수 있었다. 나머지 중대장들이 동요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그들은 조센징이 아니라 일본군 소속의 황군들이었다. 그는 잡은 칼 집에서 손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부하를 사랑하는 인자한 장군처럼 행동했다. 됐어. 앞으로가 중요해. 잘하자 응. 완용이 참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는 사랑하는 부하를 죽여 본을 보인 제갈공명 흉내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마속을 베어서 군기를 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장교들은 바짝 정신이 든 상태였다. 용서다. 산 목숨이니 배로 더 용감하게 싸워라. 그제서야 마른침을 삼키던 무리들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는 감사하거나 부끄러운 마음보다는 괘심한 생각을 품기도 했다. 조센징 주제에 급이 높다고 감히 대일본제국의 대대장을 어쩌려고 한 것은 심해도 너무 심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일단 살고나니 대대장은 마음이 바뀌었다. 살려만 주면 무슨일이든 하겠다는 각오가 있었으나 살고나니 완용에게 당한 앙갚음을 하고 싶었다. 기회는 언제든지 올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사적인 복수를 멋지게 하고 싶었다. 그는 검은 야욕을 옷 속 깊이 감추고는 하이, 명심하겠습니다. 하고는 은혜에 감동했다는 감사 표정을 부하들 앞에서 드러냈다. 이것으로 휴의의 기습에 대한 완용의 사후처리는 마무리됐다. 완용은 그런 후 이차 공격에 대비했다. 수비의 가장 좋은 방법은 공격이었으나 적들이 숨은 곳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를 어떻게 처야할 지 몰라 애를 태웠다. 그는 대신 방어에 집중하기로 했다. 휴의는 반드시 다시 쳐들어온다. 이번에는 그냥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현장에서 지휘한다. 그런 마음 다음에는 만일 내가 휴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역으로 생각해봤다. 노련한 놈이니 일차 공격같은 허술한 작전은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정면승부는 아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주목했다. 그 자가 한 때 거기서 숨어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페치카의 도움을 받았다고. 조센징은 어떤 때는 서로 돕는단 말이야. 신기한 족속이야. 난 뼛속까지 친일파인데 어떤 때는 조센징의 피가 흘러. 그래서 왜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니까. 참 이상한 조센징이야. 내가 그럴리는 없지만 그런 자들의 뇌를 살펴보고 싶어. 왜 그런 마음을 먹고 돕는 행동을 하는지. 그때 완용의 머릿속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배를 타고 내려온다. 그쪽 지리에 밝으니 거기서 배를 타고 내려와서 자신의 후방으로 돌격할지 모른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입속으로 쉴 새 없이 되내면서 거기에서 한동안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배를 이용하는 방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거기는 벌써 얼었을 것이다. 대동강도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거긴 아냐. 굳이 코 앞의 적을 두고 후방으로 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수고를 할까. 더구나 대규모 인원이 승선한다면 우리 함대나 레이더에 걸려들 것이다. 아니면 해안 경비대에 발각된다. 운이 좋아 무사히 상륙한다고 해도 보급로가 없는 이상 기세좋은 공격은 할 수 없다. 그 자는 결코 병력을 후방으로 빼지 않았어. 강 건너 어딘가에 있겠지. 그 어딘가가 문제야. 그래도 완용은 자꾸 블라디보스토에 신경이 거슬렸다. 아니라고 해도 그것을 부정하는 또다른 뇌의 압박을 피하기 어려웠다. 압록강 쪽은 아예 작전 지역에서 제외했다. 이미 뚫고 지나간 뒤였으니 따로 칠 방어책이 없었고 거기는 자신의 관할이 아니었다. 

