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3-03 17:58 (일)
두사람은 서로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상태바
두사람은 서로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9.02 1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5.

살아줘서 고마워. 저도요. 두 눈이 마주쳤다. 그리움이랄까. 아니면 놀라움이라 해야할까. 사지를 헤쳐나온 자들이 어떻게 네가 아직도 살아있니. 같은 질문을 서로에게 하고 있었다. 이럴 시간 없어요. 바로 남편을 만날게요. 여순이 잠깐 휴의의 손을 잡았다 놓으면서 문밖으로 나갔다.따뜻하군. 여자 손은 정말 오랜만이야. 아니야. 오랫만이라면 그전에 그런 일이 있어야 할 터인지 도통 기억에 없다. 있기는 있었겠지. 그러나 머릿속에는 남아 있지 않아. 작고 따뜻해. 아직도 내 손을 잡고 있나. 여순아. 어 나갔지 남편 만난다고. 정신 차리자. 그래도 소는 따뜻해. 그 소늘 잡고 이야기 하고 싶어.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럼 침묵해야지. 의사말 들어야 착한 사람이지. 그렇게 손이 작은가. 그렇게 따뜻한가. 휴의는 가물 거리는 의식속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이 기억은 확실할 것이다. 그래, 그렇군. 죽마을에서 강상술래를 하다가 혹은 해당화를 꺾어 줄때 잠깐 스쳐지나갔던 그 기억이야. 떠올랐군. 물에 빠져 죽은 시체처럼 조용히 올라왔어. 원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잊어 버렸던 거지. 기억이 돌아오고 있어. 그래서 남자들이 여자를 잊지 못하는 거야. 그 손 때문에. 남자의 투박한 손과는 달라. 휴의는 이런 기억을 통해 발끝에서 시작해 머리 쪽으로 달려드는 통증을 이겨내고 있었다. 너무 아파. 정말 아프군. 그런데 아프다는 말은 못해. 죽어도 못해. 아니 안할 거야. 여순앞에서 그런 모습 보일순 없어. 그리고 날 수술한다고. 살아야지. 그게 우선이야. 여순 말을 따르자. 그런데 여순이 의사라고. 그것도 상하이에서. 놀라 자빠진다는 표현을 써도 하나도 과장된 말이 아냐. 아무리 그렇지. 소설 속이라고해도 믿기 어려워. 안 그런가요, 독자여러분. 그럴 수 있다고요. 암, 세상 일이란 모르는 거 잖아요. 손을 움직이고 싶어. 여순이 잡은 그 손을 보고 싶어. 그런데 정말 손가락 까닥 할 수 없어. 안 움직여져. 아냐. 느껴져. 피가 흘러가는 느낌, 아래서 부터 올라오고 있어. 봄의 나무처럼 줄기를 타고 올라와. 들리지 이 소리. 꽐꽐꽐 소리내면 몸통을 타고 줄기로 뻗어가고 있어. 그러니 난 죽지 않고 산 거야. 그나저나 지금처럼 앞으로도 당분간 살았야 해. 아직 할 일이 남았어. 절의 폭파는 실패로 돌아갔어. 총독은 오지 않았고 스님만. 스님만. 다 내 책임이야. 그걸 만회해야해. 조선으로 돌아가서 스님의 넔을 한 번 빌어줄 시간은 주겠지. 소년병사도 한 번 봐야하고. 그러니 난 적어도 일년은 더 살아야해. 상하이는 놔두고 조선에 있어야 했는데. 사단 훈련이 이렇게 돌아갈 줄 알았더라면. 조선에서 충분히 할 일이 많이 있는데. 급했어. 성급했어. 혼돈. 휴의의 정신은 가지가 많은 나무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보, 잠깐만요. 그때까지 박군과 얘기하고 있던 말수는 됐어요. 이제 나가봐요. 오늘 수고 했어요. 하고는 여순이 들어올 공간을 마련했다. 여순은 박군과 작은 눈인사를 했다. 여보, 이리로요. 여순이 남편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얘기는 잘 됐어요. 안 될 것도 없지. 그런데 말이에요. 여순은 뜸을 들이지 않았다. 말해봐. 날 쳐다 보는 눈도 달라. 무슨 일이야. 내게 말 못할 사정이라도 생긴거야. 말수가 말해봐, 무슨 일이야, 재촉했다. 여순은 망설였다. 아무것이라도 괜찮으니 그렇게 하라고 재촉했다. 바로 본론을 말하려고 했으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여순은 놓은 소매를 다시 잡아당겼다. 여기서는 좀 그래요. 뭐가. 아니에요. 여순이 등뒤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우리 이층으로 가요. 커피 한 잔 마셔요. 환자 때문인가. 그래요. 뭐가 잘못됐어. 수술은 잘 된 거 확인했잖아.

그게 아니에요. 들어봐요. 이층으로 가자던 여순은 입밖으로 터져 나오는 말을 참지 못하고 계단참에서 말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일전에 내가 보령 죽마을 동네 오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하나는 종로서장이고 다른 하나는 독립운동한다는. 질리게 들었어. 그 휴의가 뭔가 하는 작자 말이지. 말수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작자라는 표현이 귀에 거슬렸으나 여순은 대꾸할 시간이 없었다. 어떻게 이름을 기억해요. 당신이 관심있는 남자인데 내가 그냥 흘려 들을수는 없잖아. 한 두 번 이야기 한 것도 아니고. 농담할 기분 아니에요. 왜 내 말을 그렇게 받아. 난 진지해. 알았어요. 진지한 대화는 다음으로 미루고요. 그 휴의가 바로 우리 병원에 있어요. 말수는 놀랐다. 놀라는 일이라도 왠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그이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설마했던 그 젊은 환자가 휴의라니.  오호라, 휴의 였다고. 근육질이 장난 아니더만. 역시 조선독립군은 달라. 저 정도는 돼야 독립군 장군이지. 그래서. 그래서 라니요. 형사가 왔잖아요. 휴의는 조선 팔도는 물론 여기 중국 전역에서도 현상금이 걸린 것 당신도 알고요. 그것도 가장 잡고 싶어 하는 임정의 선생보다  몸값이 높게. 우리 신고할까. 그 돈 가지고 일본에서 개업하자. 말수가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짓궂게 물었다. 여보, 여전히 조심성 없는 말수에 여순이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뒤로 미루지 않았다. 급해요. 수술 좀 해줘요. 했잖아. 마무리했으니 보채지 말고 아물때까지 기다립시다. 다리 말고 얼굴요. 얼굴은 수술할 만한 상처가 없던데. 긁히긴 했어도 꿰맬 정도는 아냐. 당신도 알잖아. 얼굴이라니. 침대에서 굴러떨어지기라도 했나. 형사를 따돌려야 해요. 사진을 가지고 와서 대조할지 몰라요. 그러면 들통나요. 우리한테도 불똥이 튈지 모르고요. 여순은 일부러 불똥이라는 말을 꺼내들었다.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이라는 것을 말수에게 주입시키기 위해서였다. 말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태도였다. 그럴 시간 없어요. 당신 관상도 관심 있잖아요. 사람을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 어디지요. 외과의사가 제일 처음 보는 곳. 그야 눈이지. 눈만 가리면 다른 사람이 돼나요. 천만에. 입술은 속일 수 없어. 그리고요. 귀를 살펴야지. 귀까지도요. 사람의 귀천은 귀에 있어. 코는 어때요. 코 큰 거지는 드물지. 안되겠어요. 얼굴 전체를 해야겠군요. 아주 다른 사람 만들겠다는 거군. 이름은 같지만 표정은 다른 사람으로.  그래요. 사진을 대조해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아, 참 그리고 환자 이름은 휴의가 아니라 아리가또에요. 조선 이름은 휴의는 이 시간부로 없어요. 창씨개명한 이름만 불러요. 해봐요, 아리까또. 알겠다고. 보채지좀 봐. 안 그러게 생겼어요. 형사가 곧 온다면서요. 그건 내가 알 필요 없고. 직업은 조선 깡패. 조선 깡패가 왜 상하이까지 와서. 그거야 나도 모르지요. 여보, 날 좀 도와줘요. 조선깡패라고 해요. 우리 입 맞춘 겁니다. 여순이 다잡듯이 말했다. 그러지 뭐.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부탁인데. 둘은 수술실로 내려왔다. 여순이 소독 그릇에 담긴 작은 칼을 건넸다. 아니, 당신이 해. 나보다 당신이 더 신경 써서 할 거 아냐. 아는 사람이니. 그냥 아는 사이도 아니잖아. 여순을 준 칼을 다시 받았다.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요. 좋아요. 이리 줘요. 대신 내가 코치해 줄게. 수술은 말로 해서는 안 돼. 직접 해봐야 늘어. 칼을 잡은 여순은 휴의의 이마에 눈이 갔다. 이마는 어때요. 여기도 찢을까요. 라는 물음이 이어질 것을 말수는 짐작했다. 이 사람 이마는. 내가 깜박했네. 사람 이마처럼 그 사람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 없어. 뭐예요. 안 중요한 곳이 하나도 없네요. 그렇다면 이마를 찢고 눈썹을 조금 파고 귀와 코를 뚫고. 여순이 환자의 얼굴을 위에서 부터 아래 훑어 내려 오면서 물었다. 광대뼈는요. 거기도 사람을 구별하는 중요한 잣대가 돼. 여기도 구멍을 내지요. 여순이 광대뼈를 칼로 살짝 건드렸다.  당신 정말 사람을 바꿀 참인가. 사는 게 급하지요. 이 사람은 꼭 살려야 해요. 이걸 일본 영사관이 알면 우린 사형감이야. 그런 가정은 말아요. 당신이 입만 다물면 누가 알겠어요. 이제 보니 당신 옛날의 그 여순으로 돌아왔군. 전선을 누비던 바로 그 여순 말이야. 좋아, 난 그 모습이. 그런데. 환자 하고는 다 얘기가 된거야. 여순이 칼을 휘두르기 직전 말수가 제동을 걸었다. 동의를 얻어야 하나요. 그건 당신이 판단하고. 보호자 사인은 필요없어요. 여순이 헛기침을 했다. 휴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자신이 도마위에 생선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러나 휴의는 게의치 않았다. 적어도 말수라는 이 남자. 여순을 배신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자신을 팔아서 이득을 얻지는 않을 것이다. 난 이미 동의했어. 수술 후유증 어쩌고 하면서 또 확인한다면 고개를 끄덕일게. 그런데 그런 말은 없네. 수술 중에 죽어도 큰 장애가 와서 병원과 의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 여기에 사인 하시오. 이런 절차도 없고. 좋아, 난 그런 거 싫어 하거든. 

