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뉴스] 국가건강검진과 급성기 중증 치료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정작 검진 이후 진료 연계율은 20%대에 머물고, 퇴원 환자의 4분의 1은 이듬해 약물 복용을 중단하는 등 심뇌혈관질환 전주기 관리망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현장의 경고가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진료실 밖에서 발생하는 치료 단절을 막으려면 공공의료가 민간 의료기관의 고유 영역인 ‘약 처방’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진료 이탈 환자를 발굴하고 민간 의원으로 재연결하는 '관리 인프라'로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 보건의료발전연구회와 한국정책학회는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과 공동으로 ‘초고령사회, 심뇌혈관질환 전주기 관리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고, 단절된 의료 전달체계의 개편방안을 모색했다.
◆“발병 전 99%가 위험인자 보유, 검진 후 ‘연결ㆍ퇴원 후 지속’ 완전 실종”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화여자대학교 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김충기 교수는 심뇌혈관질환의 성과 이면에 숨겨진 ‘치명률 정체와 관리 공백’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고혈압 치료율(74%)과 조절률(56%)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연령표준화 사망률도 크게 줄었으나, 심근경색증 발생 후 1년 사망률은 16.1%, 뇌졸중 1년 사망률은 19.8%에 달한다”며 “심근경색 발생률 역시 최근 10년간 인구 10만 명당 37명 선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심뇌혈관질환 발병 환자의 99% 이상(관상동맥질환 99.7%, 뇌졸중 99.3%)이 사전에 교정 가능한 위험요인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임상 현장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완전히 끊어져 있다는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가일반건강검진 후 질환 의심 판정을 받아도 고혈압 환자의 진료연계율은 22.7%에 불과하고, 이상지질혈증 역시 34.0%에 그친다”며 “더 심각한 것은 2차 예방의 핵심 약제인 스타틴 신규 처방 환자의 39.4%가 1년 뒤 처방을 중단하고,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겪은 중증 병력자조차 24.6%는 이듬해 약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검진을 통한 발견과 골든타임 내 급성기 치료 인프라는 세계적이지만, 검진 후 진료 연결, 지속 처방 및 복약 유지, 퇴원 후 2차 예방 단계의 공백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대안이 부족하다”면서 “환자가 자의적으로 치료를 중단하면 그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 전가되는 실정인 만큼, 공공의료가 이 공백을 메우는 연속 관리 주체로 역할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질병청 “19개 시군구 묶인 고ㆍ당 사업 탈피, 전국 만성질환 통합관리센터로 대전환”
이어 발제한 질병관리청 만성질환관리과 김유미 과장은 국가 승인 공식 통계를 바탕으로 심뇌혈관질환의 위중성을 짚고, 질병청의 대표적 예방관리 사업인 ‘고혈압ㆍ당뇨병 등록관리사업(고ㆍ당 사업)’의 전면 개편안을 공개했다.
질병청에 따르면 순환계통 질환 진료비는 연간 약 14조 원으로 암(악성신생물, 10조 70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단일 질환군 1위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유발하고 있다.
2023년 통계 기준 심근경색 발생률은 남성이 여성보다 3배 높았으나 1년 치명률은 여성(23.6%)이 남성(13.5%)보다 월등히 높았고, 뇌졸중 1년 치명률은 65세 이상에서 31.2%에 달했다.
김 과장은 “2007년 시작된 고ㆍ당 등록관리사업은 등록 환자의 처방순응도를 20%p 이상 끌어올리는 뚜렷한 임상적 성과를 냈다”면서도 “하지만 14년이 넘도록 전국 226개 시ㆍ군ㆍ구 중 19곳(8.4%), 42만 명(65세 이상 고혈압 유병자의 6.7%)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대상이 30세 이상으로 묶여 있어 20대나 소아ㆍ청소년 당뇨병 등 조기 발견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또한 65세 이상에게 진료비와 약제비를 보조하는 현행 모델을 전국으로 확대하면 2050년 예산이 6000억 원대로 급증해 재정적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질병청은 고ㆍ당 사업을 ▲지역(19개 시군구 → 전국 226개 시군구) ▲연령(30세 이상 → 전 생애주기) ▲질환(고혈압ㆍ당뇨병 → 이상지질혈증ㆍ만성콩팥병 등 다질환)의 3대 축으로 확장하는 ‘만성질환 통합관리센터’ 체계로 개편한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복지부의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사업과 연계해 동네 의원은 환자 진료와 케어플랜 수립에 집중하고, 공공의 만성질환 통합관리센터는 의원에서 전담하기 힘든 심층 교육ㆍ상담과 리콜ㆍ리마인더(내원 독려)를 전담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전했다.
