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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고유한 색깔로 재료들은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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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고유한 색깔로 재료들은 살아났다
  • 의약뉴스
  • 승인 2014.06.0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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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잘 들지 않는 작은 방의 구석에 담근 술병이 있었다.

투명한 일반적인 유리병이라기보다는 겉이 두껍고 꽃무늬의 양각이 두드러졌다.

뚜껑은 붉은 색이었다. 유리병은 제법 컸다.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었을 때 그 무게는 갓난아기를 안았을 때 받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니 그 안에 들어있을 술의 양이 얼마인지는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매일 그 술병을 본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휴지를 찾으러 갈 때 간혹 보았는데 그 때마다 색깔이 시나브로 변해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노란색 인 것 같기도 하고 붉은색이 나는 것도 한데 정확히 어떤 색이라고 표현할 수 없었다.

워낙 재료가 여러 가지여서 각각 고유의 색깔이 품어져 나오고 섞여서 딱히 구별되는 색깔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무지개 색깔 가운데 한 가지라고 명확하게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색깔은 유채화를 그리는 화가들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즈음 나는 유채화에 조금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그림은 사진과는 달리 보면 볼수록 뭔가 다른 느낌이 전해져 왔다.

화가의 잔손질이 여러 번 간 그림과 기계가 표현하는 사진은 같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물감이 마르고 다시 그 위에 덧칠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쌓이는 시간의 무게까지 더해지니 오래두고 보고 싶은 그림에 대한 애착이 아니 갈 수 없었다.

사진작가들이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나는 사진예술이라는 영역에 대해서는 크게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첨단 기계의 힘으로 묘사하는 사진은 누구나 기술을 익히면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라고 했지만 다는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사진 기술이 있어야 하고 장소와 시간이 맞아야 하고 빛을 적절히 조절하는 탁월한 감각이 있어야 하는 것은 기계 이상으로 사람의 재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각은 노력여하에 따라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림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림은 천재적 소질을 타고 나야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림 그리는 화가들을 보면 외경심이 솟는다.

누구나 그러하듯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사람은 대단하지 않은가. 한 때 나도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영역의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대신 그들이 생산해낸 물건들을 대단하게 평가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 열망은 언젠가 캄보디아 여행을 갔을 때 시장에서 40달러를 주고 산 꽃 그림이 집에 있다는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당시 나는 유럽 관광객들로 가득찬 선술집 거리를 지나 허름한 가게로 들어갔다. 거기서 피 흘리는 부처상을 보고 그림을 한 참 동안 들여다 보다 내가 사야 할 그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젊었을 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더 강하고 더 자극적인 것에 매료됐으니 그 그림이 어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은 그래도 행동은 굼뜨고 저질스러워 졌다.

저질스럽다고 한 것은 마음대로 행동이 따라가지 않고 비양심적 것에 대해 양심적으로 저항하는 일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는 조금만 나이를 더 먹으면 아예 눈감고 귀 닫고 사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아니라고 부인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나는 쪼그라들고 있었다.

정신마저 바보가 된 것은 아니다. 마음은 여전히 마이너에 가 있었다.  나랏일에 나이브했던 한 권력자를 비웃기도 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으면서도 나는 마이너라고 말했던 순진했던 사람을 나는 조롱했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조금만 덜 순진했더라면 우리 역사도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비판에서 자유다 라고 생각했다.

다섯 개의 붉은 꽃이 중앙에 있고 위쪽으로 봉우리 세 개가 달린 꽃을 나는 지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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