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반복되는 의협 비대위, 어떤 활약했나
상태바
반복되는 의협 비대위, 어떤 활약했나
  •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 승인 2018.09.13 06: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환규 2회, 추무진 4회 구성…수차례 정치적 도구 전락

최근 의협 최대집 집행부의 투쟁성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면서 또 한 번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탄생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항상 강한 투쟁을 외치며 구성된 비대위가 정치적 도구로 이용당해 흐지부지 결론을 맺는 것을 두고, 과연 비대위가 필요한 상황인가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주로 정치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데 정당 대표가 선거 패배 등의 이유로 임기가 끝나기 전에 사퇴할 경우, 차기 당 대표 선출까지 임시로 구성하는 당 지도부를 통상 비상대책위원회라고 명명한다.

따라서 비대위는 임시 조직이기 때문에, 짧은 기간 동안만 존재해야 하는데 해당 정당의 상황이 좋지 않으면 비대위 체제의 기간이 정식 지도부 임기에 버금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선거 관련 외에도 재난 등이 발생하였을 시 사태의 효과적이고 빠른 수습을 위해 비대위가 소집되기도 하는데, 대한의사협회의 역사상 등장했던 비대위들은 이쪽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의협 역사상 비대위라는 단어와 가장 많이 이름이 오른 사람은 제37대 노환규 전 회장과 제38, 39대 추무진 전 회장일 것이다. 노 전 회장은 회장이면서 비대위원장 겸직은 두 차례나 했고, 추 전 회장은 3년 10개월 간의 임기 동안 무려 4차례의 비대위가 구성됐다.

◆노환규 집행부의 비상대책위원회
노환규 집행부 때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이름이 처음 오른 것은 지난 2012년 11월의 일이다.

의협은 상임이사회에서 대정부 투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구성했다. 당시 ‘(가칭)올바른 의료제도 정착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라고 명명된 비대위는 노환규 회장이 위원장을 맡았고, 위원으로는 의협 집행부, 시도의사회, 개원의협의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에서 총 19명이 참여했다.

▲ ‘진짜 칼’로 자신의 목을 긋고 있는 노환규 회장(유스트림 영상 캡쳐)

비대위를 구성한 의협은 2012년 11월 19일부터 주 40시간 근무를 시작했고, 24일에는 첫 토요일 휴무에 들어갔다. 이후 의협은 두차례 토요 휴무를 진두지휘했고, 과반이 넘는 의사회원들이 휴무에 동참했다.

이후 의협은 12월 17일 대선을 이틀 앞둔 시점에 전면 휴·폐업을 예고했지만 12월 4일 노환규 회장과 임채민 보건복지부장관의 만남이 성사된 후 상황이 급반전됐고, 결국 의협은 전국의사 대표자회의를 열어 전면 휴·폐업을 유보하고 의-정 협상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노환규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첫 비대위는 가동 6개월만인 2013년 4월 해체했다. 비대위의 역할은 범의료계비상대책위원회가 대신하기로 했는데, 해당 비대위가 구성되기 전까지 (가칭)투쟁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회원 조직화와 홍보를 담당하도록 했다.

노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두 번째 비대위는 2013년 11월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 의협은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장협의회’에서 의료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정부 전면투쟁에 돌입하기로 결의했다.

두 번째 비대위에서 진행한 가장 굵직한 사건은 2014년 3월 ‘집단 휴진’으로 이어진 2013년 12월 여의도에서 열린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일 것이다.

당시 전국의사궐기대회에는 전국에서 2만여 명(주최 측 추산)의 의사들이 참여했고, ‘원격의료 철회하라’, ‘영리병원 허용하면 서민건강 무너진다’ 등이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정부가 의료를 산업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때 현재 의협 상근부회장이자, 당시 방상혁 기획이사와 훗날 의협 회장이 된 추무진 정책이사가 임병석 법제이사와 함께 대정부 투쟁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삭발을 감행하기도 했다. 또 노환규 회장이 목을 메스로 긋는 퍼포먼스를 벌여 여러 가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2014년 1월 임수흠 부위원장을 앞세운 대정부 협상단을 구성, 정부와 협상에 나섰었다. 당시 비대위는 ▲보건의료정책 개선 ▲건강보험 개선 ▲전문성 강화 ▲기타 의료제도 개선을 각각의 아젠다로 하는 TF 구성을 복지부에 제안하는 한편, 보다 큰 틀에서의 논의를 위한 대통령 혹은 총리 직속의 위원회 설치를 추가로 요구했다.

그러나 2014년 2월 노환규 회장이 비상대책위원장에서 자진 사퇴했는데, 노 회장은 소신과 다른 의결사항으로 비상대책위원회 협상단이 정부 측과 공동 작성한 최종 협의문 내용에 대해 승인하는 것,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하는 것,

기자회견 강행 시 세부 협상목록을 첨부하지 않기로 한 결정, 회원 투표 시 총파업 날짜를 명기하지 않기로 한 결정, 회원 투표 시 총파업 형태를 명기하지 않기로 한 결정 등을 언급했다.

이후, 의협 대의원회는 2014년 3월 30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노환규 회장을 비대위에서 배제하는 안건을 통과시켜, 노 회장과 비대위와의 연결고리를 끊었고, 다음 달인 4월 노 회장이 불신임이 되면서 새로 구성된 비대위는 추무진 집행부로 넘어가게 된다.

◆추무진 집행부의 비상대책위원회
추무진 회장의 임기동안 의협 내에 구성된 비대위는 총 4번이었다.

첫 번째 비대위는 노환규 전 회장이 불신임됐을 때와 비슷한 시기인 지난 2014년 4월 구성된 비대위로 당시 비대위원장은 의협 대의원회 이철호 부의장과 경기도의사회 조인성 전 회장이 맡았었다.

