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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족쇄' vs '환자의 권리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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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족쇄' vs '환자의 권리확보'
  • 의약뉴스
  • 승인 2005.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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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양면의 칼날, 의료기술평가제도(中)
의료계 일각에서는 의료기술평가제도를 '양면의 칼날'로 비유한다. 한쪽에서 너무 힘을 주거나 잘못 움직이면 양쪽 모두 다칠 수 있음을 경고한 말이다. 그만큼 제도 추진과정에서 복지부는 환자의 권리와 의료계의 자율성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의료계는 의료기술평가제도에 대한 경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제도 도입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각론에서는 복지부와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의료계는 일단 평가대상의 범위와 평가주체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칫 제도가 의료계를 옥죄는 '제2의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복지부도 의료계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지난달 15일 개최된 '의료기술평가제도 도입과 활성화 방안'이라는 토론회가 당초 법률개정을 위한 '공청회' 성격에서 토론회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복지부는 내심 '의료기술등록제'와 같은 초강수를 두고 싶지만, 현실론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편집자 주)

◇평가대상, 기존 의료기술도 포함되나

의료기술평가제도 도입 과정에서 가장 쟁점 사안은 평가대상의 범위다. 의료계에서는 평가대상에 기존 의료기술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경우 의료계를 견제하는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신기술개발평가단은 일단 3가지 안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신의료기술에 대한 급여·비급여 결정시 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복지부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고 있다. 신의료기술로 급여 또는 비급여를 결정할 때 의료기술평가를 거치지 않은 기술은 아예 신청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영역문제를 놓고 의료계 각 단체별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만큼 논란과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 방안은 신의료기술에 국한돼 기존 의료기술이나 의료체계 하에서 문제소지가 있는 의료기술은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단점이 있다.

다음으로 강제성을 띤 '의료기술등록제'이다. 이는 약제나 의료장비처럼 모든 의료기술을 등록, 평가를 거쳐야만 시술이 가능토록 하는 방안이다. 시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담보할 수 있고, 불필요한 진료행위를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계 입장에서는 진료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제한 받고 의학발전에 역효과를 주는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벌칙조항이 수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반발이 거셀 것이란 우려도 부담이다.

마지막으로 신청 기술에 대해서만 의료기술을 평가하는 방안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기술만 평가하는 만큼 의료인에게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해줄 수 있다. 반면 비효과적이고 근거가 불확실한 의료기술의 도입을 제한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또 현 보건의료체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채택 가능성은 떨어져 보인다.

복지부는 평가대상과 관련 신의료기술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의료기술도 평가대상에 함께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도 "기존 의료기술 가운데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것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 의료기술까지 그 대상을 확장해시킬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어 의료계와의 갈등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의료계, 의료기술평가제 '옥상옥' 우려

의료계는 벌써부터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의료기술등록제가 시행될 경우 의료계에 몰고올 파장은 거의 '쓰나미'에 견줄만하다.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기술평가위원회'(가칭)를 설립하고, 강제조항을 삽입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정부안 가운데 의료기술등록제에 대해서는 "옥상옥"이라며 도리질을 치고 있다. 신의료기술에 대해 평가하는 것조차 현 상황에서는 어렵다. 그런데도 정부가 기존 의료기술까지 평가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보험재정을 고려한 통제정책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심평원 조범구 심사평가위원장도 "모든 의료기술을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부작용이 우려되거나 비용부담이 많은 의료기술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한한의사협회(회장 안재규) 역시 모든 의료행위에 대한 안전성 및 유효성 평가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EBM(근거중심의학)과는 달리 한의학이 상대적으로 전통과 경험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의료기술평가제도가 족쇄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양인철 보험이사는 "현재 한의의료행위 총 507개 가운데 200여개 이상의 의료행위에 대한 결정과정이 남아 있다"면서 "평가 이전에 양.한방의 구분이 선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양 이사는 "등록제를 운영할 것이 아니라면 모든 의료기술을 평가할 수 없다"면서 "먼저 신의료기술에 국한한 뒤 점차 범위를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정재규)는 의료기술평가 자체에 대해서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의료기술평가방식이 '체계적 학문 고찰'이지만, 치과에 관련된 근거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의료기술은 양면의 칼날"이라며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권호근 연구위원은 "의료기술을 평가하는 데는 재원과 시간이 소요된다"면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권 위원은 이어 "의료기술은 100% 안전한 것이 없다"면서 "다만 어디까지 안전성을 인정할 것이냐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의료기술평가를 통한 규제 차원에서 접근할 경우 자칫 의료인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실무자는 "환자의 권리와 의료인의 자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추진해나갈 것"이라며 "의료계의 우려는 지나친 기우"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는 각 단체의 의견을 듣고 종합해가는 과정"이라며 "초반부터 신경전을 벌일 필요는 없다"고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