완용은 아무래도 혼자 앓기보다는 대대장과 상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인정해 준다는 의미도 있었고 만약 실패할 경우 책임의 일부를 그에게 전가할 수도 있었다. 결과가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안다면 실패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물론 부하들에게도 가혹할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고 완용은 그것을 이용했다. 자신의 상관들이 써먹던 방법을 부하들에게 적절하게 쓸 수 있게 된 것을 완용은 상관으로 공으로 돌리기 보다는 자신이 노력한 대가로 여겼다. 여기에 간혹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자이니 이번에도 어떤 꾀가 있을지 알지 못한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혼쭐이 난 대대장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완용의 방을 노크했다. 불려나온 그 옆에는 선임 중대장이 함께했다. 완용은 중대장을 부르지 않았는데 함께 온 것이 불쾌했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녀석이 어지간히 떨었군. 자신을 헤칠까봐 미리 대기하고 왔어. 아니면 그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하와 나누려는 수작이군. 그렇다면 이 자도 자신의 뒤를 이을 만한 자격이 있어. 완용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았다. 아까와는 다른 전혀 다른 사람이 되있었다. 완용은 자신이 생각해도 두 얼굴의 마음을 가진 사나이가 어쩌면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사령관쯤이면 천의 얼굴은 아니어도 서너 개의 얼굴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 잘 왔소. 동지들. 얼굴을 펴시오. 아까 했던 언행은 부하들의 사기 때문이니 마음에 두지 마시오. 다 자제들은 위한 것이오. 자, 우리끼리 모입시다. 우리끼리라는 말을 완용이 강조했다. 부하들은 우리끼리 들지 못했고 거기에 포함된 대대장과 선임 중대장은 그렇게 불러주는 완용이 고마웠다.  이런 말은 중요핟. 굳이 해야 할 말이다. 나도 안심이 된다. 일본군 장교들이 언제 반란을 일으킬 지 모른다. 작전 중 사망했다거나 총기 실수라거나 자살했다거나 열러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전시에서 이런 이유는 곧 사망의 원인이 된다. 완용은 자신의 안위도 지키면서 부하들의 사기도 올리는 내부 통제의 기술에 수완을 보였다. 이렇게 나오자 대대장도 잠깐 먹었던 자신의 생각이 시술였음을 깨달았다. 그 즉시 대대장은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납작 엎드렸다. 선임 중대장은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호의에 보답했다. 그 건은 마무리 합시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서야 되겠어요. 난 바로 잊었어요. 졌으니 이기는 일만 남았어요. 이기고 나서 승전가를 부릅시다. 내 생각에는. 완용은 자신의 작전을 말하려다 말고 대대장 판단은 어떻소 하고 공을 넘겼다. 적들의 이차공격 지점이 어디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려는 대대장은 허를 찔렸다. 그래서 다급한 나머지 다시 여기로 올까요. 하고 되물었다. 완요은 화를 내도 되고 호응해도 되는 갈림길에서 호응을 택했다. 글쎄요. 나도 그 점을 궁금해서 대대장을 부른 거요. 아무래도 현장 경험은 대대장이 나보다 낫고. 여기서 완용은 또한 번 대대장을 추어 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오면서 선임 중대장과 오면서 그 문제를 상의했어요. 휴의가 또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허점을 노릴 텐데, 여기 방서선이 긴 것은 어쪄지요. 완용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말을 아꼈다. 웃음 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대대장의 입에서 먼저 나오면 나도 그 점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었어요, 하고 대답하면 된다. 그의 의견에 따르는 척 하고 나름대로 이유를 대면 된다. 완용은 그 순간에도 머리를 굴렸다. 왜놈들은 겉과 속이 달라서 영 판단이 안서. 조센징은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이 놈들은 속이 아주 되먹지 않았어. 쪽발이의 마음 속을 모르니 무턱대고 지를수도 없고. 완용은 왜놈 부하를 둔 조센징인 자신이 참으로 힘든 임무를 수행한다고 자신을 격려했다. 

