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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기적 가족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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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기적 가족주의다
  • 의약뉴스
  • 승인 2007.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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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가족의 탄생>, <쇼킹패밀리>의 가족 해체를 다시 생각하며

▲ <쇼킹 패밀리>가 강조하는 가족의 문제점은 확고한 가부장적 가족주의이다.
한국에서 가족주의만큼 완고한 것도 없다. 굳이 조선시대의 유교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온통 완고한 가족주의로 결속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의 복지 혜택이 없는 사회에서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으니 가족주의가 득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만 챙기는 ‘이기적 가족주의’가 득세하는 현실을 보면, 더구나 그것이 완고한 ‘가부장적 가족주의’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는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한국의 거의 모든 문제는 가족주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빈익빈부익부의 문제도 결국 재산과 가난을 후대에까지 물려주는 가족주의의 문제와 뗄 수 없고, 남녀차별도 딸과 아들을 구별하는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서 시작된다.

지금 불고 있는 ‘아파트 광풍’도 담합을 해서라도 자신의 가족들은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의식의 발로와 다르지 않다. 지금 한국의 가족주의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한국에 희망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멀쩡한 사람도 가장만 되면 자기 가족만 돌보기에 여념이 없고, 오랜 고생 끝에 집을 가지자마자 담합을 통해 집값 올리기에 바쁜 한국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적 삶이나 평등이라는 용어는 폐기처분되어야 할 용어가 되었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할까? 최근에 본 영화 가운데 완고한 한국의 가족주의에 대해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비판하면서 대안적 가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영화들이 있다. 물론 영화가 사회를 전적으로 반영하지는 못한다. 많은 부분, 영화는 사회보다 앞서 가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트렌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망상이 아니라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현실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관객들에게 하나의 희망으로 보이기도 하고, 허망한 판타지의 대리 욕망에 그치지기도 하지만, 문제는 가족 문제를 영화에서도 노골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영화를 들라면 나는 주저 없이 <가족의 탄생>을 들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은 이 영화를 보지 못했거나 아예 생소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시장에서 관객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평론가들이 수여하는 영평상에서 최고작품상을 수상했지만, 그것이 정당한 평가라기보다는 오히려 평론가들이 선호하는 영화라는 인상을 주고 말았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가족의 탄생>은 작년에 본 최고 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이 영화가 최고의 영화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독특한 구조의 내러티브도 탁월하고, 서로 동화되어가는 배우들의 연기도 깔끔하며, 이 모든 상황을 총체적으로 이끌어가는 감독의 연출도 빼어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기존의 한국영화와 확연히 갈라서는 지점인, 가족 문제를 다루는 시각이다.

   
▲ 이 영화에서 탄생한 가족은 우연한 기회에 같이 모여 사는 가족이다.
<가족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은 아마도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가족을 이루는 멜로드라마를 연상하기 쉬울 것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존의 가족주의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비판하면서, 특히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주의와, 혈연으로 구속하면서 책무감만 남기는 가족주의를 비판하면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새로운 가족을 등장시킨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탄생한 가족은 우연한 기회에 같이 모여 사는 가족인 것이다.

물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가족이라는 집단이 얼마나 억압적인 곳인지, 그곳이 얼마나 무거운 책무를 안겨주는 곳인지 깊이 겪은 사람은 영화에서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살기 때문에 자유롭고 편안한, 그야말로 휴식 같은 공간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숱한 (공익) 광고에서 가족을 휴식과 정서의 공간으로 재현하지만, 정작 우리네 가족은 사회라는 전쟁터에 나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전초기지’일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가족의 탄생>이 그린 새로운 가족은 참으로 신선하다. 가족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팍팍한 이 사회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작년에 본 영화 가운데 <쇼킹 패밀리>도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영화이다. 독립 다큐계에서 독특한 작업을 해왔던 경순 감독의 영화를 접해본 사람이라면, 많은 기대를 안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그러나 좀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리 쇼킹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면도 없지 않다. 조금 더 치고 나가야 하는데 약간 주춤거린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 영화가 강조하는 가족의 문제점은 확고한 가부장적 가족주의이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런 것인지 이미 많은 이들이 다루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것을 자신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또는 자신들의 경험과 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딸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힘든 성장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결혼과 더불어 여성이 어떻게 인간으로서 대접 받기를 포기하게 되는지, 이혼 후 혼자 딸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영화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때문에 영화에는 딸을 혼자 키우고 있는 여성 감독, 아들과 남편과 별거하고 있는 사진 작가, 홀로 나와 생활하고 있는 여성 스탭 등의 문제에 카메라를 집중시킨다. 이들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족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자신들의 생활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가족주의의 문제점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주의를 주장한다. 그것은 남성이 없는 여성들만의 공동체이다. 가부장적 가족주의에서 권력의 역학 관계 속에 억눌렸던 여성들은 권력이 없어지면서 그들에게 자유가 찾아온다.

   
▲ <쇼킹 패밀리>가 강조하는 가족의 문제점은 확고한 가부장적 가족주의이다.
폭력으로 여성을 억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심성으로 서로를 포용해주면서 그녀들은 보다 풍족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가정을 이룬다. 가정 폭력이나 사회적 폭력이 대부분 남성들에 의해 행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그리는 가족이 얼마나 정서적이고 평안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사적 다이어리를 펼쳐 보여주는 형식의 힘에서 기인한다.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영화를 선택한 것은 영화가 단지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세계관과 인생을 영화를 통해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나는 숱한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나의 삶을 끊임없이 되돌아본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써 놓고도 마음이 편치 않다. 경상도 안동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남성에게 가족주의는 피할 수 없는 벽처럼 다가온다. 게다가 이제 조만간 학교에 갈 아들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둘째를 보면서 과연 그들이 이 거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도 된다.

결국 가부장적 가족주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것이다. 단지 ‘꼰대’가 되지 않는 것으로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나 역시 우리 가족이 잘 살기를 바라는 이기적 가족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 역시 부모님께 진 책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을 외면하면 무책임한 인간이 될 것 같고, 그것을 주장하면 이기적 가족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딜레마가 딜레마가 되지 않을 때 가족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데, 지금으로서 그것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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