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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사라졌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닥친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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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사라졌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닥친 혼란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21.02.01 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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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모호, 개인 양심 따라 선택...의사 양심 따라 수술 거부할 권리도 마련돼야

올해 1월 1일부터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됐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에겐 또 다른 ‘혼란’이 닥쳐왔다. 임신중절 수술이 불법이 아니지만, 관련 법안이 마련되지 않아 완전한 합법이라고 할 수 없어, 의사의 양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우리나라 법률에 규정된 낙태죄는 형법 제269조 제1항으로, 해당 조항은 ‘부녀가 약물이나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형법 제270조 1항에서는 임산부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ㆍ조산사 등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해 임신되는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 지속으로 산모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을 임신중절(낙태) 허용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 올해 1월 1일부터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됐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에겐 또 다른 ‘혼란’이 닥쳐왔다. 임신중절 수술이 불법이 아니지만, 관련 법안이 마련되지 않아 완전한 합법이라고 할 수 없어, 의사의 양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 올해 1월 1일부터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됐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에겐 또 다른 ‘혼란’이 닥쳐왔다. 임신중절 수술이 불법이 아니지만, 관련 법안이 마련되지 않아 완전한 합법이라고 할 수 없어, 의사의 양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에 대해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4명(헌법불합치), 3명(단순 위헌), 2명(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했고, 2021년 1월 1일부로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됐다. 

이에 정부는 임신 14주 이내 여성에게만 낙태를 ‘조건 없이 허용'하고, 임신 15주에서 24주 여성은 '사회ㆍ경제적 이유가 있을 때만 낙태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개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종교계와 여성단체 대립과 사회적 갈등 속에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이에 예전부터 드러나지 않게 임신중절을 했던 의료기관들은 그대로 진행하고 있으며, 가격 공개를 통해 양성화를 시도하는 상황이다.

임신중절 수술 관련 의료기관에 문의하면 7주부터 24주까지 가격대가 60만 원부터 시작해 주 수마다 10만 원 차이가 나며 최대 300만 원 수준까지 비용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모 산부인과에서는 10주 이내 임신중절수술 가격을 블로그에 안내하기도 한 상황이다. 이에 A 산부인과는 “지난해까지는 낙태죄가 있어 약물 중절이나 약물복용과 같은 불법적인 경로로 중절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직 완전 합법화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 발표대로라면 24주가 이내 여성은 임신중절은 가능하다고 하니 차라리 안정적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진료 거부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며, 의사 개인 종교적 신념에서 수술을 거부할 권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성완산부인과의원 윤석완 원장(한국여자의사회장)은 “개인적으로 가톨릭 신자이기에 그동안 임신중절 수술을 하지 않았다”며 “입법안 마련 과정에서 의사들에게도 임신중절 수술을 거부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 원장은 “요즘 의료가 발전해 임신 22주에 태아가 500g 정도가 되면 살릴 수 있다. 정부 입법안은 현실과 맞지 않아 산부인과 의사들이 반대했다”며 “만약 입법한다고 해도 주수를 산부인과 의사들과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법안 마련이 되지 않은 무주공산 상태에서 산부인과계는 1월 1일부터 임신 22주 후부터는 임신중절을 하지 않는 ‘선별적 낙태거부’를 선언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 산부인과계는 지난해 12월 낙태법 개정을 촉구하면서, 개정 전까지 선별적 낙태 거부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산부인과계는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있는 임신 22주 이후에 잘 자라고 있는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단호하게 반대하며 ▲아무 조건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요구할 수 있는 낙태는 임신 10주+0주(70일: 초음파 검사상 태아 크기로 측정한 임신 일수 기준) 미만에만 시행 ▲태아의 장기와 뼈가 형성되고 합병증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임신 10+0주부터 22+0주 미만에는 낙태되는 주수의 태아의 발달 정도와 발생 가능한 합병증 등에 대해 의사는 충분한 설명을 하고, 여성이 신중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숙려 기간을 갖도록 한 후에 낙태를 시행 ▲태아가 생존 가능성이 있는 시기에 의사가 낙태를 해 태어난 아기를 죽게 하면 현행법과 판례상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 있으므로 임신 22+0주부터는 낙태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 ▲임신 22+0주 이후에 의학적 사유로 인해 임신 중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태아의 생명을 무조건 빼앗는 낙태가 아닌 조산으로 간주, 임신부와 태아에 대해 그에 적합한 의학적 처치 등 선별적 낙태 거부를 시행한다고 선언했다.

산부인과계는 “낙태 진료에 관한 의사의 거부권은 개인의 양심과 직업 윤리 등을 고려해 반드시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의료법 제15조에 의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으나,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태아를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해달라는 요청을 의사가 양심과 직업윤리에 따라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입법부는 의사의 낙태 거부권이 명시된 낙태법을 조속히 만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면서 산부인과계가 선별적 낙태 거부를 선언했지만 모든 산부인과 의료기관들이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산부인과 의사 B씨는 “낙태죄가 있을 때도 그랬지만, 그것마저 사라진 지금, 주수에 따라 고가 수술비를 받으면서 음성적으로 수술하는 의사들이 여전히 있다”며 “지금도 22주에 임신중절을 하는 의료기관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곳은 옛날부터 음성적으로 하던 곳으로, 확실한 입법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정리되기 어려울 것” 이라고 전했다. 

산부인과계에 따르면 여성이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요구할 수 있는 낙태는 임신 10주 미만이며, 임신 10주부터 22주 미만은 여성이 이를 신중히 숙려하고 결정해야 하는 기간으로 보고 있다.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일각에서는 30주가 가능하다고 하고 법무부에서는 낙태 가능 주수가 24주까지라고 봤는데 의학적 관점에서 최대가 22주까지”라며 “이 합의가 되지 않아 현재 법령이 없는 상태다. 이는 정부의 직무유기”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은 하루 빨리 기준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협 김대하 홍보이사겸대변인은 “기존 음성적으로 낙태하던 의료기관들이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명확한 법이 생겨야 규제가 가능하고 불법적 영역도 사라질 것”이라며 “전문과인산부인과 관련 학회서 낸 입장과 같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올라온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전문가 입장 반영해서 의견서를 제출하려고 하고 있다”며 “필요할 경우, 의료계 내부 의견 정리를 위해 토론회를 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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