여순은 소독약에 칼을 집어 넣고 이리저리 돌렸다. 됐어. 시작하자고. 박군은 없어도 될까요. 내가 나갈까. 박군 들어오고. 됐어요. 우리 둘이면 충분해. 가볍게 찢는게 중요해. 영점 오 미리만 더 깊어도 회복하는 속도가 더뎌.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고. 최대한 가볍게 떠. 그게 기술이야. 자수 잘 놓잖아. 아주 세밀하게. 그래야 상처가 쉽게 아물어. 나중에 흉터도 적고. 이건 죽마을 소황 앞바다에서 두꺼비집 짓는것과는 다르다고. 지었다가 허물면 원래 대로 돌아가는 그런 것과 비교하면 큰 코 다쳐. 죽마을이라. 당신도 이젠 죽마을이 입에 붙었네요. 죽마을 모래사장, 해당화, 그리고 여순, 아 점례, 점례는. 휴의는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때가 좋았어. 한 번 수술하면 흉터가 남는 것 아시지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그런 건 내게 상관 없어요. 그렇잖아도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잘됐군. 농담하시는군요. 유머가 없는 사람은 큰 인물이 못되지요. 말수가 거들었다. 이 여자 남편 되는 사람입니다. 고맙소. 아직 일러요. 빨리 합시다. 들었지요. 여보. 우린 환자를 죽이든 살리든 책임에서 벗어났어요. 양심이 고통 받을 일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없다는 말이지요. 여순이 쓸데없은 말을 지껄였다. 수술전에 긴장을 풀기 위한 의도적인 농담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하지 마세요. 아직 노총각이거든요. 26살 나이에 상처나 그려서야 되겠어요. 내 영혼은 아직 쓸만하다 이겁니다. 그렇겠지요. 그럼, 시작하자고. 여순의 칼 쥔 손이 가볍게 떨려왔다. 수술 경험이 있어도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알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카를 대고 있다.  마치 첫 수술에 나서는 초짜 의사같다고나 할까. 손보다 이번에는 가슴이 뛰었다. 그러다 수술 망칠라. 그러나 한 번 피를 보자 그런 염려는 사라졌다. 여순은 언제 떨었냐는 듯이 완전히 차분해져 있었다. 착검을 하고 근거리 적과 싸우는 것처럼 찌르고 빼고 휘두르는 것이 번개처럼 빨랐다. 살기 위해서 하는 모든 동작을 여순은 어렵지 않게 해냈다. 난 전사는 아냐. 그러나 지금은 전사가 된 듯이 상대와 싸우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돋아나고 있다. 상대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긴장하는 상대는 상대의 적수가 될 수 없다. 잘 하고 있어. 더 얇게. 그 정도면 된 거 같아. 말수가 손을 들며 얼굴에서 칼을 떼라는 시늉을 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제 꿰매야 한다. 얼굴의 피를 닦으며 바느질을 거둘던 말수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응원을 보냈다. 잘 되고 있어요. 움직이지 않아서 한치도 방향을 벗어나지 않았어요. 어쩌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작은 흉터만 남을 수도 있겠네요. 말수는 환자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그러나 휴의의 얼굴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여순의 얼굴이 상기됐다. 불게 물들어 수술당한 환자가 휴의인지 여순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피 냄새. 다른 누구도 아닌 휴의의 피냄새를 맡고 있다. 피 냄새도 달라. 달콤해. 잘참았어요. 다 끝났어요. 이제 말도 못하고 물도 먹을 수 없어요. 그렇게 한 삼일 정도 있어야 해요. 삼일이라고.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그 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고요. 휴의는 잠결에 그 같은 말을 들었다. 물어 볼 걸. 여순이 칼을 놓고 손을 씻었다. 죽은 시체를 발견하고 달려드는 하이에나의 마음으로 마구 휘둘렀던 칼이 제자리를 찾았다. 고개를 들자 이마에 고였던 땀방울이 막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휴의의 얼굴에 가볍게 떨어졌다. 

항생제 좀. 링게르에 포함된 양만 해도 충분해. 더 많으면 쇼크가 올지 몰라. 지금까지는 잘했어. 결과는 하늘에 달려 있는 거고. 위험이 오면 내 책임은 아냐. 꼭 그런 말을 지금 해야겠어요. 그만큼 심각하다는 거야. 이미 다리 수술만으로도 벅찬데. 말수가 미안했던지 이렇게 덧붙였다. 어쩌나 보려고 해 본 소리야. 강한 사나이니 이겨낼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젊고. 26살인가. 당신보다 두 살 위라고 했던가. 그런 말을 내가 했다고요. 기억력도 좋으시네요. 내가 이 정도니 이 청년은 얼마나 비상하겠어. 당신 그러고 보니 나보다 수술 더 잘해. 큰 수술 말고 이런 얇은 수술은 당신이 맡아야 겠어. 아 참 박군은 어디 갔어요. 어 퇴근하라고 아까 말했어. 요즘 날 밤 새는 일이 있었잖아. 잘 하셨어요. 형사가 와도 못 알아보겠지요. 봐, 저게 어디 사람얼굴이야. 슈퍼 문보다 더 큰데. 특징을 전혀 잡을 수 없어. 눈 코 잎 코 귀 이마 입술 어디 하나 손 안 댄대가 업서. 그러게요. 우리처럼 이런 수술한 사람이 있을까요. 기네스 북 기록감이야. 휴의는 어설피 깨어 있었다. 그래서 둘의 이런 대화를 고스란히 들었다. 참 수술하면서 말이 많네. 환자 앞에서 이렇게 말을 막 해도 되는 거야. 그나 저나 형사가 온다고. 그런말 들은 거 같은데. 맞아 했지, 했어. 몇 번 들은 거 같아. 이제 아물기만 기다립시다. 그러기를 바래야 지요. 강한 사람이니 거뜬하게 일어 납시다. 여순이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정말 저 사람을 극진히 모시는군. 내가 저사람이라도 저럴까. 빈정거리지 말아요. 당신보다 더 극진히 모시는 사람은 대명천지 하늘 아래 나 여순말고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알아 모시리다. 어디보자, 다 됐군. 봤잖아요. 그래도 나가기 전에 한 번더. 나머지 시중은 당신이 하고. 잘 생긴 얼굴이 안 됐지만. 여자가 남자 얼굴을 따진다면 이 사람은 끝장이군. 여보. 내가 못할 말 했나. 됐거든요. 환자가 다 들어요. 일부러 그러는 거야. 이런 환자에게는 이런 식의 말이 회복을 빠르게 해. 나 끝장 나지 않고 다시 시작할 거야. 그런 힘이 생기거든. 잘도 갖다 붙이시네요. 그런 논문이 어디 있나요. 찾아 보자. 도서관에 가면 있을 거야. 됐거든요. 그런데 여보. 지금은 살 수 있지만 이 사람은 앞으로 독립운동 하기는 힘들어. 왜냐고. 이제 다시 잡히면 그걸로 끝이거든. 이 얼굴은 어린아이도 한 번 보면 잊지 못해. 사진 대조고 몽타쥬고 다 필요없어. 인생 종친 거지. 이 얼굴을 보라고. 그런데, 여보. 뒷정리를 마치고 수술방을 나오면서 여순이 말수를 불러 세웠다. 왜, 내 얼굴에 뭐라고 묻었나. 그게 아니고요. 수고 했다고요. 별 실없는 소리를. 둘은 쇼파에 앉았다. 힘든 하루였다. 그렇지 않은 날이 없지만 오늘은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 손도 좀 쉬어야지. 