이어 “연령 제한 없이 자가측정과 걷기 등 생활습관 실천에 따라 연간 최대 8만 포인트의 건강생활실천지원금을 지급해 진료비로 차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의료 선심성 진료 중단ㆍ퇴원 후 단절 극복해야"
이어진 패널토의에서는 공공과 민간의 모호한 역할 분담, 퇴원 후 관리의 공백, 그리고 정부 통합 사업의 구조적 맹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토론회를 공동 기획한 대한의사협회 안상준 기획이사는 “대한민국이 검진의 천국이지만 경동맥 플라크나 심근경색 효소 이상이 발견돼 전문의를 찾으라는 결과지를 받아도 실제 환자가 병원에 가는지 알 길이 없다”며 “고위험 환자가 중도에 진료를 중단하거나 자의적으로 약을 끊어도 추적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막대한 비용을 들인 국가검진의 비용 대비 효과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공공의료가 약 처방 중심의 선심성 외래 진료로 민간 영역을 침범할 것이 아니라, 진단과 처방은 전문의에게 맡기고 공공은 이탈 환자 발굴과 재연결 등 사후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며 “성과 지표 역시 단순 연계 건수가 아닌 실질적인 혈압 조절과 치료 유지율로 설정하고, 이에 따른 의료기관 보상 기전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심뇌혈관센터 정근화 센터장은 퇴원 이후 발생하는 의료 단절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급성기 치료는 우수하지만 퇴원 후에는 관리가 끊겨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방임 상태가 벌어진다”며 “권역ㆍ지역센터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민간 병원의 참여를 이끄는 네트워크 사업이 필수적이며, 평가 지표도 퇴원 후 사회 복귀율과 삶의 질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오주환 연구소장은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사업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 이유로 “연구소 분석 결과 일만제는 전국 159개 시군구로 확대됐음에도 등록 환자가 19만 명에 그치고 막대한 재정 투입 대비 경제성 지표도 낮다”며 “특히 건강 관리가 잘되는 환자만 남고 정작 관리가 필요한 취약층이 탈락하는 ‘선택 편향’ 문제가 있어, 사업 설계 단계부터 탈락자 경로 추적과 객관적인 효과 검증을 선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구홍모 사업총괄본부장은 ‘환자안전’의 측면에서 인증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전주기 관리체계는 수많은 기관과 직역이 얽혀 있어 그 과정에서 투약, 진단, 연계 오류 등 환자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비례해서 커진다”며 “질환 치명률 뒤에 숨겨진 의료 과오와 연계 오류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국가 환자안전 보고 체계와 연동하고, 복잡한 전주기 경로를 통합 평가할 수 있는 분야별 특화 인증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보연ㆍ인증원ㆍ정책학회, 보건의료 발전 MOU 체결
한편, 국회 보건의료발전연구회와 한국정책학회는 토론회에 앞서 의료기관평가인증원과 ‘보건의료정책 발전 및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실질적인 입법ㆍ정책 협력을 결의했다.
이번 3자 협약은 국민 건강증진과 보건의료체계 발전을 위한 정책적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 국가 보건의료정책의 발전과 공익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추진했다.
세 기관은 협약에 따라 ▲국민건강증진 및 보건의료체계 발전을 위한 정책적 공감대 형성 ▲국가 보건의료정책 및 관련 제도에 관한 학술적ㆍ정책적 이해 증진 ▲보건의료의 질 향상과 의료서비스의 신뢰성 제고를 위한 정책적 관심과 의견 교류 ▲국민의 건강과 보건의료 발전에 관련된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상호 이해 증진 ▲기타 협약의 목적에 부합하는 제반 사항 등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국회 보건의료발전연구회 원종용 회장은 “정책 협약이 일회성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이어질 수 있도록 현장에서 노력하겠다”고 밝혔고, 김용성 회장은 “여야 보좌진과 함께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법적ㆍ정책적 대안을 고민해 입법부 차원에서 충실히 뒷받침하겠다”고 전했다.
정재훈 회장 역시 “7년간 축적한 정책 자료를 바탕으로 이번 MOU를 통해 제안된 정책들이 국회와 정부 제도에 온전히 스며들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오태윤 원장은 “의료 행위가 고도화될수록 환자안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보건의료 정책 실현을 위해 세 기관이 머리를 맞대 책임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한국정책학회 이석환 회장은 “학회의 정책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현장의 보건의료 이슈를 폭넓게 공론화하고 정책 의제화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화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