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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사로잡는 노출,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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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사로잡는 노출,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
  • 의약뉴스
  • 승인 200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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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졸업’
▲ 중산층 가정의 허위의식과 가족 사이의 무관심, 불소통 등이 배경이 된다.

연극 ‘졸업’을 주목케 하는 이유로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추억의 명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점,‘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점, 연극 작품으로는 드물게 4억원이 들어간 대작이라는 점, 그리고 노출이다.

노출은 이 작품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단어다. 중견 여배우 김지숙의 노출이 “파격적”이라는 입소문을 듣고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객석의 일차적 관심이 노출이라는 건 분명하다. 이것은 우리나라 관객들만의 특수한 관심이 아니다. 2000년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 시에도 관심은 온통 노출에 있었다고 한다.

명문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 벤자민을 유혹하는 미시즈 로빈슨 역의 김지숙은 초반부터 브래지어를 벗어던진다. “벤자민,지퍼 좀 내려줄래?”로 시작되는 미시즈 로빈슨의 노출은 서너 차례 더 반복된다. 벤자민 역을 맡은 송창의도 속옷 차림이 되고, 스트립 댄서가 등장하는 등 전반적으로 노출 신이 잦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노출이 화제가 된다고 할 때, 그 노출은 단연 김지숙의 노출을 가리킨다. 유명 여배우가 벗었다는 것, 그 여배우의 나이가 50세라는 것이 얘깃거리가 되는 것이다.

연출자 김종석씨는 “김지숙씨가 연출의 말에 전적으로 따르겠다고 했으며, 필요하다면 아무 것도 입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면서 “배우의 용기가 없었다면 이번 작품은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영국과 미국에서는 여배우가 전라(全裸)로 출연했다고 한다.

김지숙의 벗은 몸은 젊은 여자들도 부러워할 만큼 아름답다. ‘김지숙의 용기’와 ‘김지숙의 몸’에 놀란 관객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몸에 자신이 있으니까 그 나이에 벗었겠지, 또는 벗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몸을 만들었을까.

노출에 쏠린 시선을 끌고 연극은 한발 한발 메시지를 향해 나아간다. 그것은 가족의 문제다. 연극의 원작자 테리 존슨은 가족극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로테스크해요”라고 벤자민이 말한 중산층 가정의 허위의식과 가족 사이의 무관심, 불소통 등이 배경이 된다. 벤자민은 그것에 저항하는 인물이고, 미시즈 로빈슨은 그것에 좌절한 인물이다. 둘의 불륜은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침 뱉기처럼 보인다.

해결의 실마리는 로빈슨 부부의 딸 일레인에게서 생겨난다. 대학생 일레인의 순수함은 미시즈 로빈슨의 관능미와 대비를 이루며, 이 연극을 이성과 욕망, 순수와 세속, 꿈과 현실의 갈등으로 재편성한다. 벤자민은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세대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허위와 저속, 모순의 상황을 통과하면서 자기파괴적인 방황을 거듭하지만 결국 사랑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연극이 흘러가면서 관객들의 뇌리에 새겨진 노출의 잔상은 점차 흐려진다. 대신 가슴 속으로 가족과 사랑의 의미를 묻는 복잡한 메시지가 밀려든다.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은 이 작품을 노출로 기억할지,메시지로 기억할지 고민하게 된다. 노출과 메시지의 대결은 이 작품이 배치한 또 하나의 대립구도처럼 보인다. 그것은 일레인과 미시즈 로빈슨의 대립구도만큼 치열하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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