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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6)-이 멋진 희곡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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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1936)-이 멋진 희곡에 대하여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4.11.25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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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만큼 잘 알려진 희곡이 있을까. 희곡은 영화와 노래로 이어졌고 급기야 ‘홍도야 우지 마라 오빠가 있다’ 라는 지금도 회자되는 명대사를 남겼다.

해방 전이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아니 지금도 받고 있다.) 사랑 정도가 아니라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배경은 슬픔에 익숙한 우리네 정서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눈물샘 자극의 일등공신은 주인공 홍도가 되겠다. (참고로 홍도의 성은 황이다. 홍도의 성이 황씨인 것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 여성의 이름치고는 제법 센 듯한 이미지를 준다. 기생의 직업과도 연관이 된 듯싶다.

부모 없는 고아인 홍도에게는 유일한 혈육 오빠 철수가 있다. 오누이의 정은 깊다. 철수의 공부를 위해 홍도는 기생이 됐고 오빠는 보란 듯이 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엇나가지 않고 바른길로 접어든 것이다.

그가 가는 길에 박수를 칠 지어다.( 철수의 직업은 형사다.) 철수는 친구 광호가 있고 중실이 있다. 철수에게 누이동생 홍도가 있듯이 광호에게는 봉옥이 있고 중실에게는 혜숙이 있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애증의 이야기가 이 희곡의 뼈대가 되겠다. 극이 시작되면 대감집 아들 광호는 혜숙과 약혼한 사이다. 광호는 파혼하고 홍도와 결혼한다. 당연히 사랑이 그렇게 했다.

그 결혼 우여곡절이 없을 수 없다. 혜숙은 <춘희>를 들먹이고 이에 홍도는 <춘향이>를 꺼내면서 맞선다. 삼각관계는 한 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광호의 단호함과 홍도의 일편단심이 이겨냈다.

여기까지 보면 홍도가 사랑의 승자이고 혜숙은 패자가 된다. 하지만 연극이 이렇게 싱겁게 흘러간다면 긴 시간 눈물샘을 찍어낼 이유가 없다. 결혼 후 남편 광호는 공부를 위해 북경으로 유학을 떠난다.

떠나기 전 둘은 굳은 맹세를 한다. 매일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자고. 그러면서 애틋한 마음을 잃지 말고 고이 간직하자고. 당연히 홍도는 그렇게 하고 광호도 그렇게 한다.

방해꾼이 등장할 적절한 타이밍이다. 혼전부터 기생이라고 홍도를 깔보면서 못마땅했던 시어머니가 기회를 엿본다. 시누이 봉옥도 가세한다. 둘이 음모를 꾸민다.

걸음걸이까지 구렁이 담 넘어가는 것 같다고 싫어하는데 그 마음 이해가 된다. 말끝마다 기생년을 입에 담고 산다. 하지만 홍도는 참아낸다. 남편 광호가 올 날을 고대하면서.

그런데 어느 날 시댁에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애타게 기다리던 광호의 편지가 아니다. 어떤 외간 남자가 사랑한다는 홍도에게 보낸 연서. 이를 기회로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합동 공격이 시작된다.

시아버지의 역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홍도는 쫓겨나 오빠 철수 집으로 피신한다. 이때 광호는 유학 생활 중 잠시 귀국한다. 그는 홍도를 내치고 혜숙과 살기로 작정한다. 혜숙은 기가 살았다. 일 년 전에는 네가 이겼지만 지금은 내가 승자라고 호통을 친다.

오매불망 광호를 기다렸던 홍도는 헛물을 켠다. 편지가 가짜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광호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말을 철석 같이 믿었다.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서방질을 했다고 홍도에게 이를 가는 광호.

▲ 황홍도의 직업은 기생이다. 오빠 철수의 학비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오빠의 손에 체포되는 홍도의 운명이란.
▲ 황홍도의 직업은 기생이다. 오빠 철수의 학비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오빠의 손에 체포되는 홍도의 운명이란.

그러나 사건은 의외의 곳에서 풀린다. 이 모든 음모가 발각된 것이다. 광호의 집에 서식하는 월초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실마리를 찾는다. 머슴처럼 광호의 집에서 오래 산 월초는 어릴 적에는 봉옥을 엎어 키웠다.

그 월초가 봉옥을 사랑한다. 나와 결혼해 달라고 사랑 고백을 한다. 하지만 봉옥은 그 사랑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주인집 아씨가 천한 놈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것.

월초는 복수를 다짐한다. 봉옥과 결혼 조건으로 가짜 편지 사건을 일으킨 것을 폭로한다. 그리고 철수도 매일 쓴 일기를 광호에게 읽어 주면서 여동생 홍도의 절개를 알린다. 뒤늦게 이를 안 광호는 홍도의 진심을 알아주는데.

하지만 일은 이미 그르친 뒤였다. 홍도가 혜숙을 칼로 찌른 것이다. 혜숙은 죽고 형사인 오빠의 손에 홍도는 체포된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우연과 필연이 뒤섞이고 신파가 끼어들었어도 이 정도 희곡이면 짜임새가 아주 깊다고 할 수 있다.

눈물샘을 자극할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 기생과 유학파의 사랑은 과연 눈물 없이는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다.

: 등장 인물들의 과감한 언행이 눈길을 끈다.

우선 인자한 홍도의 시아버지와는 반대로 시어머니는 기세가 대단하다. 혜숙을 며느리로 삼으려는 의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온갖 못된 짓으로 홍도를 괴롭힌다.

돈과 지위를 갖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오늘날의 부자 행태를 꼭 빼닮았다. 그 어머니의 그 딸이라고 봉옥의 캐릭터도 볼 만 하다. 여기에 월초와 혜숙까지 감초 역할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다.

기생 춘홍의 철수를 향한 짝사랑도 제법 감칠맛이 있다. 이 멋진 희곡을 쓴 작가는 다름아닌 임선규가 되겠다. 충남 논산 출신으로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했으나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명확한 기록이 없다. 해방 이후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랑 삼천리> <청춘극장> <김옥균> <어머니를 찾아서> <바람부는 시절> <동학당> 등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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