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진찰료 30% 인상 및 처방료 부활 요구를 거절해 대화가 단절된 지 7개월여 만에 의협과 복지부가 의·정협의를 재개한다.
의협은 그동안 내부적으로 제기됐던 ‘협상’에 대한 소통 회무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지만, 의료계 내부적으로 의협의 갈지자 행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재기된 상태다.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와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지난 11일 달개비에서 의·정협의 재개와 국민건강 및 환자안전, 의료전달체계 개선 등 현안 해결을 위한 의·정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복지부에선 김강립 차관, 김헌주 보건의료정책관, 이기일 건강보험정책국장,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과장, 이중규 보험급여과장이 참석했고, 의협에선 최대집 회장, 박홍준 부회장, 방상혁 상근부회장, 정성균 총무이사, 연준흠 보험이사, 박종혁 홍보이사겸대변인이 참석했다.
최대집 회장과 김강립 차관은 간담회를 통해 의료현안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조속한 시일 내에 의·정협의체를 다시 운영, 의료현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의·정협의 아젠다 확정을 위해 조속히 예비회의를 개최하고, 해결 가능한 단기과제를 집중 논의하고 중장기적 과제도 함께 논의해 나가기로 했으며, 의·정 간 대화와 소통을 통해 보건의료 발전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갑작스런 의·정협의 재개에 대해 박종혁 대변인은 “이번 의·정협의 재개는 시도의사회장단과 대표자대회에서 투쟁은 가더라도 정부와 협상은 필요하다라는 강력한 요구가 반영됐다고 보면 된다”며 “최 회장은 9월말에서 10월 초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했지만 의료계 리더들이 좀 더 단계를 밟아보자는 의견을 냈다. 의·정협의 재개는 의료계 내의 소통 회무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시 재개된 의·정협의에서 의협 쪽 협상단장으로 박홍준 의협 부회장(서울시의사회장)이 내정됐다는 소식이다.
갑작스럽게 정부와의 협상을 결정한 의협 행보를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8일 전국의사 대표자대회 등으로 투쟁 열기를 끌어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정부와의 대화를 선언한 것은 스스로 투쟁 열기에 찬물을 뿌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오는 18일 복지부 청사 앞에서 문재인 케어 전면 재검토 관련 집회가 예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의·정협의가 재개된 마당에 집회를 한다는 건 일관성이 없는 행동”이라며 “의·정협의는 의협이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진행하는 건데, 최근 최대집 회장의 행보는 반정부 투쟁으로 보인다. 의·정협의를 하고, 집회를 안 한다면 모를까 18일 집회 등 대정부투쟁을 선언한 상태에서 의·정협의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오는 18일 집회 뿐만 아니라 지난달에는 청와대 앞에서 문 케어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는 철야시위도 진행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의·정협의를 한다고 하면 어떤 회원이 순수하게 받아들이겠나? 김강립 차관이 최 회장 단식장을 찾아 대화를 하자고 했을 때는 안하다가 지금에 와서 의·정협의를 한다면 면피용이라는 의심밖에 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투쟁을 이끌어 온 건 나름대로 전 의료계 단체가 포함돼 있는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인데, 의정대화 재개는 집행부가 결정했다”며 “아무리 의쟁투와 집행부의 수장이 같다고 해도 내부적으로 이에 대해 충분한 의견교환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현 의협 집행부의 행보가 지난해와 같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해 의협은 수가협상에서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를 지적하며, 수가협상 결렬과 함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지난해 8월 ‘급진적 보장성 강화정책 정책변경 요구’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 정부, 청와대와 함께 문재인 케어에 대한 거시적인 그림을 논의 할 수 있는 위원회 구성을 해달라며 만약 이것이 성사되지 않을 시 강경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27일 복지부와 만난 자리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비롯한 보건의료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합의문을 도출하면서 다시 의·정간 대화가 재개됐다.
그렇게 재개된 의·정협의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 그해 12월 의협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약속한 수가정상화의 진입단계로 초진료, 재진료 30% 인상과 원외처방료 부활을 요구하면서 다시 한 번 파국을 맞이하게 됐다.
복지부가 진찰료 30% 인상을 사실상 거절하자, 이에 의협은 강력한 대정부투쟁을 선언했고, 최대집 회장은 “더 이상 정부와의 타협은 없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면서 ‘의료개혁쟁취투쟁위원회’를 구성하게 됐다.
그런 상황에 지난해와 비슷한 시기에 다시 의·정협의를 재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 내에서 의구심이 제기된 것.
모 의사회 임원은 “지난해와 비슷한 시기에 정부와 대화를 재개한다고 선언한 것은, 최대집 집행부가 지난해에 보인 행보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Again 2018’이라고 볼 수 있다”며 “Agian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적용하면, 최 회장은 이제까지 줄기차게 대정부 투쟁을 주장해왔다. 로드맵도 50% 정도 만들었다면서 이제와서 협상을 한다고 하면 뭘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입장에서 투쟁을 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협상하자고 하고, 그러다가도 다시 파토를 내고 있으니 의협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라며 “회원들도 최 회장의 임기가 1년 반도 안 남은 상황에서 투쟁 로드맵은 50% 밖에 안 만들어졌다고 하고, 갑자기 협상을 한다고 하니 그 배경과 저의가 궁금할 것”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종혁 대변인은 “지난해 9월 복지부부와의 협의문은 문케어 등 의료정책에 대한 문구수정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큰 의미를 갖는 것”이라며 “최대집 회장은 항상 투쟁을 위한 투쟁은 안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기 위해 단지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시도의사회장들과 대의원회에서 좀 더 대화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집행부는 투쟁을 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가지고 있다. 의·정협의를 한다고 해서 투쟁 의지를 접겠다는 건 아니다”며 “만약 도저히 해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현장으로 돌아와 다른 방법을 찾을 것. 의쟁투를 만든 것도 전반적인 의료계의 흐름을 바꾸기 위함이기 때문에 이번 의·정협의도 이 같은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