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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환자 비밀 보호’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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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환자 비밀 보호’ 중요하다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19.06.0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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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과거 저질렀던 범죄사실을 듣게 된 의사는 이를 경찰에 알려야 할까? 아니면 환자의 비밀 보호를 위해 입을 다물어야 할까?

이에 대해 일반 시민으로서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아닌, 의사로서 알게 된 정보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의료인이라면 노숙자든, 문재인 대통령이든 관계없이 진료상 비밀을 지켜줘야 할 윤리적, 법적 의무가 있다는 의견이다.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는 지난 3일 의료윤리연구회에서 ‘환자의 비밀 보호와 소위 국민의 알 권리’란 발제를 통해 의료인의 환자 비밀 보호에 대해 강조했다.

◇알톤 로간 사건, 변호사의 비밀유지 특권

박형욱 교수는 미국에서 발생한 ‘알톤 로간 사건’을 예로 들며, 변호사의 비밀유지 특권에 대해 언급했다.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

알톤 로간 사건은 1982년 1월 11일 미국 시카고 맥도날드 점포에 강도가 들어 경비원 한 명이 총살당하고, 또 다른 경비원이 중상해를 입은 사건으로, 알톤 로간은 총을 쏘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진술에 근거, 해당 사건의 강도 살인자로 지목돼 체포됐다.

평범한 살인사건이었던 이 사건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알톤 로간에겐 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카고 경찰 2명을 상해한 혐의로 앤드류 윌슨이라는 사람이 체포됐는데, 윌슨의 국선변호인인 코벤트리와 쿤즈는 맥도날드 강도살인사건의 진범이 알톤 로간이 아니라 윌슨이라는 고백을 듣게 된다.  윌슨은 이 사실을 본인이 죽기 전에는 절대 비밀로 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변호사들은 비밀을 지켰고, 윌슨이 사망한 이후에 이 사실이 공개됐다. 윌슨이 사망한 후에 밝혀진 진실로 인해 알톤 로간은 26년만에 석방됐는데, 이 사건은 변호사의 비밀유지 특권의 한계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박형욱 교수는 “해당 사건의 관련된 변호사들은 비밀을 누설하거나 알릴 수 없도록 법적 의무가 지어져 있어서 그랬다고 한다”며 “26년이라고 하면 엄청난 기간이다. 그동안 자기가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감옥에 갔다가 풀려났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결국에 알려져서 알튼 로건이 풀려났지만 앤드류 윌슨이 죽은 뒤에도 비밀을 유지하라고 요구했으면 어떻게 됐을까”라며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변호사가 의뢰인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변호사 스스로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기관 등으로부터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할 것을 요구받은 경우, 이를 거부할 권리까지 포함될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변호사법과 변호사윤리장전은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를 변호사의 의무의 형태로만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본 변호사법 제23조 또는 유럽행위규범이 변호사의 비밀유지가 권리이자 의무라고 규정한 것과 다른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변호사-의뢰인특권은 변호사와 의뢰인간의 의사소통의 내용을 공개하는 걸 거부하는 것을 허용하는 증거법상의 규칙으로 증언거부특권을 본질로 한다”며 “변호사-의뢰인특권의 본질에 대한 설찰은 의사의 비밀유지 의무 혹은 의사-환자 특권의 이해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인의 정보누설 금지

박형욱 교수는 의료법 등 다양한 법조항에서 의료인의 정보누설 금지 조항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업무상 비밀누설을 규정한 형법 제317조 1항을 보면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은 직무처리 중 지득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로 되어있다”며 “정보누설금지를 규정한 의료법 제19조 제1항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업무를 하면서 알게된 다른 사람의 정보를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고 명기돼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박 교수는 의료인의 환자에 대한 정보누설과 관련된 사례로 개그우먼 이영자 씨 사례와 최근 논란이 된 이부진 사장 사례를 예로 들었다.

