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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빈방에 홀로 남아 장문의 편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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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빈방에 홀로 남아 장문의 편지를 쓰다
  • 의약뉴스
  • 승인 2009.01.02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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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의 수학여행은 대체로 고3 가을철에 이루어지는데 멀리 가는 것이 아니고 비교적 멀지 않은 명승지를 찾는것이 보편화 되어 있었다.

그녀의 수학여행지는 속리산 법주사였다.

관광 안내양처럼 법주사 대웅전부터 관음보살상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 내려갔는데, 밤이 되자 그녀의 동기생들은 넓은 홀에서 노래하며 춤추며 왁자지껄 한판 벌렸는데 그녀는 빈방에 홀로 남아 밤새워 편지를 쓴다는 것이었다.

편지 말미에서 그녀의 오빠가 서울 모대학교 졸업반인데 65년 2월초에 오빠 졸업식에 참석차 서울에 가면 나를 만나러 찾아 오겠다는 것이었다.

편지 속에는 몇 장의 그녀 사진이 들어 있었다.

요즘 사진과는 달리 그 시절의 사진은 대체로 흐릿한 윤곽을 나타냈는데 사진속의 그녀의 얼굴 모양은 마치 모나리자 같이 얇은 입술에서 미묘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고 있었는데 곧게 일자로 내려선 코는 얼굴 중심을 완벽히 바로 잡아 마치 스팔타 여전사 같은 굳건한 의지를 연상케 했으며 가늘고 길게 완만한 곡선을 그린 눈썹과 눈은 어느 누구의 근접도 허용치 않을것 같은 완강한 저항을 암시할 것 같았으며 삼단같은 짙은 머릿결은 고무같이 탱탱한 그녀의 어깨 팔 상단까지의 선을 활 같은 탄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학 입시 날짜가 가까워 오자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편지를 쓸 수 없었다.
생사결판의 자세로 공부에 집중했고, 마침내 대학시험을 치렀다.
합격 발표는 15일후였다.

그녀가 찾아 왔다. 박순이 그녀의 친구와 함께였다.

사진에서 봤던 인상 보다는 훨씬 부드러워 보였고 청순해 보였다.
깨끗한 교육도시에서 성장한 상큼한 여학생답게 청결한 성숙미를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들과 달맞이 동산 뚜나바위를 찾았다.

칼날 같은 겨울바람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초봄의 전령처럼 훈풍이 한강을 가로 질러 뚜나바위 위에 있는 우리를 감싸고 돌아간다.

강뚝을 동서로 달리는 철로는 어디로부터 와 어디로 갈까? 장대하게 흐르는 한강물은 어디까지 흘러갈까?

푸른 뚝섬 경마장 그 앞의 강변 모래사장, 그 강 건너 봉운사는 언제까지 그들의 변치 않는 모습을 자랑할까? 무수막강 건너 모래섬과 샛강은 또 언제까지 그들이 지상 최고의 낙원임을 자랑 할 것인지... 미래를 모른다.

현재 나의 행복한 순간처럼 저 대자연도 지금 이 순간을 우리와 함께 공유하며 노래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나의 신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완성된 교향시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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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2009-01-05 13:47:23
남들은 다 놀고 있는데 혼자서 편지를 쓰고 있다니 대단한 여자이구나 흑심이 있었다는 말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누...

편지한장 2009-01-03 20:40:52
펜팔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 옛날 전화나 핸드폰이 있었나요.
그래도 애뜻한 사랑의 마음만은 대단했었는데 요즘애들하고는 달랐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