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7 00:08 (토)
한의사의 주의의무에 대한 판결 동향은?
상태바
한의사의 주의의무에 대한 판결 동향은?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18.11.19 0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영호 부장판사...의료법 학회에서 판례 소개

최근 의료과실을 다룬 소송에서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한 판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의료과실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은 판결의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데, 과연 한의사의 주의의무에 대해 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리고 있을까?

대한의료법학회, 법원의료법분야연구회는 지난 17일 대법원에서 ‘현대의학과 한방의료’라는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박영호 부장판사는 ‘한방의료에서 한의사의 주의의무 및 판결의 동향’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한방의료행위의 적정성을 판단함에 있어 황제내경, 동의보감 등 서적에 담긴 한의학적 지식에 대한 파악과 이해가 선행돼야하지만, 재판관련자들이 서양의학 교과서에 비해 이 자료들의 내용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서양의학의 경우 감정결과나 사실조회 등과 다른 자료들을 직접 대조·비교할 수 있는 것에 비해 한의학은 전반적인 자료 부족으로, 실무에 있어 많은 애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의사의 손해배상책임에 대한 법원의 판례들은 어떨까? 박영호 부장판사는 ▲진단·경과관찰 및 전원조치 ▲내과적 치료방법(한약처방) ▲침 및 부항 시술 ▲ 추나요법 ▲양·한방협진 병원 등으로 나눠 살펴봤다.

먼저 진단·경과관찰 및 전원조치에 있어 인용한 사례로, 지난 2006년 대법원에서 선고된 판례를 예로 들었다.

해당 판례를 살펴보면 루푸스와 다발성 경화증을 진단받고 스테로이드 제제를 복용 중이던 환자를 진료하게 된 한의사가 비위기허(위장과 비장의 기능이 허약한 것)와 위하수(위가 처져 기능이 떨어지는 것) 등 소화기능의 장애로 몸의 기능이 제 기능을 못한다고 진단하고, 약을 복용하게 했다.

한약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스테로이드 복용을 중단시켰고, 한 달 가량 한약만 복용하게 하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 결국 사망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루푸스, 다발성 경화증 및 스테로이드제에 대한 의료지식이 부족했음에도 독자적인 판단으로 부작용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은 채 복용을 중단시켰다”며 “면역 억제가 필요한 증상의 환자에게 면역 증강 효과가 있는 약재를 복용시켰고, 경과 관챃이나 증상 악화의 원인 파악 및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한의사의 책임을 50% 인정했다.

박영호 부장판사는 “이는 한의사들이 불만을 가질 법한 내용의 판결이다”며 “판결을 보면 루푸스 등에 대해서는 한의학은 아예 적용될 수 없고, 한방의료행위를 중단하고 의료기관으로 전원하라는 거 아닌가라고 볼 수 있다. 한약으로 인한 의료행위를 중단하지 않은 걸 과실로 본 사례”라고 밝혔다.

박 판사는 “전통 동양적인 기초한 한의학 서적에 면역질환, 암 관련 부분에 대한 부분이 나왔으면 모르겠는데, 이는 서양의학도 최근에서야 진단, 치료법이 나오고 있다”며 “한의학에는 이런 질환에 대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의료기관으로 전원시켜야한다는 무의식적인 판단이 판사들 사이에 있는 거 같다”고 전했다.

물론 배척한 사례도 존재한다. 지난 2008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선고된 판결로,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받은 환자가 침구치료를 받기 위해 허리, 간, 콩팥기능 향상을 위한 한약을 처방받아 1회 복용 후 뇌경색 판정을 받은 사례이다.

법원은 “환자가 호소한 증상 및 연령, 기왕병력 등에 비춰 뇌경색의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척추관협착증으로 진단한 것이 과실이라고 볼 수 없다”며 배척했다.

내과적 치료방법, 한약처방에 관련해서 박영호 부장판사는 “한의사가 진단을 내리고, 내과적 치료방법으로 한약을 처방·조제한 후, 악결과가 발생한 경우 한의사의 한약 처방·조제행위를 문제삼은 예가 상당했다”며 “잘못된 처방을 했거나 처방과 다른 한약재, 특히 부작용을 유발하거나 독성 성분을 포함한 한약재를 첨가해 조제한 과실, 스테로이드제제나 오염된 한약재를 포함해 처방·조제한 과실이 주로 문제됐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인용한 판례는 지난 2008년 선고된 광주지방법원 판결인데, 당뇨병환자가 한의사로부터 환약 및 탕약을 구입해 복용 후, 피부질환·구토 등 이상증상을 느끼고 약 복용을 중단했다. 이후, 환자는 피부질환을 치료받다가 독성 간염을 진단받았다.

법원은 “한의사가 조제, 판매한 환약 및 탕약 등의 복용으로 인해 독성 간염에 걸렸다”면서 책임제한 없이 한의사 측 책임을 100% 인정했다.

배척한 사례도 있는데,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환자가 한의원에서 비위기허 진단 하에 보중익기탕을 처방받아 한 달 가량 복용했고, 최초 복용일로부터 3개월 가량 지난 시점에 급성신부전을 진단받아 치료받았지만 결국 사망한 케이스였다.

법원은 동의보감원방처방을 무시하고 신부전을 유발하는 한약재를 함부로 사용한 과실에 대해 “한의사가 재량 범위 내에서 처방으로 한약을 조제했고, 신부전을 유발하는 한약재를 사용하지 않았다”며 “독성물질인 포부자는 그 적절한 사용범위 내에서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침 및 부황시술과 관련해선 어떨까? 박영호 판사는 “한의사가 환자에게 침, 부항을 시술한 경우 그 악결과로 염증이 발생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며 “다만 이러한 과실 주장이 인정된 예가 거의 없고, 시술 이전에 이미 염증이 발생해 있었다. 시술방법(부위, 시술깊이)에 비춰 염증 발생 부위와 시술의 상관관계가 업다는 등의 이유로 인과관계가 부정된 예가 많았다”고 전했다.

