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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연기가 피어 났고 뒤이어 화약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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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연기가 피어 났고 뒤이어 화약냄새가 났다
  • 의약뉴스
  • 승인 2012.12.1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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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흔들렸다. 마치 진도 8도 이상의 강진이 난 것처럼 주변이 마구 떨렸다.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이런 소리구나 나는 생각했다. 해발 3000미터 이상 고지에 오른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잠시 후 웅성 거리는 소리가 나는 가 싶더니 뒷자리에 있던 우리 구대 학생 하나가 파편에 맞았다며 소리쳤다.

재빨리 뛰어가 나는 무리에 있던 학생의 손에 있는 작은 납조각을 낚아챘다. 뜨끈했다.

연기가 나는 것처럼 보였고 화약냄새가 훅 하고 끼쳤다. 어디 맞았느냐고 나는 물었고 학생은 어디 맞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구대장에게 납조각을 주었다. 탱크 부대장도 왔고 총대장도 파편을 서로 만져 보면서 앞으로 시범 때는 안전을 위해 학생들을 더 뒤로 빼자고 즉석에서 합의했다.

표적지는 100미터 전방에 있었는데 파편 조각이 100미터 후방으로 날아 올 정도 였다면 그 파괴력을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 포사격을 구경한 나도 놀랐고 총대장을 포함한 산전수전 다 겪은 장교들도 놀랐다.

탱크부대장은 놀라고 있는 그 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전쟁 때 우리가 이 정도 탱크 100대만 있었어도 하루아침에 평양을 따먹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나는 그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믿었다.

당연히 그랬다. 이 정도 파괴력이면 건물 하나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다.

다들 귀를 한동안 잡고 말이 없는 것을 보니 학생들은 놀라움 그 자체를 아직도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중령 계급장을 단 탱크부대장의 득의에 찬 미소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뒤로 하고 막사로 돌아왔다. 행군하면서 학생들은 똑바로 대오를 형성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줄을 맞췄으며 구령에 맞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막사에서 학생들은 기가 팍 죽어 있었고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움추러들었다. 그런 분위기를 나는 느꼈다. 그들이 탱크 포사격으로 확고한 안보관이 섰는지 아니면 반전 분위기가 확산됐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방에서 주눅이 들었고 이런 모습은 앞으로 교육이 순탄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안보니 북괴니 또는 양키용병 교육이니 하는 말들에 대해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막사에 오니 4시가 조금 넘었다. 우리는 잠시 쉬었다 저녁을 먹고 오후 교육을 받으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틈을 이용해 나는 '진짜 사나이' 등 지시받은 군가 몇개를 가르쳤다. 군가를 이미 알고 있는 학생도 있었고 모르고 있던 학생들도 내용과 박자가 쉬워 몇 번 부르자 다들 능숙하게 따라했다.

다음날은 ‘M16’ 9발 실제 사격이 하루 종일 예고돼 있었다. 학생들은 이미 전역한 동료나 선후배를 통해 사격장 군기가 얼마나 센지를 알고 있었다. 피가 나고 알이 밴다는 PT체조에 대해서도 내가 사전교육을 하기도 전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진지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또 색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조교의 특권을 이용해 나름대로 새로운 정보들을 각색을 하거나 일부는 꾸며서 까지 떠벌였다. 완전히 통제된 분위기에서 나는 자신감을 얻었고 어떤 말로도 학생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사격장으로 이동하기 전 나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탄티에 판초우의를 달게 하고 커다란 수통에는 물을 한 가득 채우라고 미리 말했다.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혹시 갑작스럽게 비가 올지도 몰랐다. 피티 체조시에 땀을 많이 흘리면 갈증이 나는 것은 당연했고 더 많은 물이 필요할지 몰랐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원했다. 판초우의는 행군하는데 지장을 주고 무거운 수통은 엉덩이에서 덜렁 거릴 것이다.

소총을 메고 판초우의를 달고 수통까지 찼으니 머리에 잘 맞지 않는 커다란 철모를 돌볼 틈도 없이 이마에 땀이 흐를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땀으로 따갑겠지만 손으로 땀을 닦기도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겨우 월요일이다. 남은 요일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학생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월요일이 중요했다.

처음에 군기를 잡지 못하면 나중에 잡는 것은 더 힘들었다. 나는 저 자신이 편하기 위해 하급병들을 닦달하는 고참병을 미워하면서도 나 자신은 그들의 행동양식을 그대로 따라했다.

나 역시 악동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어떤 말을 한 뒤에 반드시 붙였는데 이것은 내 말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M 16을 꺼내 놓고 총기 소지 요령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분해하고 조립하는 반복을 여러번 시키면서 총기는 애인 다루듯이 하라고 말했다. 애인이 없어 애인 다루듯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목소리 큰 학생이 진지한 목소리로 군인 말투를 흉내내면서 말했다.

나는 나 역시 애인이 없어 다뤄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함부로 하지 않고 소중히 대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여러분, 부모님을 대하는 자세아닐까요? 나는 물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주목하고 있는 20명의 얼굴들을 살펴봤다. 농담삼아 한 질문에 진지한 답변을 하자 이내 분위기는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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