애, 이럴 때 대대자이 조센징이면 아무 문제 없는데. 수석 중대장이라도 조센징이었다면. 겨우 있는 건 소대장 두 명 뿐이니. 내 편은 없고 나는 고독해. 완용은 승리보다는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자신은 빠져 나가고 부하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만 골똘히 생각했다. 어차피 네 놈들 전쟁ㅇ 아니냐. 우리 하고는 상관없어. 일단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자. 구획을 나눠서 뚫리면 그곳 책임자를 문책하자. 네가 거기를 제대로 방어하자고 하지 않아 이렇게 됐다. 어떻게 책임질래. 완용은 이미 전투에서 지고 난 후의 책임소재를 묻는 자신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러면 안돼. 정신 차리자 완용아. 휴의가 그렇게 무섭니.  왜놈이 아니어도 너는 개인적인 대결을 해야지. 휴의를 제압하지 않고 네가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닐래. 그 얼굴로 하늘을 볼 수 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의 양심이 이렇게 물으면 그의 대답은 군색할 것이 뻔하다. 글쎄요. 각자 섹터를 나눈 다음 전적으로 권한과 책임을 중대장에게 맡기시지요. 내 생각도 그렇소. 완용은 이때다 싶어 대대장과 한편을 먹었다. 자신의 의견을 소극적으로 내놓은 작전이 먹혀 들어가자 대대장은 중대장을 보고 그 자리에서 지리를 내렸다. 선임 중대장은 이 회의가 끝난 후 바로 진지로 내려가 중대장을 모아 놓고 3킬로 미터에 달하는 전선을 500미터 씩 끊어 각 중대장에게 자기 할당을 전달 하시오. 두 시간 후에 사령관님과 내가 시찰을 나갈 거요. 그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어서 떠나시오. 이미 완용이라는 자의 성격을 파악한 대대장은 완용이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쐐기를 박았다. 선임 중대장이 벌떡 일어나 인사를 올려 붙이고 허겁지겁 나갔다. 잘 생각했어요. 역시 실전 경험이 있는 대대장이 잘 결정한 거요. 사령관이 지난번 말씀 하신 내용을 확인한 것 뿐입니다. 완용과 대대장은 서로 이처럼 주고 받으면서 공치사를 했다. 때에 따라서는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방법도 있지요. 선제공격이라. 어디를 어떻게. 무대포 정신으로 진군하는 것이지요. 걸리면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고요. 한꺼번에 대동강 물을 삼키겠다. 적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작전 치고는 괜찮은데. 완용이 또 찬성하고 나섰다. 그 방법은 상대가 약할 때 써먹으면 효과가 크고 상대가 세다해도 나쁜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올 거요. 그렇지요. 대대장이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하면서 완용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에도 내 판단이 옳다고 선언해 달라는 몸짓이었다. 좋아. 그 역시 대대장 판단에 맡기지. 완용이 무게감을 실어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말 대꾸하지말고 그만 꺼지라고했다. 꼴도 보기 싫어. 왜놈의 자식. 나안테 대들고 따지려고 들다니. 그러면 네가 사령관해. 왜 밑에서 얼쩡거리니. 한 대 쳐 맞기전에 눈앞에서 사라져라. 뭘 그렇게 골똘하게 있습니까. 대대장이 구시렁 거리듯이 말했다. 아니다. 내가 좀 피곤하다. 이만 물러날 까요. 아니다 할 말 있으면 더해라. 무한해진 대대장이 머쓱한 표정을 짓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거기는 어떻소. 거리라니요. 북쪽 말이오. 기다려도 원하는 답이 없자 완용이 꺼내 들었다. 내 생각에는 그 쪽을 통해서 허점을 찾으면 어떻게 싶은데. 로스케 땅 말인가요. 사실은 저도 휴의가 그쪽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남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어요. 완용은 이번에는 타박하지 않고 그렇지, 대대장 생각도 그렇지 하면서 자신이 먼저 꺼낸 아이디어에 대대장이 찬동하는 쪽으로 밀고 나갔다. 거기라면 우리도 승산이 있어. 여기에는 소수의 인원도 남겨 놓지말고 죄다 떠나자고. 야밤을 타야지. 우리가 이동하는 것을 알면 적들이 이곳을 노릴거야. 기회를 줄 이유가 없어. 오늘 밤 당장 진지를 옮길까요. 그러지, 말이 나온 김에 당장 실천합시다. 하이, 하이. 대대장과 보조를 맞춰 선임중대장이 완용에게 시원스럽게 인사했다. 그들도 떠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 번 된통 당하고 나서 다시 적들에게 당할 것을 염려했는데 그것이 해소 되자 기뻣던 것이다. 당장은 생명이 연장됐어. 여기서 대기했다가는 전멸당할 거야. 대포도 있잖아. 수류탄과 기관총이 있는 독립군이 대포하고 없겠어. 위치가 노출됐는데 저녁에 포를 맞아봐. 도망갈 구멍도 없는데. 잘 됐어. 빨리 군장 꾸리고 오분내로 집합하라고 해. 