말수가 자신의 손을 들여다 보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여순을 돌아봤다. 걱정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참, 이 정도 인물이면 지문도 떴을 텐데. 손은 살폈어. 가장 중요한 게 지문이거든. 얼굴은 변장을 해도 지문은 그럴 수 없어,  지문, 지문요. 그래. 지문. 언뜻 보니 손은 멀쩡하더구먼. 지문 한 방이면 끝나는 걸 당신도 알지. 조선 최고 현상범인데 일제가 지문 정도는 갖고 있겠지. 언젠가 한 번 잡힌 적이 있다며. 토벌대 군인으로 있다가 잡혀서 종로서장에게 고문 당했다며.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윤사장이 모르는게 어딨어. 그렇군요. 어떻게 하지요. 뭘 알면서. 얼굴처럼 하면 돼. 더 얇게. 엄지와 검지만 하면 돼. 열 손가락은 대개 안 하거든. 찢지 않고 긁어 낼 수도 있어. 중요한 포인트만. 그건 당신이 해줘요. 아냐, 당신이 더 나아. 난 손이 떨려. 그런 예민한 부위는 당신이 제격이야. 아까 얼굴 포 뜨듯이 그렇게 군데 군데 조심스러게 하듯이. 그러면 돼. 이건 마취도 필요없어. 환자가 자고 있으면 알지도 못할 거야. 어딘지 알지. 말수가 여순의 손을 잡아 엄지 엄지 안쪽을 만지며 이런 부분을 없애. 시간 없어. 빨리 해. 당신 도움은. 굳이 내가 안들어 가도 돼. 잘하면 피도 안 날텐데. 알았어요. 그 칼 있지. 제일 작으면서도 가볍고 날카로운 거. 그 걸로 하면 문제 없을 거야. 수술 장갑은 끼지마. 여순이 장갑을 찾으려고 눈을 돌리자 말수가 말렸다. 맨 손으로 해. 그래야 상처 없이 감촉같이 할 수 있어. 빨리할 수 있고. 꾸물 거리지 마. 말수가 페이닥터에게 하듯이 명령조로 말했다. 다시 수술실로 들어왔다. 편하게 레코드를 들으려던 잠깐 동안의 휴식은 날아갔다. 다시 가슴이 뛴다. 여순은 진정하자 진정해, 여순아, 너 왜그러니, 너 답지 않게. 호흡을 가다듬고 잠들어 있는 휴의의 손을 잡았다. 일단 오른 손 엄지부터. 손이 차갑다. 환자 손이 차가운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그녀는 줄질을 하기에 앞서 자신의 손으로 환자의 손을 비볐다. 좀 따뜻해 지려나. 휴의가 움찔했다. 그래도 여순은 손 마사지를 멈추지 않았다. 온기가 돌아왔다. 이번엔 왼손이다. 오른 손 보다는 조금 낫다. 그래도 손을 비볐다. 왼손도 끝났다. 확연했던 엄지 검지의 지문이 흐릿해졌다. 뚜렷한 것이 흐릿해 지자 여순은 무언가 상실된 것 같은 허망함을 느꼈다. 지문도 없는 남자. 이제 사라져도 흔적도 없겠군. 변사체로 발견된 남자가 있다면 휴의겠어. 세상에 자기 얼굴도 모르고 지문도 없는 남자가 어딨어. 측은지심이 몰려왔다. 여순은 밖으로 나가려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따뜻하게 해 줄게. 여순이 다시 휴의의 손을 잡았다. 그순간 여순은 자신의 손을 잡는 느낌이 왔다. 깼나. 어떤지 좀 보러 왔어요. 다 잘됐네요. 여순은 일어섰다. 

밖으로 나오자 말수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손톱을 뺀 건 아니지. 소뿔 자르다 소 잡지는 않았지. 설마 그런 거야. 아니면 손가락을 자른 거야.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요. 고마워요. 뜬금 없기는. 전 그 생각을 못했어요. 얼굴을 망쳐 놓고 잡히면 헛고생한거지요. 나도 놀랐다니까. 내 머리로 그게 생각 날 줄이야. 환자 수혈은. 잘 들어가고 있어요. 다행이 오형 피가 좀 있어서요. 부족하면. 맞아 당신도 오형이지. 말수가 새로운 것을 알아내기라도 한 듯이 여순을 보며 말했다. 나보고요. 난 싫어요. 그럴 필요 없잖아. 남도 하는데. 아직 그 상태는 아니니 두고 보고요. 당신 또 무슨 꿍꿍이 같은 말을 하려고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에요. 어이없다는 듯이 여순이 말수를 노려봤다. 어제부터 당신 왜그래요. 자꾸 삐딱하게 말하고. 그것도 이따가 얘기하지. 내 생각에는. 근데 어떻게 한 거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칼로 하면 덧날까 싶어서요. 왜 손톱 가는 줄 있지요. 그걸로 좀 갈았어요. 줄질도 생각보다 어렵대요. 손톱처럼 잘 갈리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오래 걸렸군. 환자는 깨어 났고. 아니요. 눈을 감고 있었어요. 모르지요. 눈을 감고 있어도 깨어나 있는 경우가 많으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자 이제는 모든 게 끝났어. 형사가 와도 안심이야. 우리 레코드나 들을까.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왔다. 오빠가 왔다고 여순아 울지마. 그만 놀려요. 배가 고파요. 그러게. 저녁이 지났어. 간단하게 먹읍시다. 김치찌게 어때요. 좋아요. 식사 차릴 동안 당신은 쉬고 있어요. 그러지 뭐. 여순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잡았다. 말수는 여순이 모습이 보이지 않자 환자의 상태가 궁금해졌다. 혈압이 궁금했다. 수혈은 잘 되고 있나. 병원장이니 내가 관심을 가져야지. 말수가 수술실로 들어섰다. 휴의는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어서 잤는지 깼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말수가 맥박을 잰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뜬 자의 호흡이 느껴진다. 내가 여순 남편이오. 말수라고 해요. 악수는 나중에 하고. 말수가 휴의 얼굴 가까이로 갔다. 얼굴 상처를 보기 위해서였다. 말은 많이 들었수다. 고맙소. 아까 대화를 다 들었습니다. 살려 주셔서. 아, 내가 충고하나 하지요. 환자는 긴 말 하는 게 아니요. 듣고만 있어요. 형사가 왔다 간 것은 알고 있지요. 세 시간 후에 다시 올 겁니다. 사진이나 지문을 대조하겠지요. 난 걱정말아요. 당신이 조선독립군 장군 휴의라는 걸 내 입으로는 말하지 않을테니. 내 입으로는 말이오. 내 입으로는. 휴의는 그 말이 거슬렸다. 말투도 그렇고 억양도 그렇고. 신세는 꼭 갚겠... 어, 어. 말하지 말라고 했지요. 환자가 의사의 말을 안 들으면 어떻해요. 당신은 그냥 조선 깡패요. 쫓으니 그냥 달아났다고 하시요.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한 건 하려고 혼자 나왔다가 이런 꼴을 당했다고만 진술하시오. 당신을 증명할 아무런 흔적이 없어요. 휴의는 자신도 그렇게 대답하려고 머릿속으로 꾸며냈는데 말수가 미리 말하니 감격했다. 어쩌면 여순 남편도 나와 같은 패일까. 거칠게 대해도 적어도 나에게 적은 아니다라는 안심이 들었다. 휴의는 가볍게 휴하고 한 숨을 내쉬었으나 뚱뚱 부은 입술 때문에 호흡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휴의는 쏟아지는 잠을 간신히 참으면서 귀를 열고 집중했다. 무슨 말이 나올지 염려스러웠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말 안해도 알겠지만 우리들이 나눈 대화요. 당신과 나 그리오 내 와이프와 나눈 대화 모두 비밀이오. 내가 없는 사이 두 사람이 나눈 대화까지 포함이오. 휴의는 이 자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 걸 나에게 말하다니. 그렇게 중요한 것을. 당연히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지. 무덤까지.됐어요. 그만, 그걸고 충분해요.

