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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5-03 01:19 (금)
내 화살만 주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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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화살만 주어왔습니다
  • 의약뉴스
  • 승인 2007.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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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궁시(弓矢)를 차에 싣고 다닌다. 차창 밖으로 낯선 정(亭)이 보이면 그곳으로 핸들을 돌려 정간(正間) 배례(拜禮)를 한 후 습사를 한다.

때마침 습사(習射)를 하던 그곳 사원들은 죽마고우를 대하듯 낯선 한량(閑良)을 반겨 맞는다. 그 순간마다 활을 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감격에 젖는다.

국궁(國弓)에 대한 기억은 꽤 오랜 세월을 되짚게 한다.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님이 뒷동산에서 활을 쏠 때마다 나는 과녁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화살이 과녁에 관중하면 ‘따알벼-’ 하고 목청을 세우고, 과녁 우측으로 빠지면 오른손을 들고 좌측으로 빠지면 왼손을 들어 표시를 했다. 화살이 과녁 앞에 떨어지면 손을 앞으로 내리고 과녁을 넘으면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이른바 ‘고전꾼’ 노릇을 하며 용돈을 버는 재미도 있었지만 활시위에 화살을 걸고 당기는 할아버님과 한량들의 과묵한 표정이 존경스러웠다.

얼마 후 나는 소꿉친구들과 대나무로 활을 만들어 한량 흉내를 냈다. 당시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편을 갈라 수수깡 화살을 날리던 죽마고우들은 지금 5단으로 승단하여 어엿한 명궁(名弓)으로 변신했다.

그중엔 신궁(神宮)의 반열에 오른 친구도 있다. 신궁이란 9단 자격을 획득한 한량에게 주어지는 칭호로 전국 17,500여 궁사들 중 단 11명밖에 안되기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연고로 사회생활을 하다가 궁도인을 만나면 마치 타향에서 초등학교 동문을 만나 것처럼, 아니 소꿉친구 시절로 되돌아간 듯 감회가 새롭다. 활을 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심전심(以心傳心) 동지애를 느끼기 때문이다.

타 정에서 구사(舊射)를 만나면 소중한 가르침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안쓰러운 모습의 신사(神射)를 만나면 내 나름대로의 비법(秘法)을 전해주기도 한다. 신사들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내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다.

요즘엔 아침마다 00정에서 습사를 한다. 1관과 3관은 제법 관중 하는데 2관은 똑같은 표시를 봐도 과녁 한 발 앞에 떨어진 화살이 옹기종기 자리를 틀고 있다.

‘발사(發射)하는 내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고 있는 중 그 정 소속 구사 한 분이 ‘2관의 거리가 약간 멀다’는 정보를 일러 준다.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표시를 올리니 보기 좋게 관중 한다.

오늘 아침엔 활을 잡은 지 20여 년이래 난생 처음 황당한 일을 겪었다.

00 정을 찾아가 홀로 습사를 하는 중 그 정 소속 사원이 와 함께 사대(射臺)에 섰다. 집궁(執弓)한지 3개월밖에 안 되는 신사라고 했다.

3 순을 내린 후 여분의 화살이 있었지만 나는 사대(射臺) 뒤에 자리를 잡은 후 활시위를 당기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가 시정해야 할 문제점과 기본적인 자세를 조심스럽게 일러 주었다.

허리에 찬 화살을 모두 날려 보낸 그는 화살을 주우러 과녁 터로 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나갈까 하다가 내게 남아 있는 한 순의 화살을 마저 발시(發矢) 하라는 뜻으로 알고 사대를 지켰다. 평소 조기 활을 쏠 때처럼 다음 순엔 당연히 내가 과녁 터로 나가야 한다.

그의 화살이 대부분 과녁 앞에 떨어졌음에도 그는 과녁 뒤편 산 속까지 뒤지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면 과녁 앞 잔디밭을 세밀히 살펴보라고 일러 줄 참이었다. ->

며칠 전 다른 정에서 습사를 할 때도 신사가 낙전(落箭)한 화살을 활터 담장 밖에서 찾고 있기에 ‘그런 화살은 과녁과 사대 중간에 떨어지는 법’이라며 찾아 준 적이 있었다.

한참 후 그는 화살을 들고 사대로 들어 왔다. 수고했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 그의 입에선 내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내 화살만 주워 왔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 앞가림만 하는 이기주의는 고학력 집단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 이기주의를 활터에서 보게 되다니.

나는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고학력 집단의 하나인 약사이다. 하지만 회원들을 위해 봉사하는 약사회장직을 10년 동안 맡아왔던 나에게 이기주의란 낯선 단어였다.

아무리 3개월밖에 안 된 신사라지만 타 정에서 습사 하러 온 손님, 자신보다 10여 년이나 연상인 한량에 대한 예우에서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버르장머리 없는 자녀들을 두고 가정교육을 탓한다지만 그 사원(射員)을 두고 00정을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범절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터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활을 접었다. 더 이상 그 사원 옆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쓰디쓴 입맛을 다시며 과녁 터로 향했다. 과녁 앞에서 낯선 사원에게 당한 무안과 설움을 애써 참고 있었던 화살들은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내 품에 안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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