▲ 추무진 회장을 비대위원장으로 한 비대위 회의 모습.

1기 비대위인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의 목표는 원격의료 저지와 투쟁동력 확보로, 10개월간 총35회의 전체회의, 총3회의 위원장단회의, 총24회에 걸쳐 전국의 지역과 직역의 홍보활동을 진행했다.

수차례의 기자회견과 국회 및 보건복지부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했고, 지역과 직역의 비대위원들도 소속 지역과 직역에서 홍보활동에도 매진했다.

그러나 투쟁동력 확보보다는 홍보에 집중해, 비대위가 아닌 홍보위원회라는 비이냥을 받았고, 투쟁과 협상의 전권이 어디에 있느냐와 활동 자금 승인 문제를 두고, 당시 37대 집행부와 여러 갈등을 빚기도 했다.

구성되고 1년여간 활동하던 1기 비대위는 지난 2015년 1월 “비대위 활동 결과, 의사와 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일부개정안의 국회통과가 저지됐고,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성과를 이뤘다”면서 비대위원 전원이 사퇴했고, 이후 열린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정식으로 해체수순을 맞게 됐다.

2015년 2월 구성된 2기 비대위는 당시 정부가 발표했던 규제기요틴 정책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2기 비대위는 2015년 1월에 열린 의협 임시대의원총회 의결로 구성됐으며, 당시 임총에선 추무진 회장을 중심으로, 16개 시도의사회장이 참여한 형태의 보건의료 기요틴 저지를 위한 비대위 구성을 의결했다.

이에 의협은 한 달 뒤인 2월 ‘대한의사협회 범의료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공동위원장은 의협 강청희 전 상근부회장, 전라북도의사회 김주형 회장, 대한정형외과개원의사회 김용훈 회장,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유용상 전 위원장이 맡았다.

37대 집행부와 여러 차례 부딪혔던 1기 비대위나, 추무진 회장이 직접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3기 비대위에 비해 2기 비대위는 여러 가지로 활동이나 무게감에 있어서 부족한 면을 보였다는 게 중론이다.

2기 비대위가 구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동위원장 중 한 명이 강청희 전 상근부회장에서 경기도의사회 현병기 회장으로 교체됐다. 교체 전에는 규제기요틴에 대해 적절하고도 활발한 대응을 해왔지만 위원장이 교체된 이후부터는 홍보 쪽으로 방향이 전환되면서 비대위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그런 탓에 2015년 10월 열린 시·도의사회장협의회 회의에서 4인의 공동위원장 체제가 아닌 추무진 회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시될 정도였다.

▲ 추무진 회장을 항의 방문한 이필수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들(위), 16일 의료전달체계 개선 반대 집회를 진행한 전의총 최대집 대표.

결국 2기 비대위는 2015년 11월 비대해진 조직을 개편, 4인 공동위원장 체제에서 인천시의사회 이광래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체질개선에 들어갔지만, 가장 인상적인 활동은 ‘범의료계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50여명의 회원을 모아 의견을 듣는 게 전부라 할 정도로 미비한 활동만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좀 더 강력한 투쟁을 위해 새롭게 구성된 3기 비대위는 추무진 회장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투쟁의 일원화를 모색했지만 한발 늦은 대응이나, 뜬금없는 성명서 발표 등 여전히 투쟁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의원회 운영위원회조차 “비대위는 투쟁 로드맵 미비, 투쟁 조직 구성 미완성, 회원 홍보 미약, 상황과 맞지 않는 형식적인 회의, 투쟁성과 미흡 등의 이유로 존재에 회의감이 가득한 현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진단해 결국 올해 4월 대의원총회에서 해산됐다.

이후,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발표되면서 추무진 회장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집행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의협은 새로운 비대위를 탄생시키게 됐다.

추무진 회장 임기 중 4번째로 만들어진 비대위는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로 명명됐으며, 지난해 9월 열린 임시대의원총회에서 투쟁과 협상의 전권을 부여받아 구성됐다.

비대위원장에는 전라남도의사회 이필수 회장이 선출됐고, 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는 훗날 40대 의협 회장이 된 전국의사총연합 최대집 대표가, 홍보위원회 위원장으로는 당시 대한전공의협의회 기동훈 비대위원장이, 총괄간사에는 훗날 경기도의사회장이 되는 이동욱 평의사회 회장이 임명됐다.

이필수 위원장의 비대위는 2017년 12월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집행부를 대신해 의·정 실무협의를 진행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벌였으나, 문 케어 등에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정부와의 입장 차이가 커서 뚜렷한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또한 의협의 비대위라면 모두 겪는 집행부와의 갈등도 여전했는데, 집행부에서 그동안 논의됐던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을 추진하려고 하자, 졸속으로 추진한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은 수용할 수 없다면서 반대했고, 결국 개선안을 부결시키기도 했다.

여기에 40대 의협 회장 선거까지 맞물리면서 비대위의 활동이 정치적이라는 비판까지 더해져 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특히 비대위에서 활동했던 최대집 투쟁위원장과 기동훈 홍보위원장이 40대 의협 회장 선거에 출마했고, 이동욱 총괄간사(사무총장)도 경기도의사회 회장 선거에 뛰어들면서 이런 논란이 더욱 불거졌다.

올해 3월, 비대위 투쟁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전의총 최대집 대표가 제40대 의협 회장에 당선되자, 비대위는 최대집 당선인과 위원장단 회의를 열고 해산된 협상단의 재구성과 관련, 전권을 위임하기로 의결했다.

이후 비대위는 4월 정기대의원총회에서 5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최대집 집행부를 배려, 4월 30일까지만 활동한 뒤, 해산되는 걸로 의결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