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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질환, 폼페병 먼저 떠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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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질환, 폼페병 먼저 떠올리세요
  • 의약뉴스 송재훈 기자
  • 승인 2014.06.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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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대학 제이 한 교수

“어떤 질환인지 혼란스럽다면, 치료가 가능한 질환부터 고려해야 한다.”

지난 2010년, 브랜든 프레이저와 해리슨 포드 주연의 ‘Extraordinary Measures(특별조치)’라는 영화가 개봉돼 잔잔한 감동을 전해줬다.

폼페병이라는 희귀질환에 걸린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집중한 존 크롤리 젠자임 전 부사장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조금만 더, 하루만 더’라는 소설이 원작이다.

이 소설에는 불치의 희귀질환을 가진 아이에 대한 부모의 애끓는 심정과 이로 인해 붕괴 위기에 처한 가정의 모습이 ‘이것은 모두 실화’라는 저자의 첨언보다 더 현실적으로 묘사됐다.

그러나 부유하진 않았지만 하버드 대학 동창이라는 막강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스스로 폼페병 후원재단과 폼페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업체까지 설립한 그의 열정 덕에 이제 폼페병은 신경근육질환 가운데 유일하게 특이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 됐다.

의약뉴스는 최근 폼페병의 인식개선을 목적으로 방한한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제이 한 교수를 서울의 모처에서 만났다.

미국신경근육전자진단의학협회 폼페병 치료그룹 멤버인 그는 이 분야의 권위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 의약뉴스는 최근 폼페병의 인식개선을 목적으로 방한한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제이 한 교수를 서울의 모처에서 만났다. 미국신경근육전자진단의학협회 폼페병 치료그룹 회원인 그는 이 분야의 권위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폼페병, 인구 4만 명 당 1명 꼴...30%는 치명적인 유아발병형

존 크롤리와 에일린 크롤리는 둘째와 셋째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병에 걸렸으며, 치료할 방법조차 없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폼페병으로, 서서히 근육이 약해지는 퇴행성 질환이었다. 나중에는 제 힘으로 걸을 수도, 심지어 숨을 쉴 수도 없는 무서운 병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환자가 만 명도 안되는 희귀한 유전병으로, 어릴 때 폼페병을 진단받으면 두 살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 '조금만 더 하루만 더' P12


산성 말타아제 결핍질환 등 다양한 병명으로 불리는 폼페병은 리소좀 효소의 하나인 α-글루코시타아제(GAA)의 결핍에 의해 발병하는 희귀한 유전성 리소좀 축적 장애다.

당의 일종인 글리코젠 분해에 관여하는 α-글루코시타아제의 결핍으로 섬유조직 내에 글리코젠이 축적되면서 팔다리 근육이나 호흡기, 심장 등의 손상을 유발한다.

이에 따라 환자의 절반 이상이 휠체어나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며, 이로 인해 환자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특히 태어나면서부터 증상이 나타나는 유아발병형 환자의 경우에는 심장 비대증상이 흔해 대부분 1년 내에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제이 한 교수는 “효소의 활동 정도에 따라 증상이 발현되는 시기가 다르다”며 “크게 1년을 기준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증상이 나타나는 유아발병형과 이후에 발병하는 후기발병형으로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1년 이내에 발병하는 유아발병형은 병이 빠르게 진행돼 치료를 받지 않으면 대부분 1년 이내에 사망한다”면서 “유아발병형과 후기발병형을 고려하지 않은 평균 수명도 24.6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한 교수에 따르면, 폼페병의 발병률은 약 4만명당 1명꼴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2만 8000명 당 1명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 가운데 후기발병형이 70%이상, 유아발병형은 30%미만이다. 보다 치명적인 유아발병형 환자의 평균 수명은 약 8개월로, 18개월에서의 생존률은 14%에 불과하며, 후기발병형 환자의 평균 사망연령은 56세다.

한 교수는 “부모가 다 보인자인 경우 폼페병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25%, 보인자로 태어날 확률은 50%, 폼페병도 없고 보인자도 아닌 경우가 25%”라며 “실제 발병률은 많지 않더라도 보인자는 생각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유사 질환 많아 진단까지 평균 7년 소요...혈액검사만으로 간단하게 확인 가능

존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데, 메건이 갑자기 두 팔을 휘저으며 뒤로 쓰러졌다. 존이 왼쪽으로 기우뚱하자 사람들은 헉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곧 중심을 잡고 아들과 졸업장을 진 채 메건을 무사히 붙잡았다. 모든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존은 단상에서 내려와 메건을 에일린에게 건넸다. 에일린이 하얀 보닛을 똑바로 씌우고 흔들어주자, 메건은 다시 귀엽게 웃으며 꾸르륵 소리를 냈다.
그때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것이 그의 딸에게 뭔가 이상이 있음을 알리는 첫 번째 신호였다. - '조금만 더 하루만 더' P22


폼페병은 희귀질환 중에서도 극히 드문 질환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폼페병 환자는 30여명이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오진가능한 질환이 20여 개에 이르다 보니 의료진 역시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 속에서 폼페병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 한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폼페병의 진단에 혼란이 가능한 여러 질환이 있다”며 “이로 인해 증상이 나타나고도 진단까지 오래 걸리는데,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평균 10년은 늦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 한 교수는 그러나 “폼페병은 유사한 다른 질환들과 달리 혈액검사만으로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치료가 가능한 만큼 근육질환이라면 폼페병을 먼저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과거에는 근육을 떼어내 조직검사까지 해야 했지만, 이제는 검사방법도 간단해졌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38명의 후기발병형 폼페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추적연구에 따르면, 증상으로 인해 처음으로 병원을 방문한 시점으로부터 평균 7년 이후에 병을 확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54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또 다른 조사에서도 3분의 1 이상의 환자들이 폼페병을 확진 받기까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30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한 교수는 그러나 “폼페병은 유사한 다른 질환들과 달리 혈액검사만으로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치료가 가능한 만큼, 근육질환이라면 폼페병을 먼저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과거에는 근육을 떼어내 조직검사까지 해야 했지만, 이제는 검사방법도 간단해졌다”고 강조했다.

