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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검찰관(1836)- 진짜가 된 가짜의 ‘웃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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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검찰관(1836)- 진짜가 된 가짜의 ‘웃픈’ 이야기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10.02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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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끝나면 그 이후의 일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영화의 속편을 기대하는 관객처럼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주인공이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지 말이다.

니꼴라이 고골이 쓴 <검찰관>에 등장하는 흘레스따코프나 지역 시장과 판사, 우체국장, 자선단체 병원장, 경찰서장, 교육감, 의사, 지주 등 막 밖의 인생을 상상해 보게 된다.

그러기 전에 내용을 먼저 살펴 보는게 순서다. 흘레스따코프는 스물서너 살 젊은 나이의 말단 관리로 하인과 함께 여관에 묵고 있는 중인데 돈이 다 떨어졌다.

하루 이틀 외상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그 기간이 넘어갔는데도 여전히 무전취식을 한다면 나그네의 딱한 처지를 이해한다고 해도 용납하기 어렵다. 19세기 니콜라이 1세 황제의 절대권력이 지배하던 러시아의 음울한 세상에서도 그렇다.

이런 그에게 운명처럼 암행 검찰관이라는 감투가 덜컥 씌워진다.

암행이니 검찰이니 하는 것은 그와는 전혀 상관없은 일이지만 일이 그렇게 되려는 지 진짜로 그는 황제의 비밀 명령을 받아 몰래 쌍뜨뻬째르부르그를 출발해 이고세 도착한 인물로 둔갑했다.

누군가 풍채 좋고 심각한 얼굴에 언변이 뛰어난 어느 곳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그를 그렇게 착각한 것이고 소문은 일시에 퍼져 나갔다.

문제는 누구도 그를 본 적이 없어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생김새는 물론 연령대도 확인할 수 없고 언행이나 습관 등도 전혀 모른다.

더구나 검찰관은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위장했다. 

이름을 숨기고 벌써 내사에 들어 갔는지 조차 알 수 없으니 죄를 저지른 힘 있는 자들은 좌불안석이 따로 없다.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그 소식을 들은 시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도 사소한 잘못은 물론 처벌이 불가피한 잘못이 산더미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 해도 하사관의 마누라를 채찍으로 때리고 죄수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거리는 지저분하고 난장판이니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장은 그가 머문다는 여관으로 옷을 깨끗이 하고 정식으로 찾아간다. 예산 남용, 재판 대신 사리사욕을 채워 정작 자신이 재판대에 서야 할 사람, 치안 유지 명분으로 마구 사람을 쳤던 앞서 언급한 유지들도 차례로 그렇게 한다.

그러기 전에 그들은 모여서 그동안 잘못된 것은 없는지 있다면 어떤 것이고 어떻게 무마해야 하는지 단단히 준비하기 위해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

시장은 우체국장에게 혹시 정부와 내왕하는 편지가 있을지 모르니 모든 편지를 부치기 전에 뜯어보자고 한다. 경계심 때문이 아니라 호기심 때문에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 아직 까지 그런 편지는 없다는 우체국장의 말에 시장은 맥이 빠진다.

그러다가 전광석화처럼 스치는 단어에 눈을 번쩍 뜬다. 뇌물이다.

먼저 시장이 무릎을 꿇는다. 용서해 달라고, 자신에게는 부인과 어린 자식이 있다고 그러니 자신을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지 말라고 애원한다.

아주 사소한 뇌물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뇌물은 정부에서 주는 봉급으로는 차와 설탕을 사기도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고 정당함을 항변한다. 하사관 부인을 채찍으로 때렸다는 것을 헛소문일 뿐이고 중상모략이라고 적극적으로 변호한다.

흘레스따코프는 시장의 이런 태도와 말을 듣고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깨닫고 진짜 검찰관 행세를 한다. 그러면서 시장에게 돈을 꾸고 자선병원를 시찰하고 시장 집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시장집에 도착해서는 지위에 압도당한 시장부인과 딸을 유혹하고 그 딸에게 청혼까지 한다. 추밀원을 들먹이고 백작이니 공작이니 하는 사람들과 친분을 과시한다.

총사령관이나 장군을 입에 올리고 뿌슈낀 같은 엄청난 작가와 자신이 동급이라고 하니 시장은 그만 각하, 각하를 뇌면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 같은 훌륭한 인물이 뇌물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졌음에도 시장은 저처럼 큰 인물인 그를 이용하려는 음흉한 계획을 세운다.

