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5-03 06:01 (금)
햄스터의 교훈
상태바
햄스터의 교훈
  • 의약뉴스
  • 승인 2004.07.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늦둥이 막내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햄스터 한 쌍을 구입해 주었다.

남부교육청에서 실시한 독서퀴즈대회에서 골든 징(벨)을 울리면 원하는 애완동물을 선물해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다가 슬픈 이별을 겪으며 상처받은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결코 달갑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본을 보여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햄스터가 생쥐와 다람쥐를 빼어 닮은 외양 탓으로 막내딸은 전혀 혐오감을 느끼지 않고 가슴에 품은 채 어미 노릇을 자청한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보금자리에 깔린 톱밥을 주기적으로 갈아주고 어렵게 모은 제 용돈을 털어 햄스터의 양식인 해바라기 씨를 구입한다. 수놈과 암놈이 입을 맞추며 사랑 놀음 하는 모습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리라.

어느 날, ‘예쁜이’ 라는 애칭을 부여한 암놈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물락 거리던 막내딸이 임신을 한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이가 어려도 여자의 직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로부터 며칠 후, 잠자리에서 나오자마자 습관처럼 햄스터 우리로 다가간 막내딸이 갑자기 목청을 돋우며 제 엄마를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니 지금 막 태어난 듯 2센티도 채 안 되는 새끼들을 어미가 물어 다락방으로 옮기고 있다. 여섯 마리를 출산하느라 혼신의 힘을 다 쏟았던지 어미는 다락방 계단을 올라가다가 힘에 지쳐 구르기를 반복한다.

마침내 여섯 마리를 모두 옮긴 후 혼절하듯 옆으로 늘어진 채 젓을 물리는 어미를 지켜보던 막내딸은 ‘예쁜이’를 부르며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린다. 햄스터의 원초적인 모성애가 막내딸을 감동시켰나보다.

게다가 암놈이 새끼들을 품고 있는 동안은 제아무리 금슬 좋은 수놈도 그 곁에 얼씬거리지 않는다. 아무리 허기가 저도 암놈이 먹이를 다 먹고 물러날 때까지 멀찌감치서 기다렸다가 다가서는 정경을 지켜보노라면 절로 숙연해진다.

핏덩이 같았던 햄스터는 날이 갈수록 몸에 다람쥐 무늬의 털이 나기 시작하며 제법 동물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젠 어미 젓과 채소류를 혼식하게 되었지만 철부지 어린것들은 피곤에 지친 어미가 모처럼 숙면을 취하는 순간에도 가슴을 파고들며 젓을 찾는다.
짐승들은 출산 후 어미가 새끼를 물고 새끼들끼리 혈투를 벌인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어 혹시나 귀찮은 마음에 새끼들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어미는 자리를 피해 다닐 뿐이었다.

얼마 전, 온 가족이 1박 2일로 현장학습을 떠나면서 햄스터를 동반하게 되었다. 집에 남겨두고 다녀왔으면 싶었지만 막내딸은 어떻게 어린것들을 두고 떠나느냐며 불안한 내색을 감추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종이상자에 톱밥을 깔고 회전 바퀴와 먹이통을 달아 임시 거처를 만들어 뒷좌석에 실었다.

딸아이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햄스터의 먹이부터 챙겨 주머니에 넣는 정성을 보였다. 마지막 날, 불국사 경내를 돌아보고 온 딸아이가 햄스터 보금자리를 들여다보더니 어미가 없어졌다며 울먹인다.

종이상자 밑에 구멍을 뚫고 나간 것은 분명한데 차내를 샅샅이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 넓은 주차장을 흩어보았지만 아무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
더 이상 여행 일정을 늦출 수 없어 어미를 포기하고 출발해야 했다. 상심할 딸아이를 달래주고 어미 잃은 새끼들을 키울 걱정에 자동차 핸들이 돌아가지 않는다. 눈도 뜨지 않은 강아지들을 남겨두고 어미가 죽어 우유와 빵으로 키우느라 밤잠까지 설쳤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한참을 보냈을 때, 어미 햄스터가 돌아왔다며 집사람이 환호를 지른다. 바늘을 찾듯 차안을 뒤져도 보이지 않던 어미 햄스터가 종이상자 우리 곁에서 새끼들을 부르고 있다. 딸아이는 햄스터를 품에 안고 그동안 힘들게 참고 있었던 오열을 터뜨린다.
“예쁜아! 너 예쁜이 맞지? 어디 갔다가 인제 왔니? 응? 네가 사라지면 어린 자식들은 누구 품에서 잠을 자고 또 무얼 먹고살라고 - - -. 그리고 난 어떻게 하라고 가출을 했어? 엉-엉-.”

차안에 있던 온 가족은 덩달아 기쁨 반 슬픔 반의 눈물을 닦으며 막내딸의 등을 도닥거려 주었다.

햄스터의 수명이 다하는 2 - 3년 후, 딸아이는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이며 가슴 한 곳에 상처를 새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녀들에 대한 책임감을 망각한 채 가출을 반복하다가 이혼을 하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등 가족의 윤리관이 상실된 이 시대에 딸아이가 햄스터 사육을 통해 부모의 도리,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 햄스터는 쥐목 비단털쥐과 포유류 동물로 골든햄스터 또는 시리안 햄스터라고도 한다. 몸길이 12.5~15㎝, 꼬리길이 1.7~2.2㎝, 몸무게 130~180g 정도로 사지(四肢)와 꼬리는 짧고, 체모는 견모상(絹毛狀)으로 부드럽다. 몸 윗면은 적등색이고 아랫면과 볼, 앞발의 윗면은 흰색이다. 전신이 흰색인 것도 있다. 보통 연중 5~6회 출산하고 한배에 8~10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임신기간은 10~14일이고, 생후 11주가 지나면 성숙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