폼페병은 DBS(Dried Blood Spot)라는 혈액 검사를 통해 발병 여부와 인자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검사를 통해 혈액 속 GAA의 활성화 정도를 평가한다.

그는 “대만의 경우 모든 신생아에게 이 검사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미국도 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만을 따르고 있다”면서 “신생아때 검사하는 것 만으로 유아발병형은 물론 후기발병형 여부도 파악 할 수 있어 추적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유일하게 치료제 보유한 근육병...근육 손상 전에 치료해야

키슈나니 박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치료를 조기에 시작하는 것이 운동능력이 향상될 수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즉, 메건과 패트릭도 좀 더 어리고 건강했을 때 마이오자임 치료를 받았더라면 훨씬 튼튼해졌을 것이다. - '조금만 더 하루만 더' P360


한 교수가 근육질환에 무엇보다 폼페병을 먼저 고려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치료제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근육이 손상되기 전에 치료해야 기능 이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폼페병은 부족한 GAA의 역할을 보완하기 위해 알글루코시다아제 알파(alglucosidase alfa)를 이용한 효소 대체 치료(Enzyme Replacement Therapy, ERT)를 시행한다.

이미 ERT 치료는 여러 임상연구를 통해 폼페병 환자들의 생존 연장과 심장 및 근골격계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이 입증됐다.

실제로 한 교수에 따르면 폼페병환자에 마이오자임(젠자임)을 투여한 결과 호흡기 사용여부와 무관하게 18개월에서 2%만 생존한 위약군과 달리 마이오자임은 67%까지 생존율을 끌어올렸다.

특히 ERT 치료는 질환의 진행정도(stage)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심장계 반응이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 한 교수는 “대만의 경우 모든 신생아에게 이 검사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미국도 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만을 따르고 있다”면서 “신생아때 검사하는 것 만으로 유아발병형은 물론 후기발병형 여부도 파악 할 수 있어 추적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골근육계 반응 역시 조기 치료, 즉 심각한 근육 손상 이전에 치료를 시작한 경우에 최적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심장비대는 줄어들고 인공호흡기 없이 생존하는 케이스는 증가했으며, 대부분의 임상참가자들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느 것이 한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후기발병형 환자의 경우에도 6분 동안 걸어간 거리가 위약군에 비해 9배 가까이 증가으며, 부작용은 크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효과 덕에 다른 유사 근육질환 환자들이 폼페병으로 진단받기를 희망하기도 하고, 직접 폼페병 진단을 요구하거나 다른 질환으로 진단되면 실망하기도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 교수는 "무엇보다 진단 늦어지는 만큼의 고생이 필요 없고, 치료 가능한 약물 있는 만큼 가능하면 빨리 폼페병 여부를 파악하고 이를 기초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폼페병을 의심할만한 경우로 그는 소아의 경우 사지가 축 쳐지고 심장이나 비장이 거대해 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성인은 특별한 만성질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위로 손을 올리거나 계단 오르내리기가 어려워진 경우, 세수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 등을 예로 들었다.

특히 다른 근육질환들은 호흡기 이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흔치 않아 이와 같은 증상들이 호흡곤란과 함께 나타날 경우에는 폼페병을 진단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근육질환이라면 ‘폼페병’ 먼저 떠올리길...한국인 유전형 연구도 필요

하지만 예전과는 그 모습이 많이 달랐다. 그때 그 아기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엄마가 머리만 살짝 받혀주었을 뿐인데도 혼자 앉아 있었다. 전에는 불면 날아갈 것처럼 작고 야위어서 잘 몰랐는데, 숱 많은 금발과 어마어마하게 큰 파란 눈을 가진 귀여운 아기였다. 아기는 경계를 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손님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치료를 받기 전에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 했던 아기가 지금은 엄마를 따라 짝짜꿍을 했다.  - '조금만 더 하루만 더' P147

“그게 무슨 뜻인지 아니? 네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 수 있다는 뜻이야.” - '조금만 더 하루만 더' P349


한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한국의 의료인들에게 따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주문하자 “폼페병은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로 발현이 가능하다”며 “항상 폼페병의 가능성 열어두고 진단하는 것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다른 근육병과 달리 의미 있는 치료제가 있는 만큼, 환자들에게 정보를 줘서 자기가 앓고 있는 이 질환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치료 시작 전에 환자도 참여해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하며, 현실적인 목표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일선의 의사들 뿐 아니라 전문의들도 더 많이 알아가야 할 것”이라며 “인종과 민종에 따른 유전형의 차이도 커서 이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마이오자임의 제조사인 젠자임에 따르면, 현재 마이오자임보다 3~5배 가량 흡수가 더 잘되는 2세대 치료제의 개발이 진행중이다.

조만간 진행될 1상에는 한국인 피험자가 등록되지 못했지만, 2상과 3상에서는 한국인도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 폼페병이 '심각한 불치병'에서 '관리가 가능한 질환'으로 다가설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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