◇평가주체, 정부 주도 vs 민간주도 기관

평가주체를 놓고서도 복지부와 의료계간 시각차가 존재하고 있다.
복지부는 의료기술평가위원회에서 안정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의료기술에 대해 지금처럼 심평원에서 급여·비급여 대상을 결정짓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즉, 정부 주도의 기구를 구상하고 있다. 의료기술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고 재원 지원 등을 위해서도 이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기존의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의 전문성 부재를 꼬집으며, 심평원이 아닌 제3의 독립된 평가기구를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기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박효길 의협 보험부회장은 "재원조달은 복지부에서 하더라도 제3의 별도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의협의 경우 의료기술평가위원회는 의과, 치과, 한방 등 각각의 단체에 신의료기술, 약제, 치료재료에 대한 전문적인 검토를 위한 위원회를 설치, '근거에 기반을 둔(Evidence based)' 의료행위전문위원회를 운영하자고 제의한 바 있다. 또 최종 제3의 중앙평가위원회와 결과를 환류하는 검증시스템을 요구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이와 관련 "미국 의사협회의 CPT 편집위원회와 같은 신의료기술평가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의협이나 치협 역시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의협 양인철 보험이사는 "의료인의 의료행위에 대한 안전성·유효성 평가는 관련학회 또는 협회 등 의약관련 전문가단체가 수행할 수 있도록 법문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양 이사는 또 "위원회는 학문적, 임상적 전문가로만 구성해 평가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료기술 평가가 정부 주도로 이뤄질 경우 의료인의 전문분야를 침해하는 '규제의 칼날'이 될 수 있다"면서 "의료인들의 자율 조직을 먼저 구성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협 권호근 연구위원은 "의료기술 평가는 어차피 전문가인 의료인이 하는 것"이라며 "심평원이나 공무원들이 평가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권 위원은 "가능하다면 제3의 전문가 집단이 평가를 주도하는 게 제일 좋다"면서 "이 경우 전문가 집단의 윤리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의료법 개정, 두 가지 방안

복지부와 심평원 신기술평가개발단은 지난달 7일 의료법 개정과 관련 법률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의료기술등록제 신의료기술신청 전 평가 요청 기술에 한정된 평가 등 의료기술평가제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 검토안이 제시됐다.

제1안은 '의료기술평가위원회'로부터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받도록 하고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은 시술할 수 없도록 했다. 이를 준수하지 않는 의료인에 대해서는 면허정지 등 처벌규정을 삽입하고 있다. 또 부칙조항에 '표준의료기술분류표'로 고시하는 의료기술만 평가를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의료법 제25조2의 1항과 2항을 신설하는 방안은 '초강수'다.
1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건강의 보호와 의료의 질 향상을 촉진하기 위해 의료기술의 안전성·유효성 등을 평가해야 하며 평가를 받은 의료기술 중에서 국민건강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의료기술평가를 재실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2항은 '의료인이 행하는 의료기술은 안전성·유효성 등의 평가를 받아야 하고, 평가되지 않은 의료기술은 시술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의료법 53조 자격정지 조항에 '제25조 2의 제1항, 2항의 규정에 위반한 경우'를 규정하고, 제66조 벌칙조항에도 '제25조 2의 제1항, 2항의 규정에 위반한 경우'를 포함하고 있다.

의료기술평가위원회 구성요건은 제31조2의 1항에 명시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위원장 1인을 포함, 10인 이상 15인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토록 하고 있다. 이어 3항에는 위원회 산하 '의학적 전문평가를 위한 세부전문위원회' 설치 규정을 두고 있다.

제2안은 임의규정 형식으로 의료인의 신청이 있는 경우에만 의료기술평가를 실시토록 한다는 내용이다. 제25조2의 1항과 2항 역시 강제규정이 아닌 의무규정으로 채워져 있다.

1안의 경우 부적절 의료행위에 대한 규제와 의료기술평가제도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반면 의료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자연 검토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2안은 의료계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효과 역시 1안과 실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복지부는 판단하고 있다. 복지부는 일단 의료법 개정안에 의료기술평가위원회 설치근거를 마련한 뒤 부칙에 실시 기간을 2∼3년 유예하는 내용을 삽입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부적절 의료기술에 대한 퇴출 문제는 의료기술평가제가 도입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며 "어차피 의료기술평가를 거치지 않은 시술은 설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복지부는 임의규정인 2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기술평가제도를 도입하면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의료계의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약뉴스 홍대업 기자(hongup7@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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