기다리는 형사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응급환자를 기다리는 심정처럼 말수는 초조했다. 그러기는 여순이 더 했다. 빨리 마무리 짓고 잠을 좀 자고 싶었다. 레코드를 듣는 것도 시들해졌다. 마음이 영 불안하니 귀까지 얼어 붙은 기분이었다. 수시로 수술실을 들락거린다. 달리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여순은 더 바쁘다. 말수와 교대시간이 되면 그는 휴의가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한다. 당신의 어릴적 연인 여순이 내려와요. 자는척 해요. 아니 자요. 푹자고 일어나야 회복이 빨라요. 무슨 말을 하든 듣지 말고 그냥 자요. 뭘 그렇게 혼자 궁시렁 거려요. 말수 곁으로 여순이 다가오면서 물었다. 그냥 때로는 혼잣말 할 때가 있잖아. 그때 였나봐. 싱겁기는. 이 환자 어때요. 뭐가. 아니에요. 그런데 형사는 왜 안오죠. 여순은 휴의의 손을 잡으면서 물었다. 아까 보다는 좀 낫네요. 온기가 돌고 있어요. 수혈이 환자 몸에 맞나 봅니다. 이마의 열도 조금 내렸고요. 아까와는 달리 뜨겁지 않네요. 여순은 여느 환자 보듯이 휴의를 살폈다. 도주 중에 권총을 버렸어요. 저들이 찾아서 지문을 떴을 거요. 아니면 그 전에 있던 걸 가지고 오겠지요. 휴의가 힘겹게 말했다. 그래서 지운 겁니다. 입 다물고 있어요. 여순도 말수처럼 휴의에게 명령했다. 말수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여순은 저도 모르게 휴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빠져 나간 피가 제자리를 채우고 있어요. 오형이네요. 여순은 조금 전에 잡았던 휴의의 손의 느낌을 간직한 채 자신의 뺨에 갖다 댔다. 그리고 휴의의 얼굴에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대고 나직이 말했다. 가만히 있어요. 잠을 자야해요. 이렇게 떠 있으면 회복이 느려요. 얼른 낫고 싶지요. 억지로라도 자세요. 휴의는 여순의 손가락과 입술의 온기를 이불삼아 잠이 들었다.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피곤이 여순에게도 찾아왔다. 그러나 피곤한 거 하고 잠을 자는 것 하고는 상관 없는 듯 충혈된 눈은 감기지 않았다. 그 형사는 뭐하고 있지. 왜 안오는 거야. 여순은 어느 정도 감정이 차분해 지자 거울 앞에 다시 앉았다. 얼굴의 핏자국도 없어. 흠흠. 비린내도 없고. 나 자신으로 돌아왔네. 여순이 어디 가겠어. 그러면서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거실로 나오자 말수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여순에게 다가왔다. 지금 당장 들어볼까. 레크드요. 그래 몇 시간 걸리는 것도 아니고. 그럽시다. 여순이 그 쪽으로 눈길며 말수를 힐끔 쳐다봤다. 형식적으로 해보는 말인지 궁금했다. 음질이 궁금해. 잡음이 얼마나 있을지. 여보, 지금 근무 시간이잖아요. 벌써 끝났어. 수술환자가 있는데 끝나다니요. 일과 여과를 동시에. 워라벨 있잖아. 여순은 내키지 않았으나 말수가 사온 레코드를 축음기에 갈아 끼웠다. 상황이 달라졌잖아. 우리에겐 잠시의 행방이 필요해. 우리들만의 해방. 우리만의 해방공간이 필요해. 아랫층과 윗층은 달라. 저 아래는 전쟁터 여기는 파라다이스. 해석이 좋군요. 그렇긴 해요.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요. 멀쩡한 얼굴 수술에 선 지문을 갈지를 않았나. 이런 의사는 상하이 전체에서도 우리가 처음일걸요. 들려오네. 조용 쉿 말수가 가운데 손가락을 입술 중앙에 갔다 댔다. 타이틀곡이네요. 홍도야, 우지 말라 오빠가 있다. 두 사람은 노랫말을 음미했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따라 불렀다. 그래 지금은 즐길 시간이 아니지. 말수가 여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 기분 좀 내볼까. 형사가 오면 오는대로 안오면 더 좋고. 와서 잘 될 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그렇다면 희망도 절망도 없는 그냥 그대로.  두 사람은 가볍게 스탭을 밟았다. 대세계의 분위기는 아니었어도 춤은 기분 전환에 좋다. 음악도 좋으니 이 정도면 훌륭하지. 두 사람은 신이 난 것처럼 과하다 싶게 몸을 흔들었다. 오빠가아 있이있다~. 말수가 따라했다. 당신에게도 오빠가 있지. 오빠요. 그런 것 없어요. 말수는 휴의 오빠는 오빠 아냐 하려다 그만 두었다. 여순이 눈치채고는 휴의 오빠, 그냥 동네 오빠라고 했잖아요. 당신 은근히 질투하는 거지요. 내가, 이 말수가. 천만에. 난 그런 것 몰라. 그럼 더는 말하지 않기요. 놀리지 않기요. 여순이 말수의 심중을 이해하고 말했다. 두 사람은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멈추었다. 사실은 말수가 잡은 어깨의 손을 풀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한 잔 해야지. 왜 안오는 거야. 형사놈은. 말수가 짜증을 냈다. 우리도 문을 닫아야지. 해도 너무해. 술 냄새를 환자에게 보여 주겠다고요. 수술 환자를 소독하는 알코올 냄새라고 둘러대지 뭐. 딱 한 잔이야. 그리고는 말수는 두 잔을 가지고 왔다. 당신도 가볍게. 이이가 정말. 수술 환자는 어쩌고요. 상황이 달라졌잖아. 또 그 상황 따령이군요. 조선최고의 독립군 대장이 우리 병원에 있어. 잠시 후면 일제 형사가 사진을 갖고 들이닥칠 거고. 흥분되지 않아, 당신. 더구나 소녀적 첫사랑이라며. 그런 말 한 적 없거든요.  그런 걸 꼭 말해야 아나. 표정에 나와 있는데. 내 얼굴이 어때서요. 벌써 빨개졌잖아. 시시한 농담 그만두고요. 그래, 어쨌든 장군은 확실히 달라도 다르더군. 몸이 돌처럼 대단해. 돌도 그냥 돌이 아닌 화강암. 그리고 그 인내심이란. 고통을 참아내느냐 여부에 따라 장군과 병사를 가른다면 그는 확실히 대장군이야.

자 우리 걱정도 하자고요. 우리 걱정. 그래, 대장 걱정 말고 우리 걱정. 한 잔 하십시다. 그러 십시다. 그런데. 그런데 뭐. 일주일이면 될까요. 뭐가. 또 그새 대장 걱정으로 옮긴거야. 내 참. 부기가 어느 정도 내리겠지.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전선에서 경험했잖아. 저 정도 부상은 부상도 아니었어. 엉망진창이었어. 말수가 그 때가 생각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게요. 그런 상처에 비하면 깔끔하다고나 할까요. 환자가 들으면 화낼 말이지만. 산산조각난 뾰조각을 들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멍했던 거 기억나. 왜 안나겠어요. 저 사람은 강해. 그런 운명을 타고난 거지. 운명 타령으로 다음 주제를 이동하겠습니다. 놀리지 마. 운명없이 인생은 없는 거야. 그건 실과 바늘처럼 늘 같이 다녀. 휴의는 자면서도 탈출을 꿈꿀 거야. 내일이나 모레. 아니면 사흘후에 떠난다.뭐 이런 계산을 하고 있겠지. 병원에 머물 시간과 탈출 시나리오. 우리는 그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 그냥 환자와 의사로 만난 것 뿐이지. 병원비는요. 그걸 형사가 시비걸고 넘어질 수 있잖아요. 우리가 어디 외상 치료 한 두 번 했나. 보호자가 오겠거니 했다고 둘러대지 뭐. 그 분야는 당신이 전문가이니. 참, 귀찮은 건 다 나에게 떠미네. 떠미는게 아니라 주로 당신에게 질문하잖아요. 나에게. 그래요. 나보다는 당신에게 물을 것 아니에요. 그자들은 오늘 병원에서 날을 샐거야. 환자 옆에 딱 붙어서 깨어나면 바로 심문하겠지. 수술실을 형사들에게 개방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어쩌겠어. 들어오면 무슨 수로 막아. 영사관이 있잖아요. 영사관을 꺼내자고요. 일본 깡패를 물리칠 때 처럼요. 이번엔 안통해. 그 형사들이 영사관 소속이야. 그리고 이건 그들에게 중차대한 문제고. 그나저나 휴의가 잘 대처할까. 쉿, 와타나베에요. 그 자가 부하 세 명과 함께 병원문을 열고 들어와요. 휴의의 휴자조차도 입에 대면 안되는 것 알죠. 휴의는 난 모르오. 입에 대지 말라고요. 오 마이 미스테이크. 말수가 실수를 깨닫고 바로 인정했다. 여보, 레코드 좀 꺼봐요. 음악이 멎자 정말로 아래층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우리는 기다립시다. 그럽시다. 잠시후 계단의 난간을 잡고 간호사가 올라왔다. 마침 여기 계셨군요. 형사들이 왔어요. 몇 시지.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말수가 손목을 들었다. 여순은 벽시계를 보았다. 다섯 시 오분을 막 넘었다. 말수는 간호사를 앞세우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까 그 형사였다. 두 명의 무장 경찰을 좌우로 세우고 와타나베가 병원 로비에서 서성였다. 

