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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그대로 누워 한 숨 더 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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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그대로 누워 한 숨 더 자고 싶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7.09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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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집에서 권총을 조심스럽게 빼낸 중사는 그 것을 오른 손에 가볍게 쥐었다. 늘상 만지는 것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느껴오는 감촉이 달랐다.

차가운 금속성의 물건이 따뜻한 커피가 담긴 것처럼 온화했다. 한 겨울에 그 것을 잡고서 언 손을 녹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중사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권총이 고마웠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면 그의 마음도 싸늘했을 것이다.

그는 따뜻하게 데워진 금속의 빈 공간에 검지를 가볍게 걸었다. 그 전에 방아쇠의 안전모드를 바꿔 놓았기때문에 검지에 약간의 힘을 주고 안쪽으로 잡아당긴다면 총은 자기가 세상에 태어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은 맡은 임무를 준 자에게 충성을 다 한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권총은 자신의 주인인 중사에게 그럴 마음이 있었고 준비도 끝난 상태였다.

어서 자신이 쓰임새에 맞게 그 일을 해 주기를 권총은 바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화약 냄새를 맡은지도 오래됐다. 거기에 딸려오는 비릿한 피의 냄새도 그리웠다. 그리운 것을 바라는 것은 사람이나 물건이나 다를바 없었다.

중사는 따뜻한 그 것을 마치 애인이라도 되는 듯이 가볍게 손에 쥐고 검지에 힘을 가했다. 약간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상태를 지나면 격발 신호를 듣고 달려 나가는 스프린터처럼 총알은 총신과 총구를 지나 목표물에 정확히 꽂힐 것이었다.

그러나 중사는 그 순간에 방아쇠를 마지막 까지 당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 당겼던 검지를 뒤로 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방아쇠 뭉치에서 손을 땠다. 그리고 잡았던 그 것을 원래의 위치에 조용히 집어넣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순간은 길게 느껴졌다. 중사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발 끝에 아직도 걸려 있는 대원을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보았다고는 하지만 대원의 표정을 살 필 수는 없었다.

다만 그가 작은 발길질에 살짝 꿈틀 거렸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고 이 움직임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중사는 대원의 옆구리에 붙은 워커 발을 조심스럽게 뒤로 밀리고는 역시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그 대로 주저앉았다. 일직선으로 내려온 중사의 몸은 대원과 거의 붙어 있다 시피 했다.

중사는 죽지 않은 대원이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경계를 늦춘 것은 아니었다. 권총을 집어넣은 대신 착검한 총구를 그 쪽으로 겨눈 상태에서 언제라도 팔을 쭉 앞으로 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애초 권총을 뽑았을 때처럼 무언가를 해야 겠다는 결심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의 몸은 갑자기 긴장이 풀렸고 풀린 긴장 때문에 작은 한 숨이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대원은 이 모든 것을 감으로 알아챘다. 몸을 건드린 것은 적이 아니라 중사였다. 그가 권총집을 꺼내 방아쇠의 안전 고리를 푸는 소리도 들었고 반쯤 방아쇠를 당긴 사실도 알아챘다.

그리고 총 대신 검을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도 정확히 알았다. 그러나 대원은 좀처럼 일어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사에게 자신이 처지를 말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상태로 한 숨 더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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