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협의 ‘준법진료’ 선언에 의료계 내, 특히 병원계에서 우려와 공감을 함께 내비쳤다. 의협이 주장하는 ‘준법진료’가 궁극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의료현장에서 현실적으로 풀어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지난 22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전공의 등 의사들의 근로시간 준수, 대리수술 척결 등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대한의사협회 준법진료 선언’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의협이 주장하는 ‘준법진료’는 그동안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았던 의사들의 근로시간을 정상화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대두된 무면허 ‘대리수술’을 척결하자는 의미이다.
또 의협은 의사들의 근로시간 등 전국적 실태조사와 제보 접수를 실시하고, 일정 시정기간을 거친 후 불법 행위가 지속될 경우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준법진료를 정착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대한중소병원협의회(회장 정영호)는 의료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에서 의협이 주장한 ‘준법진료’는 현실적으로 이행하기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보건업은 특성상 근로 52시간 규정에서 예외된 반면 11시간 연속 휴게시간에 존재하지만 의사의 업무 특성상 법에 명시된 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게 중소병원협의회의 입장이다.
정영호 회장은 “의사의 특성상 응급환자 등 돌발상황에 따라 정례적인 업무가 아닌 경미한 범위 내에서 제외해야한다고 생각한다”라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근로, 휴게시간에 대해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특히 의사들의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법대로 준수하려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등 의사 수를 보다 확보해야한다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정 회장은 “의사인력은 절대 못 늘린다고 하고, 이 제한된 인력으로 근로시간은 운운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현재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는 충족하면서 근로시간을 법 규정대로 이행하기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등 의료인력 전체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대학병원 교수이자 보건복지부 소속 수련환경평가위원회 A위원의 경우 과거부터 의사들의 업무 과부하를 인정하면서 의협의 ‘준법진료 선언’을 지지했다.
A위원은 “사실 과거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병원과 의료계의 앞날을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젊은 의사들에게 (자신과)똑같이 145시간 이상을 근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현재 실제로 환자를 보다가 업무시간이 끝났다고 퇴근하는 전공의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사들이나 환자들은 현재 의료시스템에 다 길들여져 있어 의협의 준법진료가 그대로 이행된다면 당장은 혼선이 올 수 있다”라며 “지금이라도 개선할 점이 있다면 바로 잡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A위원은 의사들의 업무 과부하가 의사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감기 등 경증환자가 너무 쉽게 대형병원에 접근하는 쏠림현상이 문제라는 점도 강조했다.
A위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의사 1명당 진료 환자수가 OECD 평균보다 3배에 달한다. 심지어 미국의 경우 초진의 경우 1시간, 재진은 30분 진료를 하고 있어 환자의 만족도가 높다는 평가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심층진료를 하더라도 15분에 불과한 상황이라는 것.
A위원은 “이번에 환자 사망으로 구속됐던 성남 모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1시간당 100명의 환자를 봤다고 한다”라며 “지금 의사수는 OECD에 비해 적은 수는 아니기에 인력확충이 아니라 경증환자의 통제가 필요한 실정이다. 대학병원에서 도대체 감기 환자를 왜 진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준법진료에 대해 의협에 힘을 모아주면서, 이외의 정책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정부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역병원협의회 관계자는 “전공의 특별법은 원칙적으로 지켜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향이 있다”며 “이를 수가 인상 등 정책적 보조를 통해 의사인력에 대한 보상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준법진료 선언대로라면 의사들의 근무시간이 확립되기에 먼저 대학병원에서 시행하는 수술이 줄어들 것이고, 이 수술은 지역병원에서 담당하게 될 것”이라며 “의협을 중심으로 병원계가 다 같이 힘을모아 협조를 하면 사회적 영향이 클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것만으로도 어렵다면 보충이 가능한 정책적 요소를 정부에 요청해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될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