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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지역을 무사히 빠져나온 휴의는 옷을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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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지역을 무사히 빠져나온 휴의는 옷을 갈아입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3.08.1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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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덜컹거릴 때마다 검은 커튼 사이로 낮게 깔린 빛이 잠깐씩 들어왔다. 어디로 얼마나 가야 할지 몰랐다. 휴의는 그런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도대체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하는 불만과 함께 무덤덤하게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군용 트럭 비슷한 것에 올라탄 뒤로 한 시간쯤 달렸을까. 이제는 가만히 있기보다는 무어라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어둠에 익숙해 지면서 앞자리에 앉은 짧게 깎은 노랑머리의 윤곽도 흐릿하게 나마 눈에 들어왔다. 휴의는 그러나 묻는 대신 눈을 감기도 하고 뜨기도 하면서 여전히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 것 조차 귀찮게 느껴졌다. 때가 되면 그쪽에서 입을 열겠지. 내가 입 아프게 나설 필요가 있나. 이건 뭐 누가 입을 먼저 여나 내가 하는 것처럼 되어 가네. 유치했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 휴의가 물었다. 침묵에 지고 만 것이다. 옆자에 앉아서 꾸벅거리면 졸고 있는 노랑머리에게 어디로 가느냐. 나도 몰라. 여러 군데가 있는데 그 중 하나 겠지. 그럼 도착 시간도 당연히 모르고. 노랑머리가 이쪽은 보지도 않고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듯한 실루엣이 느껴졌다. 그때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몸이 뒤로 쏠리지 않기 위해 휴의는 앞자리의 등받이를 손으로 잡았다.

운전석의 서양인은 자연스럽게 반동을 주면서 그 상황을 즐기는 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어. 위로 몸이 뒤로 넘어지는 것이 위로 올라가고 있다. 산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알지. 노랑 실루엣이 선심이라 쓰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아까는 맡지 못했던 입냄새가 순간적으로 났다. 아니 몸 냄새인지도 몰랐다.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발생한 냄새는 이리 저리 떠돌다가 휴의의 콧구멍으로 한꺼번에 다 들어왔다. 차 문을 열고 싶다. 당연히 안된다고 하겠지. 내가 참을성이 없는 인간으로 비쳐지는 것은 참을 수 없어. 그러니 차라리 모든 냄새를 빨아 들이는 것이 나아. 휴의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천천히 쉬어지는 것이 되레 고통이었다. 매도 한 번 맞고 끝내는 것이 좋아. 아, 그러나 이 역겨움은 이겨내기 힘드네. 참기 힘들어. 한 번 그런 생각을 하자 휴의는 창문을 열어서 환기 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산이라면 공기도 시원할 것이다. 산소가 많은 곳인데 이 무슨 역겨움인가. 휴의는 답답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차의 반동 때문이 아니어도 그는 어색한 제스처를 상대가 알아챌 수 있도록 몸을 비틀었다. 노랑머리가 어디가 불편 하냐는 듯이 시선을 던졌다. 냄새 이야기는 일정 꺼내지 않았다. 답답하다는 핑계를 댔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 였으며 휴의 자신에 대한 감정의 절제였다. 그러나 앞자리나 옆자리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럴 의사가 없다는 표시였다. 휴의는 참아야 했다. 달리 도리가 없었다. 차가 기울어지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왔다. 경사가 심한 것을 보니 언젠가 한 번 오본 적이 있는 세번째 훈련장인가.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면서 옆자리 노랑머리는 발을 휴의쪽으로 쭉 뻗었다. 워커 발이 휴의의 정강이를 건드렸다.