혼자 남은 완용은 상념에 잠겼다. 이 싸움은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과 휴의와의 대결이었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어릴적 소꼽놀이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러다가 등이 무엇에 눌린 듯해 자세를 바로 잡고 나니 바로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등히 편해지자 휴의에 대한 적개심이 뭉게뭉게 피어 올랐던 것이다. 자신의 신세를 망치는 자를 용서할 수 없다. 완용은 이 전쟁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굳이 먼 이곳까지 자청해서 온 것도 기실 따지고 보면 휴의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그를 잡아서 멋지게 처단하는 것. 뭐라고. 내가 죽으면 왜놈이 밟고 지나가지 않도록 화장해서 뿌려 달라고. 그런 유언을 남겼다지. 누구 흉내내나 그 놈이. 그러지 못할 걸. 내가 잘근잘근 밟아주마. 네놈 면상을 네 놈 몸뚱아리를. 처절한 복수. 그 외의 일들은 완용에게 모두 하찮아 보였다. 여순도 점례도 휴의편이다. 셋이서 뭉쳐있고 자신은 외톨이다. 누가봐도 승자는 자신인데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편은 아무도 없다. 그는 모든 것이 휴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자만 아니었다면 여순은 물론 점례도 자신의 차지가 됐을 것이다. 다시 멈출수 없는 깊은 울분이 끓어 올랐다. 반드시 내 손으로 찢어 죽여주마. 네가 그렇게 잘났어. 네 놈이 무슨 공부를 했고 어떤 사상에 물들어 있는지 몰라도 나를 이길순 없어. 꼴에 독립운동이라고. 시골 촌놈이 나라를 찾겠다고. 그래 찾아서 뭐할래. 독립되면 누가 네 놈에게 한 자리 준대든. 넌 독립된 나라에서도 여전히 쫓길거야. 너 같은 외톨이를 누가 받아주겠어. 그럴리는 없지만 일본이 물러가도 넌 내 밑에서 길거야. 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한 번 경찰은 영원한 경찰이거든. 넌 영원히 그 짓을 해라. 완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가 추구하는 저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목숨 걸고 싸워서 이겨봤자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왜 그러지는 원수만 아니라면 뜯어서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해하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다. 네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움직인다. 일순위로 너를 처단하마. 그리고 순서와 상관없이 여순과 점례까지 해치우겠다. 점례. 완용은 점례에서 잠깐 멈췄다. 여순은 몰라도 점례는 아닐 수 있다. 그는 내무대신의 아들과 살고 있다. 내무대신은 일본 총리를 보장받고 있다. 그렇다면. 점례의 빽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순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의사라는 직업 그리고 일본에서 개업한다는 소식은 완용의 귀를 번쩍 띄이게 했다. 적당한 선에서 완용은 순사질을 때려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완용은 방금전에 했던 자신의 생각을 뒤집었다. 종로서장 이상으로 자신의 승진은 어렵다. 이 자리마저도 위태롭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도 못된 짓을 참으로 많이했다. 나에게도 영혼이 있고 양심이 있다. 일만 해결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일본으로 가고 싶다. 거기서 일본여자와 결혼해 자신의 신분을 깡그리 세탁하고 싶었다. 난 생각의 갈래가 너무 많은 게 탈이야. 그래도 내 인생인데 이 정도 걱정은 해야지. 일단 제일 큰 목적부터 처리하고 나중일을 도모하자. 완용은 휴의를 찌르는 순간을 그리며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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