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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탑건(1986)-멋의 뒤에는 무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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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탑건(1986)-멋의 뒤에는 무엇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9.23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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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는 멋이다. 인간이 만든 걸작품 중 이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아니 별로 없다.

균형 잡힌 좌우 대칭과 날렵한 몸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역동감은 과연, 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어떤 명품도 전투기와 비교할 수 없다. 이 영화를 볼 때만큼은.

전투기는 또한 남성이며 전쟁이며 돈이며 무기상이며 정치인이고 죽음이다. 그것이 갖는 양면성은 일방적이지 않고 대등하다.

그러나 토니 스콧 감독의 <탑건>에서는 주로 전자가 언급된다. 후자는 은근슬쩍 나오다가 전자에 묻힌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기도 하지만 멋과 정치인이나 죽음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멋을 더하는 데는 남성성이 중요하다. 테스토스테론이 금방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톰 크루즈가 선봉에 선다. 단단한 근육질 몸매와 반항적인 성격, 예측 불가, 본능 비행 거기에 여성을 향한 섬세한 감각은 전투기와 교묘하게 어울린다.

이런 남자가 탑건에 도전한다. 도전의 과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앞서 언급한 사랑은 양념이다.

톰은 불경스럽게도 교관을 상대로 수작질을 한다. 샤론 스톤을 닮은 켈리 맥길리스는 웃음으로 받아준다. 그녀 아니라면 당장 잡혀가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의 무례한 짓을 하고도 너무나 뻔뻔하다.

▲ 교생 톰 크루즈의 수작에 교관 켈리 맥길리스가 웃음으로 화답한다. 둘의 사랑은 양념이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 교생 톰 크루즈의 수작에 교관 켈리 맥길리스가 웃음으로 화답한다. 둘의 사랑은 양념이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여자 화장실로 처음 만난 여자를 따라간다. 성적인 행동과 언사를 남발한다. 걷어차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여자는 시나리오대로 슬쩍 짜증 내는 시늉을 하지만 누가 봐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되레 유혹의 시선을 양념으로 뿌려 댄다. 하지만 양념은 양념일 뿐, 메인이 아니니 그만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자.

여기는 인도양, 뜨고 지는 해가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린다. 야트막한 산과 바위와 잔물결 이는 황금빛 해변이 장관이다.

전투기가 굉음을 울리며 어디선가 나타난다. 황량한 사막이라도 대단한데 이런 경치를 감상하면서 비행한다면 어지럽더라도 파일럿에 한 번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꽁무니에 우주선 같은 섬광을 뿜으려 이륙과 착륙이 반복된다. 그럴 때마다 들려 오는 폭발음은 톰 크루즈가 때때로 모는 엄청난 출력의 오토바이 소리와 어울린다.

전투기는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하라고 만든 무기다. 관객들은 다 들 편대비행의 아슬아슬한 묘기에만 신경을 쓴다.

그즈음 감독은 적군을 등장시킨다. 당시 적은 중국이 아니라 소련, 지금의 러시아다.

미군의 주력이 F로 시작한다면 미그기는 그들이 자랑하는 병기다. 공격은 물론 적이 먼저 한다. 평화로운 비행을 방해하는 자가 갑자기 출몰해 위협한다.

비겁하게 뒤에서 떼로 덤빈다. 절대 불리한 상황. 관객들은 흥건한 땀이 밴 손을 더욱 쥔다. 꾸물대지 말고 어서 응징하기를 바랄 때 그가 출격한다.

평화를 헤치는 자에 방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방어는 곧 반격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누가 이길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처음인 관객들도 짐작할 수 있고 그 예측은 틀리지 않고 정확히 맞는다. (참고로 혈통과 엘리트주의가 노골적이다. 상위 1% 운운이나 2등은 필요 없다는 말들이 쏟아진다. 이것이 할리우드 국뽕의 특징이다.)

일등 공신은 당연히 주인공이다. 어려운 과정에서 그는 적기를 무찌르고 보부도 당당하게 항공모함에 안착한다. 부대원들의 환호성과 그와 대척에 있던 상관도 그를 반긴다. 이 아니 가슴 뭉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전투도 끝났고 교육도 마무리됐다. 이제 남은 것은 사랑일 것이다. 그 사랑이 어찌 됐는지 역시 짐작한 그대로다.

앞서 이 영화는 멋이라고 했다. 과연 멋있는 영화다. 청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매력 넘치는 장면이 수시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나도 저런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어두운 극장의 좌석에는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는 청춘들이 넘쳐 난다. 실제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 지원이 영화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멋은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 멋의 이면을 한 줄 걸치고 마무리 짓자. 전투기는 전쟁이고 전쟁은 죽음이고 파괴다. 무기상이며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전투기는 비싸다. 그래서 이문이 많이 남는다. 무기회사는 만든 전투기를 팔아야 하고 팔기 위해서는 전쟁이 벌어져야 한다.

여기에 노련한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로비에 약한 그들은 국지전을 일으켜 무기상에게 받은 호의에 보답한다. 이것이 멋의 그늘이라고 하면 너무 심했나.

어쨌든 어떤 일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에는 일방적일 수 없는 것들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어야 한다. 둘을 비교하면서 영화를 본다면 이 또한 괜찮은 관람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미국

감독: 토니 스콧

출연: 톰 크루즈, 켈리 맥길리스, 맥 라이언

평점:

: 미국에 <탑건>이 있다면 한국에는 <빨간 마후라>가 있다. 이 연재물에도 소개한 바 있는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 역시 전투기가 주인공이다.

당시 최신예기가 하늘을 지배한다. F-1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공중을 장악한다는 점에서는 다를게 없다. 입체감과 굉음 역시 마찬가지다.

기총사격, 로켓 발사, 수직 상승 등 어느 것 하나 빠질 게 없다.

<빨간 마후라>가 1964년에 나왔으니 <탑건>을 흉내 냈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아마도 토니 스콧 감독은 신상옥 감독의 영화를 보고 영감을 받았을지 모른다. <탑건>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빨간 마후라>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시간 있는 관객들은 신상옥 감독이 만든 한국영화도 감상해 보자. 남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다. <탑건>만 훌륭한 영화가 아니라 그 20년 전에 만든 한국영화 역시 결코 뒤지지 않는 대단한 영화라는 사실에 가슴이 뛸 것이다.

한편 후에 대단한 대배우가 된 맥 라이언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관객도 있겠다. 맥 라이언은 초보 임에도 대성의 가능성을 농후하게 보여줬다.

표정과 대사가 대단하다. 젊은 시절 단역으로 출연했던 맥 라이언을 보는 것은 이 영화의 또다른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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