인용한 사례 중 대구지방법원에서 지난 2007년 선고된 판결에 대해 박영호 판사는 모호한 판단 기준으로 내려진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판결은 환자에게 흉추 4번에서 우측 견갑골에 연접한 부위, 즉 고황수라는 혈자리에 직경 0.25mm, 길이 약 5cm 가량인 호침을 2.5~2.8cm 정도 들어가게 비스듬히 침을 놓았는데, 너무 깊이 찔러 기흉이 발생한 사건이었다.

법원은 “응용해부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는 피하 1.5~2cm에 폐의 표면이 위치한다고 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목동병원 의료진의 ‘침술요법 후에 발생한 기흉 2쳬’라는 논문에서 침술 요법에 사용하는 바늘은 견갑부 및 배부에 사용하는 경우 0.5~1cm 이상 깊이로 삽입하는 것은 피해야한다”며 “한의사가 환자에 대해 침을 너무 깊이 자입한 업무상 과실로 기흉이란 상해를 가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박영호 판사는 “이 판결에서 이대목동병원이 시침 깊이를 정할 수 있는 건지, 개인적으로 기준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 같다”며 “한의사의 기준으로 하더라도 이 시술은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데, 한의서에 침을 너무 깊이 찌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다만 과실을 기술하는 기준에 있어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배척한 사례는 지난 2000년 인천지방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인데,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 환자에게 견비통(오십견)에게 침술 치료를 했는데, 같은 날 환자에게 뇌출혈이 발생한 사건을 다룬 판결이다.

재판부는 고혈압, 두통, 당뇨병이 있어 외부자극에 약한 상태에서 침술 요법을 선택한 과실에 대해 “환자의 신체상태가 매우 허약했거나 손상이 많아 침 시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배척했다.

추나요법에 대해 박영호 판사는 “환자의 신체, 특히 뼈나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는 물리적 요법이라는 특성상, 주로 환자의 증상이 악화된 상태에서 적절한 시기에 추나요법이 실시된 것인지, 시행방법상에 문제가 없었는지가 문제됐다”며 “실시한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해 일부 과실이 인정된 예는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1년 부산지방법원에서 내려진 판례를 살펴보면, 환자가 선천적 척추후만증 및 하지마비로 흉추 제5, 6, 7번 후방감암술을 받고, 1개월 후 한의원을 찾아가 2개월 사이에 3회에 걸쳐 추나요법을, 이후 3개월이 지난 뒤 2차 후방감암술을 받았다.

법원은 “수술 직후이고, 추나요법이 수술 후 회복이 완전하지 않은 환자에게 시행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금기시되는 것”이라며 “추나요법 실시 시기가 적당하지 않았다는 과실은 인정했으나, 그로 인한 악화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양·한방협진에 대해서는 지난 2009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선고된 뇌출혈 환자의 재출혈 가능성에 대비한 조치 및 경과관찰, 전원의무 위반을 인정한 판결을 예로 들었다.

양·한방을 함께 운영하는 병원에서 한방진료를 원해 한의사들이 진료를 담당하고 있던 환자에게 뇌전산화단층촬영을 한 결과, 뇌실질내출혈을 알게 돼 한의학적 처치법으로 치료를 진행했다. 이후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자, 의사에게 협진을 요청해 처치했지만 환자에게 장해가 남게 됐다.

법원은 “한방의료상 뇌출혈을 지혈시키거나 재출혈을 예방할 직접적인 치료법이 없어 만성기가 아닌 급성기 치료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한방병원 의료진으로서는 급성기 치료에 보다 적합한 양방치료를 권유하거나, 양방병원과 협진을 통해 혈압강하게, 지혈제 등을 우선 투여했어야 한다”며 “활력징후를 면밀히 살펴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즉시 양방병원으로 전원조치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해 경과관찰을 소홀히 했다”면서 피고의 책임 20%를 인정했다.

여기에 박 판사는 한의사의 주의의무에 대해 판결의 동향에 대해 설명했다.

박 판사는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한방과 양방의료면허를 명확하게 구분한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한의사의 의료과실 판단기준은 한의사의 주의정보가 표준이 돼야한다고 되어 있다”며 “이는 현대의학은 귀납작 사고를, 한의학은 연역적 사고를 학문의 기초로 하고 있어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점과 의료법은 의-한의 면허를 구분하고 있고,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는 무면허의료행위로 처벌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객관적 사실이나 근거없이 서양의학적인 진단과 치료를 한의학의 그것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시각에서 한의사의 주의의무를 판단해선 안 된다”며 “한의사의 주의의무 수준을 17~18세기 조선시대의 한의학의 수준으로 한정하는 것은 이원화된 의료체계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의사와 거의 동등한 수준의 진단 및 치료의 자격이 부여된 의료인력이 한의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적절하지 못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박영호 판사는 “한의사들에게도 일정한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양방의료의 지식, 기술이 요구되고, 양방의학의 지식 등을 기초로 주의의무를 파악해야한다”며 “양방의학 지식의 적용도 한의사들이 면허받은 업무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한의사들에게 의료법 위반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므로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박 판사는 “한의사들이 양방의학 교육을 받았더라도 이 같은 교육은 1주일에 2~3시간 정도의 간단한 교육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의사들에게 양방임상의학분야에서 실천되는 의료행위 수준을 직접적으로 요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