더러운 양키놈. 속으로 중얼 거리면서 휴의는 그가 더 편하게 뻗을 수 있도록 다리를 한쪽으로 오무렸다. 마음과 행동이 따로 놀았다. 나는 양보할 준비가 돼 있어. 너도 그것을 알지. 내가 몸을 새우처럼 구부렸잖아. 다리를 오무리고 네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했어. 너도 봤지. 내가 이런 사람이야. 난 상대에게 확실히 알렸다. 양보심이 많은 사람. 손해 볼 줄 아는 사람. 속과 겉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휴의는 알고 실천했다. 양놈이, 덩치가 좋아. 그래도 다리가 너무 나한테 왔어. 뭐라고 떠드는 거야. 들었나. 휴의는 아차 싶었다.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별 것 아니야. 다리가 저려서 피가 안 돌아. 그래서 신음 같은 소리가 나왔나 봐. 그럼 너도 나처럼 옆으로 뻗어. 그가 모르는 것을 알려준다는 태도로 말했다. 휴의는 고분고분 따랐다. 그렇게 하자 정말로 피가 도는 것처럼 편했다. 거의 다 온 것 같아. 차가 평탄한 길로 접어 들었다. 휴의는 앞자리 의자를 잡고 있던 오른손을 옆구리에 닿도록 끌어내렸다. 기어를 바꾼 차가 속력을 냈다. 평지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달리다가 멈춰섰다. 연병장이군. 생각보다 빨리 왔어. 내려. 오케이. 원하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것에 만족감을 표하면서 휴의가 상쾌하게 받았다. 밝은 곳으로 나오자 눈이 약간 부셨으나 곧 적응이 됐다. 예상대로 미군 폭파 훈련소는 산 속에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천혜의 요소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곳에는 민간인도 보였다. 군인 훈련소 같지 않았다. 걷자. 저기까지 가야해. 옆자리 노랑머리가 예의 역겨운 냄새를 풍기면서 휴의에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여기가 목적지 아냐. 왜, 실망인가. 두 어 시간 더 가자. 뭐라고. 두 시간이라고. 뒷자리의 그가 앞장서서 걸었다. 운전수는 따라오지 않았다. 작은 오솔길이 나타났다. 여기 서봐. 저쪽 보이지. 돌이 우뚝 솟아 있는. 저 산을 넘어야해.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얼추 보아도 상당히 떨어진 거리였다. 저 정도라면 빨리 걸어도 정말로 두 시간 정도는 가야한다. 이건 뭐지. 도대체 어디서 훈련을 한다는 거야. 휴의는 조금 당황했다. 예상했던 곳과 벗어난 장소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만이었다. 그러나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미리 알게 줄게. 이건 탑 스크릿이야. 하지만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알려주지. 발설하지 않을게. 일행이 있다. 너와 같은 조선인 2명과 중국인 3명 도합 5명이다. 휴의는 다섯 이라는 숫자를 세면서 나머지는 어디 있는지 두리번 거렸다. 어, 여긴 없어. 한 시간 전에 출발했어. 너도 그들과 같이 출발했어야 하는데 일정이 늦어진 것 뿐이다. 노랑머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그런 것은 중요하다. 휴의는 남자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선인이 2명이 더 있다고. 분명히 선생은 나 혼자 가는 것으로 말했는데. 거짓말은 아닐테고. 오는 사이 작전이 변경됐나. 아니면 선생 모르게 미군이 다른 루트로 데려온 건가. 휴의는 궁금했으나 가보면 안다는 생각에 거기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좀 쉬자. 점심때다.  휴의는 어깨에 멘 배낭을 내려 놓았다. 차에 타면서 받았던 배낭이 묵직해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먹을 거야. 식사는 해야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그리고 도착하면 바로 저녁 훈련이 있어. 배낭을 뒤져봐. 도시락 말고 갈아 입을 옷과 분해된 기관총이 들어 있다. 알겠지만 조심해서 다뤄. 무거운 건 이유가 있었구나. 기관총이구나. 미제총. 얼마나 그렸던가. 총독부 습격때 이런 총만 있었더라면. 그때 가졌던 기관총은 제대로 역할을 못했어. 나가다 총알이 걸렸어. 진작 내 손에 있었어야지. 정말 미제구나. 휴의는 미제라는 말에 한풀 꺾였으나 태연히 말했다. 애인처럼. 휴의의 말이 떨어지자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했다가 나중에 알고는 노랑머리가 반색을 하면서 크게 웃었다. 너 그거 알아. 네가 처음으로 농담했어. 냉혈한 인줄알았지. 한 시간 이상 차안에 있으면서 너 처럼 무뚝뚝한 애는 처음 봤거든. 노랑머리가 옆구리를 뚝 치면서 말했다. 휴의는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네가 하도 졸거나 앞만 보고 있어 조심하느라고 그랬다고 둘러댔다. 내가 졸았다고. 오 노. 그는 그 말을 하고는 딴전을 부리면서 입을 닫아 버렸다. 대꾸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이 내 교관인가. 폭파 전문가가 바로 이 녀석인가. 아닐거야. 단지 안내하는 가이드 이겠지. 어쨌거나 휴의는 미군이 꺼낸 전투식양에 입을 댔다. 처음에는 어떻게 먹을 줄 몰라 그들이 하는양을 보고 그대로 따라했다. 딱딱한 것을 어떻게 먹나 했는데 물을 붓자 금세 풀어지면서 먹을만 했다. 맛도 있고 배도 불렀다. 이게 미국의 힘이구나. 아무데서나 배불릴 수 있다는 것. 이걸 먹으면 전투의욕이 생기겠다. 배 부르면 힘이 생기지. 돌격앞으로는 구호만으로는 안돼. 말로만 듣던 미군의 전투 식량에 대한 첫 인상은 이랬다. 우리도 다음 침투때는 이걸 준비하자. 어떤 식으로든 확보해야지. 병사들에게 먹는 시범을 보여야지. 별 걸 다 시범 보이는군. 분명 나처럼 좋아할 거야. 휴의는 먹는 모습을 보는 부하들을 생각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산길은 급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잡목들을 헤치면서 나가야 하는 구간도 있었고 줄 없이는 오르기 힘든 바위 구간도 통과했다. 상대는 이 길이 제법 익숙한 듯이 거침없이 쓱쓱 앞으로 나갔다. 눈에는 잘보이지 않았으나 몇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고 노랑머리는 그 흔적을 따라 귀신처럼 가는 길을 찾아냈다. 그는 날랬다. 양코쟁이라고 놀렸던 휴의는 곧 후회했다. 그를 따라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산을 타는 것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웠는데 녀석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휴의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도 훈련의 일종인가. 휴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남자와 약간의 간격을 두었다. 낙오라는 느낌을 주지 않을 만큼만 거리를 유지했다. 뒤따라 오는 냄새를 피하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걸 알까. 양놈이. 자신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그래서 거리를 두고 있다고 이 놈아. 그러나 항상 똑같은 간격을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어떤 때는 조금 더 멀어졌다. 경치 구경을 하느라고 한 눈을 팔았기 때문이다. 앞서가던 노랑머리가 잘 따라오는지 멈춰서서 종종 뒤돌아 봤다. 그는 제법인 걸. 하는 시늉을 내면서 제 속도를 유지한채 멈추지 않고 계속 이리저리 산길을 옮겨 다녔다. 임정이 추천했다니 과연 실력있는 자군. 조센징 놈이 성의가 있어. 장교감이야. 저런 놈이 열 명만 있어도 침투조하나는 제대로 만들겠어. 노랑머리는 휴의를 높게 평가했다. 이제 점심을 먹었던 곳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아래가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휴의는 잠깐 멈춰 왔던 길을 뒤돌아봤다. 차가 멈춰 섰던 곳의 장소가 어디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곳은 숲에 가려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인간이 만든 길도 구조물도 시야에 나타나지 않았다.

