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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 새벽 3시 오소리 가방 둘러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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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 새벽 3시 오소리 가방 둘러메고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2.09.23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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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먼저 마음이 떠나간다. 그런 다음 몸이 뒤따른다.

미국과 일본은 먼 거리다. 그래서인지 해리스( 빌 머레이)는 아내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쩌다 통화해도 기껏 한다는 것이 가구의 디자인 색깔로 옥신각신이다.

아들이 있지만 둘 사이를 메꿔주지 못한다. 일주일의 도쿄 출장 중 겨우 하루 이틀이 지났지만 해리스는 아내가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아내도 마찬가지.)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그 사이로 찬바람이 휭하니 불어온다. 눈에 뵈지 않으니 마음이 멀어지고 있다.

촬영현장은 어색하기만 하다. 아리가또, 모시모시조차 알아듣지 못하니 그럴만도 하다. 만사가 피곤하고 영 내키지 않는다. 

샬롯( 스칼렛 요한슨)은 해리스와 달리 남편이 옆에 있다. 유명 사진작가인 남편은 바쁘다. 젊은 아내와 사랑보다 일에 더 치중한다. ( 남편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다.)

호텔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샬롯의 가슴에도 구멍 하나가 커다랗게 뚫렸다. 그런 마음으로 두 사람이 호텔 바에서 만난다. 자꾸 그러다 보니 인사하는 사이가 됐고 서로는 서로에게 끌린다. 나이 차는 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없다.

결혼 2년 차와 25년 차의 간격은 손바닥 한 뼘 보다도 가깝다.

조금 억지스럽다고 느끼지만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자꾸 둘이 만나는 장면을 집어넣는다. 마주보게 하고 손잡게 하고 등뒤의 옷 상표를 떼주게 하고 같은 침실에 누워 같은 천장을 보게한다.

급기야 담배를 나눠피고 맨발을 만지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의 아내와 남편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이국의 늦은 밤. 서로 잠 못 이루는 늦은 밤.

문틈 사이로 쪽지가 날아든다. 지금 자고 있나요? 천만에. 아니올시다. 이쯤되면 관객이 보기에 둘의 진도가 너무 빠르다거나 자석처럼 왜 붙어야 하는지 의구심을 품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피아 코롤라 감독은 상관하지 않는다.

▲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도쿄 거리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도쿄 거리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한편 위스키 촬영은 순조롭게 끝났다. 며칠 만에 이백만 달러를 번 해리스는 곧 미국으로 떠나야 한다. 거기가 좋으면 거기서 살라는 아내의 빈말이 아님을 확인하고도 해리스는 그래야 하는 숙명이다. 

그런데 일이 되려고 그러는지 샬롯의 남편은 다른 곳으로 출장을 가고 그녀는 홀로 호텔에 남는다. 남자도 혼자다. 둘은 함께 방으로 들어간다.( 인생상담만 했을까. 그렇다고 거시기까지 했다는 확증은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흔하디 흔한 삼류 멜로물에 지나지 않는다. 돈 많은 유명배우와 시간 많은 젊은 여자의 조합.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빨라도, 느려도 어쩜 저렇게 예쁘게 찍었지 절로 감탄이 나오는 화면, 분주하고 삭막한 도심의 낮과 밤, 마른빨래와 같은 건조함, 고독사와 같은 일상의 무료함 혹은 쾌락의 질주가 겹쳐지면 어딘가 그런 류의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진부하고 지루한 주제를 택했으나 거기에 끼어드는 세심한 디테일은 웰메이드로 가는 지름길이 따로 없음을 말해준다. 관객들은 저런 늙은 남자를 젊은 여자가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고 또 한 번 혀를 내두를지 모른다.

그게 감독이 노리는 노림수다. 편안한 늙은 남자역의 빌 머레이와 매력 덩어리 스칼렛 요한슨의 극적인 대비. 이때 스칼렛 요한슨은 만 17세였다. 나이를 뛰어넘는 사랑처럼 놀라울 만큼 세련된 연기를 펼친 그녀는 스타 탄생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한편 헤어질 무렵 둘이 귓속말을 주고 받는다. 인파속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관객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잘가, 그래. 정도만이 들릴 뿐이다.

그러나 그게 대화의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궁금하다. 미국에서 다시 만나자거나 그런 말 대신 그동안 좋았다고 이제 굿바이 하고 쿨하게 헤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을 터.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관객들은 자기 편한대로 상상하면 될 것이고 감독의 몫은 거기까지는 아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대부>, <지옥의 묵시록>으로 잘 알려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이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참고로 제목과 영화는 어색하다. (원제는 Lost in Translation) 해리스의 대상이 샬롯이 아니고 R과 L 발음이 서투른 번역하는 일본 여자였다면 그런대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러나 둘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존재들이니 통역같은 것은 필요 없다. 동떨어진 제목 때문에 되레 영화는 일반인의 호기심을 샀다.

국가: 미국, 프랑스

감독: 소피아 코폴라

출연: 빌 머레이, 스캇렛 요한슨

평점:

: 태풍이 물러나고 하루 아침에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었다. 이런 때는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 더욱 심란하기 마련이다. 낙엽이 붉어지고 찬바람이 불면 시들한 인생이 처량하기 까지하다.

그렇다면 중심을 잡아야 할 때.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세우는데 영화만큼 좋은 게 없다. 잘 만든 영화 한편은 인생을 바꾸는 것은 물론 마음도 그렇게 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같은 가볍고 코믹한 영화를 집어 들었다면 잘한 결정이다. 현실에서는 거의 힘든 영화 속의 그들이 되고 싶기보다는 허황된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복잡한 머리를 조금은 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로멘스든 불륜이든 단순 호기심이든 그 어떤 것이든 간에 무작정 도쿄 여행을 가겠다고 새벽 3시에 오소리 가방을 꾸려보자. (괴테가 아니어도 누구나 그런 가방 하나쯤은 있다.)

헤드샛 끼고( 소피 마르소처럼 아니 스칼렛 요한슨처럼) '리얼리티' 대신 '스카브로 페어'를 들으면서 신칸센을 타기 위해 교토역으로 달려간다면 영화를 본 소감으로는 만점이다. 시간도 죽이고 인생도 즐기자. 될 성부른 떡잎의 감독이 만든 좋은 영화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사족하나: 연재물이 400회에 이르렀다. 400개의 영화가 소개됐다는 말이다. 2012년 <와호장룡>이 첫번째 였으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시기다.

그동안 영화가 있어 행복했다. 연재물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갈데까지 가보겠다는 심정은 더욱 굳어진다. 프랑스와 튀르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 아닌 400번의 감상은 여기까지. (그런데 샬롯은 절에는 왜 갔을까. 하얀 종이에 쓴 소망의 편지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못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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