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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신경이완증후군’ 진단 못한 의료진, “과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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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신경이완증후군’ 진단 못한 의료진, “과실 없다”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18.12.29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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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신경과전문의 아니면 진단 어려워"...불성실한 진료 아냐
 

두 차례 내원했지만 ‘악성신경이완증후군’을 진단하지 못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해당 질환은 신경과 전문의가 아니면 진단하기 어렵다는 것과 의료진이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만큼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잘못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대법원은 최근 사망한 환자 A씨의 유족들이 B의료재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지난 2011년 2월경 당시 22세의 A씨는두통, 오심 및 구토 증상으로 B재단이 운영하는 B병원에 내원(1차 내원)했다. 당시 B병원에서 A씨를 진료한 의사 C씨는 혈액검사를 실시했으나 특이소견이 없고, 경도의 구토 증세만 있다고 판단해 수액과 진토제(구토억제제)인 멕소롱을 투여했다. 증상이 호전된 A씨는 귀가했다.

다음날 A씨는 구토 증상이 재발해 B병원에 내원(2차 내원)했는데, C씨는 A씨의 생체징후(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가 정상 범위 내에 있고 8시간 전인 1차 내원 당시 실시한 혈액검사 결과도 정상이었다는 이유로 수액과 멕소롱을 주사하는 외에 재차 혈액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채, 일반병실에 입실시켰다.

그로부터 1시간 가량 지난 뒤, A씨는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호흡곤란 및 복통을 호소했고, 이에 간호원은 반자위자세와 심호흡을 유도하면서 산소를 투여했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고 혼스상태에 빠졌다.

B병원의 의사 D씨는 A씨에 대한 뇌CT 촬영을 실시하고 중환자실에 입실시켰으며, 실시한 혈액검사 결과 혈중 칼륨 농도가 7.6mmol/ℓ(참고치(3.5~5.0), pH 수치가 6.91(참고치 7.35~7.45), 혈중 크레아티닌(Creatinine) 농도가 2.4mg/㎗(참고치 0.6~1.2) 등으로 나타남에 따라 A의 증상을 대사성 산증 및 급성신부전으로 진단하고 비본과 칼슘 글루코네이트를 각각 투여했다.

그러나 A의 증세가 호전되지 아니하고 혼수상태에서 회복되지 못하자, D씨는 A씨를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시켰다.

대학병원 의료진은 A씨에 대한 뇌CT 촬영을 실시했으나 특이소견이 없다고 판정했고, 이후, 요추천자 검사를 실시했는데 검사 당시 측정된 뇌척수압은 200mmH2O, 세균감연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A씨의 증상을 대사문제로 인한 의식저하로 판단하고 내과중환자실에 입원시켜 투석치료를 실시했다.

A씨를 담당한 의사 E씨는 다음날 A씨에 대한 뇌CT 촬영 결과 전날보다 뇌부종 증세가 악화된 사실을 확인하고, 신경과와 상의해 바이러스성 뇌염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항바이러스제인 어사이클로비어를 처방했다.

하지만 당시 A씨는 뇌CT 촬영에서 뇌사가 의심되는 상태로, 개두술을 실시하더라도 뇌탈출의 가능성이 있어 의료진은 A씨의 생명유지를 위한 보전적 치료만 계속했다. 결국 A씨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20여일 뒤에 간부전, 심부전, 호흡부전 및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대사성 산증은 체내에 산성을 일으키는 대사성 물질이 과도하게 있는 상태,  발생원인은 ▲산(수소이온) 생성 ▲알칼리 소실 ▲산 배설 장애 등으로 나뉜다. 산(수소이온) 생성으로 인한 대사성 산증(고음이온차성 대사성 산증)의 원인으로는 심한 감염에 의해 나타나는 유산증, 당뇨병성 케톤산증, 신부전, 중독증, 근괴사 등이 있다.

급성신부전은 급성으로 신장이 손상된 것을 말하고, 발생원인에 따라 ▲신장은 정상이나 신장의 저관류(신장으로 가는 혈액의 부족)로 인해 발생하는 신전성 급성신부전 ▲신장실질을 침범하는 질환으로 인한 내인성 급성신부전 ▲요로폐색을 동반하는 질환으로 인한 신후성 급성신부전으로 나뉜다.

요추천자는 뇌척수액을 채취하기 위한 검사로서 뇌염이나 뇌수막염 등 중추신경계의 감염을 확인하기 위해 주로 시행하고, 드물게는 지주막하출혈을 진단하기 위해 시행하기도 한다.

멕소롱은 염산 메토클로프라마이드 성분의 약제 상표명으로 오심, 구토의 억제제로 사용된다. 성인의 경우 1회 10mg(1앰플 분량)을 1일 1~2회 근육주사하거나 1~2분에 걸쳐 정맥주사 한다. 과다 투여할 경우 저혈압 및 빈맥과 같은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탈수, 영양불량 등을 수반한 신체적 피폐 환자에 투여할 경우 부작용으로 말린증후군(신경이완제 악성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다. 말린증후군이 발생하면 고열이 지속되고 의식장해, 호흡곤란, 순환허탈과 탈수증상, 급성신부전으로 발전하여 사망한 사례가 있다는 보고가 있다.