의사 선생, 수술은 잘 끝났어요. 네, 그런대로. 상처가 심해 겨우 봉합했어요. 위험한 고비를 넘겼는지, 지금 그런 상태를 맞고 있는지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말수가 시계를 보는 척했다. 아, 내가 조금 일찍 왔어요. 뭐 별로 할 일도 없고. 병원 일은 방해 않을테니 환자를 보세요. 오늘은 한가하네요. 보시다시피 대기 환자도 없고. 난 여기서 구경이나 하면서 좀 기다리면 되지요. 그러시던지요. 그런데 의사 선생 여기 뒷문은 어디요. 형사가 두리번거렸다. 뒷문이 아니고 병원 후문은 이쪽입니다. 거의 쓸 일이 없어 대개는 잠겨 두고 있어요. 형사가 경찰 하나에게 눈짓을 하면서 너, 저쪽 좀 확인하고 와, 하고 말했다. 하이 소리가 높아 말수가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명령을 받은 경찰은 바짝 군기가 든 모습으로 말수가 가리키는 후문으로 발을 옮겼다. 어떤 상태였어요. 형사가 틈을 이용해 말수에게 물었다. 총알이 관통 직전까지 갔어요. 차라리 그랬더라면 수술이 쉬웠을 텐데. 말수가 말꼬리를 흐리면서 이야기를 이어 가려고 했다. 형사가 급히 막았다. 자신이 볼 일이 더 급하다는 투다. 그래, 깨어나는 시간은 언제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여섯 시 이후네나  될 거에요. 그러나 언제 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요. 환자에 따르고 특히 총상 환자는 대중이 없어요. 내일까지 못 깨어날 수도 있고 저녁 늦게 헛소리를 시작할 수 있지요. 마취가 풀릴 때는 대개 그런 환자들이 있어요.  그래 수술 할 때는 별 말 없던가요. 소리라고요. 그 상황에서 나오는 소리는 비명이지요. 어떻게 질렀느냐고요. 아 그 질문은 하지 않았어요. 뻔하지 않아요. 건달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체면을 잊지요. 어쩔 수 없어요. 그게 생리지요. 아프면 소리 지르는건 깡패도 마찬가지니까요. 깡패라니요. 그 환자 그런 종류의 사람 아니었어요. 딱 보면 알지요. 보통 사람보다 근육이 많고 주먹 힘이 센 자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이 깡패말고 뭐가 있겠어요. 조선 깡패도 상하이에 있단 말이오. 깡패의 세계에서 국적이 따로 있나요. 그들은 행패 부릴 만한 곳이라면 중국이든 러시아든 어디든 가지요. 다른 낌새는요. 형사가 곁눈질을 하면서 물었다. 보고할 만한 특이점은 없어요. 다만 애초에 다리 총상만 확인했는데 나중에 보니 얼굴에도 두 발이 맞았더군요. 얼굴까지. 형사가 놀라는 눈치였다. 다리부상이 워낙 심해 다른 곳은 못 본 것이지요. 그쪽에서 출혈이 터졌으니. 다행히 얼꿀 쪽에는 턱과 볼을 약간 스치면서 귀를 치고 나갔고 다른 총알은 눈썹을 긁고 지나갔어요. 왜 바닥에 끌린 자국 같은 거 있지요. 형사가 전혀 뜻밖이라는 듯이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했다. 그러다가 멈추더니 내 사격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하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세 발을 쏘았거든요. 겨우 한 발 맞았다고 궁시렁거렸는데 백발백중이야. 그럼 그렇지. 이 와타나베의 권총 솜씨는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다니까. 정말인가요. 혼자 세 발을 발사했나요. 그렇다니까요. 의사선생은 의심도 많군요. 달리는 표적을 맞추기는 쉽지 않아요. 저도 사격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움직일때는 확률이 팍 떨어져요. 아참, 선생이 독립군 인가 뭔가 폭파 교육을 하고 있다면서요. 형사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무심한 듯 물었다. 교육이랄 것도 없어요. 일주일에 한 세 번 하는데 그것도 제대로 못해요. 훈련 중에도 병원일이 신경쓰여서. 그리고 독립군이라니, 큰 일 날 소리를 하고 있네요. 말수가 역정을 냈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을 바로 해야지요. 그리고 쉿, 아시나 본데. 이리로요. 이번에는 말수가 형사를 잡아끌었다. 아직은 잘 몰라요. 모르다니요. 그들은 독립군이 아니라 황군입니다. 모른다는 것은. 훈련병들이 그걸 모른다는 말입니다. 일단은 교육이 목적이지요. 겉으로는 독립군 훈련이라고 포장 했지만 실상은 태평양 전선으로 보낼 황군입니다. 이거야 원 참. 난 군대는 모르겠고. 깡패가 왜 도망갔을까요. 깡패니까 그렇지요. 깡패라고 여전히 확신하는 군요. 아니면 형사님이 신분을 찾아야지요. 저야 의사라서. 그런데 정말로 황군입니까. 독립군이라는 소문도 있던데요. 아닐겁니다. 그래야지요. 나도 영사관 요원에게 들었어요. 조센징들을 그런 식으로 회유하고 있다고요. 황군 훈련이라고 하면 도망자도 나오고 교육열도 떨어지니 독립군 훈련이라고 둘러 대고 있다는 말을요. 의사선생은 정말 애국자에요. 나카무라 대장을 살려서 보냈고 우리 편은 거의 공짜로 치료해 주고. 애국훈장을 내가 상신하겠어요. 어, 됐어요. 그런 걸 바라고 하지 않아요. 덴논님 훈장도 있는데 더 무엇이 필요해요. 아 몰랐스무니다.

그나저나. 형사는 아까 꺼내려고 했던 것을 이때다 싶어 꺼내면서 말수 앞으로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 자가 휴의라고 조선독립군 장군이오. 나도 이름은 들어봤오. 말수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자가 최근 상하이에 왔다는 첩보를 받았어요. 임정 선생을 만나 새로운 임무를 지령받기 위해서지요. 이 자 좀 확인해 줘요. 말수는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유심히 들여다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래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저기 누워있는 자가 이자와 비슷한 점이 있나요. 글쎄요. 얼굴까지 수술을 해놔서 지금은 알 수 없어요. 부기로 얼굴이 두 배는 커져 있을거요.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수술 전에 사진을 찍어 두거나 눈여겨 봤을 텐데요. 혹 사모님도 같이 수술을 했나요. 그때 여순이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면서 네, 저도 같이했어요, 하고 말했다. 형사가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사모님, 이 자의 모습이. 말수의 손에서 사진을 낚아채듯이 뺏은 그는 여순에게 사진을 건넸다. 제가 좀 관상을 보는데. 글쎄 이마며 눈이며 광대뼈며 입술이며. 가늠이 안 되요. 어느 곳 하나. 이 사람의 얼굴을 본 기억 자체가 안 나요. 아, 이거 낭패군요. 얼굴에도 총상이 있었다면서요. 형사가 여순에게 물었다. 여순이 말수의 눈치를 살폈다. 말수가 형사와 어떤 이야기르 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전 총상이 어떤 건지는 잘 몰라요. 종아리는 총상이라고 하니 확실한데. 얼굴은 아닌 것 같아요. 다리와는 전혀 달라요. 들어간 구멍도 나온 구멍도 없고 깊지도 않아요. 총알이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면 그런 상처가 나지. 말수가 옆에서 잘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핀잔의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그런가요. 어쨌든 스쳐 지나갔으니 망정이니 조금만 안쪽으로 붙었으면 저 사람은 지금 숨 쉬고 있지 못할 거요. 그것도 두 발씩이나 그랬으니. 심하게 긁힌 자국처럼 보인게 총상이었군요. 그렇다니까. 형사님 사격 솜씨는 알아줘야지. 세 발에 세 발 명중이었다니까. 말수가 언질을 주기 위해 말했다. 백발백중이 따로 없네요. 사모님 표현력이 풍부하군요. 칭찬해주니 고맙군요. 아니, 되레 고마워 할 사람은 접니다. 형사가 황공하다는 듯이 모자에 손을 대고 고개를 약간 숙였다. 여순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면서 두 분이서 말씀나누세요, 하고 인사말을 남겼다. 형사는 아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고 모자를 벗어 화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럴 줄 알고 여기 이것을 가지고 왔어요. 형사가 가방을 들어올렸다. 지문을 찍을 수 있는 도구가 그 안에 있는 듯 싶었다. 환자가 자고 있어도 지문은 찍을 수 있지요. 네, 그거는 가능합니다면. 감염 위험이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수술환자에게, 특히 총상 환자는 감염에 취약해요. 감염되면 위험하고요, 일단 손을 소독 좀 하시지요. 말수는 간호사를 불렀다. 그가 미처 다른 행동을 할 틈도 없이 이분 손에 알코올 좀 듬뿍 젖혀서 보내요. 지시는 형사만이 아니라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듯이 간호사에게 말했다. 그런데 어디서 술 냄새가 나요.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형사가 코를 벌름거렸다. 그 이유는 곧 알게 됩니다. 저기 오네요. 간호사를 따라가세요. 제가 수술실 앞에 있을 테니 손을 씻고 그리로 오세요. 옆에 있는 무장 경찰 하나가 형사가 일어나기도 전에 일어나 수술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리 가서 자리잡고 있겠다는 태도였다. 수술실에 들어간 형사는 조금 후에 나왔다.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지문을 뜬 형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양쪽 엄지와 검지의 지문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 보시오. 형사가 먹물이 묻는 흐릿한 형상을 말수에게 내밀었다. 이렇게밖에 안 나오니, 영사관으로 일단 가야겠어요. 형사가 미심쩍은 얼굴로 말수를 쳐다봤다. 낸들 어찌 알겠소. 나야 지문 전문가가 아니라서. 안타깝다는 듯이 말수가 대꾸했다. 뭐가, 보여야 말이지. 일단 나는영사관에 들렀다 다시 오리다. 너희들은 여기 그대로 있고. 형사가 말했다. 와타나베 형사님, 이거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병원에 무장병력을 배치하는 것은. 아무래도 환자들이 겁먹을까 봐 걱정입니다. 환자는 심리적인 것이 중요하니까요. 더구나 요 며칠 새 새로 입원 환자들이 부쩍 늘었어요. 그들에게 총칼을 보이는 것이 어떤 이득이 될지 모르겠네요. 와타나베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기분 나쁘다는 투였다. 지금은 전쟁터야 이 놈아. 오냐 오냐 하니 기어 오르네. 의사라고 내가 봐줄 것 같아. 감히 네깟것이 내게 이렇게 따질 수 있어. 와타나베는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의사 선생에 머물지 않음을 알고 있어 참았다. 영사관 요원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이니 함부로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군요. 