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귀질환인 면역성 혈소판 감소증 치료제 레볼레이드(성분명 엘트롬보팍 올라민, 노바티스) 앞에 놓인 ‘비장절제’라는 허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효과가 불확실함에도 장기를 절제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만큼, 환자의 대부분이 장기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스테로이드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장절제’를 선행조건으로 내걸은 급여기준은 가혹하다는 지적이다.
26일, 서울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된 대한혈액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마카오 국립의대 그레고리 청 교수는 면역성 혈소판 감소증 치료에 있어 레볼레이드의 임상경험을 소개하며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
면역성 혈소판 감소증(ITP, immune thrombocytopenic purpura)은 혈액 속의 혈소판 수치가 정상보다 낮은 상태로, 몸 안의 면역체계가 혈소판을 이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아직 뚜렷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혈소판 파괴의 증가와 혈소판 생성의 감소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저질환이나 약물 등 다른 원인 없이 이러한 증상이 1년 이상 유지되는 경우 만성 면역성 혈소판 감소증으로 진단한다.
혈액의 응고에 작용하는 혈소판이 감소하는 질환인 만큼, 멍이나 출혈 등의 증상이 흔하게 나타나고, 피로감이 심하게 나타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그레고리 청 교수는 ITP환자의 80% 이상이 일상생활은 물론 사회생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인해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도 흔하고, 환자의 5%정도는 ITP로 인해 사망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면역체계의 이상이 주원인인 만큼 과거에는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 등이 주요 치료제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장기적으로 활용할 경우 오히려 이로 인한 위험이 더욱 크고, 면역억제제의 경우 증상이 나타났을 때 단기적으로만 효과가 나타나 만성 ITP치료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레볼레이드는 혈소판 수용체 작용제(TPO-Receptor Agonist, TPO-RA)로 TPO 신호를 증가시켜 인체가 더 많은 혈소판을 만들도록 촉진하는 약물로, 주요 임상연구를 통해 8.8년 이상 장기 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다.
스테로이드가 전신에 작용하는 치료제라면, 레볼레이드는 혈소판 생성에만 작용하는 표적치료제라는 것.
실제로 청 교수는 10년 가량 레볼레이드로 치료한 환자들의 삶의 질을 평가한 연구에서 거의 모든 항목에서 환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스테로이드제제와 면역억제제에 반응하지 않아 비장절제수술을 받았거나 비장절제수술을 받을 수 없는 환자여야만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와 관련 그레고리 청 교수는 “비장절제술을 받은 환자가 모두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60%정도만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어떤 환자들에게 효과적일지는 미리 알 수 없다”면서 “40%정도의 환자들은 효과가 없을 수 있음에도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로 인해 ITP환자 가운데 3%만이 비장절제술을 받고 있는데, 이는 1.5%정도의 환자만 비장절제수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면서 “그나마 비장절제수술로 ITP가 개선된다 하더라도 면역력 저하 등으로 감염의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비장절제술의 한계를 지적했다.
비장절제수술은 효과가 명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멀쩡한 장기를 절제하고, 이로 인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이라는 지적이다.
청 교수는 “각 나라의 급여 기준은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면서도 “1.5%의 환자들만이 접근 가능한 ‘비장절제수술’ 환자들에게만 급여의 혜택이 가능하다는 것은 비상식적이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