A씨의 유족들은 B재단에 대해 “B병원 의료진은 1, 2차 내원을 통틀어 A씨에게 정맥주사로 멕소롱과 수액을 과다 투여해 약물중독으로 인한 의식소실, 급성신부전, 고칼륨혈증을 일으켰음에도 이를 대사성 산증으로 오진하고 잘못된 치료를 한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B병원 의료진이 망인에 대한 멕소롱이 혼합된 수액 투여 도중 증상 호전으로 인해 수액을 제거하거나(1차 내원), 다른 수액으로 교체(2차 내원)했으므로, A씨에게 수액 형태로 투여된 정확한 멕소롱의 양을 알 수 없다”며 “B병원 의료진은 A씨에게 고칼륨혈증이 있다고 진단하고 칼슘 글루코네이트를 투여했고, 이후 혈중 칼륨 농도는 같은 날 실시된 검사에서는 5.1mmol/ℓ로, 대학병원으로 전원된 후에 실시된 검사에서는 3.3mmol/ℓ로 각각 정상치 내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고칼륨혈증이 발생할 경우 부정맥이 나타날 수 있으나 심전도검사 결과 그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고, 단순히 검사 과정에서의 오류로 위와 같이 칼륨이 과다하게 나타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러한 사정에 비춰보면, B병원 의료진이 멕소롱을 직접 혈관주사로 또는 수액에 혼합해 투여함으로써 망인에게 약물중독이 초래되었다거나 고칼륨혈증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전했다.

또 재판부는 “심한 대사성 산증이 발생할 경우 조직 내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안색이 창백해지고 숨이 차는 등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며 “pH 7 정도의 대사성 산증은 다장기 기능부전을 일으킬 수 있어 매우 위험하며 조기진단 및 치료가 중요한 점 등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B병원 의료진이 동일한 증상으로 약 8시간 만에 재차 내원한 A씨의 상태가 위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1차 내원 당시 실시한 정도의 치료만을 반복했고 A씨가 호흡곤란을 호소한 이후에도 그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 등을 실시하지 않아 적절한 검사 및 처치를 시행하지 아니한 업무상 과실이 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다만 재판부는 “A씨의 사인은 불명이나 부검 결과 뇌부종 및 뇌염을 동반한 허혈성 괴사와 의무기록상 대사성 산증 및 급성신부전 발병이 확인돼, 바이러스성 뇌염에 의한 대사성 산증이 급성신부전 및 사망의 원인으로 추정될 수 있다”며 “A씨의 사망은 바이러스성 뇌염으로 추정되는 감염의 급속한 악화에 기인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B병원 의료진이 2차 내원 당시 혈액검사 등을 조기에 시행해 대사성 산증을 발견하고 중탄산나트륨을 보다 일찍 투여했더라도 이 같은 감염 등을 발견하고 이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B병원 의료진의 과실과 A씨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므로, 과실로 인해 사망한 거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유족들은 항소를 제기했고, 2심 재판부는 원심을 뒤집고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A씨는 B병원에 1차 내원하였다가 증상이 호전돼 귀가했다가, 증상이 계속돼 다시 2차 내원했고, 당시에는 저혈압 및 빈맥 증상까지 보이고 있었으나, B병원 의료진은 1차 내원 당시 실시한 치료만을 반복했다”며 “2차 내원 때 A씨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호흡곤란 및 복통을 호소했으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음에도 의료진은 A씨의 상태에 관해 의사에게 보고하지 않고, 간호사가 망인에게 심호흡을 권장하고 코로 산소를 공급해 주는 조치만을 취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A씨에게 급속히 진행된 뇌병증 및 대사성 산증의 진행 경과에 비춰 B병원 의료진이 진단 및 치료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과 망인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2차 내원 후 약 1시간 만에 상태가 급속히 악화됐음에도 의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보고 하지 않았다”며 “A씨가 의식을 상실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뇌병증의 원인을 찾아 치료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하도록 한 것은 일반인의 처지에서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재판부는 “B재단은 그로 인해 A씨 및 유족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에서 뒤집힌 판결은 대법원에서 다시 한 번 뒤집혔다.

대법원은 “B병원이 멕소롱을 과다 투여했다고 보기 어렵고, 권장 투약 간격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설령 1일 최대권장사용량을 초과해 투여했더라도 A씨에게 나타난 증상이 멕소롱 과다 투여로 인한 악성신경이완증후군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주의의무 위반과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없다”며 “A씨가 2차 내원한 후 혼수상태에 이를 때까지 적절한 치료와 검사를 지체했다 하더라도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위자료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1차 내원 시 혈액검사, 활력징후, 맥박 등이 모두 정상범위에 있었고, 멕소롱 투여 후 증세 호전으로 귀가했다”며 “2차 내원 시 호흡곤란·복통 등의 증세를 호소하자 H 병원 의료진이 A 씨를 집중관찰했고, CT 촬영 후 중환자실로 이동시켜 혈액검사를 실시하는 등 곧바로 조치를 취했으며, CT 결과로도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응급실 상황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사해야 하고, 일반 의료진 능력으로는 진단과 치료에 한계가 있으므로 즉시 동맥혈가스분석 검사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응급실 당직 의사에게 과실이 있다고 연결하기 어렵다”며 “내원 시부터 적절한 처치까지 치료가 약 3시간 정도 늦어진 것을 치명적 범실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대법원은 “또 다른 진료기록감정 촉탁에 따르면, 대사성산증, 미오글로빈 증가, 뇌부종으로 인한 뇌사 등 악성신경이완증후군은 환자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일부 신경과 전문의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질병”이라며 “원심 판단에는 의료사고의 과실과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어, B재단의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해당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기 위해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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