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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들어온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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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들어온 뮤지컬
  • 의약뉴스
  • 승인 2007.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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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림걸즈>, <프로듀서스>

▲ <프로듀서스>는 브로드웨이 무대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2월 들어 볼 만한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 러시를 이루고 있어서 행복하다. 아카데미 특수에 설날 특수까지 겹치면서 오랜만에 수준 높고 다양한 영화들을 마음껏 골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냉혹한 시장은 박스오피스 성적이 좋지 않은 영화를 기다려줄 만큼 인내심이 많지 않아서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원하던 영화를 놓칠 수도 있다. 미국에서 1억 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한 화제작 <보랏>도 관객이 없으면 일주일 만에 간판을 내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영화가 두 편 있으니, 요즘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뮤지컬 영화다. 뮤지컬 영화가 할리우드의 흥행을 주도하는 시대는 까마득한 먼 옛날 얘기. 미디어 환경과 대중들의 취향이 바뀌고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연출이 선호되면서 뮤지컬 영화는 제작 자체가 뉴스가 될 만큼 별난 아이템이 되었다. 춤과 노래가 등장하는 영화라 해도 <미녀는 괴로워>처럼 내러티브에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추세지 그 자체로 주인공의 감정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예는 많지 않다. 그렇게 볼 때 <드림걸즈>와 <프로듀서스>는 간만에 찾아온 뮤지컬 영화다.

   
▲ 영화는 무거운 주제가 아닌 멤버들 내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드림걸즈> 허구와 실제로 빚어낸 쇼 비즈니스 오락물

<드림걸즈>는 1981년에 제작되어 성공을 거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로 1960년대에 활약한 흑인 여성 보컬그룹 ‘슈프림스’의 이야기를 모델로 삼고 있다. 전성기 때 슈프림스는 비틀스도 부럽지 않을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지만, 오늘날 이들이 대중음악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다소 초라하다. 기획 밴드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인데, 음반사 소속 전문 작곡가가 써준 곡을 받아 음반사 사장이 지시한 대로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의 존재는 개성이나 창조성과는 거리가 먼, 화려한 무대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활약하던 1960년대는 흑인 민권 운동이 미국 전역에서 들끓어 올랐던 격동의 시대. 흑인들이 자주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때에 흑인의 현실을 외면하고 백인의 취향에 영합하는 달콤한 노래를 불렀던 이들을 흑인 동료들(그리고 백인 평론가들)이 곱게 보았을 리가 없다. 이들의 소속 음반사 모타운의 본거지였던 디트로이트가 미국에서 흑인들이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던 도시였다는 사실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이런 배경만으로도 대단한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하지만 <드림걸즈>는 쇼 비즈니스계의 애환이나 음악적 진정성 문제, 인종 갈등 같은 무거운 주제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영화의 초점은 멤버들 내부의 이야기에 맞춰져 있다. 그룹 드림즈(영화에 등장하는 이름이다)의 초창기 리더였던 목소리 좋은 에피 대신 뛰어난 외모의 디나를 리더로 내세우기로 하면서 드라마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또한 실제 현실과 차이가 있다. 에피의 실제 모델인 플로렌스 발라드는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초창기에 절대적인 존재감을 가진 멤버가 아니었으며, 디나의 실제 모델 다이애나 로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것은 외모가 아니라 그녀의 비단 같은 목소리 결이었다. 게다가 영화의 해피엔딩과 달리 플로렌스 발라드를 실제로 기다리고 있었던 일은 끔찍한 비극이었다.
 
영화 <드림걸즈>는 현실에서 드라마로 만들기 좋은 요소들을 취해 극화한 일종의 ‘팩션’으로, 뮤지컬 본연의 오락성에 시종일관 충실하다. 사실적인 묘사와 진지한 주제 의식을 원했다면, 굳이 자연스러운 극의 흐름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래 장면이 튀어 보이는 뮤지컬 영화로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레이>나 <앙코르> 같은 뮤지션 전기 영화로 충분했을 테니 말이다.