내가 미처 생각이 짧았소. 애들아 가자. 의사선생 무례를 용서해 주시오. 사복형사를 보낼테니 그때까지는 저 깡패인가 하는 자를 감시해 주시오. 살표보지요. 어서 일 보세요. 말수는 상대하기 귀찮은 듯이 말했으나 그래도 그가 병원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지켜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열린 문틈으로 바깥 상황을 보던 여순은 형사가 돌아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문 대조는 실패할 것이다. 양쪽 엄지와 검지는 알아서 지웠다. 나머지 손가락도 희미하다. 휴의는 이제 상하이에서 정체불명의 인간이다. 그저 돈을 찾아 상하이로 흘러든 조선 깡패일 뿐이다. 그러나 형사의 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잖은가. 회복되는 시간은 길다. 어쩌나. 날이 밝았다. 휴의가 입원하고 하루가 지났다. 여순은 다음 환자에 대한 처방에는 신경 쓰지 못하고 휴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했다. 그러고 있을 때 간호사가 안을 보면서 노크를 했다. 환자는 아닌 것 같은데요. 선생님을 면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여순이 고개를 들자 중년의 사내가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거구의 사내가 호남형인데 표정이 밝았다. 웃고 있지 않았으나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그런 인상을 받았다. 여순은 알았다고 간호사를 물리치고는 들어 오시라고 해요, 하고 밖에 있는 사내가 들을 수 있도록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사내가 고맙다고 하면서 옆으로 비켜주는 간호사가 나가자 안으로 들어섰다. 눈 앞에 있는 사내는 얼핏 본 사내보다 더 크고 더 잘생겼다. 여순은 손으로 작은 의자를 가르켰고 사내는 고맙다면서 자리에 앉았다. 손에 들고 있는 모자를 만지작거리던 사내가 총상 환자 면회는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여순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수술한 지 얼마나 됐다고 형사가 찾아와 그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면회객까지 온다. 이러다가는 상하이 전체가 휴의를 알게 되는 날도 멀지 않겠군. 환자와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여순이 콧수염을 옆으로 늘어뜨린 사내를 보면서 물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그 콧수염을 위로 쓸어 올리더니 뒤를 한 번 보고 나서 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휴의 장군과 아는 사람이고요. 임정과도 연관 있는 사람입니다. 그냥 조선 청년이라고 불러주세요. 조선청년. 그런 이름도 있나요. 그냥 그렇게 통하고 있어요. 진짜 이름은 나중에 알게 되겠지요. 조선청년. 독자들은 그가  부인과 사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부인도 그랬으나 지금 그녀는 죽고 없다. 종로에서 완용이 쏜 총에 맞아 거의 죽음 직전에 체포됐고 모진 고문 끝에 서대문 형무소에 사망했다. 여성 독립군. 독자들은 그녀가 경성에서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해 활약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조선청년. 여순은 사내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살기 였고 집념이었고 힘과 패기였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혁명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휴장군을 도피시켜야 합니다. 한시가 급해요. 일제가 알아채면 끝장이요. 그가 이 말을 할 때는 절망적이라는 듯이 눈꼬리가 내려갔다. 빛나던 눈은 수그러들었고 커다란 눈은 금방 눈물을 쏟아낼 거처럼 어수선했다. 미행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수사관처럼 여순이 말했다. 형사와 무장경찰이 나가는 것을 보고 바로 들어왔어요. 인수인계를 하는 시점이 적들이 허점을 보이는 시간이거든요. 그나 저나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하지요. 내가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이판사판입니다. 휴 장군이 붙잡히면 우리 조선 독립군들은 큰 타격을 입어요. 그건 그쪽 사정이고요. 그렇긴 합니다만. 같은 민족으로 측은지심을 갖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겁니다. 난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지 독립군을 지원하는 병력이 아닙니다. 그건 알고 있지만. 면회는 불가해요. 환자가 자고 있어요. 깨워도 일어나지 못할 겁니다. 조선청년이 조금 당황한 듯 했다. 죽지는 않겠지요. 다리 총상이니 아마 그럴걸요. 하지만 출혈이 심해요. 헌혈이 필요한가요. 조선청년이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듯이 팔을 걷어 붙였다. 한고비는 넘겼어요.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요. 여순은 대답을 망설였다.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했다. 믿어도 되는 사람인가. 그리고 환자가 휴장군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벌써 소문이 퍼졌나. 임정에서 급히 가보라고 보냈어요.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사실이군요. 혹시 여순 선생님 이시죠. 어떻게 제 이름을. 여순이 놀라면서 조선청년을 바라봤다. 휴의 장군을 얼마전에 만났어요. 상하이에 부부병원을 하는 조선인이 있는데 부인이 여순이고 죽마을 친구라고. 임정 선생이 병원에 가보라고 했을 때 바로 이름을 떠올랐어요. 그건 그렇고. 지금 종로서 완용이 이리로 오고 있어요. 여순은 입을 벌리는 대신 눈을 크게 뜨고 정말이냐고 물었다. 완용 말인가요. 친일 왜놈 앞잡이가 오고 있다고요. 그래서요,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죠 하고 물으려다 여순은 잠시 침묵했다. 그 사람이 왜. 여기도 형사가 많이 있잖아요. 굳이 먼 거리를. 나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받은 첩보에 의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친일매국노에게 독립군 장군이 체로되는 그런 수모는 피해야지요. 그가 성을 낸 목소리로 말했으나 크지는 않았다. 그래서 휴 장군을 빨리 빼내야 합니다. 완용이라는 자는 얼굴이 아무리 망가졌어도 한 번 본 사람 얼굴은 정확히 기억해 내는 재주가 있어요. 완용도 죽마을 친구라면서요. 휴장군을 몰라 볼 리 없지요. 그래서.  오늘 밤까지는.  안돼요. 아무리 급해도. 그리고 잠시 후면 사복 경찰이 올 거예요. 수배자 아니신가요. 나, 나 말이오. 그래서 막 여기를 떠나려는 참입니다. 가다가 급보를 받고 들렀습니다. 조선 청년이 일어섰다. 혹시 약산 선생님. 알아 맞혔으니 아니라고는 할 수 없네요. 밀양사람 김원봉이라고 합니다. 그럼. 할 이야기는 다 끝났다는 듯이 그가 길게 자란 수염을 잡고 옆으로 쓸었다. 오늘 저녁은 아니고 내일이나 모레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휴장군을 잘 치료해 주세요. 일제에게 조선 독립군 수장을 뺏길수는 없습니다. 

아 참, 여기 저기 떠돌다가 다시 상하이에 오니 감회가 새롭네요. 사내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꺼냈다. 여기서 애를 둘이나 낳았어요. 사랑이 뭔지도 그 때 비로소 알게 됐지요. 옥살이하는 남편 돕다가 아내도 옥살이를 했는데 내가 할 때보다 더 고통스럽디다. 형무소를 벗어나 상하이에 도착하니 그 때 사랑이 보였지요. 그런데 아내는 지금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죽음을 말하면서 웃음 띈 얼굴로 여순을 바라봤다. 다음 말을 해도 되는지 시험해 보는 듯 했다. 그 때 깨달았어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혁명할 자격도 없다고요. 그가 콧수염에 다시 손을 댔다. 여순이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뜬금없이 사랑 타령을 꺼냈어요. 그러니 젊은 의사 선생도 열심히 사랑하시오. 남는 것은 사랑뿐이오. 동지는 가고 세월도 흐르고 깃발은 찢겨져도 사랑은 오뚜기처럼 살아 남아요. 나는 일이 끝나면 배편으로 인천으로 갑니다. 고향 갈 생각에 조선 사람 만나니 정신도 못차리고 주책을 떨었지 뭡니까. 아닙니다. 그러저나 약산이라고 했던가요. 그렇소. 일이라니요. 어떤 일인가요. 조선청년이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휴의 장군을 안가로 모실 담당입니다. 휴 장군이 회복되면 함께 여기 있는 조선의용군을 끌고 조선으로 가야 할 임무를 띄고 있어요. 조선민족 해방을 위해서지요. 제가 듣기로 장군은 임시정부 선생의 명령을 받고 있는데요. 알아요. 다 얘기하자면 복잡합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더 있어야 하는데. 중년 사내는 그 말을 마치고 손에 든 모자를 썼다. 이제는 정말 가겠다는 뜻이다. 어쨌든 휴장군이 여기 있는 한 일제의 체포를 피할 수는 없어요. 사방에 밀정이 널려 있고 부군과 친하게 지내는 포목점 집 사장도 온전히 믿기 어려워요. 그러니 생명에 지장이 없겠다 싶으면 바로 저 약산을 도와주세요. 무슨 명령 같아서인지 약산은 그 말을 하면서 미안해 했다. 의사 선생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습니다. 이만 떠났다가 바로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는 알면서도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약산이  돌아설 때 예의 그 형형한 눈빛이 여순을 사로 잡았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또 무서웠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저 사람의 운명이 궁금했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제 명을 다 살지는 못하겠지만 그 이전에 그가 하는 일들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떠나면서 신문지에 싸서 잘 포장된 꾸러미 하나를 내밀었다. 환자에게 주세요. 작은 성의이나 선생께 부담을 드렸습니다. 조선독립 후에 경성에서 한 번 뵙지요. 말수 선생과 함께 오세요. 식사 한 번 모시겠습니다.

