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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轉禍爲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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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轉禍爲福)
  • 의약뉴스
  • 승인 2006.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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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합격자 발표가 시작되면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아들 덕분에 나 역시 수험생의 부모가 되었다. 소신 지원이니 눈치 지원이니 하는 단어가 강 건너 불같더니만 살 얼음장을 걷는 심정을 알 것만 같다.

백년대계(百年大計)는커녕, 해마다 바뀌는 입시 행정 덕분에 올해는 ‘가, 나, 다, 라’군의 4개 대학에 원서를 접수시켰다. 전형료만 해도 수십 만원이 소요되었지만 자식의 장래를 결정짓는 대사이기에 비싸다고 불평 할 수도 없다.

교육부에서는 여론을 의식해 전형료 인하를 거론하지만 정부측도 대학 측도 관심 사항은 아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반기를 들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아들은 ‘가, 나’군의 일류 대학에 지원했으나 모두 낙방하고 ‘다’군인 I 대학 전기, 전자, 컴퓨터 공학부에 합격했다. 집안엔 먹구름과 무거운 침묵이 깔리기 시작했다.

다섯 살 때부터 줄곧 일기를 쓰기 시작해 온 아이였다. 초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성적도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기에 일류 대학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자타가 장담해온 터였다.

그러나 고3이 되면서 방황하는 듯 했다. 평소에 멀리하던 여학생을 사귀고, 고기 반찬을 마련해 독서실을 찾아가면 인생을 논한다며 자리를 비운 채 엉뚱한 장소에서 개똥철학에 금 쪽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방황의 대가는 기대 이하의 수능 점수로 판가름났고 12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의 충격에서 모두들 말문을 잊고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기에---.

숱한 역경을 인내해 오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오점을 남기고만 아들이 원망스러워 얼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란히 어깨를 겨누며 경쟁을 하던 친구들이 일류 대학에 합격한 것을 의식하며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가슴은 더 메어지는 듯 했다. 그것은 끝도 없는 무지개 빛 욕망 때문이 아니라 나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공통된 소망 때문이리라!

침대에 사람의 키를 맞추고 신발에 발을 맞추듯 여기저기 지방의 전문대학 문전을 기웃거리는 수험생에 비하면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위로하는 분들도 있다. 일류 대학 인기 없는 학과를 택하느니 공과대학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I 대학에서 장래성 있고 적성에 맞는 전공과목을 탐구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아쉬움과 미련을 떨어버리지 못할 진데 당사자인 아들의 심경은 오죽할까. 부모의 뜻을 따라 주지 않는 자식을 원망하기보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양 아들을 사회와 단절시키고 온실에서 과잉 보호해온 내 자신을 채찍질해 본다. 아들의 의지력이 이토록 나약해진 것은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못난 부모로서 한 가닥 미련이 있다면 아들과 나의 실수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김사연 (수필가, 인천시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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