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사업 중 잔여백신 접종과 관련, 정부 지침이 바뀌면서 위탁의료기관에서 마련한 예비명단 사용이 오는 12일로 연기됐다.
이는 의료계 전역에서 성급하게 바뀌는 정부 지침에 따라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 예비명단을 계속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반영된 것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적극적인 소통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지적이다.
앞서 의료계에 따르면 방역당국에서 ‘5~6월 코로나19 예방접종 시 예비명단 활용 관련 지침 변경 안내’에 대한 공문이 보낸 바 있다.
해당 공문을 살펴보면 오는 4일 이후 고령자 예비명단만 운영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 60~74세 고령층은 사전예약기간 이후에도 위탁의료기관을 방문, 전화 예약으로 예비명단을 통한 접종이 가능하도록 한 조치로, 지금은 3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위탁의료기관에 전화하거나 방문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지만, 4일부터는 60세 이상에게 잔여백신 접종을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공문에는 현재 의료기관에서 받은 일반인 예비명단에 대해선 오는 3일까지만 접종이 가능하니, 해당 일까지 접종완료를 하고, 이후, 일반인 예비명단은 시스템 등록이 안 된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일선 의료기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재 잔여 백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고령층만 접종하라는 지침은 일선 의료기관의 혼란은 물론, 사전예약을 한 일반인들의 민원이 폭주할 거라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백신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위탁의료기관에서 많은 혼란이 발생하면서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 전역에서 사전예약자 노쇼 등에 대비해 의료기관 보유 예비명단을 우선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방역당국에 건의했다.
이에 방역당국은 기존 5일까지에서 예외적으로 9일까지로 자체 예비명단을 활용해 잔여백신을 접종하도록 지침을 변경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서는 9일까지 임시방편적인 유예조치만으로는 현장의 혼란을 막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 지침 보류를 요구했다. 이달 접종이 마감되는 19일까지로 연기해줄 것을 요청한 것.
이미 12일까지 사용할 백신은 이미 배포돼 접종할 인원 정리가 된 상황인데 9일까지만 유예한다면 일선 접종의료기관은 큰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일선 의료기관에서 자체 보유한 예비명단 인원을 소진하지 못했는데 사전 예약방식 변경에 따라 혼란이 예상됐다”며 “이에 12일까지 의료기관 보유 예비명단을 활용해 잔여백신 접종 후 등록할 수 있도록 예방접종 전산 시스템을 유지하기로 결정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다만 의료계가 동시에 지적했던 SNS만을 통한 사전예약 방식의 경우 기존 정부의 지침대로 진행된다. 이에 12일 이후부터는 고령층을 제외한 잔여백신 접종은 네이버, 카카오를 통한 접수로만 잔여백신 접종 가능하다.
방역당국은 지난 9일 예비명단 사용과 관련 공문을 위탁의료기관에 보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에 따라 의협에서도 의사회원들에게 안내문을 배포할 예정이다.
잔여백신 예비명단 사용 등 백신 접종과 관련된 정부의 지침이 의료현장의 의견을 수용, 개선되는 것을 두고 의료계 내에선 긍정적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패싱’ ‘불통’으로 대변됐던 정부와 의료계의 관계가 이제는 ‘소통’과 ‘협력’이라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과거 최대집 집행부 시절, 의협은 말 그대로 정부로부터 ‘패싱’ 당하기 일쑤였고 의료계의 의견이 정부에 제대로 전달되는 모습이 없었다”며 “그로 인해 현장에선 정부의 잘못된 지침이나 정책으로 손해를 입어도 의협 집행부에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아 답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의 의견이 정부에 제대로 전달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정부와 의료계가 계속해서 소통하고, 이를 통해 의료계 발전에 함께 협력하는 모습을 계속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