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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풍경이 산과 산이에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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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풍경이 산과 산이에 펼쳐지고 있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3.30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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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그늘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어깨로 쏟아지는 열기는 발다닥까지 뜨겁게 달궈 놓았다. 간혹 서풍이 불면 땀이 식었으나 멈추면 이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였다.

거기에 피비린내까지 더해지면 메스꺼움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용희는 다행히 구토의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았다.

그것도 습관이 되면 무뎌지나 보다. 겨우 그늘 한 조각을 찾은 그녀는 잠시 평온이 찾았다.

그러나 잠시 후 병사들이 죽은 시체를 어디로 끌고 가야 할 지 옥신각신 하는 통에 산통이 깨졌다. 용희는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달리 눈 돌 곳도 없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어떤 일을 벌일려고  하는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됐다.

그들이 죽은 자의 관등성명을 부르며 간단히 작별인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시간은 아주 짧았다. 그리고는 세 사람이 숫자를 세고 박자에 맞춰 의영차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격 앞으로 할 때 외치는 고함 소리와 엇비슷했다.

그리고 그들은 팔에 들어 올린 것을 아래로 던졌다. 굳어지기 전에 해치우겠다는 의욕이 손끝의 힘줄에서 도드라졌다.

용희는 시체와 물이 만나면서 작은 파문이 일어나는 것을 상상했다. 그리고 점차 무게를 이기지 못한 바다가 그를 수면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도.

죽은 자의 수치심도 감춰야 한다. 바다는 그 일을 말 없이 수행했다. 명령을 받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척척해냈다.

그 덕분에 바다로 던져질 때 장기를 드러냈던 무릎을 다친 병사는 부끄러운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

남아 있던 소년의 젊은 피는 스펀지처럼 짠 물에 마지막으로 스며들었다. 장교의 애국심도 바다와 함께 가라앉았다. 병사들이 옷을 털었다. 손에 묻은 것을 턴 옷에 슥슥 비볐다. 해치웠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일을 마친 그들은 지쳤는지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짐을 버린 홀가분한 기분으로 두 다리를 쭉 뻗었다. 일부는 그대로 드러 눕기도 했다.

상황이 종료됐다. 다시 올려다 본 하늘은 금새 저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붉은 기운이 더해져 검은 피처럼 엉겨 붙었다. 장교의 애국심이 져기에 가서 붙었을까.

무릎을 관통당해 비명을 질렀던 병사의 드러난 장기가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피를 먹은 해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기가 막힌 풍경이 산과 산 사이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은 죽마을 해변이 아니었다.

거기서도 석양은 볼만 했으나 이곳과는 차원이 달랐다. 크기도 엄청나서 두 팔을 벌려도 다 껴안 수 없을 정도였다. 저리도 찬란한 경치 앞에서 젊은 넋들은 가차없이 쓰러졌다.

‘내 피도 저기에 묻었을까.’

용희는 사람 형태도 갖추기 전에 떠나 보낸 뱃속의 아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른 피를 토했던 도착하던 날의 악몽을 떠올렸다. 그래, 하늘의 태양이 붉은 것은 억울한 피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었기 때문이다.

멀미는 사라졌다. 이상한 일이다. 누워 있지 않아도 속은 편안했다. 마치 평지에 있는 것처럼 용희는 안정됐다. 멀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함장이 올라오고 있다. 저벅 거리는 박자국과 군도가 버클에 부닥치는 소리가 들린다. 용희는 일어섰다. 부관과 함께 온 함장은 부상자들의 상태를 물었다.

용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말수가 나섰다. 3명이 죽고 6섯명이 부상당했다.

부상자들은 임시 처지를 했으나 모두 생명이 위중한 상태라는 사실을 말수는 머뭇 거리며 덧붙였다. 그것이 마치 자신의 책임이라도 되는 양 말수는 그 말을 하고는 함장의 얼굴을 살폈다.

함장은 말수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두워진 주변을 고개를 돌려 둘러 보았다. 얼굴은 굳어 있었다. 아니 방금 죽은 시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용희는 그가 지금 분노를 속으로 삭이고 있다고 여겼다.

더는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인 방어선을 치고 그는 갑판을 서성였다. 아끼던 장교의 죽음은 그에게 남은 마지막 두려움마저 걷어갔다. 무언가 결정한 듯이 그는 턱수염을 만지다 지휘봉을 흔들며 올라왔던 계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부관이 급히 그 뒤를 따랐다. 기억에 저장되기 전에 이런 음산한 광경은 지워야 한다는 듯이 용희가 머리를 가로 저었다.

저런 식으로 지휘관이 화가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용희는 생각하지 않았다. 동물적인 본능이 살아날 때 나타나는 반응은 저런 것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용희는 두려웠다.

달리는 군함보다 해는 더 빠르게 식기 시작했다. 산 기슭에 걸리고 물에 닿는가 싶었는데 어느 새 모습을 감춰버렸다.

어둠이 찾아왔다. 깊은 적막이 감돌았고 부상당한 병사들은 다시 괴성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포성은 들리지 않았다. 다들 해처럼 지친 몸을 잠시 식히고 있었다.

상대는 상대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지 못해 답답했다. 적들은 사라진 군함을 찾기 위해 레이더를 가동했고 섬 사이로 숨은 군함은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더 내륙 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소강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멈추었다고 사정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연합군의 전투기가 목표물을 향해 태평양 상공을 빠르게 날고 있는지 그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더 큰 공격이 올 것에 대비해 함실로 내려간 함장은 지도를 펴고 깊은 고뇌에 빠져 들었다.

용기와 무모함 만으로 전투를 이길 수 없다. 한 두 번은 가능해도 매번 그럴수 없다는 것을 함장은 숱한 전투에게서 깨닫았다.

그는 본부의 지시는 현장에 있는 자신에게 맡겨진 것에 책임감을 느꼈다.

태평양 사령부를 책임지고 있는 함장의 손에 대일본 제국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여기서 승기를 잡아야 한다. 패하면 어쩌면 본토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

그는 무전병을 불렀다. 그리고 말끔히 정리된 갑판위로 전투기 13대가 앉을 수 있도록 암호를 쳤다. 다른 군함에도 전투기들이 발진할 채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연료를 채워라, 실탄을 점검하라.’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대비할 필요없는 선공을 때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뇌 끝에 내린 결단을 실행하려고 한다. 미국령의 한 섬을 폭격해 전선을 확대하면서 눈엣 가시를 제거해야 한다. 그는 본국의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초조해 하지 않기 위해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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