벌써 그렇게 됐나. 휴의는 다시 몸을 돌려 앞선 사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르게 걸어 나갔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차에서 내렸을 때 좀 자세히 볼 걸 그랬나. 목이 막혔다. 휴의는 갈증을 내색하지 않았다. 전투 식량이 조금 짰나. 그럴수도 있다. 처음 먹어본 미제음식이 뱃속을 흔들어 놓았다. 시계는 오후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잠깐 쉴까. 노랑머리가 말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럴거면 뭐하러 물어보니. 의사를 묻는 거 아니었어. 그럴 마음 없거든. 여기서 딱 한잔 하자. 수통을 흔들면서 노랑머리가 웃었다. 이 웃음. 그가 한 모금 먹고 나서 캬 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물을 먹고 캬. 그러나 비밀은 곧 풀렸다. 노랑머리가 수통을 내밀었다. 그때 알코올 냄새가 노랑머리의 냄새와 섞여왔다. 너도 먹어. 술이구나. 휴의는 이게 양주라는 것을 알았다. 양주를 먹는다고. 도착하면 훈련이 있다고 했는데. 술 먹은 훈련생을 교관이 받아줄까. 휴의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 산속 깊은 곳에서 양놈의 주는 양주를 먹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래도 되는 거냐. 안 된다는 듯이 내 사전에 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놀라는 제스처를 썼다. 그러나 손은 이미 수통을 잡고 있었고 노랑머리와 의미있는 눈짓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는 그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수통에 입을 대고 벌컥 한 모금 먹었다. 캬. 노랑머리와 똑같이 캬하고 소리를 냈다. 정말 그 소리는 휴의가 일부러 낸 것이 아니다. 저절로 나왔다. 독했다. 처음에는 냄새로, 다음에는 목구멍에서, 그 다음은 위장에서 캬하는 소리가 올라왔다. 이게 양주의 맛이구나. 미국의 힘은 이런 것인가. 두 다리가 풀리는지 몸에서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변화가 찾아왔다.

수통을 건네주고 휴의는 옆에 있는 배낭을 들어 가슴에 앉았다. 곧 출발하자고 하면 바로 일어날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미국인은 조금 더 있었다. 그러더니 좋은 말이 생각났다는 듯이 애인처럼 안고 있니. 하고 물었다. 술이 들어가자 기분이 좋아진 그가 그쪽으로 대화를 유도했다. 너 그거 알아. 네가 처음으로 농담했다는 거. 휴의가 그의 목소리를 흉내냈다. 노랑머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대단한 유머를 던진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래, 뭐든지 안고 있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지. 너도 그렇지. 안고 있는 것은 좋은 것이야. 휴의가 말했다. 노랑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수통을 받아 들고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이번에는 휴의에게 권하지 않았고 권했다고 해도 휴의는 노탱큐 하면서 손을 저었을 것이다. 휴의는 손을 저을 필요가 없자 그 손을 배낭속으로 집어 넣었다. 길쭉 하면서도 무거운 것이 손가락 끝에 걸렸다. 직감적으로 그는 분해된 기관총의 총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몸통을 찾기 위해 손을 반대쪽으로 움직이자 작은 개머리판이 만져졌다.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휴의는 배낭속으로 고개를 가까이 댔다. 검은 물체가 가방안에서 희뿌옇게 실체를 드러냈다. 네 애인이 거기 숨어 있었구나. 노랑머리가 다시 애인을 들먹였다. 그래, 내가 원했던 게 이거였어. 휴의는 고개를 빼면서 좋은 냄새가 나. 기름 냄새. 총을 닦을 때 나는 기름 냄새가 나는 좋아. 

미국인이 휴의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얼굴은 노란 털로 덮여 있었다. 제대로 보는 얼굴이었다. 파란 눈이 자기 바로 앞에 있었다. 눈 앞에서 파란 눈은 나무를 타는 뱀의 비늘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화사의 붉은 무늬 사이로 비치는 푸른 빛이었다. 독이 없는 놈이지만 물리면 기분 나쁘니 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녀석을 죽이든 살리든 그것은 피하고 난 다음 일이었다. 기분 좋은 눈은 아니었다. 맞설 생각이 없다는 듯이 휴의가 눈을 배낭쪽으로 돌렸다. 감촉이 좋아. 난 총을 잡을 때면 철이 주는 그 묵직하고 차가운 느낌을 사랑해. 애인처럼. 이번에도 노랑머리는 그렇게 말했다. 이 자는 애인처럼 말고는 다른 말을 구사할 줄 모르나. 분해된 기관총 옆에는 딱딱한 군화 굽이 만져졌다. 군복같은 꾸러미도 있었다. 미군은 이런 식으로 미리 군장을 꾸리나 보군. 그 옆에는 노랗게 빛나는 둘둘 말린 탄티도 있었다. 결합하면 바로 발사가 되나. 뭐, 이 정도면 훈련이고 나발이고 바로 침투해도 되겠는걸. 휴의는 더 살펴보지 않고 군장끈을 당겼다. 휴의가 일어서자 남자가 다시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를 벗어나면 바위가 나타났고 바위를 지나면 다시 숲이 이어졌다. 그가 길을 잘못들었는지 멈춰서서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휴의도 사람이 걸어 다닌 흔적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가 다시 앞장섰다. 틀렸어도 정상쪽으로 가면 목적지가 있다는 듯이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새로운 목표 새로운 무기, 휴의는 언제나 새로운 것에 끌렸다. 그것이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를 넓혀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국어 일본어 영어를 익혔다. 알수록 신비롭고 재미나는 일들이 늘어났다. 이곳은 또 어디인가. 어딘지는 몰라도 새로운 곳이 틀림없군. 알지 못해 불안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을 가고 있다는 흥미로움이 휴의의 마음을 산의 능선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감싸고 돌았다.

