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5-07-22 06:02 (화)
안치환의 터닝 포인트
상태바
안치환의 터닝 포인트
  • 의약뉴스
  • 승인 2007.04.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반리뷰] 안치환 9집

▲ 안치환은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안치환은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가장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음악창작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치환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던 초기의 모습이나 <내가 만일>같은 대중적인 노래를 떠올리거나 혹은 열린음악회 같은 대형무대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하는 모습을 떠올리는데서 그치고 맙니다. 안치환이 한국의 민중가요를 대표하는 음악창작자라고 말은 하지만 안치환에 대한 대부분의 기억은 이미 10년 전쯤의 노래에서 멈춰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중들이 몇곡의 히트곡으로 그를 기억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함께 음악을 하는 이들이나 음악평론가들조차 별반 다르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치환을 말할 때 우리가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참으로 많은 음반을 내놓은 음악창작자라는 점입니다. 그는 1989년 솔로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정규앨범 9장에 기획앨범 3장, 라이브 앨범 1장을 내놓았습니다. 무려 13장의 앨범을 내놓은 그는 거의 매년 한 장씩의 앨범을 내놓는 맹렬한 창작력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사실 한국의 음악창작자들 가운데 이처럼 많은 음반은 내놓은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김창완이나 신중현, 이정선, 조용필, 한대수 정도를 거명할 수 있는데 여기서 앨범의 출시 빈도를 고려하고 지금까지 계속 음반을 내고 있는 이를 추려내자면 그 수는 더욱 줄어듭니다.

게다가 그 앨범들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해보았을 때 안치환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안치환은 자신의 득의작(得意作)이었던 3집과 4집 이후 6집과 7집이 다소 미흡하기는 했지만 8집과 노스탤지어 앨범으로 이어진 자신의 디스코그래피 내내 일정한 품격 이상은 반드시 획득해내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빼어난 싱어송라이터로서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좋은 곡들을 계속 써냈습니다. 앞서 말한 세곡이 그를 대표하는 곡이지만 <자유>나 <소금인형>, <수풀을 헤치며>, <당당하게>, <희망이 있다>, <물속 반딧불이 정원> 같은 곡은 그보다 더 뛰어나고 언제 들어도 좋은 명곡입니다. 그는 자신의 앨범들을 더할 때마다 이처럼 좋은 곡들을 쏟아내는 창작력으로 늘 본전 생각나지 않는 앨범들을 계속 만들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번도 진정성 넘치는 예술적 발언을 멈춘적이 없습니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고민이 철 지난 유행이 되고, 쉽게 청산해야 하는 과거가 되버린 시대에도 그는 언제나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노래를 통한 성찰과 발언을 계속해왔습니다. 어쩌면 <내가 만일>과 같은 팝으로 더 많은 인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는 노래를 단순한 개인적 서정의 발산이나 아름다움의 표현으로 보는데 결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지 쌓인 민중가요를 다시 부르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고, 통렬한 분노로 점철된 앨범을 내는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별로 팔리지도 않았고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도 못했지만 『외침!!』이나 『Beyond Nostalgia』앨범은 2000년대에도 그가 예전과 다르지 않은 고민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고민이 더욱 깊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꾸준한 사회적 발언을 완성도 높은 예술적 성취와 함께 이어가고 있는 창작자가 과연 몇이나 되는지를 떠올려볼 때 안치환은 민중가수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리얼리스트 음악창작자로 평가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처음에 형성되어 버린 고정관념의 벽이나 혹은 무대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으로 인해 평가절하되고 있는 그가 이제는 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안치환의 아홉 번째 앨범은 그의 근황을 잘 담은 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해의 『Beyond Nostalgia』앨범이 민중가요 리메이크 앨범이었고, 그 전의 『외침!!』앨범은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한 앨범으로 모두 명확한 주제의식 아래 선별된 컨셉앨범이었다면 이번 9집은 그의 다양한 고민이 빼곡이 담긴 앨범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앨범에서 한결같은 성찰과 사회적 발언을 계속 이어가면서도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토로하기도 하고 또한 자신에 대한 고뇌와 고백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담아내는 것이, 그래서 항상 수록곡이 많은 것이 안치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 안치환은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앨범의 전반부를 차지하는 성찰과 사회적 발언은 예전의 『외침!!』앨범과는 달리 명확한 타겟을 설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은유적 표현을 통해 갈수록 보수화되는 사회속에서 안주해버리는 이들의 분발과 각성을 촉구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너의 날개 점점 힘을 잃어갗는 이들에게 ‘날아라’ 촉구하고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늑대를 찬양하며 ‘처음처럼’ 시작할 것을 호소하는 그의 목소리는 특히 사회적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동년배 세대들을 향한 맹성처럼 들려 예사롭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권 이후 가치전도되고 왜곡되어버린 민주주의의 이념은 결국 ‘다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는 웃기는 세상을 만들어 버렸고 그는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노래하며 노래의 당대성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또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혼자서 가는 길 아니라네>는 함께 부르기 좋은 통일노래로서 통일에 대한 그의 꾸준한 관심을 보여줍니다.