대신 영화는 주변 인물들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대표적인 예가 에디 머피가 연기하는 지미라는 인물. 드림즈가 초창기에 그의 무대에 백업 보컬로 참가하면서 무대 경험을 쌓게 되는데, 지미는 여기서 매니저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거부했다가 결국 쇼 비즈니스계에서 도태되는 인물로 묘사된다. 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열정적인 보컬과 다이내믹한 무대 매너를 보면서 자연스레 제임스 브라운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제임스 브라운은 슈프림스나 모타운 음반사와 무관한 인물이며 약물 복용으로 생을 마감하지도 않았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흑인 음악가의 또 다른 상을 제시하기 위해 제임스 브라운의 특징을 일부 빌려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를 서브플롯으로 처리한 것은 결과적으로 영리한 전략이었다. 심각하지 않게 캐릭터들 간의 균형을 잡아주면서 당대에 대해 적절한 코멘트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쉽다면, 작곡가로 등장하는 인물이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아마 스모키 로빈슨이나 마빈 게이를 모델로 한 듯한데 이들은 영화에 그려진 것보다 훨씬 다재다능하고 예술적 야심이 많은 음악가였다. 그의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했더라면 좀 더 역동적인 드라마가 나왔으리라. 말이 나온 김에 하자면, 영화를 보면 어린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꼬마가 등장한다. 실제로 마이클 잭슨이 활동했던 잭슨 파이브는 모타운 음반사 소속 밴드였으며 흑인 음악의 트렌드가 소울에서 디스코로 넘어가는 분기점에 위치한 밴드다. 이들의 등장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됨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 <프로듀서스>는 브로드웨이 무대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프로듀서스> 극영화가 뮤지컬 영화로 돌아오다
 
<프로듀서스> 역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이지만 상황이 좀 더 복잡하다. 원래 이 작품은 멜 브룩스 감독의 데뷔작으로 코미디 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 이 영화를 2001년 멜 브룩스 자신이 뮤지컬로 각색하면서 제작에 참여하고 음악을 새로 작곡했는데, 이것이 브로드웨이에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작품은 이에 힘입어 다시 뮤지컬 영화로 옷을 갈아입게 되었다. 뮤지컬의 오리지널 캐스트였던 두 배우가 주인공 맥스와 레오를 맡아 연기했고, 연출과 안무를 담당했던 사람도 영화감독으로서 힘을 보탰다. 뮤지컬은 작년에 한국에서도 공연되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물간 뮤지컬 제작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챙기기 위해 회계사와 손잡고 지상 최대의 실패작을 무대에 올린다는 내용. 이들은 성공의 공식과 가장 거리가 먼 각본을 고르고 배우와 연출자를 섭외해 공연을 준비한다. 하지만 아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듯, 실패 또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법.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의 등장으로 뮤지컬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뜨거워지면서 주인공들의 처지가 이래저래 꼬여간다.

뜻하지 않은 계기로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을 다룬 영화는 아주 흔하다. 코미디 영화의 공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영화는 전체 줄거리나 디테일보다 캐릭터와 연기에 비중이 놓인다. 게다가 시대를 타지 않는 것도 또 하나의 강점이다. 영화는 현대적인 감각과 무관하게 옛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분위기를 낸다. 누가 봐도 <드림걸즈>가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는 영화임을 금방 알 수 있다면, <프로듀서스>는 제작연도를 알아맞히기가 어려운 영화다. 또한 나름대로 극영화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드림걸즈>에 비해, <프로듀서스>는 브로드웨이 무대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영화 속 뮤지컬에 등장하는 최악의 각본가, 배우, 연출자는 서구 사회에서 대표적인 조롱거리로 꼽히는 히틀러 숭배자, 바보 금발녀, 게이다. 이런 웃음 코드에 대해 불편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과장된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난장판 소동이 마치 <로키 호러 픽쳐 쇼>처럼 연출되고 있어서 악의가 있다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 곳곳에서 펼쳐지는 요란한 안무와 노래는 마치 진 켈리나 프레드 아스테어가 출연한 고전적인 뮤지컬을 패러디하는 듯하다(반주 음악도 스윙재즈 풍이다). 압권은 감옥에 들어간 맥스가 지난날을 돌아보며 사건의 진행을 요약하는 대목. 몇 분 남짓한 시간 동안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의 노래와 몸짓은 <개그 콘서트>를 방불케 할 정도로 웃긴다. 그러고 보니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 이름도 뮤지컬이다.

<프로듀서스>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그들의 독특한 유머 감각이다. <오스틴 파워>를 흥행 시리즈물로 만들고 <보랏>를 전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려놓은 그 유머 감각 말이다. 현실 세계에서 만나면 불쾌할 것 같은 뻔뻔스럽고 히스테리컬한 캐릭터들, 노골적인 성적 묘사와 너무도 과장이 심해 피식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 <프로듀서스>는 뮤지컬이지만 코미디 영화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이며 그것도 화장실 유머에 가깝다. 감성 코드가 맞다면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많은 폭소를 당신에게 안겨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래도 2월에는 볼 만한 영화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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