동지, 수고해 주시오. 내민 손을 잡았을 때 휴의는 그 손이 크고 널찍하다는 것을 느꼈다. 따뜻함보다는 그런 느낌이 왜 왔는지는 모른다. 동지, 수고해 주시오. 휴의는 수고해 주시오를 한 번 더 새겼다. 무엇을 수고해 달라는 말인가. 어쨌든 나는 지금 수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고는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막 시작되고 있다. 무언가 감동적인 말을 기대했으나 선생은 그 말을 하고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동지, 수고해 주시오. 그게 휴의가 떠날 때 임정의 선생이 한 말의 전부였다. 새벽이 되어도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애초 기대한 것과는 다른 것에 휴의는 화가났다. 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나가기는 더 어려운 곳이 이곳 아닌가. 더구나 이곳이 어딘지도 모른다. 굳이 그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조교들 나름대로도 이유는 모르지만 화가 나 있었다. 새벽 세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도착해서 저녁 먹자마자 기기 시작했으니 이제 취침해도 될 성싶었다.

그러나 훈련 조교들은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위에서 쉬어도 좋다는 명령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들도 우리만큼 쉬고 싶을텐데 그런 내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조금 있으면 아침이 밝아오는 이 새벽에 고함을 치고 싶겠는가. 그러지 못하는 것이 자신들 앞에서 땀내를 풍기는 훈련병 때문이라는 듯이 그들은 화를 더 센 훈련으로 앙갚음했다. 그러나 사람은 기계가 아닌지라 밤새워 돌릴 수는 없었다. 사이 사이 휴식이 주어졌다. 그때마다 훈련 동료들은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았다. 휴의는 팔로 상체를 기댄 채 그런 자들을 보았다. 저들과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으나 고개는 자꾸 아래로 가라앉았다. 겨우 눈을 떠 보니 산허리에 걸친 검은 하늘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그 사이로 빛나는 별 몇 개가 서쪽 하늘로 기울어져 있었다. 십분 이해해도 이것은 아니다. 체력 훈련이라면 자신 있었다. 그러나 모아놓고 설명도 없이 그저 뛰고 기라고만 한다. 난 독립군 대장이다. 아무리 폭파 훈련이 중요하다 해도 미군의 대우는 이런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입에 묻은 거품을 휴의는 손등으로 닦아냈다. 혀에 댄 맛은 짠기 가득한 소금물과 진배 없었다. 난 너희들과 달라, 조선독립군의 장교다. 나에게 너희들 왜 그러니. 휴의가 옆에 앉은 조교에게 다른 훈련병들이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날 인도한 노랑머리는 어디있어. 그라면 나의 불평을 이해할 거야. 난 그런 거에 관심 없다. 뭐라고. 계급장에 신경 안 쓴다고. 나에게 걸리면 별들도 뺑뺑이 돌아야 해. 더구나 조선독립군 장교. 입 다물고 훈련이나 받아라. 어디서 듣보잡 같은 소리 하네. 조교가 침을 뱉었다. 더 물으면 죽사발을 만들겠다는 신호였다. 휴의는 불쾌했다. 깔보는 자의 그 눈빛은 동서양이 다를 바 없었다. 이제 가까운 곳의 시선을 식별할 만큼 날이 밝았다. 날을 샜구나. 휴의는 길게 다리를 뻗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그  흑인 조교에게 심하게 따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조교가 무얼 알겠는가. 상관이 시키니 그렇게 하는 것뿐이다.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다. 공짜로 시켜주는 훈련 아닌가. 손해 보는 쪽은 양키들이다. 그러니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자. 휴의는 다시 관대한 마음이 됐다. 이들 가운데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훈련을 마쳐야 한다. 그게 임정에 대한 나의 예의였다. 아니 조선에 대한 지켜야 할 나의 의무였다. 조선독립군이 자신을 포함해 3명, 나머지는 모두 장개석 군 소속이었다. 아직 그들과 통성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더구나 조선인들끼리도 그랬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시간이 날 것이다. 원래 입소 날이 제일 군기가 제일 세지 않은가. 그런 좋은 마음이 들자 휴의는 어서 날이 활짝 밝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무리 인간병기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밤낮이 바뀌면 잠이라는 것을 거쳐야 한다. 아, 잠들고 싶어라. 그대 곁에 누워 잠들고 싶어라.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실 휴의는 잠보다도 다른 목적 때문에 시간에 집착했다. 체력 훈련 말고 바로 폭파훈련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정신이 고갈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짝 차리고 하는 훈련은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아무리 체력 훈련이 폭파 교육의 양념이라해도 너무 나갔다. 내일쯤이면 아니면 늦은 오후라도 다이너마이트를 손에 쥘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양념은 그만 치고 요리를 먹고 싶어 휴의는 자신의 다독였다. 다이너마이트를 소총처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때까지는 참고 견디자. 참지 않으면 다른 방법도 없다. 설마 그들이 이런 식의 뺑뺑이만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휴동지, 수고해 주시오. 선생이 말한 수고는 바로 이런 것이다. 참고 견디는 것. 이런 망상에 사로 잡혔을 때 훈련 조교가 시가렛. 하면서 담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휴의는 고맙다며 냉큼 받았다. 담배는 끊은지 오래였다. 그러나 늘상 가지고 다녔다. 사교를 위해 혹은 변장이나 주변 시선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소품으로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휴의는 맛나게 피는 시늉을 했다. 연기를 콧구멍 두개 사이로 연신 뿜어 냈다. 그러나 목구멍 속에 들어갔다 나온 연기는 아니었다. 속으로 집어 넣지 않고 입에서만 맴도는 뻐끔 담배였다. 연기를 뿜으려 이제 살겠다는 듯이 휴의는 다시한 번 조교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여기서 나가면 내가 조선술 한 잔 사주겠다. 조선술. 조선에도 술이 있나. 이거 말이야 방구야. 휴의는 어이가 없었으나 너 막걸리라고 알아. 위스크보다 고급지다. 입에 착 달라 붙는다고. 뿜을 때만 빼고는 다 좋아. 뿜다니. 트름 말이다. 트림하면 아주 고역이거든. 막걸리라고 했나. 그래 말이라도 고맙다.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 휴의는 빈정대는 듯한 흑인 교관의 말을 뒤로 밀어냈다.