세상 이야기로 시작한 앨범은 중반부를 거치며 가족과 사랑 이야기를 살짝 언급한 다음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사실 안치환의 이번 앨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트랙은 바로 <너의 환상>, <내 안의 나>, <안개 속에 길을 잃다>로 이어지는 자신에 대한 고백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이 직접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이는 싱어송라이터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처럼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이 ‘자주 화도 내고 눈물도 흘’리는 보통사람이며 ‘많은 다른 이를 아프고 힘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안개 속에 길을 잃었’음을 고백하는 그의 모습은 자연인 안치환이 음악 생활 20년만에 비로소 돌아와 거울앞에 섰음을 느끼게 합니다. 부정한 것들에 대한 분노와 삶에 대한 격정으로 넘쳐나던 그 안에 이처럼 여린 자아가 숨어 있었음을 고백하며 자신을 용서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뭐랄까, 그가 비로소 자신의 음악안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강하고 의연한 모습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다양한 면모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 이번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편안함과 여유 덕분인지 조금 과하다 싶을정도로 힘이 실리곤 했던 그의 보컬 역시 어느 때보다 힘을 뺀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오랜 음악활동의 연륜으로 이루어진 변화이며 안치환의 진정한 저력이 발휘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굳이 비교하자면 이번 9집은 『외침!!』앨범만큼 밀도가 높지 않고 귀에 쏙쏙 박히는 곡들도 많지 않습니다. 이전의 앨범들과 비교해봐도 음악적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도 않으며 밴드 음악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앨범이 그다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안치환이 3집, 4집, 5집, 8집처럼 빼어난 앨범을 계속 만들어내면 좋겠지만 창작자의 전 앨범이 명반이 되기는 힘든 일입니다. 이번 앨범이 걸작이 아닌것은 분명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앨범일 뿐만 아니라 <처음처럼>이나 <늑대>, <세상이 달라졌다>, <혼자서 가는 길 아니라네>, <너의 환상> 같은 곡은 안치환다운 스타일을 느끼게 해주는 괜찮은 곡입니다. 그는 여전히 품격을 잃지 않는 좋은 음악창작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궁금한 것은 안치환의 다음 앨범입니다. 왜냐하면 안치환은 지금까지 13장의 앨범을 내며 음악적 변화에 성공,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면서도 민중가요 다시 부르기와 김남주 시인 추모 앨범 등 다양한 컨셉의 앨범까지 내는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 9집에서는 과감한 실험과 변화보다는 자신의 목소리에 솔직하며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였을 때 이러한 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지난 13장의 앨범을 통해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음악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얼추 다 선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번 앨범을 통해 자기 자신의 솔직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 이번 9집이 안치환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면 그가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와 어떤 음악으로 건너갈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포크와 록을 오가고, 슬픔과 격정을 함께 길어올리는 그가 자신의 목소리에 조금 더 솔직해지고 또한 이전과는 다른 음악적 시도에 과감해질 때 우리는 JOHNNY CASH나 TOM WAITS처럼 세월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뮤지션으로 그를 평가하게 될것입니다. 음악 생활 20여 년이 다된 지금도 한결같이 곡을 쓰고 녹음하는 그라면 이런 기대를 걸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