그가 나가고 나자 여순은 기운이 빠졌다. 말수 선생이라니. 내 남편도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여순은 의문보다는 꾸러미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여순은 보자기를 풀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고기였다. 대여 섯근은 됨직한 무게였다. 환자에게 이걸 먹이라고. 그래, 기운을 차리는 데는 소고기가 좋지. 그런데 미역국을 끓이나. 어떻게 하지. 여순은 당장 고기를 들고 부엌에 가야한다는 듯이 서성였다. 그러다가 한쪽으로 밀어 넣고는 오늘은 먹지도 못할텐데. 속으로 중얼 거렸다. 말수가 들어왔다. 아까 그 사내 말이야, 내가 당신 방으로 들어가는 것 보고 나가는 것 확인하고 들어왔어. 무슨 말을 했어. 환자는 아닌 것이 확실하고. 그 자가 나가자 로비에서 서성이던 젊은 사내 하나가 급히 따라갔어. 비서인가, 경호원인가 말이야. 도대체 저 중년 사내의 정체가 뭐야. 낸들 어찌 알겠어요. 약산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데요. 김원봉 말이지. 밀양 사람. 당신도 알아요. 이름은 들었지. 아마 당신도 들었을 거야. 그런 것 같더라고요. 수염하고. 신문에도 났었지요. 그거 가짜 수염이야. 그 사람 원래 수염 없거든. 그것 까지 알아요. 포목점 윤사장이 말해줬어. 그래, 약산이라 이거 원, 우리 집이 임정 본부 처럼 독립운동가들로 득시글 하구먼. 말수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어이없어했다. 난데없이 떨어진 날벼락 같은 상황을 .난처하군. 소고기를 사 왔어요. 권총인가 아니면 위험한 물건인지 보려고 열어 봤어요. 보자기 안에 이런 글귀가 있어요. 보라고 일부러 크게 적은 것 같아요.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 민족의 각성이다. 우리가 건설하려는 나라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인민이 다스리는 민주공화국이다. 그건 몽양 선생이 한 말인데. 몽양은 누구지요. 어 그 사람도 이쪽이야. 마음에 들었나 보군. 원래 약산도 연설꾼인데. 자기 말 대신 쓴 걸 보니 존경하는 선생인가 보네. 그리고 추신이 붙어 있었다. 휴 장군을 잘 부탁하오. 이게 뭔 일이래요. 내 참. 불평하면서도 여순이 자못 진지한 투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글씨가 좋네요. 문장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그건 나도 인정. 말수가 자신과 비교되는지 조금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곧 이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하소연했다. 여보, 우리가 무슨 팔자가 세기에 이런 거물들이 들락 거리지. 심부름을 해야 하고. 소고기는 또 뭐고. 그건 그렇고. 소고기를 몽양이 보낸 건가. 내가 보기에 몽양이라는 사람은 장난꾸러기 같아. 무슨 독립운동 한다는 사람이 카이젤 수염을 기르고 상표달린 비싼 양복을 입고 번쩍 구두를 신고 지팡이 휘두르며 다니니. 꼴사나워. 무슨 헐리우드 배우도 아니고 말이야. 말수가 사내의 몸과 옷차림을 타박했다. 그래야만 알아주나. 뭐, 독립운동하는 사람은 다 거지꼴로 다녀야 하는건 아니잖아요. 얼굴도 핏기없이 해쓱하고 울퉁불퉁하고 제멋대로 생겨야만 운동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광산업으로 돈을 좀 만진다는 소문을 당신도 들었잖아요. 역성드는군. 벌써 그쪽에 빠진 거야. 수염 때문에. 여보, 좀 진지해 보자구요. 나, 엄청 진지하거든. 말수가 자신보다 키가 크고 훤칠하고 돈 많아 보이는 사내에 불만을 드러냈다. 비교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고 무엇보다 독립운동 한다면서 멋쟁이 차림을 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넝마는 아니어도 저렇게 쫙 빼입고 다녀야 하나. 날라리 아냐. 끄나풀인지도 모르고. 혹시 일제 밀정인가. 아니면 연합군 시다바리든지. 참 내, 기가막혀. 사람을 외관으로만 평가하지 말아요. 알았어. 알아 모시겠다고. 그러니 나도 시내로 나가 옷 한 벌 해야겠어. 한바탕 그 사람에 불만을 털어 놓더니 이번에는 약산을 걸고 넘어졌다. 그 사람 생김새가 뭐야. 너무 잘나면 오래 살지 못하는데. 당신이 콤플렉스 느낄 이유 없잖아요. 누가 그렇대. 그렇다는 말이지. 그나저나 옷 사러 가요. 당힌도 빼 입으면 약산이나 카이젤 수염을 능가할 거에요, 제가 인정했어요. 말수는 멋적었다. 엎드려 절 받기인가. 당신 생일도 곧 다가오니 기분한 번 냅시다. 쉽게 여순이 이렇게 나오자 말수는 화제를 돌려 어쨌든 조선 독립에 그 만한 사람도 없을 거요. 그 사람은 헌병이나 경찰을 무서워 하지 않을 만큼 배포가 크다고. 숨어 다니지 않아. 그런 사람은 도망다니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 잡으라면 잡으라는 거지. 부럽거든. 내게는 없는 그런 것이 있어, 하고 비판했던 사람을 두둔하는 말을 했다. 그 정도인줄은 몰랐어요. 배짱 하나는 알아 줄만하네요. 

그나저나 약산은 조선땅으로 곧 간다지. 일이 끝나면. 일이 라는게. 아 그렇군. 휴의를 빼돌리고 나서, 조선으로 도주하겠다. 아주 소설을 쓰시는 군요. 왜 내 추측이 틀릴 것 같아. 아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소설이라니. 그냥 해 본 소리였어요. 그 사람이 안돼 보여요. 부인이 서대문형무소에 죽었대요. 그것도 여자로 당하기 힘든 고문을 받고요. 아마도 휴의와 함께 종로에서 전투를 벌이다 완용이 이끄는 종로서에 체포된 모양입니다. 휴의는 빠져 나오고요.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당신은 괜찮아요. 물론 나도 아파. 왜 안 프겠어.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당신이 그런 꼴이라고 가정해 봐. 열불이 나서 하루라도 살겠어. 그나저나 난 독립을 한다면 조선에서 할 거야. 운동을 하는데 왜 외국으로 떠돌아. 하더라도 조선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쳐야지. 그럴 상황이 안 되니 그렇지요. 그런가. 난 그런 사람이 부럽고 존경스럽고 겁이나. 다 던지고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난 모르거든. 내가 병원을 버리고 당신을 놔두고 그럴 수 있겠어. 난 못해. 누가 당신보고 운동 하라고 그랬어요. 여보, 당신은 이대로가 좋아요. 죽지 않고 산다는 보장만 있으면 나도 카이젤 수염을 달고 싶어. 자유주의자, 낭만가, 부자 그리고 독립운동가. 이제야 인정해 주는군요. 생각해봐, 낭만없는 혁명이나 독립이 있겠어. 낭만은 힘이고 그 힘이 결국 일을 내거든. 어쨌든 대단한 인물이 납셨어. 당신도 대단해요. 아니 더 대단해요. 난 당신이 조선에서 최고에요. 알아 모시겠습니다. 사모님. 말수가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연극 배우 흉내를 냈다. 그러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여순도 웃으면서 이제 그만 하세요, 하고 말렸다. 여보, 저 환자 수시로 체크하는 것 잊지마. 언제 쇼크가 올지도 모르니. 지금까지는 괜찮은 거 같아요. 걱정이 되서 하는 말이지. 알았어요. 그런데 밀양 사람이라. 내가 통영이니 고향사람이군. 일제가 그를 얼마나 잡고싶어하는지 몸값이 높아. 무장 투쟁의 일인자라고 포목점 집 사장이 말하더군. 조선독립은 무장투쟁 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데 그 사람이 증명하고 있다는 거야. 모르는 것이 없어요. 당신은. 포목점 집 사장과 어울린 덕분이지 뭐. 그나 저나 큰일이군. 큰일났어. 빨리 일본으로 도망 갑시다. 말수가 호들갑을 떨었다. 수시로 면회 온다고 했어요. 그 사람이 환자를 데려갈 임무를 띠고 있나봐요. 아이고 이거 참. 귀찮아 죽겠네. 어 시간이. 말수가 시계를 보더니 저녁만 먹고 올게, 하면서 급한체 했다. 위급한 환자를 두고 떠나는 것이 미안했던지 말수가 저녁만에 힘을 주었다. 포목점 사장을 만나려고. 아무래도 궁금해 할 것 같아서. 환자를 그냥 두고 가면 어떻게요. 금방 올거야. 당신도 있고. 박군에게는 내가 말했어. 나 올 때까지 퇴근 좀 미루라고. 의사 두 명이 있는데 좀 해봐, 그 사이 무슨 일이라고 일어나겠어. 저녁만이에요. 알았대두. 나가는 말수를 잡고 여순이 다짐을 받았다. 먼저 몽양이니 약산이니 이런 말은 해서는 안되요.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을까봐. 특히 환자가 휴의라는. 여순은 못미더워서 인지 한 번 더 말했다. 말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 정도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 나를 판단하느냐고 나무라는 투였다. 알았어요. 중요하니 한 번 더 점검했어요. 그래, 그래. 말수는 자신이 여순의 점검 대상이 된 것이 불쾌했으나 그것으로 꼬투리를 잡고 싶지 않았다. 골치 아픈 일이 갑자기 밀려들었는데 사소한 것으로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혈압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자고 있으니 한고비 넘겼다고 봐야지. 버텨낼 것야. 워낙 강한 사람이니. 그러나 모르지. 사람은 몰라. 당신이 간호를 잘 해줘. 말수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일부러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당신이 간호를 잘 해줘라고 말할 때는 뭔가 모를 아쉬운 감정이 볻받치는 듯했다. 알아서 잘할 텐데 잘하라고 부탁한 것이 조금은 속 보이는 행동 같아서 말수는 머쓱했다. 여순은 말수를 배웅하고 수술실로 돌아왔다. 박선생은 저녁 식사하고 오세요. 여기는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여순은 박군을 내보내고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방금 떠난 자리라 온기가 느껴졌다.