휴의에게 이런 미끼 상품은 장점이었다. 받을 때는 받더라도 던질 줄도 알아야 했다. 조교는 네가 사주는 술은 맛이 있을 거라 면서 던진 미끼를 덥썩 물었다. 그러면서 오후 일정을 이야기 했다. 오전 같은 훈련. 휴의는 맥이 빠졌으나 그런 시늉을 하지 않았다. 오케이.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길게 연기를 날렸다. 이 맛으로 훈련 받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그런 너스레는 곧 멈췄다. 다시 훈련이다. 도열한 훈련병들은 우에서 좌로 연병장을 다시 돌기 시작했다. 미군이 센 것은 달리기 때문인가. 이것도 미국의 힘이다. 휴의는 불평하지 않았다. 완전군장에 작은 기관총을 메고 달렸는데 훈련병들의 박자가 척척 맞았다. 아직은 그럴 힘이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 후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아주 단순한 훈련이었으나 병사들 중 일부가 쓰러졌다. 체력의 한계가 온 것이다. 날 밤을 세고 하는 아침구보는 정신줄 놓기에 딱 알맞았다. 그러나 흑인 교관은 쓰러진 사람을 그대로 두고 계속 달리를 원했다. 그래서 쓰러지지 않은 나머지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았다. 그렇게 대 여섯 바퀴 더 돌고 나자 또 쓰러지는 자들이 나타났다. 나중에 쓰러진 자는 먼저 고꾸라진 자들의 위에 엎어졌다.

생각보다 강도가 셌다. 서 너 바퀴를 더 돌고 나자 훈련병의 반 이상이 비틀거리다 넘어졌다. 휴의는 최후의 일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면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최하위도 최상위도 아니다. 적당한 시간이 지금이라고 판단하고 휴의는 다른 병사들처럼 일부러 정신 줄을 놓았다. 갑자기 모든 것이 텅 비어 버렸다. 속은 아무것도 없다. 노른자를 뺀 껍질만이 남았다. 그는 껍데기처럼 가벼운 몸으로 흙냄새를 맡았다. 넘어질 때 총구가 귓가를 가볍게 때렸다. 총신이 손에서 해방됐다. 이제 오른 손으로 잡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온몸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온기는 아무데도 없고 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흑인 조교와 다른 한 명의 조교가 쓰러진 자들에게 물을 끼얹었다. 살아서 일어나는 자들은 겨우 지탱했다 또 쓰러졌고 그러면 다시 물을 뿌렸다. 게릴라로 여러 해를 살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적도 부지기수였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육체는 떠났고 정신만이 겨우 남아서 찌그러진 몸뚱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군이 센 이유를 알겠다. 입술이 위아래로 들러 붙어 물 한 모금조차 넘길 수 없었다. 이렇게 훈련받다 죽는구나, 휴의는 마저 수고 하지 못하고 죽는 자신을 자책했다. 억울한 개죽음은 이런 것이다. 하늘의 별은 스러진지 오래고 낮의 해가 산등성이 타고 넘어왔다. 또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구렁이가 담장에 기대서 들어 오듯이 슬그머니 연병장으로 들어온 해는 쓰러진 자들의 눈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다른 곳은 조준하지 않았다. 빛을 받은 눈이 꿈쩍거렸다. 휴의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꿈속을 벗어 나는 데는 여러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조교들은 시간이 없었다. 그들을 억지로 깨웠고 다시 훈련으로 내몰았다. 그런 훈련을 일주일 받고 버텨 냈을 때 다이너마이트가 눈앞에 들어왔다. 본격적인 폭파전문가 훈련이 시작됐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다이너마이트는 이제 식은죽처럼 먹기 좋게 다가왔다. 그래 식은 죽. 그 식은 죽이 동지 팥죽처럼 붉었으면 좋겠다. 음, 이 냄새. 잘 삶아 졌군. 식은 팥죽과 폭약 냄새가 다르지 않았다. 훈련 조교는 어느 날 막사의 한 곳으로 휴의를 데려갔다. 계급장 없는 미군이 그를 맞았다. 바로 노랑머리였다. 정복을 입고 모자를 깊숙히 눌러 써서 처음에는 누군지 알지 못했다.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면서 너는 나무랄 데 없는 일등 폭약전문가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 노랑머리. 휴의는 아는 체를 했다. 너도 그렇게 새악하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와 함께 올 때부터 난 생각했어. 최후로 남은 자 가운데 네가 포함될 거라고. 내 예상이 맞아 떨어진 거지. 넌 이제 멀리서도 건물을 척 보면 얼마의 양이면 폭삭 주저앉힐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올거야. 그 계산은 정확했고 오차가 적어. 미군도 그를 인정했다. 이제 나가면 된다. 수료장은 필요 없다. 선생을 만나 새로운 명을 받고 수행하면 된다. 조선독립의 무장 투쟁역사에서 하나의 획이 그어질 것이다. 내일이려나. 내일 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려나.

휴의는 노랑머리의 두툼한 입술이 그렇게 말하기를 기다렸다. 노랑머리의 두툼한 입술. 계급장은 없어도 그는 조교 이상의 군번일 것이다. 조교 대장. 그렇다면 중사 이상. 초급 장교인 소위나 중위 정도. 아무렴 어때. 난 이제 미군이 인정하는 다이너마이트 전문가야. 그러니 허락해줘. 내일 떠나라고. 그러나 내일 가도 좋다가 아니었다. 두툼한 입술이 움직였을 때 전혀 뜻밖의 말이 나왔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같은 단어에 휴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선글라스를 낀 노랑머리의 두툼한 입술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뒤통수를 일격에 맞은 느낌이었다. 결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조선이 아니라고. 하다못해 중국 내 일본 시설이 아니라고. 휴의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자 그는 너를 이제부터 미군 특전단 소속 폭파전문가 초급 장교 소위로 임명한다는 말이 들렸다. 종이쪽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구두로, 그 순간 휴의는 미군이 됐다. 미군 이라고. 계급은 밥풀떼기 하나. 혼란스러웠다. 조선독립군이 미군이라고. 그리고 인도네시아로 간다고. 휴의는 그 순간 뭐가 잘못돼도 엄청나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휴가 명령서가 전사통보로 바뀌는 순간과도 같은 것이었다. 난, 조선독립군이다. 아냐, 넌 오늘부로 미군이다. 죽어도 미군으로 죽고 살아서 공을 세워도 미군이다.