▲ 허풍선이 말단 관리에게 속은 시장 등 지역 유지들의 행태가 배꼽을 잡게 한다. 그러나 풍자 속에 깃든 진실 앞에 우리는 그러지 않은가, 반문하면서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 허풍선이 말단 관리에게 속은 시장 등 지역 유지들의 행태가 배꼽을 잡게 한다. 그러나 풍자 속에 깃든 진실 앞에 우리는 그러지 않은가, 반문하면서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그가 검찰관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은 사라졌다. 궁궐에도 출입하고 추밀원에서 호통을 치는 그에게 유지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유지하고 이익을 위해 앞다퉈 돈을 빌려준다.

국가적 인물에게 뇌물이 안되면 무슨 기념품 같은 것으로 뇌물을 대신하기로 작당하는데 그런 염려는 할 필요없다. 그들은 뇌물이 통하자 안도한다.

이제는 청탁의 차례다. 시장처럼 그들 역시 고관이나 원로원 장군, 황제에게 이런 고을에 저런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해 달라고 흘레스따코프에게 거듭 부탁한다.

상황을 완전 장악한 흘레스따코프는 상트뻬쩨르부르그에서 좋은 기사라면 친아버지도 빠져 나가지 못하는 기사를 쓰는 친구에게 이런 저런 내막을 알리는 편지를 쓴다. 우체국장을 통해 편지는 공짜로 부칠 심사다.

이런 와중에 검찰관이 왔다는 소문은 장사꾼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들은 시장의 등쌀에 장사 못해 먹겠다고 탄원한다. 흘레스따코프는 뇌물은 받지 않지만 대신 돈을 꿔달라고 장사꾼 마저 등쳐 먹는다.

이제 손을 털어야 한다. 그림자가 길면 밟히는 법. 그는 떠나기 전에 시장의 부인대신 그의 딸에게 청혼한다.

장사꾼과 하사 부인 등의 탄원으로 위기에 몰린 시장은 흘레스따코프가 자신의 사위가 된다는 말을 듣고 전세 역전의 기쁨을 누린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곳 변두리를 떠나 도시의 장군쯤으로 격상될 미래를 그려보며 부인과 희희낙락이다. 대신과 친한 사위의 연줄을 이용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회가 열리고 시장은 백살 까지 살고 금화 한 가마니를 얻으라는 덕담과 축하를 받기에 바쁘다.

그 사이 흘레스따코프는 시장이 준비해준 멋진 카펫이 깔린 말을 타고 하인과 함께 유유히 그곳을 벗어난다.

: 시장은 그가 떠난 후 녀석이 가짜라는 것을 안다. 우체국장이 흘레가 보낸 편지를 역시 경계심이 아닌 아직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압도된 호기심 때문에 뜯어 봤다가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특명을 받지도 않고 귀하지도 않은 하급관리는 떠났고 새로운 감찰관이 도착했다.

부인과 딸을 농락하고 거세된 말처럼 어리석은 시장이라는 평가를 내린 편지를 읽을 때 시장의 얼굴은 찌그러진다. 그때 잘못된 것을 들여다보기 위해 다들 모이라는 진짜 감찰관이 도착한다.

앞서 막 밖의 일을 궁금해 했으니 이제 그 궁금증을 해소해 보자.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흘레가 어떤 인물인지 알 것이다. 경솔하게 행동하고 함부로 말하고 눈치가 빠른 그는 도망쳐서 한동안 잘 살 것이다.

하인에게 선심도 쓰고 마부에게 1미터 갈 때마다 돈을 뿌리며 황제 시늉을 낸다. 그러다가 빌린 돈이 떨어지면 외상술을 먹고 그도 안되면 검찰관 흉내를 내다 들켜 혼쭐이 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지역 시장과 유지들의 부정부패가 드러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뇌물이 오고 간다.

시장이나 그의 아내와 딸도 막 안의 역할 이상을 수행하지 못한다. 교육감, 판사, 자선병원장, 우체국장, 지주, 의사, 경찰서장도 마찬가지다.

탄원서를 내고 마치 피해자 행세를 했던 장사꾼도 그들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 시장에게 뜯겨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배를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느님이 태어날 때 모두 그렇게 만들었기에.

사족: 이 글을 발표한 후 고골은 보수적 언론과 관리들의 눈을 피해 6년간이나 러시아를 떠나 로마로 피신했다고 한다. 흘레스따코프시치나(흘레스따코프주의)라는 말은 허풍선이의 동의어로 널리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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