참, 열심히 해. 사람 좋고. 박군같은 저런 사람이 옆에 평생 같이 있으면 좋겠어. 일본도 같이 가보자고 해야지. 도움이 될 거야. 낯선 땅에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해. 여순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휴의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간 정도였다. 가볍게 맥박이 뛰는 느낌이 전해졌다. 죽지는 않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죽음을 무릎쓰고 달려들다니. 이런 삶이 그가 가는 길인가.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마음도 있을 거야. 돌아가는 세상이 하도 답답하니. 누구라도 나서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안 보이고. 비겁하게 남을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나서자, 이런 심정이었을거야. 난 그를 가엽게 여겨. 불쌍한 오빠.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여순은 그가 자신의 병원에 오래 머물기보다는 속히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생각같아서는 조선청년이 준 미역국도 끓여 먹이고 자신이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 부려서 맛있는 식사 한끼 대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수저를 앞에 놓고 식사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순은 그걸 느꼈다. 잡은 손을 꼭 더 잡았다. 어서 떠나. 떠날 때까지는 내가 노력할게. 눈에 보이면 더 마음이 쓰인다. 약산이라고 했던가. 오늘 밤에라도 아니면 내일 새벽이라도 와서 데려갔으면 좋겠다. 아니, 오늘 내일은 아니다. 적어도 사흘을 걸려야 한다. 움직이면 상처가 도져. 감염이라도 된다면 손쓸 수 없어. 그래도 미리 준비해 둬야지. 뭐지. 뭘 챙겨야지. 항생제나 소염제가 먼저고 다음은 소독하고 붕대갈고. 그거면 일단은. 그녀는 넉넉하게 챙겨야겠다며 일어섰다. 생각난 김에 준비해 놔야 한다. 급하다 보면 잊을수가 있고 그러면 환자는 위험에 빠진다. 이 난리통에 약품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순은 자기방으로 들어가 소고기를 싼 보자기를 한 번 털고는 그 보자기에 의약품을 챙겼다. 잘가라. 오빠야. 여순은 미리 작별인사를 했다. 휴의는 잠을 깼다. 푹자고 난 다음의 개운함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사방에서 치고 빠지고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비명을 질렀나. 누군가 잠깐 왔다 간 것 같은데 누구였지. 여순이었나. 아니면 왜놈 형사. 그러나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온 몸을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누가 찬물을 끼얹어 줬으면 싶었다. 고문이 낫다. 완용이 집게로 손톱을 뽑아도 이보다는 낫겠다. 그래 완용이 그립다. 그자의 워커발이 정강이를 걷어찼으면. 딱히 어느 쪽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 몸 전체에서 통증은 우열을 가리지 않고 강하게 와서는 밀려가지 않고 계속 머물렀다. 머물렀다가는 더 큰 고통을 몰고왔다. 이건 인간이 참을 수 있는 통증이 아냐. 다리의 감각은 없어. 얼굴은 사방에서 당겨. 어느 한 곳도 편한 곳이 없어. 말할 수 없고 입열 수 없고 물을 마실 수 없고. 화장실, 그래 화장실도 못가. 이런 창피함이 어딨나.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느낌이다. 통증은 잊었다. 부끄러움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차라리 피부를 벗고 싶다. 살점이 하나 없는 뼈로 남고 싶다.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다. 뼈만 남은채로 땅속에 쳐박히고 싶다. 깊은 동굴 그곳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겠지. 뼈를 말려야 해. 그 뼈에 부채질을 하고 싶어. 함흥 경찰서에서 치를 떨며 받았던 완용의 인두 고문이 선명하다. 그때는 네 마음대로 하라고 대꾸할 힘이라도 있었다. 입을 열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나 지금은 입조차 열 수도 손가락을 움직일수도 눈을 뜰 수도 없다. 대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여순아 말해봐. 휴의는 처음으로 죽음을 느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비틀댔다.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린다. 아니 핀가. 무언가 입으로 나오고 있는데 휴의는 멈출 힘이 없다. 이게 무슨 꼴이람. 여순이 보면 세 살 먹은 어린아이 따로 없다. 여순이라면 아이처럼 어르고 달랠거야. 다 와서, 거의 끝나가는데 내 임무의 완료 시점이 보이는데 이런 꼴을 당하다니. 그나저나 선생은 무사할까. 적들은 선생을 체포했을까. 위신이 말이 아냐. 대전을 앞두고 이게 무슨 낭패야. 조선청년은 왜 하필 그 때 전갈을 보냈지. 혹시 일본과 내통하는 건 아닐까. 일제는 왜 그를 내버려 두지. 잡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업스니까 그렇겠지. 설마 의열단장이 내통이라고. 말도 안돼. 그도 나 처럼 부상을 당했나. 그럴 리 없어. 그 사람은 한 번도 체포된 적이 없거든. 독립운동하는 사람치고 옥살이 한 두 번 안 해 본 사람이 없는데 그 사람은 그런 경험도 없이 날고 있어. 아냐 있어. 여러번 있어. 없다면 투쟁정신이 부족한 거지. 아, 맞다. 한 사람. 그 사람, 콧수염은 아냐. 어떻게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지. 카이젤 수염에게 한 수 배워야지. 총알을 피하는 법을. 이름이 열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것을 다 외우고 있는지도 물어봐야지. 나도 새로운 이름이나 지을까. 그나저나 공산주의자들이 설쳐서 걱정이야. 아니겠지. 약산은 연안파와 손을 끊었다고 하니. 기왕이면 일본식은 어떨까. 이름을 바꿔야해. 하려면 히로히토 정도는 돼야지. 그래, 지금부터 내 이름은 휴의가 아니라 이토우 히로히토야.  그래, 누가 물으면 와타나베이며 히로히토라고 해야지. 나카무라도 넣자. 나카무라 좋은 이름이야. 휴의는 긴 한숨을 쉬고 싶었으나 목구멍은 닫혀 있었다. 왜, 우리는 하나로 합치지 못할까. 당이 너무 많아. 임정으로 뭉쳐야 해. 아, 그래도 아파. 아프다고. 여순은 왜 안 오지. 마취가 떨어졌는데. 병원도, 설마 병원도 마취약이 없는가. 있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노래나 부를까. 신대한에 독립군..아니야. 이렇게 아플때는 군가는 아니야. 섬색시는 어때. 황혼이 찾아오면. 옛날이 그리워. 그래 그거야. 바닷가 모래밭에 해당화 잎이 지네. 죽마을 해당화는 여전하겠지. 점례야. 잘있니. 아니지. 지금은 여순을 불러야지. 여순아, 내가 그때 준 해당화꽃 잊지는 않았지. 오빠는 풍각쟁이야,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 만은. 선술집 풍경이 그립네. 김해송 노래가 좋지. 어중이떠중이 모여드는 선술집에서 아, 술맛 좋다 좋아 좋아 , 애 삼월아 한 잔 부어라 크윽 어 취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