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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비정한 아버지 무정한 어머니 원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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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비정한 아버지 무정한 어머니 원망
  • 의약뉴스
  • 승인 2008.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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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대학 교육은 생명과학의 최고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기초 과학부터 응용과학, 전문 교과목까지 아주 광범위한 학문의 집대성 판이다. 그야말로 4년간 잡념 없이 오직 공부에만 매달려 집중하여야 하는 것이다.

대학 1학년부터 수업과 실습이 계속 이어지는데 주50시간 수업이었다. 기나긴 하루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로 붐비던 학교 캠퍼스엔 어느덧 아스라이 땅거미가 지고 우리 약대생들만 텅 빈 교정을 총총걸음으로 빠져 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과중한 일과로 하루하루를 지내다 어느 세월에 졸업 할지... 과연 그때까지 어머니의 건강이 이상 없이 기다려 줄지 나는 매우 초조하였다.

눈만 감으면 쓸쓸하고, 외롭고, 창백한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불쌍한 어머니, 왜 그 몹쓸 중증 폐병에 피를 토하며 고생 하시는지... 아무리 괴로워 해도 소용없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6.25전쟁 휴전 후(1953년) 서울로 올라와 지금의 황학동 중앙시장 안에 있는 학생복 맞춤집 가게에서 미싱사로 일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먼지 많은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과로와 영양부족이 겹쳐 폐결핵에 감염 되었나 싶다.

나는 신당동에서 태어나 6.25 휴전 후 초등학교도 신당동에 있는 흥인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우리 집은 안장사 절이 깃든 수도국산(대성산) 기슭아래 평지에 있었다.

전쟁때 화재와 파괴로 듬성듬성 집들과 빈터가 어우러져 있었는데 우리 동네 아이들은 그 빈터에서 뛰어 놀곤 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나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동네 빈터에서 뛰놀고 있었는데 찬거리 사러 시장 봐 오시던 동네 아줌마들이 나에게 다가와 네 엄마 어디 있는 줄 아니? 너 엄마 보고 싶지 않아? 마치 추궁하듯이 물어보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가슴은 철렁 가라앉으며 마치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벌렁벌렁 뛰었다.

동네에서 노는 나의 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어쩔땐 아줌마는 나를 중앙시장의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그 학생복 가게에 데려다 주는 것이었다.

창백한 얼굴의 어머니는 재봉틀 의자에 앉은 채로 “본이 왔니?” 하며 스산한 미소만 날리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만 보면 미운 아버지 생각이 떠오르시나 보다.

오히려 어머니 맞은편에서 재봉틀을 돌리던 젊은 누나들이 얼른 밖에 나가서 참외도 사오고 복숭아도 사와서 나에게 깎아 주는 것이었다.

이상했다! 어머니는 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지 않는 것일까?

먼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시면서 재봉틀만 돌리시는 것이었다. 그때 이미 어머니는 자신의 병세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항상 내 마음속에 그리는 꿈은 언제나 한번 따뜻한 어머니 품속에 안겨보나 하는 것이었는데 그 꿈은 항시 물거품처럼 깨지는 것이었다.

행복했던 그 순간 오직 한번 있다하자 그것은 아마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에 잉태 되어 열달 동안 어머니의 포근하고 따뜻한 사랑에 넘친 심장 고동 소리를 듣던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그 따뜻했던 어머니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

그 황홀했던 어머니의 심장 고동 소리도 오선지 위에 그려 놓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어머니로부터의 그 달콤한 포옹은 받아보지 못했고 안기고 싶은 그 열망과 그 꿈은 영원히 사라지려 하고 있다.

비정한 어버지와 무정한 어머니... 그러나 애절한 나의 어머니..
이것이 나의 운명이었던가?

기말시험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심신에 피로가 겹쳐 시험공부도 잘 안되고 컨디션도 안 좋았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깜박 잠이 들었다.

싸래기 눈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온 산과 들이 하얗게 은세계를 이루고 있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더니 세차게 눈보라가 몰아친다. 나뭇가지 위에 앉았던 눈송이도 바람에 날아간다.

저 멀리 언덕에 하얀 소복을 입은 어머니 모습이 보인다.

나는 어머니! 외치면서 어머니를 따라간다. 따라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어머니는 저 멀리서 돌아 서는듯 하시더니 황량한 언덕길 너머로 홀연히 사라지셨다.

나의 손에 쥐었던 만년필이 땅바닥에 굴러 떨어지며 나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나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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