과거 개그우먼 이영자 씨는 운동과 식이요법만으로 34~36kg의 체중을 감량했다고 밝혀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이 씨에 대해 한 성형외과 의사가 여러 차례 전신 지방흡입수술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결국 이 사건은 법원으로 가게 됐는데, 이 씨가 전신 지방흡입수술을 했다고 주장한 성형외과 의사 부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할 수 없음에도 피고들은 이를 공개, 환자의 비밀을 보호해야할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이 씨로부터 협박당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해당 성형외과 의사는 이 씨가 체중감량을 했다면서 다이어트 비디오 들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이는 대국민 사기라고 생각하고 공익을 위해 이러한 사실을 밝힐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한 것”이라며 “하지만 법원은 성형외과 의사가 주장한 공익에 대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이 그 공익은 의사가 관여할 바가 아니고, 개개의 구체적 환자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게 의사의 의무라고 본 것”이라며 “나 역시 이에 동의하는데, 의사의 의무를 복잡하게 만들면 의사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박 교수는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의혹을 두고, 이 사장의 진료기록을 영장없이 확보 가능하다는 모 방송프로그램의 보도는 팩트체크를 제대로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당시 보도를 보면 기자가 ‘지난해 보건복지부 의뢰로 법제처 법령 해석이 나온 게 있는데, 환자 동의 없이 기록을 제출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고 말하고, 앵커는 ‘공익적 목적이 강하면 영장 없이 진료기록 확보가 가능하냐’고 말한다”며 “이부진 사장 사례에서 문제된 것은 마약이 아니라 향정약품으로, 이 사장이 설령 향정약품을 투약받았어도 이는 공익과 별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법제처 유권해석은 의사가 영장제시 없는 경찰관의 진료기록 요구에 무조건 응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며 “보건복지부 유권해석을 보면 진료기록, 처치내용 등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진료기록 사본은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경찰이 요구해도 임의로 제출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약류관리법에 따르면 보건당국은 마약류관리 기록을 볼 수 있지만, 마약류관리법의 관련 규정은 의료기관 혹은 마약류취급 의료업자가 마약류 관리를 제대로 하는지를 점건하고 관리하는 것이지, 특정인에 대한 향정약품 투여를 수사하려는 목적이 아니다”며 “경찰 수사와 보건당국의 마약류관리는 목적이 다르다. 경찰이 보건당국의 권한을 악용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환자단체는 이부진 사장이 진료기록을 보호받아야할 환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언론, 복지부, 변호사단체도 잘못된 법해석을 방지하거나 교정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환자의 진료상 비밀 지켜줘야하는 의료인의 의무

박형욱 교수는 의료인은 환자의 진료상 비밀을 지켜줘야 할 윤리적, 법적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노숙자든, 문재인 대통령이든 관계없이 의료인에겐 진료상 비밀을 지켜줘야한다는 것.

박 교수는 “우리나라나 미국의 변호사 관련 규정에는 의뢰인의 비밀 보호에 우선하는 국민의 알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다만 우리나라 변호사법에는 중대한 공익이라는 일반조항이 존재하지만, 중대한 공익에 국민의 알 권리가 포함된다는 견해는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행 의료법과 대한의사협회 윤리지침에는 환자의 비밀 보호에 우선하는 국민의 알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중대한 공익이라는 일반조항도 없다”며 “우리 사회는 종종 의료인들에게 중대한 공익을 운운하지만 이영자나 이부진 사례의 비교에서 알 수 있듯, 대중과 언론이 말하는 공익이란 관념이 매우 자의적”이라고 전했다.

의료인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호하는 의무를 지고 있는 게 아니라 개개의 구체적 환자에 대한 비밀 보호라는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광범위한 추상적 의무는 개개의 환자에 대한 의료인의 구체적 의무를 넘어설 수 없다”며 “이러한 추상적 의무는 의료인에게 예측 가능한 행동지침을 줄 수 없고, 자의적인 판단의 결과로서 의료인의 행동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인은 노숙자, 이부진 사장,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의 진료상 비밀을 지켜 줘야할 윤리적, 법적 의무가 있다. 설령 국민의 알 권리가 중대한 공익이라는 관념의 외피를 입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라며 “그것은 개개의 의사가 고려해야할 환자에 대한 기본적 의무를 넘어서는 영역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별도의 요건과 절차가 마련돼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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