마이클 휴가 휴의가 받은 미군 이름이었다. 마이클 휴. 조선독립군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임정의 선생과 당신네 장교가 약속했다. 그런 말 듣지 못했다. 너는 지금 순간 어떤 변명이나 거부도 안 된다. 오로지 내 명령만 따른다. 아니라면. 군인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조선독립군도 군인 아냐. 그렇다면 명령불복종이 어떤 댓가가 따른 것을 알겠지. 설마 모른다고 발뻼하는 거야. 휴의는 두 무릎이 꺾이는 것을 느꼈다. 미군이라니. 임정의 선생을 봐서 네게 주는 특별대우다. 미군말고 외국군 소속이 이처럼 짧은 훈련을 받고 장교가 된 사례가 없다. 네가 유일하다. 너는 미군의 자랑스런 장교인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 이제 휴의는 선글라스의 한 마디로 조선독립군 대장에서 미군 특전단 소위가 됐다. 미군으로 살고 미군으로 죽고 싶지 않았다.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첫날부터 생사를 넘나들었던 것은 아니다. 미군 소위가 되려고 까무라쳤던 것도 아니다. 휴의는 그러나 더 대꾸하지 않았다. 따지듯이 묻지도 않았다. 다른 애들은 다 좋아하는데 너만 왜 그러니. 같은 대답을 듣고도 잠시 멍하니 있을 뿐 상대를 화나게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다. 괜히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힐 이유가 없었다. 반항하는 인물은 휴의와 거리가 멀었다. 퇴소 날짜는 삼 일 후다. 휴의는 생각을 하고 생각한 것을 되풀이 확인하면서 디데이를 언제로 할지 고민했다. 선글라스의 말대로 다른 훈련병들은 자신이 미군이 된 것에 대해 크게 좋아했다. 미군은 돈도 많이 벌고 대우도 좋다. 조선인들도 미군 통보를 받고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잘 때도 낮에 벌렸던 입을 그대로 벌리고 잠에 들었다. 탈출이다. 그것만이 정답이다. 지급받은 미군복을 관물대에 가지런히 정리하면서 휴의는 그렇게 다짐하고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시간은 있었다. 삼 일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안에 해치워야 한다. 믿을 만한 동료는 없다. 홀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도움이 될지 아닐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여기 남은 사람은 11명이다. 왜 13명이 아니냐고. 훈련 중에 두 명이 죽었다. 남은 자들 중 자신이 탈출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없다. 조선인과도 인사를 했으나 신뢰를 얻을 만큼 충분히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은 의열단 소속이라고 했나. 조선청년이 만든 그 의열단이라면 믿을만 한가. 휴의는 그러나 속단할 수 없었다. 그도 겉으로는 만족하고 있다. 행동은 불만족인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것은 만족, 불만족의 판단이 아니다. 애초의 약속을 깨버린 쪽의 잘못이다.  훈련후 미군 요원 소속이 된다면 애초에 입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독립군을 양성해 주겠다고 분명히 그렇게 전해들었다. 임정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에 미군이라니. 전혀 다른 길에 화가 났지만 휴의는 폭파전문가를 수료한 것으로 불만을 대체했다. 그럼 그렇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양키들이 남의 나라를 위해 그냥 교육 시켰을리가 없지. 휴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것에 대한 복기는 나중일이라고 여겼다. 여기를 빠져 나가는게 우선이다. 마음은 어느 새 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들을 욕해본 들 자신의 앞길에 도움될 일이 아니었다. 왜 약속이 다르냐고 묻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 기회를 잡고 싶지도 않고 그것을 아쉬워할 형편도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있다. 어둠속에서 휴의는 눈을 떴다. 불침번이 흐릿한 붉은 조명 아래 목각 인형처럼 침상에 앉아 있었다. 군기가 빠진 모습이었다. 입소 첫날에는 군복에 총까지 메고 바짝 긴장해서 한 시간 내내 서 있었는데 퇴소를 앞두고는 이런 지경까지 왔다. 특수부대원도 사람이다. 그걸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좋은 징조라고 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앉아 있기보다는 누워서 자야 했다. 녀석은 몸에 벤 군기로 앉을 지언정 눕기를 거부하고 있다.

앉은 자는 금방 설 수 있다. 그가 선다면 일은 그르치는 것이다. 자는 틈을 타서 빠져 나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데 오늘은 틀렸다. 추격대가 온다면 발견하기 까지 시간은 길수록 좋다. 늦었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추격을 포기할지 모른다. 겨우 한 명 탈영한 것은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폭파 전문가는 휴의 아니어도 있다. 더군다나 나는 탈영병도 아니다. 정식 군대로 들어온 것도 아니니. 내가 여기서 훈련 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미군 정보당국이나 임정의 선생, 같이 훈련받은 의열단과 장개석 군의 동료 훈련병 뿐이다.  나는 미군으로 오지 않았어.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누군가에게 속았을지라도 나는 미군은 아냐. 말레이시아 정글 숲에서 뱀에 물려 죽고 싶지 않아. 죽어도 조선땅에서 할 거야. 썪어도 조선땅에서 썪고 싶어. 그러고보니 훈련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선생도 자신도 말하거나 묻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훈련 중에도 훈련이 끝나면 어떻게 된다는 말을 미군도 하지 않았다.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는 말은 당연히 없었다. 휴의는 휴의대로 훈련이 끝나면 당연히 처음 차를 탔던 상하이 어떤 곳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을 뿐 다른 옵션은 없었다. 미군의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감지덕지 했으니. 

