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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품법규학회 초대회장 심창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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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품법규학회 초대회장 심창구 교수
  • 의약뉴스
  • 승인 2004.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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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남에게 뭔가 바라는 사람’ 과 ‘ 남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하는 사람’.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후자의 사람과 만나게 되면 우리는 마치 인간 웜 (warm)바이러스에 전염된 것처럼 가슴이 훈훈해진다.

그 옛날 순수했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존재감을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항상 즐겁다.

PPA와 불량만두 파동 등의 굵직한 사안을 겪으며 ‘내 맘도 몰라주는 세상’에 조금은 서운했을법한데도 여전히 세상을 향한 큰 꿈을 꾸는 사람. 의약품법규학회 초대회장인 심창구 서울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식약청장을 마치고 현재 서울대 약대의 교수로 복귀한 상태다.

구불구불한 교정을 산책하듯 걸어 약대에 도착했을 때 콧속으로 스미는 낡은 책상들의 냄새는 아련한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냄새 하나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도 다시 학교에 돌아왔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교수실 앞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약품 인큐베이터를 보며 학자로서의 그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 정말 바쁘다. 학교로 다시 돌아온 것이 9월 3일이니까... 이제 3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식약청장을 그만둔 바로 다음날부터 지금까지 논문을 5개나 썼다. 게다가 의약품 법규학회 등 여기저기 학회 일 하랴 학생들 가르치랴 정말 세 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학교로 다시 돌아왔는데 요즘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사실 제일 관심이 가는 것은 ‘신약개발’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약사와 학계를 아우르는 ‘항암제 연구개발센터’를 만들고 싶다.

나는 신약개발이 ‘오케스트라 연주’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연주 실력이 엉망이라 오케스트라를 구성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가능하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실력 있는 인재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이제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의약품 식민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외국 의약품 의존도가 높다. 그나마 우리나라와 일본만이 자국 의약품 복용률이 높을 뿐이다. 해외 제약사들이 엄청난 규모로 연구 개발하는데 우리가 각자 개별적으로 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아주 잘 훈련된 사람들로 구성된 콤팩트한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다. ‘신약개발센터’처럼 애매한 것도 싫다. 정확한 개발목표를 가지고 라인업 해야 한다. “

-내년이면 약대 6년제가 윤곽을 드러낸다. 교수로서 약대 6년제에 대한 생각?

“김대중 정권 당시 ‘약학발전특위’가 있었다. 그 당시 의대, 종교, 문화계 등 20-30명의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약대 6년제에 동의했다. 약계에서도 6년제는 오래된 염원이다. 그리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안 건넌다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약대 6년제는 이제 대세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약학의 목표는 세 가지다. 첫 번째가 신약개발 , 두 번째가 제약학, 세 번째가 임상약학이다. 약대 6년제는 이 세 가지의 공통분모를 가르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4년 동안 압축해서 공부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약대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오는 말이다. 의대에는 선택과목이 없다. 라이센스를 가질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공부해야할 필수과목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약대는 어떤가. 현재 전국 약대에 과목들을 조사해본 결과 선택과목까지 하면 1000개가 넘는다. 우리나라의 어떤 단과대학도 그렇게 많은 과목수를 가진 대학은 없다. 선택과목이 많다는 것이 약대 6년제를 반드시 실시해야할 반증이다.

‘만에 하나라도 허락하지 않는 것’ 때문에 더더욱 6년제는 절실하다. ‘만에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될’ 잘못된 처방을 찾아내는 역할을 하는 약사를 키우는데 약대 6년제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약사들이 국민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의무를 다한다면 그 뒤에 수가 인상 등의 결과는 자연적으로 따라올 것이다.“

-식약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그곳을 떠나온 사람이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식약청장 재임시절 그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안타까울 때가 많다. 국민들의 안전이 중요한 만큼 그 안전을 지켜줄 식약청 직원들이 충원되고 인력이 충분해져야 하는데 현재 식약청 인원은 산림청보다도 적다.

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식약청 직원이 이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안전이 중요한 시대라면 그들이 국민안전을 위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미FDA인원이 1만2천명이다. 그러나 우리 식약청은 고작900명이다.현재의 3-4배만 되도 좋겠다. 대통령의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이해가 절실하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난 내 인생을 흔히 다단계인생이라고 불렀다.(웃음) 인생에 처음부터 어떤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한 계단 올라가서 보면 그 다음 계단이 보였고 철봉 하나를 붙잡고 올라가서 그 위에 또 다른 철봉을 잡고 올라갔다.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나. 많은 사람들을 짓누르고 위에 서는 것이 성공이 아니다. 성공은 남을 키워주고 받드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여태까지 배운 것들을 그냥 명제로만 남겨두지 않고 연구하고 개발해서 세상에 절실하게 필요한 약을 만드는 것이 그들을 받들고 키우는 길이며 그럴만한 학생들에게 포부를 심어주는 것이 성공이다.
광주리를 비우고 기다리면 때가 온다. 그 때가 왔을 때 발로 차지 않고 광주리 가득 담기 위해서 매사에 감사하면서 살고 싶다.“

인터뷰를 마친 것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이었다.
심교수를 만나고 돌아 나오는 길, 문득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심교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심 교수 자신이다.

전공서적들이 빼곡히 쌓인 익숙하고 아늑한 연구실에서 안주하기보다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당당하게 꿈꾸는 그.겨우내 짧아지던 날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동짓날 만난 심교수의 꿈이 길어지는 해만큼이나 희망차고 밝은 내일을 가져오길 기대해본다.

의약뉴스 박미애 기자 (muvic@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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