어쨌든 전시에는 잘못된 것이 많고 틀린 것을 바로 잡을 시간이 없다. 휴의는 다시 눈을 감았으나 말똥말똥 거리는 정신까지 감을 수는 없었다. 그래, 오늘은 그냥 보내자. 내일은 앉은 자가 불침번이 아니니 다른 자가 눕기를 기대해 보자.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배에 오르기 전에, 비행기에 타기 전에 빠져나가기면 하면 된다. 덥고 습한 동남아의 어느 곳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상황만 피하자. 그런 생각이 들자 휴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아침을 맞았다. 식후는 정신교육의 연속이었다. 간혹 전황에 대한 설명도 있었으나 교육 내용에 대한 함구와 혹시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면 절대 발설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자신의 신분은 언제나 숨겨야 한다는 것 정도였다. 너희들은 정식 군번을 받지 않았어. 그러나 미군이 책임질 거야. 우리 미국 믿지. 내 말은 곧 미국의 명령이다. 노랑머리가 목소리에 힘을 줬다. 현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교육생 중에는 없었다. 지리에 정통하고 인근에 살았다고 해도 이곳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었다. 상하이 외곽 어디쯤인지 만주인지, 베이징을 벗어났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차에 타는 순간 검은 장막에 덮혔기 때문이다. 한 두 시간 이동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차에서 내려 두 세시간 걸어 왔다. 산과 산만을 타고 왔다. 제 3지대라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이제 우리는 미군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 교관의 말이 귀에 쟁쟁하게 맴돈다. 그 말은 라이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방송 처럼 높낮이가 일정했다. 

복도 앞의 작은 거울 앞에서 휴의는 군복을 단정하게 고쳐 입었다. 통상 미군이 입는 전투복 차림이었다. 보기에 괜찮았다. 그래서 자신을 향해 거수 경례를 올려 붙였다. 피부에 닿는 군복의 매끄러운 질감을 느끼면서 이옷을 입고 싸우면 잘 싸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옷이 날개야. 총알도 피해갈까. 아냐, 미군복을 입어도 총알은 뚫고 지나가. 하, 어쩌다가 내가 미군이라니. 휴의는 자신의 운명, 운명에 대해 그래, 이것은 운명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전쟁이 끝나고 그때까지도 살아 있다면 나는 미군 전역병으로 대우 받을 수 있을까. 정식 군번을 받은 미군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군번 없는 용사가 아닌가. 군번 없는 군인은 없다. 그러니 나는 미군이 아냐. 교관은 우리 미군 여러분이라고 호칭했지만 정말로 그럴까. 미국정부는 우리의 존재를 알기는 알까. 의심투성이었으나 휴의는 선글라스가 하는 말을 꼼꼼히 들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와 자유와 힘에 의한 질서에 대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군이 기꺼이 참전한 것은 백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다. 허울뿐인 대동아평화론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쟁을 하면서 평화를 외치는 것은 부도덕한 짓으로 정권을 잡은 자가 정의사회구현을 구호로 내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냐 그것이 옳아. 옳으니까 그렇게 장수하지. 자연사 할때가 산자는 살아서 정의를 실천한 자야.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는 말은 옳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휴의의 관심사는 세계 평화보다는 조선 독립에 먼저 가 있었다. 나라 없는 백성에게 세계 평화니 자유니 하는 말은 공허했다. 미군은 조선이 어떤 나라에 점령 당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일본과 대충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는 미국이 다 먹고 조선은 일본이 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조약에 두 나라가 서명했다는 소식도 들어서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일본과 타협하기를 미국은 바라고 있다. 정말일까. 그러면 미국이 말하는 자유와 평화는 무엇인가. 힘없는 나라는 그런 것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예외없는 규칙은 없다는 말이지. 그 말은 이런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았으면 싶었다. 평화를 독점한 그들은 단 한번도 두툼한 그 입에 조선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적이 없었다. 생각은 여기까지. 의심도 여기까지. 대원들은 지루한 오후 수업에 딴짓을 하기도 했고 잠깐 졸기도 했다. 교관은 너무 심하지 않으면 제지하지 않았다. 죽음을 뚫고 온 용자들에게 그런 정도는 봐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들은 곧 죽을 목숨이다. 오후 수업은 파견 지역에 대한 정보 등 중요한 내용이었으나 대원들은 그런 것보다는 어서 여기를 떠나기를 더 바랐다. 귀로 듣는 대신 눈으로 보고 싶어했다. 훈련이 아닌 진짜 전투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배든 비행기든 어서 올라타서 뱀이 우글거리는 정글 속에서 임무를 멋지게 수행하는 것에 들떠 있었다. 작전 성공으로 받게 될 달러 뭉치를 들고 거나하게 한 잔 하고 있는 성공한 자신들의 미래 모습을 비춰보는 것이 지형을 어떻게 살펴야 하는지 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다들 붕 떴고 환한 표정에 선글라스도 매우 흡족하게 대했다. 불과 보름만에 인간병기가 된 훈련병들은 비행기처럼 자신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부러워 하는 미군이 된 것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말 한마디면 불구덩이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게 될 용병들을 보는 선글라스는 만족감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 두툼한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번쩍였다. 밤하늘의 야광탄 처럼 빛났다. 자신들이 훈련 시킨 용병이 작전까지 성공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잘못돼도 자신들의 책임은 아니다. 포로로 잡힌다고 한들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물들이다. 군번 없는 자들 아닌가. 미군복을 입은 스파이가 죽었다고 해서 거대한 전쟁에 어떤 물결이 일겠는가. 그들은 미군복을 입고 미제 무기를 들었으나 미군이 아니다. 겉으로는 미군이지만 실제로는 미군이 아닌 이상한 존재가 이곳 특수부대원들의 신분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든 모르든 이곳 훈련병들은 개의치 않았다. 휴의는 이것을 간파했으나 나머지 대원들은 그것을 무시했다. 설사 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다시 저녁이 왔고 잠자리에 들었다. 휴의는 가지고 갈 군장속 내용물을 머릿속에 채웠다. 우선 지급받은 개인화기인 총신이 짧고 소음기가 부짝된 기관단총. 거기에 15발이 들어가는 탄창 세 개 정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동료의 것을 훔치지 않아도 기본으로 제공받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의는 조금 욕심을 내 옆 동료의 것도 함께 가져 갔으면 싶었다.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그리고 수류탄도 5개 정도면 좋겠다. 다이너마이트도 조금. 전투 식량 3일치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지, 입소 할 때 입었던 흰 옷. 그런 거라면 충분히 이 지역을 빠져 나갈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정도면 군장이 간결했다. 들고 뛰기에 전혀 부담이 없는 무게였다. 선잠을 자다 휴의는 눈을 떴다. 자다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그렇게 했다.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휴의는 눈을 뜬 상태로 천장을 올려다 봤다. 예의 붉은 전등이 흐릿하게 누워 있는 동료들의 침상을 비췄다. 불침번은 앉아 있었으나 눈을 뜬 상태는 아니었다. 관물대에 등을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누워 있지 않아도 기다릴 수는 없었다. 휴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전투복 상의를 걸쳤다. 코는 소리가 들렸다. 등을 기댄자인지 누워서 자는 자가 내는 소리인지 구별하지 않았다. 어둠속에서 휴의가 조용히 움직인다. 하의는 벗지 않았으니 입을 필요가 없었다. 군화를 신어야 한다. 그리고 미리 싸둔 군장을 매면 된다. 그는 순서대로 그렇게 했다. 군화를 신고 끈을 잡아 당길 때 불침번은 몸을 뒤척였으나 휴의의 움직임 때문과는 무관했다. 거치대에 손을 뻗어 기관총을 잡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휴의는 연병장의 가운데를 가로지르지 않고 막사의 벽을 타고 작은 철조망 앞에 섰다. 뛰어 넘기에는 조금 벅찼다. 넘다가 걸릴 위험도 있다. 미리 봐돈 개구멍은 이런 때 필요했다. 사람 하나 겨우 빠져 나갈 구명은 훈련병들이 만들었다. 그들은 침투의 일환으로 철조망 자르기 등을 연습했는데 연습용으로 쳐논 철망은 물론 진짜 철조망도 잘라 놓았다. 자른 철망은 이어놔야 하지만 나중에는 그런 절차를 생략했다. 휴의는 그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휴의는 만에 하나 잘못될 것에 대비해 절단용 가위를 미리 군장에 챙겨 넣었다.

그는 가위가 필요없기를 바랐다. 그걸 쓸 경우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그때 어디선가 낯선 소리가 들렸다. 들어 본 적이 없는 어떤 소리에 휴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었다. 몸을 낮추고 최대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면서 소리의 정체를 알아 내려고 애를 썼다. 낯선 소리는 이내 낯익은 소리로 바뀌었다. 그것은 하늘을 나는 새들이 내는 노래였다.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이라 그들의 형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머리 위를 지나 동쪽으로 사라졌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철새들의 이동, 그는 브이자 모양으로 긴 대열을 이루고 있는 기러기들의 무리를 떠올렸다. 그들이 날면서 내는 끼루룩거리는 소리가 휴의는 어떤 행위의 좋은 징조로 여겼다. 정말 그랬다. 정들었던 곳을 떠나는 것은 새들이나 나나 마찬가지 아닌가. 어렵지 않게 그는 잘린 철조망 앞에 섰다. 그리고 그것을 밀어 내고 몸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겼다. 겨우 몇 발짝 옮겼을 뿐인데 휴의는 알 수 없는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억울하게 잡혀 있다 빠져나온 자의 후련함 같은 것이 휴의를 온 몸을 뜨겁게 감싸고 돌았다.

자, 흥분하지 말고 배운대로 하자. 빨리 설치하고 그보다 빨리 철수하자. 위험을 느낄 때까지 이쪽에서 먼저 공격하지 말자. 그는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철망을 다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서 산쪽을 향해 평지를 달리듯이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의 팔부능선까지 오는데는 30분 정도 걸렸다. 이 정도 거리라면 막사에서 추격병이 온다고 해도 거뜬히 따돌릴 수 있다. 하지만 휴의는 쉬지 않았다. 능선을 넘어 일단 방위를 확인했다. 배운 나침반을 활용하는 기술은 이런 때 유용했다. 막사 건물은 보이지 않았으나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는 잡은 그 방향으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뛰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날이 밝아오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해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시각까지 언제나 빈틈없는, 완전한 작전을 주문했던 노랑머리 선글라스도, 목에서 걸죽한 가래침을 뱉던 흑인 조교도, 그걸 따랐던 훈련생들도 휴의의 탈출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는 듯이 휴의는 두 어 시간을 더 달렸고 마침내 높은 곳에서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는 거기서 입고 있던 군복을 벗고 애초 입소할 때 입었던 흰 옷으로 갈아 입었다.

머리를 깎지 않아 풍성하다 싶은 두발은 그를 평범한 민간인으로 둔갑시켰다. 그는 산을 타고 내려와 인파속에 섞였다. 선글라스가 아침 점호시에 휴의의 부재를 눈치채도 대책이 없는 지점에 있었다. 뒤늦게 노랑머리는 고작 임정에게 항의하거나 혹시 오면 잡아 두라는 엄포성 경고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정은 여기 온적도 연락해온 적도 없다고 일단 부인할 것이고 그 전에 자신이 상황 설명을 하면 선생은 잘 했다고 칭찬하겠지. 동지 수고했오. 고생이 많았어요. 이런 말이 휴의의 귓가에 다시 어른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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